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소리를 꺼놓은 채 메이저리그 경기를 틀어놓고 일했다. 영상만 나오는 야구 경기는 움직이는 정물화 같았기 때문이다. 야구는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치며, 3아웃이 되면 그 회가 끝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1회가 시작 될 때와 9회가 끝나기 직전의 팬들의 반응도 매 경기마다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간다. 그 반복적이고 일관된 흐름은 마치 그림처럼 사람을 스스로의 생각으로 빠져들게 할 여백을 준다. 잠시 쉬고 싶을 때, 고개를 들어 벽걸이 TV를 보면 거기에는 늘 일정한 흐름이 있는 영상이 계속된다. 그래서 나는 좋은 야구 경기란 그 흐름을 가장 자연스럽게 잇는 것이고, 야구는 그 흐름을 어떻게 자신의 팀으로 가져오는가에 대한 경기라고 믿는다. 심판의 오심은 이 흐름을 깨는 행동이다. 반면 1점차로 뒤지고 있는 팀의 선수가 9회 말 철벽의 마무리 투수에게 어렵게 얻어낸 볼넷은 이 흐름에 진폭을 주는 훌륭한 변주다. 야구의 승리는 그 변주를 끌어내기 위한 수많은 시도 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다. 그것은 불규칙 바운드 같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수와 감독과 프런트가 각자 시도한 변주에서 나온다. 야구의 승패보다 더 큰 재미는 그 흐름의 여백 속에서 그 변주의 시도와 저지를 유추하는데서 온다. 오늘 알버트 푸홀스가 끝내기 홈런을 친 것과 변화한 타격 폼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 타격폼과 그에게 겨울동안 팔꿈치 수술을 지시한 프런트의 결정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그러다 보면 야구는 9회 동안 공을 던지고, 치고, 받는 경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한 달, 일 년, 혹은 평생 만들어낸 흐름과 변주가 만들어낸 거대한 흐름이 된다.

미국 야구계의 전설적인 기자인 레너드 코페트가 쓴 <야구는 무엇인가>는 그런 각자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타자, 투수, 미디어, 스카우트, 구단주의 이야기는 그들 각자가 보는 야구이자, 그들의 야구에 따라 사는 그들 인생에 대한 조망이다. 홈런은 누구에게나 홈런이지만, 선수와 감독, 구단주, 그리고 그 경기를 소리를 꺼놓고 TV를 보는 나는 각자 다른 맥락으로 결과를 이해한다. 야구팬이 아닌 사람에게까지 이 책을 권할 생각은 없다. 다만 WBC에서 임창용이 왜 정면승부를 했는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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