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양현석. / 조준원 기자 wizard333@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양현석. / 조준원 기자 wizard333@
‘저는 오늘부터 YG(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직책과 업무를 내려놓으려 합니다.’

연예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양현석 대표이사가 14일 사퇴했다. 그는 이날 오후 “쏟아지는 비난에도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우리 임직원에게도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 입에 담기도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말들이 무분별하게 사실처럼 이야기되는 지금 상황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23년간 내 인생의 절반을 온통 YG를 키우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최고의 음악과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일이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고 팬들과 사회에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양현석은 “YG 소속 연예인들과 그들을 사랑해주신 모든 팬들에게 더 이상 나로 인해 피해가 가는 상황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YG에는 능력 있고 감각 있는 많은 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있다. 물러나는 것이 그들이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YG가 안정화될 수 있는 것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언론보도와 구설의 사실관계는 향후 조사 과정을 통해 모든 진실이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양현석 전(前) 대표는 지난 12일부터 YG 소속 그룹인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B.I, 김한빈)의 마약 관련 사건에 개입해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비아이로부터 마약 구매 요청을 받았다는 공익 제보자인 A씨의 주장이 나오면서 그동안 끊임없이 불거진 YG와 경찰의 유착 의혹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앞서 성접대 의혹도 제기됐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양 전 대표의 성접대 의혹을 다루면서 그가 한국을 찾은 동남아 재력가들과 식사를 한 뒤 유흥업소 여성을 불렀다고 했다.

빅뱅에서 탈퇴한 가수 승리(왼쪽), YG엔터테인먼트 대표직을 내려놓은 양현석. / 사진=텐아시아DB
빅뱅에서 탈퇴한 가수 승리(왼쪽), YG엔터테인먼트 대표직을 내려놓은 양현석. / 사진=텐아시아DB
양현석 대표를 비롯해 YG 측은 항간에 돌고 있는 소문과 성접대 의혹, 비아이의 마약 관련 사건 개입설 등을 모두 부인했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YG의 그룹 이미지와 속해있는 가수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양현석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양현석의 그동안의 행적을 돌아보면 화려하다. 1992년 한국 가요사에 큰 획을 그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한 양현석은 그룹의 은퇴 후 1996년 ‘현 기획’을 세우며 프로듀서로서의 음악 인생 2막을 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는 춤으로 유명했으나 가수를 발굴하고 음반을 기획하는 일에도 재능을 보였다. 힙합듀오 지누션부터 그룹 원타임까지 성공시켰다. 이때 기획사 이름을 자신의 별명인 ‘양군기획’으로 바꿨고, 이는 현재의 ‘YG’이다. 이후 세븐·렉시·휘성·거미 등 실력과 끼를 갖춘 가수들을 대거 무대 위에 올렸다. 또 다른 애칭 ‘양싸(양현석 사장님)’로 불리며 기획자로 승승장구했다.

양현석은 YG만의 색깔을 잘 살려, 2006년 빅뱅부터 2009년 투애니원(2NE1)까지 아이돌 그룹을 연달아 내놨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두 팀은 이전까지 없던 자유분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룹으로 독보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YG의 위상도 더욱 탄탄해졌다.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내 대형 기획사 톱(TOP)3에 이름을 올렸다.

가수에 이어 기획자와 경영인으로서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속해 있는 가수들이 사건·사고에 휘말리면서 다소 주춤하기도 했다. 특히 투애니원의 박봄을 비롯해 빅뱅의 탑과 지드래곤까지 유독 마약 사건과 연루돼 ‘YG’는 ‘양군’이 아니라 ‘약국’의 이니셜이라는 조롱 섞인 비난도 받았다.

그럼에도 양현석은 미국 빌보드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둔 싸이와 오랜만에 재결합해 주목받은 그룹 젝스키스를 영입하는 새로운 시도는 물론 2014년 위너, 2015년 아이콘, 2016년 블랙핑크를 차례로 데뷔시키며 건재함을 과시, 명성을 되찾았다.

양현석은 가수 출신의 기획자로 SBS ‘K팝 스타’를 비롯해 JTBC ‘믹스나인’ 등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자신의 신념과 노하우를 공개하며 호응도 얻었다.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느낌과 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듀서 양현석의 신념은 수많은 성공을 낳았지만, 반면 자신의 발목도 잡았다. 마약을 비롯해 최근 승리의 성매매 알선, 횡령 혐의와 경찰 유착 의혹까지 겪으며 대중들의 신뢰를 잃었다.

한때 “실력파 가수들만 모여있다”고 인정받은 YG는 어느새 ‘약국’으로 전락했고, 이미지가 깨끗한 편인 YG 소속 가수들의 기사엔 ‘어서 빨리 YG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우려섞인 댓글마저 달린다. 급기야 최근 어느 대학교 축제에서는 ‘YG 가수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다.

양현석은 이 같은 상황을 바라보며 23년을 바친 YG를 내려놓기로 했다. “하루빨리 YG가 안정화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희망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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