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트리플>은 분명 2009년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다. MBC <태릉 선수촌>,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 청춘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사랑스럽게 그려냈던 이윤정 감독과 이정재, 이선균, 윤계상 등의 배우들은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결말을 향한 여정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좀체 오르지 않는 시청률만큼이나 <트리플>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은 조바심이 난다. 하루(민효린)와 활(이정재), 현태(윤계상)와 수인(이하나), 해윤(이선균)과 상희(김희)가 언제쯤 나풀거리기만 하는 얇은 옷의 가벼움을 벗고 진짜 속살을 보여줄지도 요원하다. 강명석 <10 아시아>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본드 팩토리와 2번 창고 속에 갇힌 청춘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편집자주
글. 김선영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이윤정 감독의 MBC <태릉선수촌>, <커피프린스 1호점>, <트리플>은 모두 특정 공간에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드라마 속의 청춘들은 각각 선수촌, 커피숍, 회사 겸 집에서 함께 지내고, 그곳에서 일과 사랑을 모두 해결한다. 세 드라마의 공간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고, 미숙한 청춘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다. 하지만, <트리플>에서 활(이정재)이 집에 차린 본드 팩토리는 다른 공간들과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선수촌은 국가대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작은 세상이었고, 커피숍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알바 소녀’와 ‘장난감 소년’이 세상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유예의 공간이었다. 반면 본드 팩토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자들의 ‘도피’의 공간이다.
고민도 치열함도 진짜 사랑도 없는 공간
그들은 배신이 횡행하는 광고계로부터, 실패한 결혼으로부터, 자신의 진로 문제로부터 도망친다. 그들에게 본드 팩토리는 세상에 치인 상처를 치유할 도피처이자, 물러설 곳 없는 최후의 보루다. 활은 광고를 따내서 먹고 살아야 하고, 하루(민효린)는 의붓오빠 활의 집에 머무는 동안 피겨스케이팅이든 활에 대한 사랑이든 승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트리플>의 도망자들은 승부를 한없이 유예한다. 하루는 활과 자신의 코치인 수인(이하나)이 부부였다는 사실을 알지만, 결국 다시 활의 집에 돌아간다. 현태 역시 활과 수인의 관계를 알고서도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주위를 돌면서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전달한다. 본드 팩토리의 팀원들 역시 수 없이 광고를 따내지 못해도 큰 갈등 없이 다음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한다. 하루는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여유로움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힘든 순간들을 온전히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터널 끝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지만, 그가 도착한 건 터널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문제는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 때마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 <트리플>에서 모두가 모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이 무기징역 같은 유예과정을 지속시킬 진통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문제 때문에 상처받지만, 연애를 통해 치유된다. 하루는 활에게 받은 상처를 풍호(송중기)의 접근으로 위로받고, 수인은 활의 공백을 현태를 통해 메운다. 그래서 <트리플>은 <태릉선수촌>과 <커피프린스 1호점>에 비해 더 어른들의 이야기지만, 오히려 선택과 성장이 결여된 그들만의 놀이터다. <트리플>에 <커피프린스 1호점>처럼 감정적인 울림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없는 건 의붓남매의 사랑이나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설정 때문이 아니다. 마치 어려운 시험을 보지 않으려는 아이들처럼, <트리플>은 오직 연애의 달달한 순간들만을 보여주려 한다.
지금 이윤정 감독에게 필요한 것
<트리플>이 캐릭터들에게 유독 극단적인 상처를 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활의 광고주(김창완)는 실수를 한 환의 머리에 맥주를 쏟아 붓고, 하루의 강아지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죽는다. 이 상처들은 금세 연애로 치유되고, 문제는 저 멀리 달아난다. 남은 건 여느 트렌디 드라마보다 더 개연성 없는 사건들과 변화 없는 캐릭터들 뿐이다. <트리플>에는 유도와 이종격투기를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한 <태릉선수촌>의 민기(이민기)의 치열한 젊음도,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동성인줄 알았던 은찬(윤은혜)으로 인해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를 고민했던 한결(공유)의 성찰도 없다. 지금 <트리플>은 즐기기엔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과시하고, 의미를 찾기엔 공허한 위치 불명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청춘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들이 함께 사는 공간도 그대로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이전과는 다를까. 지금 이윤정 감독에게 필요한 건 더 아름다운 영상이 아니라 자신의 공간 안에서 만들어진 연애담이 청춘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었던 그 성찰의 깊이를 되찾는 것 아닐까.
