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김구라가 활용하는 웃음의 코드는 ‘콜럼부스의 달걀’이다. 다른 사람의 단점과 약점을 강도 높게 폭로하거나 속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거칠고 독한 그의 캐릭터는 누구도 과감히 개척하지 않았을 뿐, 노력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지독한 솔직함을 추구하는 방송 트렌드의 수혜를 틈 타, 특화된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 그는 스스로 논란과 신드롬을 생산하며 요란하게 메이저 방송에 안착했다. 그래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비슷한 방식으로 달걀을 세우기 시작했으며, 스스로 더 이상 화제를 만들어 낼 수 없는 현재 상황은 김구라에게 안정과 위기의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그가 진행을 맡은 SBS <절친 노트>는 김구라의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공개적인 사과와 화해가 필요한 김구라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확립한 <절친 노트>에서 그는 문희준과의 관계를 방송 전반에 노출 시키며 자신의 과오마저도 캐릭터의 일부로 차용을 했다. 그러나 방송의 범위가 다른 출연자의 화해를 도모하는 것으로 확장되면서, 김구라의 진행 방식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전체적인 흐름을 조장하기 보다는 적절한 공격을 가함으로서 흐름에 변칙을 가하는 캐릭터다. 따라서 그는 문장을 구사하는 데에는 능하지만 문단을 구성하는 데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김구라의 약점은 그 뿐만이 아니다. 사실 그는 유려한 진행은 물론 순발력이나 연기력을 요하는 상황극에도 약하며, 극단적으로 망가질 수 있는 뻔뻔함을 갖춘 인물도 아니다. 또한 ‘독설’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사용할 타이밍을 찾기 위해 관찰자처럼 방송을 조망하는 그의 태도는 ‘리얼리티’가 주효한 현재의 방송 트렌드에도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호감을 가진 상대나, 진심으로 어려워하는 상대에게는 그나마의 독설조차도 폭발하지 못한다. 인간 김구라가 드러나는 만큼 그의 독한 캐릭터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그가 정비해야 할 것은 본연의 캐릭터다. 자질구레한 정보를 바탕으로 치밀한 공격을 가하는 김구라와 ‘펠리컨 턱’이라는 놀림에도 “웃기면 그만”이라며 공격을 수용하는 김구라 사이의 황금 비율을 찾아야 할 때다. 전면에 나서서 챔피언이 되기 어렵다면, 최고의 스파링 파트너라도 되어야 한다.

박명수
박명수의 문제는 모두 알고 있다. 심지어 박명수 본인도 알고 있다. 지금 박명수는 혼자 웃기지도, 프로그램을 끌고 나가지도 못한다. 그가 단독 MC를 맡았던 오락 프로그램은 모두 조기종영 됐고, 그가 호통 치는 ‘2인자’ 노릇을 하는 오락 프로그램도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이승철 모창을 하고, 호통을 치며, 뜬금없는 토크를 날린다. 그가 MBC <무한도전>과 KBS <해피투게더>에서 한 때는 “널 밟고 올라서겠어!”라고 소리치던 유재석에게 “영원히 함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쇼를 위한 농담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유재석처럼 종종 토크의 맥락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 웃음으로 살려주는 MC가 아니라면, 그는 자신의 방송 분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박명수의 문제점은 역설적으로 그가 생존할 수 있는 이유다. 언제나 어설프고, 그러면서도 초지일관 자신의 개그를 밀어붙이는 이 대책 없는 남자는 유재석과 김태호 PD처럼 출연자의 특징을 잡아내고, 그것을 악의 없이 놀리는데 능한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웃음의 보고다. 대책 없이 판을 어질러 놓는 그의 개그는 대부분은 ‘거성쇼’처럼 어색한 코미디로 끝나지만, 좋은 MC나 똑똑한 기획자를 만나면 그자체로 쇼에 보다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조커가 될 수 있다. 두 사람에 의해 박명수는 (어설픈) 거성이 됐고, (하찮은) 악마가 됐으며, (불쌍한)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박명수 그 자신의 캐릭터가 됐다. 그가 아무리 호통을 쳐도, 웃기지 않는 개그를 해도, 어설픈 개인기를 해도 그의 캐릭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낸다.

