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을 잘 맞춘다는 걸 제외하면 요리의 ㅇ도 모르는 나지만 지난 주말 엄마가 집을 비우셨을 땐 어쩔 수 없이 직접 저녁을 차려야 했다. 집 앞에서 ‘줄줄이 소시지’ 한 봉지를 사 들고 들어가자 밖에서 밥을 먹고 왔다던 언니가 외쳤다. “나도! 나도 소시지 몇 개만!”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나에게 언니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당근을 내밀었다. “소시지 주면 <심야식당> 3권 보여줄게.” 나는 군소리 없이 프라이팬을 불에 올렸다.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식당>은 신주쿠 번화가에서 밤 12시부터 문을 여는 조그만 식당과 그 곳을 오가는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다. 얼굴에 긴 칼자국이 난, 과거를 도통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솜씨 좋은 마스터 혼자 일하는 이 가게에서는 특별한 메뉴가 없다.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면 그 날 들어온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만들어서 대접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그러면서도 손님 입장에서는 가히 환상적인 영업방침이 이곳의 룰이다. 그런데 손님들이 요구하는 메뉴 역시 결코 까다롭지 않다. 삶은 달걀, 바삭바삭한 베이컨, 차밥 등 주로 집에서 먹을 법한 음식들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요리가 아니라 ‘이야기’다. 며칠 전 발매되어 따끈따끈한 3권에서도 버터라이스에 대한 보답으로 돈 대신 ‘하코다테의 여자’를 불러 주는 나이든 유랑 악사, 야쿠자와 메이저 리거의 빨간 비엔나소시지에 얽힌 추억 등 10매 안팎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정제된 수필을 읽는 듯 가슴 찡하고 멋스럽게 펼쳐진다. 특히 죽순(타케노코) 요리와 ‘타케노코족’에 대한 에피소드는 80년대 일본 문화의 독특한 지점을 흥미롭게 짚어냄과 동시에 묘한 향수마저 자아낸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다가 불혹의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한 아베 야로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식은 밥을 좋아한다. 그 밥에 바지락을 넣은 된장국을 치면 최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올 여름 발매 예정이라는 4권에서는 식은 밥과 바지락 된장국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까, 벌써 기다려진다.

글ㆍ사진. 최지은 (fiv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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