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을 각오하고 시도해 본다. <10 아시아>의 열여덟 번째 ‘포커스’는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예능 10인’에 관한 평가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재석과 강호동을 제외한 10인에 관한 평가다. 지금 한국 오락 프로그램은 분명히 유재석과 강호동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들은 오락 프로그램 시장의 전부도 아니고, 그들이 오락 프로그램의 모든 영역을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2강 체제는 역설적으로 그들과 그들 이외의 MC들로 예능계의 전선을 분명하게 나누고, 그들 이외의 MC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시장을 지키는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진행하는 8개 프로그램 이외의 공중파 오락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수많은 ‘2인자’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혹은 그 자리가 흔들리고 있는 예능인들. 그들에 대한 감사와 찬사와 우려와 비판을 함께 담아 ‘예능 10인’의 현재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그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함께 담았다.SBS <일요일이 좋다> 1부, KBS <개그콘서트>, MBC <황금어장>,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 이 프로그램들은 지난 3월 23일부터 3월 29일까지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주간 시청률 1~5위다(TNS미디어코리아 기준 전국 시청률). 참고로 6위는 KBS <해피투게더>다. 이 시청률 순위가 알려주는 것은 간단하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진리다. 지금 한국 오락 프로그램은 유재석과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그 나머지로 나눠진다. 시청률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최고 인기 장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사실상 <무한도전>과 ‘1박 2일’, ‘패밀리가 떴다’처럼 두 사람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또한 음반이나 영화 홍보가 필요한 ‘A급’들은 그들이 진행하는 <해피투게더>, ‘무릎 팍 도사’, MBC <놀러와>, SBS <야심만만2> 등에 출연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예능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인 주말 저녁과 평일 밤 11시대에 방영된다. 트렌드와 사람, 시청률과 편성이 모두 두 사람에게 집중 돼 있는 것이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아닌 ‘나머지’ 가 사는 법
전무후무 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특정 MC 두 사람이 공중파 3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지배하는 이 현상은 시장의 재편으로 이어진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방송가에는 ‘1인자’와 ‘2인자’라는 말이 유행했다. 패널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출연자는 2인자고, 메인 MC가 되면 1인자다. 하지만 이제 이런 말들은 무의미하다. 메인 MC를 하든 패널을 하든, 그들이 주간 시청률 5위 안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봄 개편과 함께 새롭게 편성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망’이 신정환, 김구라, 탁재훈, 김용만 등을 모아 놓고 그들이 ‘못 웃긴다’라고 책망하는 것은 이런 시장 구조가 ‘나머지’ MC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그들도 확실한 고정 프로그램을 가지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들의 프로그램은 하나 둘씩 시청률 순위에서 미끄러졌고, 경제 불황은 조금이라도 비경제적인 MC와 프로그램들을 놔두지 않는다. 프리랜서 MC들이 진행하던 프로그램 중 상당수는 아나운서들이 맡게 됐고, 시청률이 저조한 오락 프로그램은 곧바로 폐지된다. MBC <명랑 히어로>처럼 1년 가까이 방송된 프로그램도 결국 폐지됐다. 오직 유재석과 강호동만이 방송사에는 시청률을, 패널들에게는 장기 고정을 약속할 수 있다. 나머지 MC들은 개편의 공포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신들에 대한 평판에 몸을 떤다. 불과 2년 전 KBS <연예대상>의 대상 수상자였던 탁재훈은 ‘대망’에서 ‘못 웃기는 MC’ 취급을 받고, 이혁재는 ‘교육방송이 더 친근한 MC’란 소리를 듣는다. 유재석-강호동의 2강 체제와 불황이라는 시대 상황의 변화는 그들이 더 이상 ‘1인자’의 품위를 누릴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지금 유재석과 강호동을 제외한 모든 ‘2인자’들은 과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대망’과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은 “저라고 왜 유재석이나 강호동 씨하고 같이 하고 싶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PD들과, 유재석과 강호동이 아닌 ‘나머지’ MC들이 주말 버라이어티 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신정환과 김구라, 이경규와 김국진처럼 어느 쪽이 메인이라고 하기 애매한 MC들이 윤손하나 김태원 같은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성장시킨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이제는 그들의 ‘라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영향력 차이가 분명한 출연자들을 이끌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다른 MC들은 엇비슷한 영향력을 가졌거나,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는 캐릭터끼리 모여 성장을 추구한다. 물론 SBS <라인업>이라는 실패한 선례가 있지만, 지금 유재석과 강호동이 아닌 ‘나머지’ MC들은 이런 식의 합종연횡을 선택해서라도 주말 버라이어티 쇼를 뚫어야한다.
