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살아가야 하는 삶의 고통을 리얼리즘의 자세로 그려내던 그는 KBS <굿바이 솔로>를 통해 괴로운 과거와의 화해를 이야기했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위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노희경 작가를 ‘그의 플레이리스트’의 첫 번째 인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져 온갖 자극적인 드라마들이 넘쳐나는 이 때에, 삶에 대한 깊이있는 시선으로 ‘가장 대중적인 마니아 드라마 작가’가 된 그는 과연 어떤 음악을 들으며 삶의 위안을 얻을까. 그리고, 노희경 작가는 이 질문에 ‘나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음악들’이라는 주제로 답했다. 소리에 지극히 민감해서 드라마를 쓸 때는 음악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노희경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듣는 다섯 곡의 음악. 그 음악들이 우리에게도 위안을 줄 수 있기를.
노희경 작가가 처음으로 꼽은 ‘You`re the first, the last, my everything’은 미국의 전설적인 R&B/소울 뮤지션인 베리 화이트의 대표곡.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유쾌한 분위기로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2>등에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이 노래를 <앨리 맥빌>을 통해 알게 됐다. “앨리맥빌의 절친한 친구인 남자가 이 노래를 좋아하죠. 그걸 안 이 남자의 여자친구가 진짜로 베리 화이트를 초대해서 노래를 부르게 해요. 그 장면이 어찌나 멋있었는지 그 부분만 100번쯤 돌려봤어요. 그 때부터 이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했죠. 기분도, 몸도 다운 돼 있을 때 들으면 힘이 나요. 글이 잘 풀릴 때 들으면 기분이 더 좋아지고, 반대로 글이 안 풀릴 때도 들으면 힘이 생겨요. 저녁에 글 쓸 땐 저녁 먹고 한 시간 정도 바깥을 걷다 집에 오는데, 그 때 이 음악을 들어. 들을 때마다 <앨리맥빌>의 장면이 겹치면서 축제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1970~80년대에 유년기와 청춘을 보낸 노희경 작가에게 산울림은 소중한 기억의 일부분이다. 그 중에서 산울림의 2집 앨범에 수록된 ‘둘이서’는 그가 20년째 듣고 있는 노래다. “전 요즘에 한국 노래를 잘 안들어요. 우리 나라 노래는 정조가 슬프기도 하고, 슬픈 내용의 가사가 들리니까 더 슬프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 슬픈 게 어느 순간부터 듣는데 힘이 들게 만들더라구요. 하지만 산울림의 노래는 너무 슬프게 만들지 않아요. 그렇다고 사람을 들뜨게 하지도 않죠. 뭔가 아련한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둘이서’는 조금 섹시한 느낌도 있어요. 몽롱한 분위기에서 연인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져요. 아마 야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금지곡이었던 때도 있었을 거에요. 지금도 김창완 선생님 하면 이 노래가 생각나요. 20년동안 들었는데, 아마 앞으로도 이 노래를 계속 듣게 될 것 같아요.”
이글즈의 ‘Hotel Calfiornia’는 명실상부한 록 역사상 최고의 명곡 중 하나. 노희경 작가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이글즈와 ‘Hotel California’를 들었다. “사실 이글즈 노래는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워졌던 때도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하도 많이 들었으니까. 그러다 다시 좋아진 게, 바비 킴 때문이에요. 바비 킴이 어느 방송에서 ‘Hotel California’를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바비킴의 목소리가 몽환적이면서도 독특해서 원곡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때부터 원곡도 듣게 되면서 다시 정을 붙였죠. 누가 한국가수 누구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바비 킴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글을 쓰다 한 시간 정도 드라이브를 하면서 쉴 때가 있어요. 제가 운전을 못하니까 가족들이 운전을 대신해 주는데, 그 때 ‘Hotel California’를 들어요.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옛날에 지겹다고 했던 것들이 지나고보니 참 좋구나.”
‘베사메 무쵸’는 한 때 코미디언 이주일이 가사를 마음대로 바꾼 코믹 버전을 내놓았을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스페인 음악.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수많은 버전으로 리메이크 됐다. 노희경 작가가 이 노래를 선택한 것도 그 리메이크의 매력 때문. “리메이크된 곡들을 들으면 많은 생각이 들어요. 꼭 지나간 인생을 현재로 재해석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재해석이 가능하잖아요. 저도 유를 쓸 때는 거기에 내 유년기가 녹아 있어서 아프게만 표현했어요. 그 때의 아픔이 크게 다가왔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소박한 미학들이 있었어요. 길에 쭉 늘어선 가로등 불빛이나 아이들의 공차는 모습 같은 것들. 그 때는 왜 그걸 절대적 가난으로만 봤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내가 사는 이유>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다시 쓰면 조금 더 따뜻하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영국의 대표적인 팝 보컬리스트 탐 존스의 히트곡. 한국에서도 조영남이 리메이크 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노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오빠가 이 노래를 좋아해서 테이프로 같이 들었거든요. 그 소리가 제가 살던 동네에 은은하게 퍼졌는데, 제가 살던 가난한 동네에 그 음악은 참 어울리지 않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가졌던 슬픔과 따뜻함, 그런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을 그 노래를 통해 느꼈던 것 같아요.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특히 제가 집에 늦게 들어올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 때 혼날까봐 숨죽이고 돌아오는데 그 때 오빠가 기타로 이 노래를 치고 있는 거에요. 그 때의 묘한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드라마를 구상할 때도 많이 듣고, 어떻게든 이 노래를 드라마에 써보고도 싶어요. 그런데 곡 판권 문제가 걸리거나, 아니면 연출하는 감독님하고 의견이 안 맞아서 지금까지 한 번도 못썼어요. 언젠가는 꼭 넣고 싶어요.”
“늘 배우겠습니다, 오직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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