글 강명석
“중요한 결심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는 것처럼 쉽게 이루어진다. 그건 맑고 투명한 시냇물을 발견했을 때와 같다. 아! 맑다,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두 손을 물에 담그는 것, 두 발을 담그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것.” MBC <트리플> 첫 회의 엔딩 내레이션은 이 드라마의 두 가지 주요한 특징을 시사한다. 하나는 영원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 ‘지금 이 순간’의 중요함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감정을 원초적이고 순수한 감각의 차원으로 치환하는 화법이다. 그리고 이 둘은 동시에 <트리플>이 왜 미숙한 드라마에 머물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글. 강명석 (two@10asia.co.kr)
순간의 마법의 힘과 허상
8회에서 현태(윤계상)는 부상과 짝사랑으로 우울해하는 하루(민효린)를 위로하기 위해 인생 그래프를 그려주며 말한다. “지금 역시도 그냥 저 그래프 속의 한 순간일 뿐이지 않을까.” 엇갈린 사랑 때문에 힘겹고 여전히 모호한 생의 의문들 앞에서 흔들리는 <트리플>의 인물들에게 이 ‘순간의 마법’은 현실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는 가장 큰 방어기제이자, “팔 한쪽 다리 한쪽 남기지 말고” 온몸을 던져볼 수 있는 열정의 원동력이다. “네가 누굴 좋아하건 상관없어. 난 지금이 제일 중요해. 후회 없이 다 해볼 거야” 라는 풍호(송중기)나 영원히 스케이팅을 못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지금 당장 빙판 위에 서는 것이 더 즐거운 하루와 같은 소년소녀들뿐 아니라, 안정된 직장보다 지금 자신의 꿈과 사랑이 더 중요한 ‘본드 팩토리’와 ‘2번 창고’의 주인들에게도.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해결해야할 현실의 과제를 미루고 계속해서 순간만을 연장하는 인물들의 미숙함의 원인이 되기도 하다. 청혼 받은 반지를 숙제라고 부르는 상희(김희), 혼인신고를 계속 미루는 활(이정재), “하루만 나한테 주라”며 금단의 사랑을 이름 그대로 ‘하루씩’ 연장하는 하루 등 인물들의 모습은 치열한 성장통의 와중에 있다기보다는 고인 물 마냥 제자리를 맴도는 것에 더 가깝다. 늘 먹고 마시며 상대방에게도 함께 먹을 것을 권하고 키스에 집착하며 수다를 좋아하고 소통에 서툴면서도 애정을 갈구하며 친구들과 함께 모여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트리플>의 인물들은 심지어 구순기 고착의 퇴행적 아이들처럼 보인다.
감각적 화법이 놓치고 있는 것
그런데 이러한 인물들의 미숙함은 <트리플> 특유의 감각적 화법 때문에 더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다. 다시 첫 회의 엔딩 내레이션을 떠올려보면 하루는 중요한 결심의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맑은 시냇물을 발견하고 몸을 담갔을 때의 감각에 비유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감각적인 대사나 영상으로 옮겨 적는 화법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며, 이는 앞서 말한 ‘순간의 마법’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윤정 감독은 분명 인물들의 관습적이지 않은 동작을 롱테이크로 따라가거나 새로운 앵글로 비추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일상을 신선한 감각으로 재발견하게 하는 재능을 지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물 감정이 감각으로 치환될 때 그 과정에서 소실되는 감정의 양만큼 캐릭터는 얄팍해지고 드라마는 가벼워지며 시청자들은 공허해진다. 가령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도 치열한 세상”이라는 하루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9회 오프닝 시퀀스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핑크빛 털이 보송보송한 날 커버로 감싸인 채 곱게 놓인 스케이트였다. 결국 치열함은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이미지만 남은 것이다. 미숙한 소녀의 설익은 점프처럼.
글 김선영
글. 김선영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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