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블록버스터와 전문직 드라마, 장르물을 지향하는 드라마들이 쏟아졌던 한국 드라마 계에서 연애는 이야기를 흐려 놓는 ‘몹쓸 코드’로 취급받곤 했다. 그런데 MBC 과 KBS 는 근래 드물게 연애를 비롯한 감정과 관계를 중심으로 그려내는 작품들이다. 순정만화적인 캐릭터와 팬시한 영상을 보여주는 , 건조하면서도 개성 있는 인물들이 각자의 삶을 사는 방식을 흥미롭게 비춰내는 의 다르면서도 통하는 지점에 대해 가 주목했다. 의 답 없는 솔로들이 의 연애고수들을 찾아가 받은 상담 내용과 독자 여러분을 위한 자가진단 테스트도 준비했다. 물론, 다 읽어도…안 생긴다.

“내 주위에 하나 둘씩 생기니 언젠간 나도 애인이 생기겠지 막연히 생각하시죠.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안 생겨요. 어릴 땐 성인이 되면, 대학교에 가면 생길 거 같았죠? 근데, 안 생길 사람은 안 생기더라구요. 이 모든 게 여러분들 이야기는 아닐 것 같죠? 아닐 거 같아도…안 생겨요…” 1년 전 KBS <라디오 천국>에서 DJ 유희열은 한 청취자가 보낸 ‘안 생겨요’라는 시를 낭송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솔로들에게 큰 깨달음을 던지며 인생의 잠언으로 자리매김한 이 시는 그러나 결정적으로 ‘왜 나만 안 생길까’라는 보다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은 되지 못했다. 세계는 넓고 솔로는 많은데 안 생기는 사람은 안 생긴다. 나이가 들어도, 대학에 가도, 직업을 가져도, 소개팅을 해도 안 생긴다. 왜일까. 사실 이러한 현상은 세상의 커플 유통구조가 분명 어디에선가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MBC <트리플>과 KBS <결혼 못하는 남자>는 바로 그 비밀을 푸는 반쪽씩의 열쇠다.

연애하는 아이들과 생활하는 어른들

여고생 하루(민효린)는 부모가 다르지만 한 때 ‘오빠’였던 활(이정재)을 좋아하고, 활은 상대의 외도로 별거 중인 부인 수인(이하나)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다. 활과의 재결합을 바라는 수인에게 첫눈에 반해 끈질기게 구애하는 것은 활의 17년 지기 친구이자 동료인 현태(윤계상)고, 현태와 활의 친구인 해윤(이선균) 역시 자신들의 멤버인 상희(김희)와 ‘두 번 잤지만 사귀는 건 아닌’ 사이라 속이 썩는다. 여기에 하루를 따라다니는 열혈 소년 풍호(송중기)와 상희를 좋아하는 아르바이트생 재욱(김영광)까지, <트리플>의 주인공들은 큐피드의 화살을 뒤죽박죽으로 맞은 것처럼 엇갈린 채 각자 열애 중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펼쳐지는 <결혼 못하는 남자>의 연애밀도는 세계 꼴찌에 속한다는 대한민국 출산율을 밑돈다. 마흔 살이 되도록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 못해본 것으로 알려진 재희(지진희), 일 때문에 결혼을 미뤘다가 차고에 갇혀 먼지만 쌓이는 자동차 꼴이 된 삼십대 중반의 문정(엄정화), 재희 뒤치다꺼리만 하다 함께 늙어가는 동료 기란(양정아)도 그렇지만 전 남자친구에게 데이고 먹고 사는 데 치여 연애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유진(김소은)이나 연애를 하고 싶긴 한데 일은 바쁘고 돈은 없어 허덕이는 현규(유아인) 역시 열렬한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비밀은 이거다. 세상엔 연애를 자주,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애를 아예, 못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기회의 불균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각각 로맨스의 양지와 음지 대표선수라 할 만한 <트리플>과 <결혼 못하는 남자>는 그래서 같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그린다. 대형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들의 회사를 차린 활과 친구들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진짜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당장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도 부모의 유산인 저택이 있고, 술집을 개업할 자금도 있고, 예쁜 스쿠터와 차량 유지비도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내밀어진다. 삼십대 중반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아이’인 이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장난치다 상사에게 혼이 나고 정원에서 물 뿌리는 장난을 하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부모로부터도 조직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트리플>의 주인공들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네버랜드 안에서 오로지 자신의 감정만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반면 <결혼 못하는 남자>의 재희와 문정은 감정 대신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생활은 여유로운 편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상당한 기간 동안 경력을 쌓아 온 전문직 종사자이기 때문이지 돈을 벌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맞선 상대에게도 예의를 지키고 친척들의 잔소리가 싫지만 제삿날 자리를 지키는 이들 ‘어른’은 집에서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거나 DVD를 보고 게임을 하는 것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채운다.

<트리플>과 <결못남>이 말하는 연애에 대한 다행스런 사실들

그런데 감정에 솔직한 <트리플>의 ‘아이들’은 이성이 우선인 <결혼 못하는 남자>의 ‘어른들’보다 쉽게 관계를 만들고 발전시킨다. “옛날부터 나, 니 코에 뽀뽀해보고 싶었어” 같은 대사를 태연히 말하며 하룻밤을 보내는 상희와 해윤과 달리 재희와 문정은 옆집에서 들리는 야한 대화 몇 마디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수인에게 한눈에 반해 기습 키스 같은 무리수까지 두는 현태와 달리 재희는 남들에게 문정의 첫인상을 설명할 때 ‘예쁘다’는 감상조차 비추지 않으려 애쓴다. 활과 그의 친구들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하루와 공동생활을 하며 서로의 공간과 생활 반경에 거리낌 없이 드나들지만 “내 집 안에서만큼은 인간관계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재희의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서 문정과 유진은 비상 벽을 부숴야만 한다. 연애의 기본인 밀고 당기기에서 <트리플>이 미는 쪽이라면 <결혼 못하는 남자>는 ‘밀어내는’ 쪽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토록 다른 <트리플>과 <결혼 못하는 남자>가 현재 한국 드라마 안에서 만나는 지점이다. 2006년 <연애시대> 이후 모처럼 감정과 관계 그 자체에 집중한 이 작품들은 거대한 서사 없이, 성공이나 신분 상승 혹은 복수를 위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스토리가 억지로 관계를 밀어붙이는 물리적 결합 대신 감정과 일상이 천천히 관계를 만들어가는 쪽을 택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다행스런 사실, 모든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당연한 현실, 결혼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관계의 전환점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그려내는 각각의 방식은 지극히 다르지만 두 드라마가 또다시 우리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같다. 지금 혼자이든 함께 있든, 만일 누군가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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