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계신지요. 누군가의 안위가 이토록 궁금한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네요. 저는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밤마다 잠자리에 누우면 자꾸 은서의 음성이 귀에 쟁쟁해서요. 유치원 재롱잔치 때 사회자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있느냐 물었더니 은서가 울음을 애써 참으며 그랬잖아요. “엄마, 우리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세상에나, 다른 아이에게는 부모가 키워주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 일진데 은서는 엄마에게 고맙다더군요. 그것도 일곱 살짜리 어린 아기가 말이죠. 은서 엄마의 가슴 속은 물론 암이라는 못된 병을 반드시 이겨내어 아이들을 끝까지 키워내겠다는 다짐으로 가득 차있을 테지만, 엄마가 전부인 은서의 가슴도 엄마가 내내 키워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득한 모양입니다.
정말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엄마’잖아요
제가 더 슬펐던 건 은서가 ‘우리’라고 표현했다는 거예요. 저도 딸, 아들 남매를 두었습니다만 우리 아이들은 그다지 ‘우리’라는 개념 없이 컸거든요. 아침에 눈 떠서부터 밤에 잠 들 때까지 싸움질만 해대는 남매를 기른 저로서는 ‘우리’라는 단어로 동생을 보듬어 안는 은서가 정말이지 대견합니다. 하지만 동생 홍현이 입장에선 누나가 있는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해도 어린 은서에게 벌써부터 안겨진 무거운 책임이 그저 안쓰럽기만 하네요. 아직 한참 어리광을 부리고 남을 나이거늘 동생을 그처럼 살뜰하게 씻기고 먹이고 챙기다니요.
그렇게 너무 철이 빨리 들어버린 은서가, 엄마가 키워주는 게 단 하나의 소원인 은서가 얼마 후 결국 크나큰 슬픔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저는 두렵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따뜻한 성원들이 속속 답지하고 있다지만 이건 돈이나 물질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아이들에게 정말, 정말 필요한 건 ‘엄마’잖아요. “힘든 거요? 참을 수 있어요. 제가 없어지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해요”라며 그처럼 견디기 어렵다는 항암치료와 당당히 맞서 싸우는 은서 어머니보다 저는 왠지 아이들이 훨씬 걱정스러워요. ‘죽는 사람만 억울하지, 산 사람은 다 살기 마련이야’라는 말도 있지만 아마 저도 엄마 입장이라 마치 은서 어머니라도 된 양 아이들 위주로 생각하게 되나 봐요. 이해하시죠?
제 목숨 10년 쯤 뚝 떼어드리고 싶네요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느라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사실 저는 지금 당장 죽는다 한들 미치도록 아쉬워하고 슬퍼할 사람은 없는 처지더라고요. 아이들은 제 손길이 필요치 않을 만치 이미 다 컸고, 남편은 그 나름대로 잘 살겠지요. 물론 한동안 다소 아쉬워들은 할 테지만 그게 은서 정도로 절박할리는 없잖아요. 누군가에게 그리 요긴하지 않은 저는 멀쩡히 잘 살고 있건만 꼭,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 은서 어머니는 홀로 애를 끓이고 계시니 이 무슨 합당치 않은 경우랍니까. 무협지에서 내공을 나눠주듯 목숨을 나눠드릴 수 있다면 제 목숨 기꺼이 십년쯤 뚝 떼 드리고 싶습니다. 십년이면 은서도 십대 후반일 테니 동생과 둘이 의지해가며 그럭저럭 살아갈만하지 않겠어요? 에고, 당장 초등학교부터 숙제며 소풍 도시락이며 엄마 손길이 필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그런데요, 사회복지 일 하는 친구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어요. 엄마 없는 아이가 세상천지 제일 불쌍한 존재인 건 맞는 얘기지만, 엄마가 세상을 떠난 아이보다 백배 천배 더 불쌍한 건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라고요. 그 아이들 가슴에 남은 상처는 죽는 날까지 치유가 안 된다대요.
