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앓고 있는 지병(持病)이 있다. 딱 한 달만 앓고 없어지니 특별히 찾아갈 병원도 없고 병명도 그저 내 마음대로 지었을 뿐이다. 입에서 천천히 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약간 호흡이 가빠지는 바로 ‘사-월-병’. 해마다 4월만 되면 마음이 들떠서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심장박동이 평상시보다 빨라지며, 현재에 대한 집중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대신 과거의 기억은 사소한 것 까지 갑자기 툭툭 튀어 오르는 기괴한 병이다.

발병의 시점은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손창민, 김희애 주연의 드라마 <겨울 나그네>를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해 반복 시청한 이후였던 것 같다. 대학 캠퍼스와 초봄의 공기,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시를 읽노라…” 절정의 순간마다 흘러나오던 <4월의 노래>. 이제 갓 열 살이라는 터울을 넘긴 어린 여자아이에게 ‘설렘’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해주었던 그 드라마를 본 이후로 나는 이 불치병을 매해마다 앓아오고 있는 셈이다.

아무도 모르는 숲 속 옹달샘 같은 병이라 그것을 이기는 방법도 그저 민간요법 수준이다. 예를 들자면 이와이 순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를 증상이 심해지면 약처럼 복용하고,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독도서관을 병원처럼 내원하는 것이다. 삼청동이 관광지화 되는 바람에 그 고즈넉한 정취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정독도서관은 여전히 청순하고 소박한, ‘내 머리 속 4월’에 대한 거의 완전한 복원체다. <수학의 정석>이나 기출 문제집이 아니라 헤르만 헷세나 루이제 린저 같은 어릴 때 열심히 읽던 소설가들의 책을 열람실에 앉아 읽거나, 오후 볕 아래 잠시 봄 닭처럼 꾸벅 꾸벅 졸아도 상관없다. 어느 순간 창 밖에서 조용히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돌아온 4월은 그렇게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들 테니까.

p.s. 이번 주 토요일(4월 11일 4시부터) 정독 도서관 정원 야외무대에서는 ‘봄, 꽃과 함께하는 정독도서관 음악회’가 열린다. 혹 나와 같은 증세가 의심되는 분이라면 가장 확실한 치료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4월 병’엔 정독 도서관으로.

글ㆍ사진.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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