대체불가능한 자신만의 시장을 가진 다는 것
물론 그들이 주말 버라이어티 쇼의 코너에 참여하려면 그에 걸맞는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 ‘2인자’들 각자의 입지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지배하는 주말 버라이어티 쇼가 아닌 그 나머지 프로그램에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김구라가 진행하는 SBS <절친 노트>는 예능의 주류는 아니다. 하지만 어색한 사이의 연예인들을 화해시킨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은 욕과 사과의 역사로 점철된 김구라의 캐릭터가 없다면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김구라가 포함된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4인방은 독설, 깐죽거림, 그리고 마이너의 정서로 유재석과 강호동이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을 만들었다. 또한 ‘라디오 스타’의 4인방 중 신정환은 여러 프로그램의 패널로 활약하며 입담을 과시하는 동시에, 탁재훈과 함께 <상상플러스>와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을 진행하며 토크쇼의 한 축을 담당했다. 반면 윤종신은 자신이 메인에 나서는 대신 ‘라디오 스타’는 물론 강호동과 유재석의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철저하게 ‘잘 주워먹는’ 패널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간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유재석과 강호동처럼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이끌어갈 수 있을 만큼의 진행 능력과 토크, 개그까지 모두 갖추고 정면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 중 어느 한 부분, 혹은 캐릭터적인 면에서 대체 불가능의 존재가 되는 것이 낫다. 박미선은 진행과 토크, 심지어 연기까지 되는 중년 여성 MC이기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세바퀴’부터 MBC 시트콤 <태희 혜교 지현이>까지 중년 여성 연예인이 필요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받는다. 어쩌면 최근 공중파 TV로 돌아온 최양락 역시 박미선과 비슷한 시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늘 ‘싼티’라고 놀림 당하는 붐은 그 ‘싼티’ 때문에 공중파 메인 MC는 되기 쉽지 않아도 일반인들이나 신인급 연예인들을 끌고 가야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강점을 가진다.
그들은 어떻게 조기종영을 피해 가는가
최근 이경규의 극적인 변화는 현재의 예능인들에게 이런 식의 생존전략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보여준다. 2007년만 해도 이경규는 ‘규라인’의 수장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후배에게는 방송 중에도 호통을 치는 권위적인 캐릭터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SBS <라인업>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의 연이은 실패 이후 이경규는 스스로 ‘한물 간 선배’를 자처했다. 그는 <명랑 히어로> ‘두 번 살다’에서 후배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됐고, SBS <절친노트>를 통해 면전에서 후배들의 온갖 비아냥을 들었다. 그리고 이경규는 고정 출연하는 ‘남자의 자격’ 에서 김국진, 김성민, 이윤석 등에게 또다시 비난을 받으며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한다. 더 이상 이경규는 과거와 같은 영광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경규는 바로 그 시점에서 자신이 할 역할을 찾으며 50줄의 나이에도 예능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10아시아>가 지금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예능 10인’을 선정해 그들의 현재를 진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예능 10인’은 지금 현재 유재석과 강호동을 제외한 3~12등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몇 개월 사이에 반응이 달라지는 이 ‘나머지’ MC들 사이에서 지금 이 순간의 인기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얼마나 자기만의 시장을 가졌는가하는 것이다. ‘예능 10인’은 지금 그런 시장을 갖고 있거나, 가졌지만 어느 순간 위태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평가 작업이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아닌’ 그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조기 종영을 피해 가는가. 이는 그들의 생존전략일 뿐만 아니라,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 현재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유지하는가에 대한 지도가 될 것이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