일반적인 예능인이 어설픈 개그를 치면 비난받지만, 박명수는 그 모습 자체가 왠지 모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무한도전>을 통해 그가 이승철 모창 말고는 알려진 것 없는 개그맨에서 ‘거성’을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무한도전>의 팬들은 그에게 꾸준한 정을 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무한도전>이 계속된다면, 그리고 유재석과 함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면 박명수는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박미선
박미선은 예능계 최고의 블루칩이다. 입담이 좋고 프로그램 진행이 노련하면서도 빵빵 터뜨리는 웃음을 주는 데 부족함이 없으며 호감형이기까지 한 여성 MC는 그가 유일하다. 1988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그는 1998년 SBS <순풍 산부인과>의 ‘미달이 엄마’ 로 능청스런 연기를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인 2008년부터 또 다시 물이 오른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온 국민이 다 아는 그와 동료 개그맨 이봉원의 결혼생활 스토리는 그 사이 형성된 박미선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40대 부부의 권태기에 대해 털어놓으면서도 우악스럽지 않고, 남편의 사업 실패 때문에 오랫동안 가장 노릇을 하며 고생한 이야기를 할 때도 궁상스럽지 않은 것은 그게 박미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매사에 낙천적이면서도 똑 부러지고, 누구보다 제 몫을 잘 하지만 앞에 나서거나 튀지 않는 것은 그의 성격이자 진행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런 박미선의 20년 내공은 프로그램의 성격과 자신의 위치에 따라 유연하게 자리를 잡고,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MBC <명랑 히어로>에서 김구라, 신정환 등 다수의 공동 MC 중 유일한 여성이자 연륜 있는 인생 선배로 초반의 허심탄회한 대화 분위기를 형성했던 그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세바퀴’에서 메인 MC로 활약하며 ‘아줌마들의 수다’의 맥을 잡았고 KBS <해피 투게더 3>에서는 유재석을 든든히 받치는 제 2 MC로 편안하면서도 유쾌한 토크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올해 제 45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예능상을 수상한 뒤 그가 농담 삼아 던진 “사실 이 상은 신봉선, 송은이, 박지선 같은 친구들이 받았어야 하는데 제가 더 잘 했나 봐요” 라는 솔직하면서도 센스 있는 수상소감은 정답이다. 지금 누구보다, 박미선이 더 잘 한다.


개별 문항의 정답률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점수는 그리 높지 않다. 예능인으로서 붐은 이상한 답안지다. 뛰어난 진행 능력과 탁월한 적응력, 캐릭터 설정과 유행어 제조에도 유능한 그는 거의 모든 능력에서 평균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항목에서도 만점을 기록하지 못한다. 이것이 붐의 한계다. 어떤 방송에 투입해도 제 몫을 해낸다는 점에서 그는 만능이지만, 대부분 안정기에 접어든 방송은 그를 버리고 좀 더 고급스러운 진행자를 찾는다. 접근성이 쉬운 반면 절대적인 무엇이 아직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다.

그의 딜레마를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특유의 ‘싼 티’다. 연예 리포터로 입지를 굳힌 그는 짧은 시간 동안 가장 효과적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달구는 법을 온 몸으로 체득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KBS <대결 노래가 좋다>에서는 붐준표를 자청해 비난과 공격을 유도하고, 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는 자신의 친구를 소개하기에 앞서 ‘누규 송’을 부르며 상황을 이벤트로 만들어 버린다. 논란이 되었던 그의 발언들 역시 마찬가지다. 만났던 여자 연예인의 정보를 공개 하고, 이윤열에게 짓궂은 멘트를 던지는 것은 그에게 코 성형에 사용한 보형물의 사이즈를 언급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빨리 분위기를 ‘업’ 시키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진중하거나 우아하지는 않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붐은 방송에 침투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난 10년간 그의 생존 방식이었다.

이제 붐이 고민할 것은 생존 여부가 아니라 그가 생활하고 존재할 분야다. ‘케이블계의 유재석’으로서 자신의 경솔하고 저렴한 이미지를 유지할 것인지, 보다 업그레이드 된 방식으로 공중파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것인지 그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호감 가는 예능인에서 비호감의 아이콘으로 그를 수직하강 시킨 것은 어쩌면 한마디 말이 아니라 그토록 가벼운 그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말에 무게를 두는 것 보다 무게 있는 캐릭터가 되는 편이 보다 건설적인 계획이라는 말이다.

신정환
“대본도 안 봐, 큐시트도 안 봐….” 윤종신은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서 노래의 형식을 빌려 신정환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러 오락 프로그램들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신정환은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도 안 하고, 오락 프로그램 출연을 ‘노는 것’으로 생각하는 ‘예능계의 천재’다. 실제로 신정환은 종종 컨디션에 따라 프로그램에서 극과 극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프로그램의 흐름과 상관없는 어처구니없는 토크를 던지면서도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갖고 있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그와 호흡을 맞추고, ‘라디오 스타’에서 그의 토크가 만개한 것은 이런 그의 특성과 관계가 크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무질서하지만 빛나는 그의 예능감을 프로그램에 효과적으로 이용했고, 애초에 무정부주의적인 혼란이 판치는 ‘라디오 스타’의 분위기는 그의 ‘비논리적인’ 토크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놀이판이었다. 또한 탁재훈은 그와 보조를 맞춰 개그를 하면서도 일정부분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역할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하지만 이는 지금 신정환의 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신정환은 재능은 뛰어나지만 마음껏 떠드는 것 이상으로 올라가려하지 않기에 언제나 ‘2인자’에 머무르고, 마구 지르듯 던지는 그의 멘트들은 종종 여러 구설수로 이어진다. 신정환은 때론 아이 같이 순진해 보이지만, 무절제 해보이기 때문에 신뢰감이 떨어져 보인다. 그가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출연자들을 통솔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정환은 예능계의 떠돌이 무사 같다. 떠돌이 무사가 노는 시간에는 투전판과 술자리를 전전하다 의뢰인의 의뢰가 들어오면 그제서야 칼을 휘두르고 돈을 벌듯, 신정환도 자신을 불러주는 곳에 가서 제작진이 원하는 만큼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는 그 생활에 큰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영원히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는 될 수 없지만, 대신 행복한 2인자로 살아갈 수 있는 인생.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