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지 말라”는 뼈에 새길만한 명대사를 남겼던 <싱글즈>가 뮤지컬로 탈바꿈한지 벌써 햇수로 3년이다. 그동안 수많은 뮤지컬배우와 김지우, 앤디, 손호영 등의 연예인들이 거쳐 간 그 무대에 2년 전 초연멤버들이 다시 모였다. 새롭게 정준 역을 맡은 이진규가 “잘해봤자 본전”이라고 던진 우스갯소리가 쉬이 들리지 않는 뮤지컬 <싱글즈>의 프레스콜이 7월 1일 대학로 PMC자유극장에서 열렸다.

뮤지컬 <싱글즈>는 장진영, 엄정화가 출연했던 2003년의 동명영화를 원작으로 스물아홉을 맞이한 주인공 나난과 그녀를 둘러싼 결혼 ‘안한’ 싱글들의 삶을 그리고 있으며, <미녀는 괴로워>, <마이 스케어리 걸> 등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무비컬의 효시격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2007년 초연부터 동숭아트센터, 호암아트홀 등 400석이 넘는 규모의 중극장에서 줄곧 공연을 해왔던 <싱글즈>가 2009년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하여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긴다. 그로 인해 나난의 빨간 하이힐 침대 등 무대 위 소품들은 사이즈가 작아졌지만, 좁아진 무대 덕분에 동미의 ‘스페셜액션플랜’ 같은 넘버에서는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김과장과 심대리가 되어 극에 참여할 수 있는 등 관객과의 소통도 준비하고 있다. “이 캐릭터들이 이미 정답”이라는 임진아의 발언처럼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지만, 새롭게 투입된 임진아, 이진규, 최지호 역시 주목할 만하다. 백민정 못지않은 가창력을 선보이는 임진아, 올 3월 뮤지컬 <자나! 돈트>를 통해 외로운 매치메이커 자나 역을 톡톡히 해냈던 이진규, 자신이 지닌 외모를 배반하는 어수룩한 매력의 최지호는 초연멤버들이 잃었을지 모를 열정을 다시 되살려 줄 것이다. 빌딩숲 사이에 자리한 싱글들의 이야기가 소극장에서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싱글즈>는 6월 30일부터 오픈런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스물아홉, 아무 의미도 없어” 나난, 오나라ㆍ구원영
스물아홉 생일축하전화로 시작되는 <싱글즈>는 그야말로 오롯하게 나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가뜩이나 심란한 판에 3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에게서는 이별통보를 받고, 회사에서는 한순간에 좌천당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같은 나난 역에는 초연멤버 오나라와 구원영이 참여한다. “일본극단 사계로의 도전이 내 스물아홉의 기억이고, 워낙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나의 스물아홉은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불안해하는 나난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서른을 넘고 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오나라) “2007년 처음 <싱글즈>를 할 때가 스물아홉이었는데 나난의 고민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배우들의 현실감각이 일반인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질 않나 (웃음) 서른하나가 된 이제야 나난의 고민이 와 닿는다.”(구원영)

“봤냐! 이게 널 위한 스페셜액션플랜이다!” 동미, 백민정ㆍ임진아
동미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그냥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질러버리는 화끈한 성격이다. 초연멤버 백민정과 <그리스>, <이블 데드> 등에 출연한 임진아가 자유연애주의자 동미를 맡는다. “20대는 항상 욕심도,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아 갈팡질팡하던 때였다. 서른으로 넘어가는 날 밤 친구들이랑 눈물 흘리면서 파티를 하기도 했는데, 30대가 되고 나니 내 인생에 자신감도 생기고 일에 대해 안정감도 생겨서 더 좋아진 것 같다.”(백민정) “스물여덟에 아무것도 모른 채 뮤지컬을 시작했는데, 스물아홉에는 차차 배워가면서 무대에 서는 즐거움을 알았었다.”(임진아)

“이상하다, 내가 분명 여기로 마셨는데” 수헌, 서현수ㆍ최지호
김주혁 특유의 넉살좋은 웃음과 표정이 돋보였던 수헌 역에는 초연멤버 서현수와 모델출신 연기자 최지호가 캐스팅 되었다. “한창 방황하던 시기에 뮤지컬 <싱글즈>를 하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그때가 스물아홉이었다. 그래서 더 애착이 많이 갔는데 특히 그중 나난에 많이 몰입해있었던 것 같다. (웃음)”(서현수) 기존의 수헌들이 깔끔한 매너 뒤에 특유의 넉살을 보여줬다면, 최지호가 보여줄 수헌의 포인트는 잘빠진 ‘수트간지’를 배반하는 어수룩함이다. 의외의 부드러운 음색이 깔끔한 매너를 가진 수헌 역에 제법 어울린다. “스물아홉 그때나 지금이나 치열하다는 점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런 고민들을 통해 자기 인생은 소중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작품인 것 같다.”(최지호)

“원하는 걸 주고 싶어도 내가 가진 건 그것 뿐” 정준, 김도현ㆍ이진규
가장 듣기 좋은 말인 동시에 가장 잔인한 말이 바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나난과 동미의 절친이자 동미의 룸메이트 정준은 착하고 순해빠져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여자 친구를 잡지 못하는 로맨티스트이다. 이 작품으로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초연멤버 김도현과 출연배우 중 유일하게 아직 스물아홉을 겪지 않은 이진규가 함께한다. “서른 살 때까지 경제적으로 완벽한 독립이 되지 않으면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벼랑 끝, 제일 암울했던 때였다. 연극을 하다가 뮤지컬로 전향을 시작했던 나이이기도 하고, 노래 공부하러 다니고 선생님을 찾아다니고 그랬다. 사실 군대만 없다면 20대로 다시 돌아가 보고도 싶다. (웃음)”

관전 포인트
우선은 “스물아홉이 별건가”라고 하면서도 “나이 드니까 이제 귀도 잘 안 들리냐”라는 대사에 움찔하게 되는 스물아홉 여자들에게 먼저 권한다. 그리고 나이를 막론하고 결혼을 ‘안한’거라고 우기지만, 결국엔 안하는 게 곧 못하는 것과 같다는 말에 감정이입 중인 KBS <결혼 못하는 남자>의 장문정와 같은 철벽녀들에게도 권한다. 또 한 가지 이 작품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많은 뮤지컬 넘버들이 OST와 무대에서의 느낌이 다르기 마련이지만, 특히 정준 역의 김도현이 부르는 ‘담배’는 꼭 무대에서 직접 보기를 권한다. 자신과는 정반대의 결혼상대를 원하는 여자 친구를 떠나보낸 후,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는 건지 흐느끼는 건지 모를 정준의 몸부림이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게 그저 ‘좋은 사람’이었다면, 정준에 동화되어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_악어컴퍼니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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