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28일 첫 방영된 tvN <엑소시스트>의 부제는 ‘심령솔루션’이다. ‘심령’이란 부분이 비가시적인 영역이라면 ‘솔루션’에선 가시적 결과물이 중요하다. 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영역이 결합한 이 프로그램의 독특한 정체성은 빙의된 사례자의 증상을 치료하던 것에서 이젠 접신을 통해 오래 전 헤어진 어머니를 찾아내는 영적추리로까지 발전했다. “아무 근거 없이 ‘믿거나 말거나’라고 말하는 프로그램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이길수 PD를 통해 ‘심령’과 ‘솔루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왔던 지난 1년에 대해 들어보았다.

영적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독특한 콘셉트로 벌써 1년 동안 방송됐다. 어떡하다 이런 심령 솔루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건가.
이길수:
전에는 를 연출했다. 그러다 로 배정받았는데 연출 시작하기 전에 심의 때문에 프로그램이 없어졌다. 그래서 뭔가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생각하다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하지만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이 시도했던 형식이 아닌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의 기획단계를 거치면서 취재를 하고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의외로 빙의나 신병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거다. 그들의 고통과 그 고통이 나아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MC 백종학이 제일 능력 있는 퇴마사인줄 아는 분들도 많다”

말하자면 플러스알파로 솔루션 과정을 포함한 건데, 그런 포맷의 차별화 외에도 대상에 대한 측은지심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길수:
이 프로그램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편집된 장면을 TV로 보는 것만 해도 무서운데 실제로 가서 만나고 촬영하려면 무섭지 않느냐는 거였다. 처음엔 나도 당연히 무서웠다. 제보를 받고 인터뷰 하려고 찾아가면 난폭하게 굴고 우리 보는 앞에서 자해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서운 걸 넘어 측은함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거나 성적인 피해를 입는 등 기구한 일을 겪으며 심약해진 상태에서 빙의를 겪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 미신이든 뭐든 어떤 형태로든 해결을 해줘서 지금까지의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솔루션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을 텐데.
이길수:
사실 반신반의했다. 뱀의 영이 빙의됐다고 소개된 여성분의 경우 굉장히 폭력적인 증상을 보였다. 이렇게 심한데 과연 우리가 나선다고 좋아질지 걱정이 됐다. 다만 이 사람이 완치되고 새로운 삶을 살 확률이 있다면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시도했는데 정말 다행히도 좋아졌다. 그 이유가 심리적인 건지, 영적인 건지도 모르고 매일 자해와 끔찍한 생활 속에서 살던 사람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

치료의 주체는 엑소시스트인데 그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이길수:
처음 엑소시스트라는 존재의 실체를 안 건 로마 교황청에서 엑소시즘 사제를 2000명 이상 양성하고 교육하겠다는 기사를 보고서였다. 원래 가톨릭에서는 인정받은 구마의식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어떨까 하고 찾아보니 비슷한 의식이 있었고, 그걸 하는 사람들이 소위 퇴마사라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과 영혼과 접신하고 소통하는 무속인을 섭외했다. 또 우리나라 가톨릭 사제 중에도 엑소시즘을 하는 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수소문 끝에 충청도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지금은 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목사님 중 엑소시즘을 하시는 분을 섭외하고.

소위 ‘사짜’도 많이 봤겠다. (웃음)
이길수:
수도 없이 봤다. (웃음) 이젠 우리도 좀 보인다. 저 사람은 맞는지, 아닌지. 우선 섭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솔루션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아까 말한 측은지심이다. TV를 통해서 알려지는 걸 원하는 분들에게도 수없이 전화가 오는데 한 번 해봐서 사례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낙오시킨다. 만약 솔루션을 통해 80%가 좋아졌다고 하면 나머지 20%도 끝까지 책임지는 게 우리 프로그램의 약속이다. 방송 뒤에도 꾸준히 사례자를 만나 도와주고 상담하는, 그 정도의 도량 있는 분들을 모시고 진행한다.

사실 가장 엑소시스트 같아 보이는 건 MC 백종학이다. (웃음)
이길수:
실제로 제보하는 분들 백종학 씨가 제일 능력 있는 퇴마사인줄 알고 소개시켜 달라는 분들도 있다. 연예인도 아니고 얼굴이 되게 많이 알려진 것도 아니니까. 처음에 MC를 물색하면서 일반 연예인들은 일단 배제했다. 그러면서도 이쪽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을 찾다가 백종학 씨와 1차 미팅을 했는데 나름 오컬트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딱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엑소시스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상식 밖이라고 해서 이 사람들을 배제해선 안 된다”

사례자 중 심약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이길수:
실제로 병원 가서 치료받아야 할 분들도 제보를 많이 한다. 빙의와 정신병을 같이 겪는 분도 있고.

