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처음 데려온 날 2리터짜리 에비앙 밖에 없었다. 밥그릇에 에비앙을 졸졸 따라서 고양이 앞에 드밀었더니 같이 있던 지인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된!장!남!” 어쩌겠는가. 집에는 에비앙 밖에 없었고 고양이는 목이 말랐다. 아무리 길냥이 출신이지만 첫날부터 수돗물을 대접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그 에비앙은 특별할인가로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었다. 아니다. 변명 말고 솔직하게 말하자. 나는 그냥 에비앙이 좋다. 냉장고에 꽉 들어차 있는 에비앙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물론 에비앙은 비싸다. 보통 생수의 두 배나 되는 수입 생수를 마시는 건 확실히 사치다. 게다가 에비앙의 물맛은 종종 텁텁하고 때로는 들쩍지근하다. 미지근하게 식은 에비앙은 지리산 고로쇠 나무의 수액처럼 묘하게 달기도 하다. 삼다수의 목을 쓸어내는 청량한 맛과는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나는 에비앙이 좋다. 이유가 뭐냐고? 2002년 여름 영국 브리스톨의 이야기로 답을 대신하자. 에비앙을 들고 시내를 걷다가 친구와 마주쳤다. “왠 에비앙? 그렇게 비싼 걸.” “알아 비싼 거. 하지만….예쁘잖아.” 그녀는 고양이에게 에비앙을 따르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 지인과 똑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넌 정말. 패션 빅틈(fashion victim)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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