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애들이 애들 같지가 않아.” 한국의 아이들은 하루에도 서너 개가 넘는 사교육을 받고,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유행가를 듣는다. 너무 일찍 조숙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지만 부모로 대표되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유창한 영어실력이나 우수한 성적을 강요하는 한편, 여전히 순진무구함이나 귀여움 같은 ‘아이다움’을 요구한다. TV 속에서도 순수하고 사랑스럽다는 아이들의 고정된 이미지를 이용해 웃음을 만드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스토리온 <수퍼맘>과 SBS <붕어빵>에도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등장한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하는 일상을 공개하기도, 부모의 과거와 가족만이 아는 비밀을 폭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어른들의 기준에서 재단되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10 아시아> 최지은 기자와 TV평론가 김교석이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스토리온 <수퍼맘>은 주로 아침 방송이나 명절 특집 방송용 아이템이었던 연예인과 그들의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다. 개그우먼 조혜련, 연기자 이상아, 뮤지컬배우 최정원, 영어강사 박현영 등 네 명의 ‘워킹 맘’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출연해 각종 미션을 수행하면서 평소 일 때문에 소홀했던 자녀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감으로써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잘 나가는 그녀들의 좌충우돌 자녀교육 스토리’가 <수퍼맘>의 기획 의도였다.
의미도 재미도 찾을 수 없는 엄마와 아이들의 역할극
그래서 엄마들에게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은어의 뜻을 맞춰보게 하거나 PAT(Parenting Attitude Test : 부모양육태도검사)를 실시해 ‘과잉기대 형’이나 ‘성취압력 형’ 등 각자의 성향을 알려 주고 아이들에게는 엄마에게 서운했던 점,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던 일 등을 듣는 초반의 시도는 크게 신선하지는 않았어도 비교적 성실한 접근이었다. “엄마랑 같이 놀러가고 싶어요”나 “저는 애를 낳으면 애가 하고 싶은 걸 시킬 거지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같은 아이들의 고백은 엄마와 함께 떠나는 봄소풍, 엄마와 함께 소녀시대 춤추기 같은 미션으로 이어지며 연예인(엄마)과 일반인(아이)이 어우러지는 가정 리얼 버라이어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수퍼맘>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엄마와 아이의 관계맺음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아니라 영어, 연애, 성공 등 어른들이 욕망하는 가치에 대한 강박의 재현이다. 아이에게 그냥 친구가 아니라 ‘외국인 친구’나 ‘남자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엄마인 ‘수퍼맘’을 위해 제작진은 영어권 국가 출신의 아이를 데려와 무작정 한 방에 밀어 넣거나 유창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자칭 ‘엄친아’ 들과 미팅을 주선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에 불과한 출연자들에게 ‘반려자’ 운운하며 아직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는 말에 “깨끗해”라며 감탄하는 엄마들의 반응과, 편식 여부를 가려내겠다며 당근을 먹어보라고 하는 제작진의 발상은 어른들의 편의에 따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오락가락하는 <수퍼맘>의 얄팍함을 그대로 보여 준다. 4개 국어를 하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운동을 가르쳐주기 위해 초빙된 선생님을 향해 “콩글리쉬 발음” 이라며 무시하는 딸의 태도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고, 아들이 프로그램 작가들의 가슴을 만졌다는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들의 교육 방식 역시 크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때로는 연기를 하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은 이러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인 재미마저 반감시키며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묻어가는 프로그램”
<수퍼맘>의 첫 회 방송 당시, 조혜련은 “(<수퍼맘>이) 애들에게 묻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던졌고 제작진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자막으로 답했다. 하지만 예정된 8회 가운데 6회가 방송된 지금까지 <수퍼맘>은 ‘좋은 엄마’의 상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묻어가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어쩌면 ‘엄마와 좀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박한 소망을 굳이 카메라 앞으로 끄집어냈을 때부터 <수퍼맘>의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글 최지은
