제 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JIMFF)는 18일을 끝으로 6일간의 축제를 마친다. ‘휴양 영화제’라는 별칭을 자랑하지만 정작 JIMFF의 살림을 꾸리는 이들은 잠깐의 휴식조차 누리기 힘들다. 그렇기에 매일 밤 이어지는 ‘원 썸머 나잇’ 공연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까지 지키는 조성우 집행위원장은 피곤한 직장상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청풍호반을 배경으로 인터뷰 사진을 찍는 순간조차도 “저기 계곡 보이죠? 제천에는 좋은 계곡들이 정말 많은데 거기서 노는 방법들을 소개하는 매뉴얼을 나눠주는 건 어떨까요?”라며 머릿속에 온통 JIMFF 생각뿐인 조성우 집행위원장은 JIMFF를 찾는 관객들에게는 이상적인 기획자일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 <봄날은 간다>, 등의 영화음악으로 관객들의 귀가 호사를 누리게 한 영화음악가이도 한 조성우 집행위원장과 폐막을 하루 앞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5회를 맞이하고, 규모도 국내 다른 영화제들에 비해 크지 않은데도 게스트들 특히 감독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김지운 감독이 트레일러를 만들기도 했고, 허진호, 이명세, 한지승 감독 등은 개막식 때만 잠깐 참석하는 게 아니라 영화제 기간동안 오래 머물더라.
조성우
: 김지운 감독한테는 작년에도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에서 강의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영화 <놈놈놈> 홍보 때문에 너무 바빠서 거절당했다. 그래서 한 번 거절했으니까 올해는 해주겠지 하고 있었다. 감독을 설득하는데 2년 걸렸다고 보면 된다. (웃음) 다른 영화제들은 집행위원이 영화평론가, 대학교수나 관료 출신인데 비해, 아무래도 나는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하면서 감독들하고는 친구가 되었으니까 설득하는데 쉬운 측면도 있다. JIMFF의 성공을 위해 영화인들을 괴롭히는 게 내 임무다. (웃음)

“TTC 상영관의 음향 시설은 반드시 업그레이드 해야 된다”

개막작 <솔로이스트>의 배급사도 굉장히 오랫동안 괴롭혔다고 들었다. (웃음) 국내 영화제 개막작으로 할리우드의 직배 영화가 상영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조성우
: <솔로이스트>를 개막작으로 가져오느라 정말 많이 힘들었다. 계속된 거절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으로 설득했다. 우리가 절박했던 게, JIMFF는 음악영화제니까 영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솔로이스트> 같은 좋은 음악영화가 있는데 놓칠 수가 없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럼에도 개막작 상영 중 음향사고가 나는 등 청풍호반무대에서 펼쳐지는 야외 상영이나 공연에서 음악영화제임에도 사운드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꽤 있더라.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상영되는 TTC 상영관도 그렇고.
조성우
: 음향에 관해서는 <솔로이스트> 상영 때 왼쪽 스피커의 접촉에 문제가 생겨서 소리가 고르지 못했던 점이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말씀하셨듯이 TTC 상영관의 사운드다. JIMFF는 음악영화제라 사운드가 다른 영화제들보다도 더 좋아야 하는데, TTC 상영관은 일반적인 극장보다 음질이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TTC 상영관의 음향 시설은 반드시 업그레이드 해야 된다. 음악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적인 감동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음향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을 2년 전부터 하고 있고, 아마 내년에는 TTC 상영관의 일부라도 개선될 것 같다. 그냥 넋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집요하게 물어뜯고 있다. (웃음)

제 2회 JIMFF 때부터 지금까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는데, 처음 영화제를 시작할 때는 어땠나. 음악영화제라는 개념조차 생소할 때였는데.
조성우
: 국내에 워낙 영화제가 많아서 JIMFF도 탄생 초기에는 무수히 많은 영화제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하나에서 탈피하고,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는 영화제가 되기 위해서 노력 했다. 그러다 보니까 조금씩 알려지고,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나 5주년 기념 포럼, 음악영화 사전 제작 지원 같은 내실 있는 활동들도 올해는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종전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

사실 조성우라는 이름은 JIMFF의 집행위원장보다는 영화음악 감독으로 더 익숙하다. 10여년간 엄청나게 많은 영화들의 음악을 만들었는데, 한국의 영화음악 시장을 독식한 비결이 있나? (웃음)
조성우
: 감독들하고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 (웃음) 감독들이 영화음악에 바라는 것을 실현시키는 내 방식이 과거와는 좀 다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감독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세계를 잘 이해하려고 했다. 그 외에는 튼튼한 체력과 시스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실 그렇게 많은 작업은 혼자서 하기 어렵다. 녹음실도 짓고, 스태프들도 꾸리고 회사도 만들고. 그렇게 시스템적으로 작업을 했으니까 가능했다.

