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우는 엄마가 가장 맘이 아플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엄마, 난 쟤랑 놀고 싶은데 쟤는 내가 싫대”라며 아이가 눈물을 펑펑 쏟을 때랍니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따돌림을 당한 아이가 집에 돌아와 울며불며 하소연 할 때도 그렇고, 그러다 머리 커진 아들 녀석이 짝사랑으로 끙끙거릴 때도 그렇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엄마의 가슴 속은 그야말로 복장이 터지죠. ‘금쪽같은 내 자식을 감히!’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본들 뭘 어쩌겠어요. 사람의 마음이란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말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을요. 아이스크림이나 피자로, 또는 반지나 명품 지갑으로 환심은 살 수 있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한 순간일 뿐이잖아요. 스스로 사랑 받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고, 노력을 해도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쿨하게 포기하는 게 서로 신간 편하다는 걸 빨리 깨닫길 기도할 밖에요. 그런데 그게 그렇더라고요. 우리 아이를 좋아해주지 않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건 도리가 아님을 잘 알지만, 그래도 얄미운 건 어쩔 수 없더라니까요.

이제 은환커플에 아무리 통사정 해봤자 소용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난번 환(이승기)이가 승미(문채원) 씨에게 “지금까지 나 누구 좋아해본 적 없다. 그냥 편하고 익숙해서, 그 동안은 그랬는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라고 하는데 마치 제 자식이 그런 소릴 들은 양 속이 쓰리더군요. 8년 동안을 그리 어정쩡하게 지내다 이제 와 좋아한 게 아니었다니요. 그럼 너만 바라보며 살아온 나는 어쩔 것이냐 물어 봤자 아마 돌아오는 답은 이런 걸 테죠. “그러게, 누가 나 좋아하래?” 승미 씨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지 짐작이 가고 남습니다. 철들면서부터 내내 환이만 해바라기 했거늘, 그런 환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은성(한효주)이에게 홀렸으니 왜 은성이 목이라도 조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간 승미 씨와 승미 씨 어머니(김미숙)가 은성이에게 천인공노할 잘못들을 저질렀지만 어머니와 달리 승미 씨는 오직 환이를 잃을까 두려워 온갖 일을 꾸몄던 거잖아요.

그 놈의 사랑이, 정이 뭐라고, 이렇게 망가진 승미 씨를 보면 아주 딱해 죽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친아버지와 어머니의 갈등 때문에, 그리고 새아버지 집에 들어와서는 동갑내기 은성이에 대한 콤플렉스로 내내 마음이 지옥 속이었죠? 그나마 환이에 대한 사랑이 유일한 위안이자 긍지였을 텐데, 그 꽃밭이 짓이겨졌으니 어디 제 정신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정신줄을 놓을 때가 아니에요. 은성이 붙들고, 환이 붙들고 통사정을 해봤자 그 두 사람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냐고요. 악녀 기질로는 오히려 어머니보다 한 수 위인 승미 씨지만 은성이와 환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랍니다. 또한 혜안을 가진 환이 할머님(반효정)이 그들의 편이라는 거 이미 잘 알고 있잖아요?

그래도 승미 씨가 제일 안타까워요

다행히 환이 할머니께서 일주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셨더군요. 기뻐하는 환이와 은성이와 함께 있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승미 씨가 안쓰러웠어요.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 봤자 엄마란 사람은 불난 데 아예 선풍기나 돌리고 있으니 원. 자격 없는 어머니로는 가히 올림픽 금메달감인 승미 씨 어머니 얘긴 입에 담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식이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해대는 걸 흐뭇해하는 어미를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딸인 승미 씨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어느 누가 어떤 말로 타이른들 개과천선할 인물이 아니더라고요. 물론 거짓말은 제 엄마보다 더 잘 하면서 만날 엄마에게 책임 전가만 하고 원망만 늘어놓는 승미 씨가 더 밉상이라는 이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곧 아버지와 동생을 비롯하여 잃었던 모든 걸 되찾을 은성이와, 반면 가진 걸 다 잃은 후 그 잘난 화근덩어리 어미만 곁에 남을 승미 씨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래도 남자에게 기생하여 사는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열심히 노력하던, 환이를 만나기 전의 사랑스럽고 당찬 승미 씨를 떠올려 보자고요. 이렇게 자기 자신을 한 남자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망치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요? 부디 어머니가 몰고 있는 자동차에서 내릴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그런 후 환이 할머니께 속을 털어 놓고 사죄드린다면 아마 좋은 방도를 알려주시지 싶어요. 물론 벌을 주시긴 하겠지만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나 몰라라 하실 분은 아니니까요. 나만 내리면 우리 엄마는? 뭐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답니다. 승미 씨 어머니는 지금껏 살아왔듯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 잘 사실 게 분명하니까요. 나중에 <일흔까지 악녀로 당당히 사는 법>이란 책이라도 내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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