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비스트’에서 원칙주의자 강력반 형사 민태 역으로 열연한 배우 유재명. /사진제공=NEW
영화 ‘비스트’에서 원칙주의자 강력반 형사 민태 역으로 열연한 배우 유재명. /사진제공=NEW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애환, 적절한 유머, 화려한 액션의 통쾌함이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총도 한 번 제대로 안 쏘고 회식 자리도 한 번 없고 서로 훈훈하게 소주 한 잔을 나누는 장면도 없습니다.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감정을 맛볼 수 있는 영화죠.”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비스트’에 대해 배우 유재명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 영화는 살인마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하는 형사 한수(이성민 분)와 이를 눈치 챈 라이벌 형사 민태(유재명 분)의 모습을 그린다. 범죄 스릴러지만 범인을 잡는 것보다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두 형사의 감정과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재명은 민태라는 인물에 대해 자신과 감독이 생각한 공통점은 “태생적인 성격적 결함”이라고 밝혔다.

“평행선을 걷고 있는 두 남자, 불 같지만 정의롭고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한수와, 다른 이들과 교감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된 태도를 취하는 민태. 저는 민태의 전사나 동기를 (영화에) 넣어서 설명하기보다 눈빛, 태도, 호흡으로 표현했어요. 질투심와 경쟁심이 베이스가 된 태도를 취하죠. 야수적인 한수, 한수 못지않은 욕망을 가진 민태, 두 사람은 동전의 양면 같아요.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닮아있죠. (이 영화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말하고자 해요.”

영화 ‘비스트’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영화 ‘비스트’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영화에는 두 형사가 왜 이렇게 경쟁을 하는지, 서로를 향해 왜 으르렁거리는지 별다른 설명이 없다. 원칙을 고수하고 독단적인 민태와 원칙을 벗어나 감각적이고 즉각적으로 수사하는 한수의 집요함에만 집중한다. 민태가 초조해 하며 손을 긁는 장면에서 유재명은 분장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실제로 손에 상처까지 내며 극단의 감정을 끌어냈다.

“극 중 민태가 한수에게 ‘범인을 잡아야지, 잡고 싶은 놈을 잡는 게 아니라. 매번’이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매번’은 제 애드리브예요. 그 두 글자는 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적극적인 동기인 거죠. 뉘앙스라는 건 인물들이 가진 동기의 집약체에요. (뉘앙스 대신 장면으로 보여준다면) 이해하기 쉽고 친절한 반면 현재의 동력들은 떨어지죠. 영화는 인물들이 왜 저렇게 뜨겁거나 차가운지 설명하지 않아요. 그게 이 영화가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에요. 캐릭터에 대해 공감이 어려울 땐 감독님, 동료 배우들과 얘기를 나누며 무조건 공감하는 상태에 빠지려고 노력했어요. 거창한 말 같지만 운명 같은 거죠. (연기자로서) 그걸 거부하면 (이 작품을) 할 이유가 없는 거죠.”

두 형사의 신경전은 칼날 위를 걷 듯 아슬아슬하고 예리하다. 민태와 한수,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고 팽팽하게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 만큼 민태와 한수를 연기한 유재명과 이성민의 힘의 분배가 중요하다.

“오래전부터 이성민 선배의 팬이었고, 선배를 존경하고 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영광스럽다’고 말씀드렸죠. 현장에서 만난 이성민 선배는 자기 것만 고집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춰서 교감하고 소통하셨어요. 또 개구쟁이 같은 모습으로 엄살을 떨기도 하고요. 선배가 준 연기를 받기만 해도 리액션이 나올 정도였죠. 그런 에너지를 쏟아내는데 영향을 왜 안 받겠어요. 크고 묵직한 호흡 하나를 새길 수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멋진 선배란 혼자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배우를 함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배우 같아요. 역시 고수라고 생각했죠.”

유재명은 ‘비스트’를 통해 상업영화 주연을 처음 맡았다. 그는 이성민과의 투톱 주연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동료들 덕분이라고 고마워했다.

“많은 책임을 져야 하고 작품을 끌고 나가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성민) 선배가 계셨고 동료들이 있었죠. 부담감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고 해결해야 했습니다. 저 혼자 힘든 줄 알았는데 다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동지 의식도 생기고 서로 이해하면서 영화와는 달리 카메라 밖에서는 훈훈했습니다.”

유재명은 “지치고 힘들 때 기분을 좋게 해주는 영화, 인생을 관조하듯 보며 깨달음을 주는 영화, 까끌까끌하고 철학적 영화,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등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빼고는 다 좋아한다”며 “영화는 다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NEW
유재명은 “지치고 힘들 때 기분을 좋게 해주는 영화, 인생을 관조하듯 보며 깨달음을 주는 영화, 까끌까끌하고 철학적 영화,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등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빼고는 다 좋아한다”며 “영화는 다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NEW
흡인력 넘치는 연기로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종횡무진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재명. 최근 드라마 ‘비밀의 숲’ ‘라이프’ ‘자백’ 등에서는 묵직하고 진중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선보인 것처럼 코믹까지 잘하는 변화무쌍한 배우다. 유재명은 “전 사실 코미디 배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배우의 마지막 정점은 코미디 연기라고 생각해요. 좋은 코미디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묵직한 영화를 하는 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인 것이고, 코미디·단편·독립 등 뭘 하겠다는 경계는 없어요. ‘계획 없음’이 제 작업의 방향성이죠. 읽어봐달라고 작품을 주는 게 감사하고 선입관 없이 작품을 보고자 해요. 영상 매체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도약’이라고 볼 순 있지만 저는 20살 때부터 꾸준히 연기를 해왔고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작품이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추억을 새기면서 나이 들어가고 있어요.”

인터뷰 내내 펜을 들고 메모하면서 이야기하던 유재명에게서 연기에 대한 열정과 신중함이 느껴졌다. 유재명은 “연기자라는 직업을 어깨에, 가슴에 얹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자신에 대해 말했다.

지난해 띠동갑 연하의 연인과 결혼한 유재명은 다음달이면 아빠가 된다. 그는 “(아이가)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바빴는데 이제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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