아이들은 폭주 기관차다. 부모 연예인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진땀이 찔끔찔끔 흐른다. 박준규의 광주 촬영 사건이나 김구라가 아내에게 무릎 꿇은 사연 등이 아이의 작은 입에서 오물오물 나오면 고개를 숙이거나 애원하듯 아이를 바라본다. 그러나 끝은 언제나 화목하다. 귀엽기도, 당돌하기도, 때로는 대견한 자식을 바라보는 출연진의 표정에서 연예인의 가면이 걷히고 엄마 아빠의 다정한 얼굴이 나온다.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은 ‘엄마, 아빠가 자주하는 인생의 충고’ 같은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출연한 아이들이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KBS <미녀들의 수다>와 같은 방식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스튜디오 전면에 자리한 아이들이다. 당연하게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제 캐릭터도 갖추었다. 심지어 심신과 박남정, 안정훈은 자식들을 받혀주지 못해서 구박받을 정도다. 아이들이라 눈치 볼 것도 정치적일 이유도 없어서 솔직하다 못해 엉뚱하다. 최정원의 딸 수아는 김국진보다 이경규가 조금 더 중요한 사람이라서 그쪽을 보고 손을 든다고 말한다.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의미도 재미도 있는 부모와 아이들의 만담
물론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웃음을 만드는 것은 어른의 역할이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MBC <전파견문록>부터 이경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잘 했다. 그의 평소 이미지가 호통과 비난 일색인 점을 빌면 뭔가 어색하다. 하지만 아이 눈높이에서 투정을 부리고 농을 주고받으며 당해주기도 한다. “어린이 여러분” 하는 뽀미 언니보다 훨씬 격이 없는 친구에 가깝다. “돈은 아끼면 똥 되니까 있을 때 써라” 등의 명언을 쏟아낸 받아쓰기 40점의 철없는 엄마 유혜정이 <붕어빵>의 히트상품인 이유도 이와 같다. 밥을 안 차리는 엄마 덕분에 딸 규원이는 다섯 살 때부터 요리를 하게 됐고, 엄마가 곤란해 하면 말을 돌리는 기특한 아이다. 아이들을 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그러나 아이들은 항상 그보다 몇 수 위에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어린이란 이유로 <용가리>나 <챔피언 마빡이>만 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웃음으로 깨트린다.
아이들의 재치와 웃음은 여타 프로그램에서 이미 입증된 바다. 이 프로그램은 거기에 ‘가족의 가치’를 얹었다. 양원경의 잇단 사업 실패도 아이의 입으로 말하면 별 것 아닌 이야기가 된다. 크든 작든 모든 문제를 풀어내는 가족이란 행복 솔루션. 아이들의 웃음 속에 절대선이라 생각하는 가족의 가치가 있기에 우리의 마음도 따뜻해진다. 또 아이의 시선은 우리가 몰랐던 연예인들의 실제 모습, 우리네와 똑같은 일상을 보여준다. 혹은 그렇게 보이게 한다. 의리를 부르짖는 김보성이 청소 앞에서는 아내를 피해 다니고, 교통경찰 앞에서 잘 봐달라며 아직도 권총 춤을 춘 심신, 아들 때문에 단아한 이미지가 모두 연출임이 탄로 난 오정해, 연예인 부모 밑에 태어났다지만 조갑경의 화려한 호피 옷과 홍서범의 번개머리를 부끄러워하는 딸 석주. 이런 이야기 속에서 연예인 가족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위화감을 경감시킨다. 시청자들은 육아 동호회에 온 것처럼 아이의 입을 통해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연예인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한다. 어린이날 특집에 나온 나머지 가족이 반가운 것도 그 때문이다.
정리하고 다듬고 틀 안에 가두지 말자
그런데 몇 년 살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매번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니 프로그램은 좀 더 정교해져야 할 필요가 생겼다. 아이들의 엉뚱한 촌철살인 대신 말이 갈수록 논리정연해지고, 문장 마무리가 아이답지 않게 깔끔하다. 톤도 책 읽듯이 일정하다. 그로 인해 엉뚱함이 던지는 폭소가 점점 위력을 잃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고 방송하는 것이 최고이겠지만 효율과 극을 만들기 위해 장치들을 갈수록 많이 마련하는 것 같다. 많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그랬듯 정점으로 치솟은 후 거품처럼 사그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하게 아이들을 중심으로 그들에게 자율성을 줄 필요가 있다. ‘우리 어렸을 때와 지금 아이들은 차이가 난다.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고 하나의 인격으로 대해주고 때로는 배우자’는 안정훈의 정리 발언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시간 내에 틀을 짜 넣어야 하는 쇼이지만, 몇 년 안 산 것 같은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극본의 힘을 훨씬 능가하는 더욱 큰 웃음 폭탄이 담겨 있으니까.
글 김교석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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