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MBC 월-화 밤 9시 55분
“논다, 놀아.” 신분과 갈등을 뛰어넘는 유신(엄태웅)과 덕만(이요원)의 애틋한 사랑에 응원은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선 안 되겠지만, 한 순간 비담(김남길)의 저 비아냥거림에 공감한 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같이 신라를 떠나자는 유신에게 “혹시 나 좋아해요? 그게 아닌 거 아는데 왜 그래요?”라는 덕만이나 최대한 비장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한 적 없다”는 유신의 대사는 손발이 오그라들어 과연 미실로부터 도망이나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고, “옥사에 갇혀 있는 동안 미치는 줄 알았다. 이제 다시 저들 손에 너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널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는 유신의 대사에선 의구심이 확신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간지러운 대사를 내뱉으며 덕만과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고 해서, 정작 보종(백도빈)을 꺾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자 “공주님의 화랑이 되겠습니다”는 약속을 번복한다고 해서 유신을 비난해선 안 될 것이다. 만날 자신이 기생 천관의 집에 들락거려놓고선 잠시 잠든 사이 말이 천관의 집에 데려다줬다고 해서 말의 목을 베는 ‘꼬장’을 부리던 위인전 속 김유신보단, 도피를 만류하는 알천(이승효)에게 “난 마음과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일세”라고 말하는 <선덕여왕>의 유신이 훨씬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당위 앞에서 갈등하고, 신념을 잠시 접기도 하는 더없이 약한 존재다. 그리고 역사는 그토록 약한 인간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발전시켜가는 것이지 결코 완전무결한 구국의 영웅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위인전으로 기록된 역사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 속에서도.
글 위근우
<전설의 고향> KBS2 월-화 밤 10시
서울 평균 기온 30℃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함께 <전설의 고향>이 돌아왔다. 총 10편의 단막극으로 이루어져 호러판 <드라마 시티>를 연상시키는 <전설의 고향>의 첫 번째 이야기는 ‘혈귀’, 저승사자의 실수로 혈귀가 된 현(김지석)이 숫처녀 9명의 피를 빨아야만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정에 남편에게 외면당해 숫처녀로 지내는 연(이영은)과 현의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였다. 그러나 병원에서 연애하는 의학 드라마, 법정에서 연애하는 법정 드라마가 점점 지루해지듯 흡혈귀가 연애하는 공포 드라마 역시 초점이 어긋나기는 마찬가지, 김지석이 MBC <놀러와>에서 털어놓았던 대로 특수 분장을 하고 와이어 액션을 감행하며 얼굴에서 아무리 선혈을 뚝뚝 흘려도 무섭지 않은 것은 20년 전 그대로인 저승사자 분장보다도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엉성한 이야기 구조의 탓이 크다. 특히 연을 만나기 전의 현이 왜 그렇게까지 해서 인간으로 돌아오려 하는지, 현과 연이 왜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만큼 사랑을 느끼는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혈귀’는 멜로와 호러 양쪽을 다 놓치고 말았다. 그나마 공포의 기운을 다소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숫처녀’에 대한 기이한 집착과, 외간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오해를 받아 남편에게 곤장을 맞는 연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그 시대 여성의 잔혹사 정도다. 물론 한 시간짜리 단막극에서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모처럼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 함께 TV 앞에 앉았을 시청자를 당황시킬 만큼 적나라한 베드신이 상책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단지 ‘방학용’ 공포물을 뛰어넘기 위해 앞으로 방송될 9편의 <전설의 고향>이 기억해야 할 원칙은 하나다. 더 깊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더 많은 피가 아니라 더 촘촘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글 최지은
“논다, 놀아.” 신분과 갈등을 뛰어넘는 유신(엄태웅)과 덕만(이요원)의 애틋한 사랑에 응원은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선 안 되겠지만, 한 순간 비담(김남길)의 저 비아냥거림에 공감한 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같이 신라를 떠나자는 유신에게 “혹시 나 좋아해요? 그게 아닌 거 아는데 왜 그래요?”라는 덕만이나 최대한 비장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한 적 없다”는 유신의 대사는 손발이 오그라들어 과연 미실로부터 도망이나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고, “옥사에 갇혀 있는 동안 미치는 줄 알았다. 이제 다시 저들 손에 너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널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는 유신의 대사에선 의구심이 확신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간지러운 대사를 내뱉으며 덕만과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고 해서, 정작 보종(백도빈)을 꺾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자 “공주님의 화랑이 되겠습니다”는 약속을 번복한다고 해서 유신을 비난해선 안 될 것이다. 만날 자신이 기생 천관의 집에 들락거려놓고선 잠시 잠든 사이 말이 천관의 집에 데려다줬다고 해서 말의 목을 베는 ‘꼬장’을 부리던 위인전 속 김유신보단, 도피를 만류하는 알천(이승효)에게 “난 마음과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일세”라고 말하는 <선덕여왕>의 유신이 훨씬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당위 앞에서 갈등하고, 신념을 잠시 접기도 하는 더없이 약한 존재다. 그리고 역사는 그토록 약한 인간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발전시켜가는 것이지 결코 완전무결한 구국의 영웅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위인전으로 기록된 역사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 속에서도.
글 위근우
<전설의 고향> KBS2 월-화 밤 10시
서울 평균 기온 30℃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함께 <전설의 고향>이 돌아왔다. 총 10편의 단막극으로 이루어져 호러판 <드라마 시티>를 연상시키는 <전설의 고향>의 첫 번째 이야기는 ‘혈귀’, 저승사자의 실수로 혈귀가 된 현(김지석)이 숫처녀 9명의 피를 빨아야만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정에 남편에게 외면당해 숫처녀로 지내는 연(이영은)과 현의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였다. 그러나 병원에서 연애하는 의학 드라마, 법정에서 연애하는 법정 드라마가 점점 지루해지듯 흡혈귀가 연애하는 공포 드라마 역시 초점이 어긋나기는 마찬가지, 김지석이 MBC <놀러와>에서 털어놓았던 대로 특수 분장을 하고 와이어 액션을 감행하며 얼굴에서 아무리 선혈을 뚝뚝 흘려도 무섭지 않은 것은 20년 전 그대로인 저승사자 분장보다도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엉성한 이야기 구조의 탓이 크다. 특히 연을 만나기 전의 현이 왜 그렇게까지 해서 인간으로 돌아오려 하는지, 현과 연이 왜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만큼 사랑을 느끼는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혈귀’는 멜로와 호러 양쪽을 다 놓치고 말았다. 그나마 공포의 기운을 다소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숫처녀’에 대한 기이한 집착과, 외간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오해를 받아 남편에게 곤장을 맞는 연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그 시대 여성의 잔혹사 정도다. 물론 한 시간짜리 단막극에서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모처럼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 함께 TV 앞에 앉았을 시청자를 당황시킬 만큼 적나라한 베드신이 상책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단지 ‘방학용’ 공포물을 뛰어넘기 위해 앞으로 방송될 9편의 <전설의 고향>이 기억해야 할 원칙은 하나다. 더 깊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더 많은 피가 아니라 더 촘촘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글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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