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헤드윅이 되진 못했지만, 고세원이 계원예고 시절 뮤지컬배우이자 은사였던 남경읍을 보고 ‘뮤지컬배우’로 진로를 결정한지 10여년이 흐른 뒤의 도전이었다. 10여년의 세월동안 그는 ‘어’하는 사이에 KBS 공채탤런트가 되었고, 적응을 못해 방황하다 군대에 다녀왔고, 이후 풀리지 않는 일들을 뒤로 하고 유학을 준비했다. “제대하고 서울예술단에서 활동하던 대학동기를 만나러 공연장에 갔는데, 그때 본 공연이 스크루지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이었거든요. 스크루지 얘기가 슬프진 않잖아요. 근데 저는 막 눈물이 나는거에요. 친구는 저렇게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는데 난 안된다고 유학 갈 생각이나 하고 있었으니 너무 슬펐던 거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 울컥했던 마음이 없었다면 고세원이라는 사람을, 그리고 ‘혁규’라는 인물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2007년, 10여년의 세월을 돌아 “고등학교 시절 첫 공연을 올리던 그때와 똑같이 너무 겁나고 두려웠다”던 <러브인카푸치노>로 뮤지컬 무대에 고세원의 발자국을 새겨 넣었다. 그 후 <벽을 뚫는 남자>, <록키호러쇼>, <김종욱 찾기>를 거쳐 최근 <아이러브유>(I love you, You`re perfect, Now change)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남자 둘, 여자 둘로만 진행되는 작품이잖아요. 그래서 건방지게 얘기하자면 남경주 선배와 연기대결을 할 수 있는 구도에요. 그런 점 때문에 저 역시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저에게는 영광이죠.”
고세원은 9월 13일까지 계속되는 뮤지컬 <아이러브유> 외에, 영채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도 뻔뻔하게 처가살이를 이어나가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혁규로 시청자들을 만나는 중이다. “이제는 배우, 스태프들 모두 거의 가족이에요. 지난 시즌 5 제작발표회 때 장인어른(송귀현)은 “케이블의 <전원일기>로 만들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도 철이 안든 혁규는 “공부 잘해 보이는 사람을 찍어놓고 시작하면 공부가 더 잘된다”는 친구의 조언에도 여전히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예쁜 여자 고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토익 400점을 돌파했다”고 세상을 다가진 듯 한 미소를 짓거나 집안 식구 중 유일하게 영애의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을 건네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진상’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던 ‘밉상’ 혁규의 캐릭터는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 미운 정을 만들어냈다. 이제 고세원이 무대와 브라운관을 더 바지런히 오가며 고운 정을 만들 일만이 남았다.
2막 20장으로 구성된 <아이러브유>는 결혼을 중심으로 1막과 2막이 구분된다. 1막에서는 적령기에 이른 남녀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2막에서는 결혼 이후의 육아, 권태기, 사별에 이르는 삶을 그리고 있다. “아무래도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2막에 비해서 1막에 공감을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2막에 가족이 함께 드라이브 하는 장면은 정말 공감이 많이 되요. 평소에 자상하던 남자들도 운전대만 잡으면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면서 험해지잖아요.” 집에선 마누라가 잔소리하고, 출세라도 할라치면 늘 한 끗발이 모자라지만 운전대는 내가 쥐고 있다고 웃으며 ‘죽음의 고속도로’행을 감행하는 남자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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