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들은 ‘열정이 가득한 배우’라고도 해주시지만, 원체 땀이 많아서 그런거에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막 흐르니까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하하” 사실 김도현이 출연했던 뮤지컬 <뷰티풀 게임>를 보고 마냥 무서운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분했던 토마스는 국가를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모두를 죽음에까지 몰고 갔던 악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라고 재는 법도, 으쓱이는 법도, 숨기는 법도 없었다. 덕분에 김도현에 대한 선입견이 와그작하고 깨져버렸다. 그렇게 김도현은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순간에 자신을 산산이 부숴냈다. 질투에 사로잡혀 꼭꼭 숨겨두었던 악마성을 드러내는 밀수꾼(<천사의 발톱>)인 줄 알았더니, 늘어진 추리닝바람으로 여자 친구한테 차였다고 통곡하는 찌질한 백수(<싱글즈>)였고, 능청스럽게 ‘공주님’을 속이던 사기꾼(<나쁜 녀석들>)인 줄 알았더니, 허세로 가득한 한물간 록커(<라디오스타>)였 듯 말이다.

“저를 보시는 분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싶어요. 혹자는 그러면 저만의 색깔이 없어진다고도 하지만, 이렇게 한 10~20년을 하면 나중에는 ‘김도현이 이 작품을 했을 때 어떤 느낌이 나올까’하고 궁금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성격도, 공연장 규모도 다른 작품들을 번갈아 하면서 저에 대한 확실한 선입견을 주지 않는거에요. 앞으로도 어떤 한 캐릭터에서 1등이 되기보다는 모든 역할에서 1.8등이 되고 싶어요. (웃음) 단, 어떤 역할이든이에요.” 능청스럽게 웃다가도 어느 지점에서는 금세 단호해진다.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넓은 스펙트럼을 갖기 위해 김도현은 최근 또 한 번의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국내 창작뮤지컬 중 유일한 2인극, 거기다 춤에 익숙하지 않은 그가 댄스를 선보이는 ‘댄스입봉작’ 뮤지컬 <카페인>이다.

늘 사랑에 실패하면서도 사랑에 대해 정의내리기를 좋아하는 바리스타 세진과 모든 여자를 와인에 비유하고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자신만만한 소믈리에 지민이 카페 ‘PASSAGE’에서 만난다. 어느 날 세진은 따뜻하고 듬직한 정민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지민은 그런 세진에게 연애학강의를 시작하게 된다. 2008년 11월 초연된 창작뮤지컬 <카페인>은 커피와 와인처럼 서로 다른 두 남녀의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려내며 <김종욱 찾기>를 잇는 대학로 대표 로맨틱 코미디가 되었다. 이번 앵콜공연은 <나쁜 녀석들>을 통해 함께 호흡을 맞췄고, 늘 변화를 꿈꾸기로 유명한 김도현과 윤공주가 새롭게 합류해 짧은 공연을 마쳤다.

초연 때 참여하지 못해 앵콜에는 꼭 같이 하기로 한 <카페인>이었다. 하지만, 김도현 스스로 “배우 인생 최고의 ‘급투입’”이라고 웃을 만큼 록커를 벗고 소믈리에를 입기까지 그에게 온전히 빈 채로 주어진 시간은 단 4일뿐이었다. “약속을 하긴 했지만 예상외로 너무 일찍 투입이 된 거죠. (웃음) 원체 춤을 너무 못 춰서 안무일 하는 친구에게 따로 개인교습도 받았어요. 그럼 노래는 또 쉽냐, 하면 2인극이라서 부르는 곡만 11곡이거든요. 일단 노래가 어렵고 그런 걸 떠나서 정말 숨차서 못하겠어요. (웃음) 첫 공연 때는 머릿속에서 ‘대사 까먹지 말고, 동작 틀리지 말고, 무사히 올리기만 하자’ 이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공연을 시작한지 3주차, 어느 곳에서 자신이 등장해야 되는지조차 헷갈려 하던 김도현은 캐릭터의 마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갔다. “영화로 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극이 전환되는 타이밍들이 대략 5초 정도 되거든요. 물리적으로 그 전환의 시간을 줄일 수 없다면, 그 시간을 이용해서 숨겨져있는 지민이의 감정변화 등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대사도 음악도 없지만 슬며시 짓는 한숨이나, 세진이 나간 문을 바라보는 행동 같은 걸로 고민하는 모습을 채웠죠. 그래야 후반 드라마가 묵직해질 것 같았거든요.” 흔히 웃고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로맨틱코미디 안에서 그렇게 나름의 디테일로 진심을 담아내고야 만다.

그런 그가 ‘신발은 종교’라며 자신이 신고 있는 지민이의 신발을 보여준다. 김도현은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허락하는 한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신발을 신고 다닌다. “얼마 전까지는 <라디오 스타> 곤이의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다녔죠. 머리로 계산하기 보다는 몸으로 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인데, 특히 그 중에 발의 느낌이 소중한 것 같아요. 연습하다가도 잘 안돼서 보면 다른 신발을 신고 있더라구요. (웃음)” <카페인>을 마치고, 이번엔 <싱글즈>의 정준이가 신던 스니커즈를 다시 꺼내 신을 예정이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는데, 이번에 초연 멤버들끼리 다시 모인다고 그래서 재밌게 놀아보려구요.” 그리고 능청스러운 정준이가 지나가면 오래간만에 용서받지 못할 악역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커튼콜때 나오면 박수쳐줄지 모를 정도로 나쁜 역”이라고 설명하지만, 관객들은 모두 다 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선입견 하나를 또 부숴가며 연기하는 김도현에게 또다시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
‘혹시 결혼하고 싶어? 그럼 나랑 사겨. 그러다 헤어지면 결혼 확률 100%.’라는 가사처럼 세진과 사귀었던 남자친구들은 그녀와 헤어지자마자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그래서 붙은 그녀의 별명은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 “물론 제 ‘댄스입봉작’이고 그만큼 공을 많이 들인 ‘사랑의 묘약’신도 재밌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세진이가 부르는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 그 곡이 제일 좋아요. OST 나오면 이 노래 남자버전으로 보너스트랙 만들어달라고 조르고 있는 중이에요. 하하”

사진제공_트라이프로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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