영화음악가로서 다작을 가능케 했던 시스템이자 사업체인 M&FC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조성우
: 작곡가 11명, 엔지니어 3명에 저작권 관리 스태프까지 포함하면 20명의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서 영화음악과 관련된 일을 한다. 작곡가 중 절반은 데뷔를 해서 자기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영화음악의 산업적 규모에 비하면 큰 편이다.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M&FC는 음반제작에서부터 영화 수입, 배급, 제작 등 영화 전반에 관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예전부터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던 감독들에게 제작 투자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음악감독으로 만나는 것과 제작자 혹은 투자자로 그들을 만나는 건 많이 다를 것 같다.
조성우
: 물론 영화에 참여할 때 음악가로서, 제작자로서, 배급자로서의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음악을 할 때 맺었던 인간관계를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다. 사실 나는 감독들에게 그냥 솔직하게 다 얘기하는 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오랜 친구인 사람들과 일하게 되면 “나 돈 좀 벌어야겠는데, 니가 좀 양해해라” 그런 식으로 부탁하곤 한다. (웃음)

영화음악 프로덕션으로 시작한 M&FC는 앞서 말했듯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사업뿐만 아니라 피혁회사도 인수하고, 일본정밀이나 일본 내 콘텐츠 유통 사업도 하는데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면 정작 음악할 시간은 부족할 것 같다.
조성우
: 사실 음악은 회사 사업의 규모로 보면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음악 만드는데 너무 집중해서 정작 전반적인 사업 쪽에는 크게 신경을 못 썼다. 작년 같은 경우는 영화 <순정만화>, <아버지와 마리와 나> 등을 제작하면서도 영화음악만 3편을 만들고, 뮤지컬 <대장금>도 작곡했다. 회사에선 대표가 너무 회사에 신경 안 쓴다고 할 정도였다. (웃음) 그래서 작년에 영화 <신기전>을 끝내고 나선 회사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래도 올 하반기부터는 영화와 관계가 없는 일들은 좀 정리를 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여태까지 내가 했던 음악들이 좀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이라서 바꿔보려고 한다.

말했듯이 누가 들어도 조성우 표 음악이라고 할 만큼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들을 다양한 영화에서 활용하긴 했다. (웃음) 새로운 스타일은 어떤 쪽으로 구상하고 있나.
조성우
: 지금까지 했던 영화음악들이 실험성이 부족했던 것 같다. 관습적인 작법들로만 음악을 만들기도 했고. 그래서 요즘은 영상을 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양적으로 많이 하지 말고, 정말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만나서 한 곡으로 승부하고 싶다. 여러 가지 실험적인 편곡도 해보고, 기존에 들어보지 않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 주로 국내 작품들보다는 해외에서 활동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음악을 할 때처럼 하면 JIMFF도 세계적인 영화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2007년에 일본영화 <개와 나의 10가지 약속>의 음악감독을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일본에서 작업을 하게 되는 건가.
조성우
: 그렇다. 그 작품으로 일본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기회가 생겼다. 또 일본 영화음악 분야가 굉장히 선진화돼있으니까 그쪽 시스템을 한국에 많이 소개 할 계획도 있다. <개와 나의 10가지 약속>을 만든 제작사에서 하는 작품을 두 편 더 할 것 같다. 어쩌면 종전의 내 스타일과는 전혀 다르게 괴수영화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웃음)

조성우의 음악을 괴수영화에서 들을 수 있다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웃음) 그렇게 음악의 스타일을 바꾸려는 시점에서 그동안 만들었던 음악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조성우
: 돌이켜보면 아끼지 않는 작품이 없지만 <봄날은 간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내 감성에 잘 맞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였으니까. 다른 음악들은 사실 영화를 위해서만 만든 경우도 많았는데, <봄날은 간다>는 내 감성과 워낙 잘 맞아서 내 음악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들어도 <봄날은 간다>나 <행복>은 참 좋다. 연주 할 일이 있으면 그 음악들을 제일 먼저 하기도 하고.

영화음악가, 사업가, JIMFF 집해위원장까지 정말 다양한 직함들을 가지고 있는데, JIMFF의 수장으로서 앞으로 영화제의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는가.
조성우
: 앞으로 JIMFF가 가야할 방향은 음악영화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연구해서 독보적인 콘텐츠를 가진 영화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인력들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한다. 해외에도 비슷한 콘셉트의 영화제가 있지만 음악영화의 장르를 탐구하고, 사전제작까지 지원하는 데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영화제 사람들이 느슨한 틈을 타서 음악영화제로서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데 역점을 두려고 한다. 어차피 우리한테 규모는 큰 의미가 없다. 마치 음악을 할 때처럼 내용으로 승부하는 정신이라면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 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하려면 아직은 해결해야할 운영상의 아쉬운 점들이 올해 보이기도 했다.
조성우
: 가장 아쉬웠던 건 제천 시내를 활성화 시키지 못한 것이다. 영화제를 하다보면 시에서 영화제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지역경제의 활성화나 지역민들의 공익 증진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제천 시민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접근이 용이한 시내 쪽에 행사들을 가급적 많이 배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상인들과 이해관계에 맞지 않아 공연들이 이루어지는 JIMFF존을 개막하면서 급하게 의림지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축제 분위기가 덜 난 것도 사실이다. 또 운영상의 문제로 인해 영화 상영관과 청풍호반무대를 연결하는 셔틀버스의 배차간격 거의 지켜지지 않았는데, 매년 그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하지만 올해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부문 진출작들을 본 심사위원들이 작년보다 다섯 배는 더 작품의 질이 좋다고 평하기도 하더라. 콘텐츠에 내실을 다진다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었던 한 해 같다.

글. 제천=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제천=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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