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단 하루 만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스스로 ‘연예인’이라 이름 붙여라. 그리고 누구나 솔깃할 법한 소식을 올려라. 다음날 당신의 이름은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최근 연예인의 미니홈피, 더 나아가서 연예인이 인터넷에 남기는 글들은 지금 한국 연예계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요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같은 커다란 이슈부터 연예인이 동료에 대해 하는 사소한 한마디까지, 연예인 미니홈피의 자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곳곳으로 전파되고, 그 연예인의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에서 가장 사적인 공간인 미니홈피에 적힌 한 줄의 글이 어떻게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걸릴 수 있는가. 가 그 매커니즘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따른 연예 매체의 변화,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연예인과 어떤 매체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며칠간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 앞에서 사람들은 그저 추모의 예를 다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국회는 정쟁을 멈췄고, 대학 축제는 연기됐다. 방송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까지 예능 프로그램 방영을 중단했고, 가수들의 컴백은 미뤄 졌다. 다만, 연예인들에게만큼은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그들은 미니홈피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릴 수 있었다. 분향소에 가는 것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미니홈피에 적은 추모 글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진다. 언론은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이준기, 조권, 황현희 등 추모를 표현한 연예인들의 명단을 업데이트했고, 네티즌들은 그들의 미니홈피에 글을 남기며 뜻을 같이 했다.

미니홈피가 제공한 소스, 네티즌이 가공하고, 언론이 유통시킨다

연예인들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 추모의 글을 남겼다고 의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연예인의 미니홈피가 단지 한 개인의 공간일 수만은 없다는 건 분명하다. 연예인의 미니홈피는 그들의 일기장인 동시에 사이버 프레스 센터다. 우승민은 자신의 자살 루머에 대해 보도자료 대신 미니홈피에 ‘살아있슴’이라는 네 글자를 적었고, 그룹 탈퇴를 놓고 소속사와 갈등을 빚었던 남규리는 인터뷰 대신 미니홈피의 글로 입장을 전달했다. SM엔터테인먼트가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 소속 가수들에게 미니홈피 사용을 금지시킨 것은 요즘 연예인 미니홈피의 역할을 보여준다. 최강희의 ‘4차원’ 캐릭터에는 그가 미니홈피에 남긴 게시물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 ‘미니홈피 엔터테인먼트’는 스타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이 빚어낸 결과만은 아니다. 아직 무명인 준서가 미니홈피에 자살을 암시한 글을 올린 것을 그의 이름조차 몰랐던 사람들마저 아는 과정에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형성된 연예 뉴스의 유통 시스템이 작동한다. 박한별과 세븐의 사진 유출은 그 대표적인 예다. 지난 10일 두 사람이 얼굴에 팩을 한 채 다정한 포즈를 취한 폴라로이드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고, 네티즌들은 박한별의 미니홈피에서 이 사진과 똑같은 박한별의 개인 사진을 발견해 사진 속의 남녀가 두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11일쯤에는 연예 소식을 다루는 거의 모든 인터넷 매체들이 이 사실을 기사화 했고,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그들의 이름이 올랐다. 자의든 아니든, 연예인이 소스를 제공하면 네티즌이 가공하고, 언론이 유통시킨다. 그래서 대중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만으로 관련 소식을 알 수 있다. 이니셜 기사나 스포츠 신문 1면의 연예인 열애설 등이 중심이었던 가십 시장이 미니홈피와 인터넷 매체 위주로 재편된 것이다.

Ctrl +C / Ctrl +V, 미니홈피 엔터테인먼트의 열쇠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가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는 한국에서, 대형 커뮤니티와 매체, 포털 사이트로 이어지는 가십 유통 시스템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가십들을 전파한다. 과거라면 그룹 파란의 AJ가 같은 예명의 가수 AJ를 비난한 것은 소속사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한 ‘연예가 주간방담’ 류의 이니셜 기사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소식들은 실명으로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걸린다. 특히 네이버가 메인페이지의 뉴스캐스트를 해당 언론사가 직접 편집하고, 클릭시 언론사 페이지로 갈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 시켰다. 뉴스 캐스트 공개는 포털 사이트의 언론 독과점을 막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일부 매체들이 인터넷의 가십들을 무분별하게 기사화 시키는 여건을 마련했다. 연예인의 미니홈피의 글 하나가 하루 사이에 인터넷 곳곳에 퍼지는 것은 어떤 자료든 발견해 내는 ‘네티즌 수사대’ 때문이 아니라, 네티즌의 클릭을 위해 ‘낚시’를 해야 하는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른 문제다.

물론 가십 시장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문제는 연예인 미니홈피로 대표되는 인터넷 가십 시장에서 언론 매체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점이다. 연예인의 미니홈피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1차 소스로 보충 취재를 하거나, 이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한다면 문제는 또 다를 수 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해 따지지 않더라도, 그것은 언론이 가십 시장에서 네티즌보다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문제는 네티즌이 발견한 가십들을 그대로 ‘퍼다나를’ 때다. 언론이 가치 판단 없이 이런 가십들을 그대로 전달할 때, 언론의 역할은 그저 뉴스를 확대 재생산 하는 도매상에 다름 아니다.

‘Ctrl +C / Ctrl +V’ 식의 기사작성이 연예 시장 전체에 끼치는 폐해는 분명하다. 장근석은 한동안 인터넷에서 ‘허세 근석’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네티즌이 장근석의 미니홈피 게시물 중 일부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는 과정에서 그를 허세 부리는 연예인으로 지목한 탓이다. 물론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은 네티즌의 자유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잠깐 돌고 말 가벼운 게시물이 언론을 통해 그 연예인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거 전혀 다른 문제다. 이 과정에는 장근석이 미니홈피를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가에 대한 고려는 없다. 당연히 연기자로서 장근석에 대한 평가도 무시된다.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연예 매체의 영향력

수익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래도 ‘낚시’에는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퍼나르기’나 기사 제목에 ‘네티즌 논란’이라는 제목을 붙이며 네티즌의 의견을 발췌해 전달, 언론이 가치 판단에서 한 발 물러서는 기사는 언론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런 식의 가십 유통 시스템은 언론의 의미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가치 판단이나 후속 취재 없이 네티즌의 자료를 단순 가공할 뿐인 매체가 디씨인사이드의 갤러리에서 가십들을 퍼 나르는 블로거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파파라치라도 기용하는 언론사는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연예인의 미니홈피를 샅샅이 뒤지고, 스스로 가십을 만들어내는 지금의 네티즌들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쯤 ‘Ctrl +C / Ctrl +V’로 기사를 작성하는 일부 연예 매체와 기자들은 무엇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홍보 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연예 매체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신해철은 최근 단 한 번의 인터뷰도 하지 않았지만, 대중은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그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알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양현석 역시 회사의 중요한 이슈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무명의 연예인도 머리만 잘 쓰면 자신의 소식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1면’에 올릴 수 있는 시대에 톱스타가 언론 매체를 일일이 챙길 필요성은 점점 더 줄어든다. 최근 톱스타들이 언론사와의 개별적인 인터뷰 대신 기자 간담회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을 이런 현상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2000년대 후반의 연예 매체와 매체의 기자들이 네티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서 대중들이 ‘퍼다 나른’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추모의 뜻을 밝힌 연예인들의 명단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이 담긴 추모사 자체였다는 사실 뿐이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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