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한다는 건, 신이 만들어낸 영구적이고, 불변인 법칙을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안드라스 쉬프는 그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며 이 작품의 절대적인 숭고함을 현재에 재현했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아니지만, 안젤라 휴이트는 LG아트센터에서 했던 내한 공연에서 바하의 평균율을 연주하며 음과 음을 하나씩 해체, 바하가 짜 놓은 우주의 룰에 대한 설계도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굴드다. 굴드는 1955년 연주에서 음과 음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변화 시켰다. `정밀하게 짜여진 음과 음의 구조를 그가 마음대로 늘이고 줄이고, 확대하고 축소하자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격정적인 드라마로 변했다. 이 연주의 26번 트랙은 마치 감성적인 영화의 스코어로 쓰일 법한 풍부한 감정을 전달한다. 클래식을 모르니 이것은 추측일 뿐이지만, 굴드의 연주는 절대적이었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자 개인이 무한하게 해석할 수 있는 세계로 던져놓았다.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등장하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Aria’를 들어보라. 그 곡은 한 없이 느린 연주로 진행된다. 우리는 언제나 시간이 똑같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소녀는 시간을 ‘달려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늘리고, 압축한다. 신의 숭고함이 인간의 감정으로, 절대적인 시간이 상대적인 시간으로. 신은 하나의 절대적인 룰을 인간에게 던지지만, 인간의 인생은 그 룰 안에서 수없이 변주한다. 굴드가 그 세상을 처음으로 열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