그런 면에서 치료효과는 진짜라 해도 엑소시즘이 심령적이기보단 심리적 치료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길수:
만약 내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100퍼센트 믿는다면 거짓말일 거다. 처음 시작할 때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거란 정도의 전제로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알아야 된다는 생각도 없고 이런 현상을 널리 알릴 생각도 없다. 다만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뭔가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힘든데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해 소외받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위나 장, 다리가 아픈 거면 말이라도 하는데 이 사람들은 창피하니까 숨긴다. 식구들도 이해를 못해주고. 신념이 다르다고 틀린 게 아니듯,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이 사람들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단순히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선정적 문제제기가 아니라 이 사람들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이길수:
시청자들 중 많은 분들이 무속인에게 사전 정보를 알려줄 거라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유치한 표현을 써서 좀 그렇지만 ‘하늘에 맹세코’ PD의 자부심을 버리는 연출은 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독한 장면도 넣지 않고, 짜깁기도 하지 않는다. 사실 방송되지 않는 분량 중 충격적인 건 훨씬 많다. 시청률만 생각하면 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믿고 얼굴을 공개해준 사례자들을 생각할 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초자연 현상을 100퍼센트 믿지 않는 면도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것 같다.
이길수:
믿는 사람이 만들면 안 되는 프로그램이 맞다. 객관적으로 보고 계속 의심해야 한다. 엑소시스트 중 오래 같이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의 인간성은 믿지만 말하는 걸 다 믿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뇌파도 보고 최면도 걸어본다. 방영분에서는 한 명 밖에 안 나오지만 실제로는 접신할 때도 5명 정도의 영매가 시도해서 그 중 공통분모가 나오면 그 때서야 어느 정도 신뢰하고 진행한다. 오래 전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은 최근 에피소드에선 실제로 13명의 영매가 접신을 했다.

무서움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나.
이길수:
사실 우리는 괜히 밤에 조명 끄고 적외선 카메라 촬영하는 식으로 무섭게 연출하는 게 없는데도 무서워하는 분들이 있다. 그건 아마도 아까 말한 리얼리티 때문이지 않을까. 볼 땐 잘 모르지만 되새길수록 무섭다고 하더라. 또 최근 시도하는 영적추리의 경우 실제 사건과 맞아떨어질 때 소름이 돋기도 하고.

“카메라가 꺼지고 세트가 넘어지고… 진짜 뭐가 있는 건가”

사례자의 측은함이 더 크다고 했지만 스스로도 그렇게 소름 돋는 순간이 없진 않았을 것 같다.
이길수:
이 프로그램 하기 전엔 과거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카메라가 꺼지고 그런 거 보면서 다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꺼지긴 저게 왜 꺼져’ 이러면서. 그런데 정말 꺼지더라.(웃음) 멀쩡하던 기계가 갑자기 작동이 안 되고, 이동식 세트가 갑자기 넘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정말 뭐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웃음)

폭력적인 사례자 때문에 아찔한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길수:
주변에 아무도 없고 사례자만 있을 때 특히 그렇다. 이분이 본인이고 제정신일 때는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땐 자해를 하거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PD가 그냥 놔둘 수 없다. 언젠간 사례자가 새벽에 집 바깥으로 뛰쳐나가서 한 손에 흉기를 들고 ‘쫓아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 걸 담당하던 여자 PD가 쫓아가서 손목을 잡고 ‘진정하라’고 설득했는데 사실 얼마나 무서웠겠나. 다행히 카메라 감독이 뒤늦게 뛰어와 잡아줘서 다행이었지. 후배들에게 그림 욕심 때문에 그 따위 어리석은 짓 하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다들 그림 욕심 때문이 아니라 사례자가 어떻게 될까봐 그런다고 하더라. 그런 마음가짐인 PD들이 나가있으니까 진행이 가능한 것 같다.

그랬던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에 근접하게 도와주는 건데, 좋아진 최근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없나.
이길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나도 애프터 촬영을 해서 그분들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그분들이 잘 못 지내고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으로 잘 지내고 있어서다. 이제 겨우 일상에 근접한 사람들인데 굳이 과거 기억을 끄집어내고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다. 솔루션 이후 임신도 하고 제작진에게 고맙다고 자주 전화를 주는 어떤 사례자의 경우 딸 때문에 학교에 갔다가 다른 학부형이 알아보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딸이 놀림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분이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웹 팀에 얘기해서 해당 에피소드를 다시보기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사회적 안전망 바깥의 소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자의식이 느껴진다.
이길수:
그래서 일부 시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선정적이라고 얘기하면 솔직히 울컥한다. 출연자들에 대해 ‘쟤 이상한 짓 하네, 재밌네’라는 식으로 볼 거라면 우리 프로그램을 볼 필요는 없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고쳐졌구나, 앞으로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봐주면 좋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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