다른 이의 안타까움을 내 위안 삼는 건 지극히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최악의 사태가 닥친다 해도 은서와 홍현이는 엄마가 듬뿍 주신 사랑을 영양제 삼아 커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살고 싶다는 건 내게는 소원이나 희망, 바람 같은 게 아니라고 하신 은서 어머니, 엄마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자 책임을 결코 저버리지 않기 위해 살려고 애쓰시는 은서 어머니. 상황이 마음의 준비를 해놓으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진행될는지, 아니면 많은 이들의 기도와 은서의 기도의 힘이 합하여 기적이 일어날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끝까지 노력해보자고요. 저도 하느님이 대가를 바라실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기도하기는 뭐해서 제 꺼 대신 좀 가져가시라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셔요! 아 참, 제가 하도 안부를 궁금해 해서인지 <풀빵엄마> 속편이 제작될지도 모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더군요. 지난 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신 밝고 예쁜 모습 그대로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히 계세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정말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엄마’잖아요
제가 더 슬펐던 건 은서가 ‘우리’라고 표현했다는 거예요. 저도 딸, 아들 남매를 두었습니다만 우리 아이들은 그다지 ‘우리’라는 개념 없이 컸거든요. 아침에 눈 떠서부터 밤에 잠 들 때까지 싸움질만 해대는 남매를 기른 저로서는 ‘우리’라는 단어로 동생을 보듬어 안는 은서가 정말이지 대견합니다. 하지만 동생 홍현이 입장에선 누나가 있는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해도 어린 은서에게 벌써부터 안겨진 무거운 책임이 그저 안쓰럽기만 하네요. 아직 한참 어리광을 부리고 남을 나이거늘 동생을 그처럼 살뜰하게 씻기고 먹이고 챙기다니요.
그렇게 너무 철이 빨리 들어버린 은서가, 엄마가 키워주는 게 단 하나의 소원인 은서가 얼마 후 결국 크나큰 슬픔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저는 두렵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따뜻한 성원들이 속속 답지하고 있다지만 이건 돈이나 물질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아이들에게 정말, 정말 필요한 건 ‘엄마’잖아요. “힘든 거요? 참을 수 있어요. 제가 없어지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해요”라며 그처럼 견디기 어렵다는 항암치료와 당당히 맞서 싸우는 은서 어머니보다 저는 왠지 아이들이 훨씬 걱정스러워요. ‘죽는 사람만 억울하지, 산 사람은 다 살기 마련이야’라는 말도 있지만 아마 저도 엄마 입장이라 마치 은서 어머니라도 된 양 아이들 위주로 생각하게 되나 봐요. 이해하시죠?
제 목숨 10년 쯤 뚝 떼어드리고 싶네요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느라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사실 저는 지금 당장 죽는다 한들 미치도록 아쉬워하고 슬퍼할 사람은 없는 처지더라고요. 아이들은 제 손길이 필요치 않을 만치 이미 다 컸고, 남편은 그 나름대로 잘 살겠지요. 물론 한동안 다소 아쉬워들은 할 테지만 그게 은서 정도로 절박할리는 없잖아요. 누군가에게 그리 요긴하지 않은 저는 멀쩡히 잘 살고 있건만 꼭,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 은서 어머니는 홀로 애를 끓이고 계시니 이 무슨 합당치 않은 경우랍니까. 무협지에서 내공을 나눠주듯 목숨을 나눠드릴 수 있다면 제 목숨 기꺼이 십년쯤 뚝 떼 드리고 싶습니다. 십년이면 은서도 십대 후반일 테니 동생과 둘이 의지해가며 그럭저럭 살아갈만하지 않겠어요? 에고, 당장 초등학교부터 숙제며 소풍 도시락이며 엄마 손길이 필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그런데요, 사회복지 일 하는 친구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어요. 엄마 없는 아이가 세상천지 제일 불쌍한 존재인 건 맞는 얘기지만, 엄마가 세상을 떠난 아이보다 백배 천배 더 불쌍한 건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라고요. 그 아이들 가슴에 남은 상처는 죽는 날까지 치유가 안 된다대요.
다른 이의 안타까움을 내 위안 삼는 건 지극히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최악의 사태가 닥친다 해도 은서와 홍현이는 엄마가 듬뿍 주신 사랑을 영양제 삼아 커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살고 싶다는 건 내게는 소원이나 희망, 바람 같은 게 아니라고 하신 은서 어머니, 엄마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자 책임을 결코 저버리지 않기 위해 살려고 애쓰시는 은서 어머니. 상황이 마음의 준비를 해놓으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진행될는지, 아니면 많은 이들의 기도와 은서의 기도의 힘이 합하여 기적이 일어날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끝까지 노력해보자고요. 저도 하느님이 대가를 바라실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기도하기는 뭐해서 제 꺼 대신 좀 가져가시라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셔요! 아 참, 제가 하도 안부를 궁금해 해서인지 <풀빵엄마> 속편이 제작될지도 모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더군요. 지난 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신 밝고 예쁜 모습 그대로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히 계세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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