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성격을 상쇄할 수 있을 만한 장점을 키워야 했을 것 같다.
황현희
: 그래서 대안이 필요했다. 몇 년 전에는 몸 개그가 대세였다. MBC <무한도전>도 그랬고 <개콘>에서도 바보 캐릭터나 내복 입고 시내에 나가서 사진 찍고 하는 코너들이 인기였다. 깔끔하게 정장 입고 나와서 개그 하는 주병진 선배 같은 분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그런 캐릭터가 내 무기가 된 것 같다. 사실 내가 무대에서 무표정하게 정색하는 것도 처음에는 그냥 ‘쫄아서’였다. (웃음) 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자기는 안 웃으면서 남들 웃긴다’고 하니까 그걸 캐릭터로 밀게 된 거다. 개그는 막연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나에게 이런 무기가 있다는 걸 알아야 코너에서 캐릭터로 극대화시킬 수가 있다.

“똑똑할 거라고 오해 하시는데, 난 별로 똑똑하지 않다”

지금 거의 유일하게 시사 개그를 계속 하는 개그맨이고, 그래서 항상 대표격으로 언급되는데 그런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없나.
황현희
: 얼마 전부터 진짜 KBS <소비자 고발>에 출연하는데 대본이 디테일하게 나오는 시사 프로그램이면서도 내 애드리브를 많이 요구하시더라. (웃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이 좀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 난 <개콘> 대본도 외우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이분들은 내가 대본도 되게 빨리 외울 거라고 기대하시는 것 같다. NG라도 내면 다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하는 표정으로 보시고. (웃음) 일반인 분들도 내가 되게 똑똑할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런 게 좀 부담이 된다. 난 별로 똑똑하지 않다.

하지만 일단 시사적인 아이템을 개그의 소재로 삼으려면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흥미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황현희
: 사실 정치는 재미있는 분야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대중의 인기를 위해 노력하는 거니까. 세상에 정치만한 쇼가 없고, 그래서 개그 소재로도 최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건드리는 건 워낙 어려운데다 대중들도 별로 관심이 없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요즘 행보가 어떤지 술자리에서 꺼내 봐도 반응이 없다. 그런데 개그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통하는 거라 관심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정치를 얘기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정치보다는 독도 문제나 멜라민 파동처럼 사안 중심의 아이템들이 먹히는 것 같긴 하다.
황현희
: 멜라민이나 물가 상승처럼 ‘내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면 바로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대신 오히려 요새는 20대보다 ‘2.0세대’라고 불리는 10대가 더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일제고사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하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나는 80년에 태어나서 칼라 TV를 보며 자란 세대인데 우리부터 88년생 정도까지는 오히려 정치에 거의 문외한인 것 같다. 투표 참여율도 떨어지고. 사실 우리는 인터넷이 엄청나게 발달했을 때 자란 세대도 아니고, 눈에 띄게 억압을 받으며 자란 것도 아니다 보니 386 세대에 비해서도 더 정치에 관심이 없어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정치인이 되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나.
황현희
: 개그맨에게 할 질문이 아닌 것 같은데. (웃음) 일단 나는 개그맨이니까 재밌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정치하는 분들은 워낙 엘리트의 삶만 경험한 분이 많아서 그런지 서민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정책 펴지 말고, 좋은 일 조금 했다고 퍼뜨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조용히 좋은 일 할 거면 끝까지 조용히 하던가. 아무튼 개그에서 하는 것처럼 ‘공감대 정치’를 하고 싶다. 아, 이거 괜찮은데? (웃음)

“버라이어티에 안착하는 데는 7,8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바로 공약으로 쓸 수도 있겠다. (웃음) 그런데 만약, 개그맨 공채 시험에 떨어졌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황현희
: 공무원 시험을 계속 봤을 것 같다. 사실 공무원 시험을 몇 번 보기도 했지만 결국 접은 건, 내가 구청에서 공익근무를 하며 지켜본 공무원 분들의 생활이 너무 지루해보였기 때문이다. 역마살이 좀 있는 성격이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하는 걸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서. 하지만 다른 일을 찾지 못했다면 아무래도 시험을 계속 봤겠지.

요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올 때는 ‘수습 MC’라고 불리고, 라디오에 출연할 때도 <개콘>에서와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 공개 코미디를 하던 개그맨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어떻게 적응하고 있나.
황현희
: 무턱대고 나가서 하기보다는 프로그램 성격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나는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나 KBS <스타 골든벨>처럼 여러 명 한꺼번에 나오는 프로그램에는 약하다. 대신 KBS <해피 투게더>나 KBS <위기탈출 넘버원>처럼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건 잘 맞는 편이다. 그리고 MC들의 성향도 유재석, 강호동, 박명수 선배가 다 다르니까 그런 걸 읽어야 하고, 라디오도 DJ에 따라 스타일이 다르다. 그런 걸 파악해서 프로그램에 잘 맞춰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공개 코미디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는데 5년이 걸렸으니까 버라이어티에서는 좀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한 7,8년 정도?

미래를 굉장히 길게 보는 것 같다.
황현희
: 오래 내다봐야지. 난 개그를 오래오래 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하는 프로그램들을 다 잘 해내서, PD와 직접 아이디어 회의를 할 정도의 위치까지 가고 싶다. 요즘에는 거의 외주 제작 시스템이니까 개그맨들 아이디어가 들어가는 프로그램도 점점 늘어날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개그맨이 되고 싶나. 혹은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은가.
황현희
: 개그맨은 일단 웃겨야 하고, 사람들이 좋아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망가지고 싶지 않다. 망가지는 게 익숙하지 않으니까. 대신 안 망가져도 웃기는 개그를 계속 만들고 싶다. 그래서 주병진 선배 같은 신사적인 개그맨의 이미지를 쌓아가며 멋있게 늙고 싶다.

황회장처럼? (웃음)
황현희
: 황회장은 안 멋있다. 초등학생 같잖나. (웃음)

그럼 당신이 개그맨으로 계속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
황현희
: 사실 개그라는 건 굉장히 원초적이다. 세 살배기 어린애도 “까꿍 까꿍” 해 주면 웃는 것처럼,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웃기나 안 웃기나 평가하는 거다. 그래서 개그맨은 가장 뜨기 쉬운 직업이지만 철저하게 자기 능력만으로 올라가는 일이기도 하다. 정말 ‘저스트 실력’, 그게 개그의 최대 매력이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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