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열혈사제’에서 태국인 노동자 쏭삭 역으로 열연한 배우 안창환. /이승현 기자 lsh87@
‘열혈사제’에서 태국인 노동자 쏭삭 역으로 열연한 배우 안창환. /이승현 기자 lsh87@
“쏭삭 역으로 ‘열혈사제’를 함께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잊지 못할 작품입니다.”

SBS 드라마 ‘열혈사제’ 종영 후 만난 태국인 노동자 쏭삭 역의 배우 안창환은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 속 하이톤 목소리와 달리 묵직한 저음이라 뜻밖이었다. 그는 요즘 “한국사람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극 중 어눌한 한국말과 까무스름한 피부 때문에 태국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는다는 것. 그는 “진짜 태국사람으로 봐주신 시청자들께 너무 감사하다”면서 “사실 태국에는 가본 적이 없다. 태국 요리를 파는 식당에 가서 일하는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영상을 찍어 그 분들의 말투와 행동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열혈사제’를 하고 알아보는 분들도 많아지고 매회 한두 신밖에 안 나왔는데도 이렇게 사랑을 받았다는 게 정말 감사하면서도 아직 어색해요. 제가 내성적이고 쑥스러움도 많고 또 순수합니다. 하하. 제 입으로 말하긴 좀 민망하지만 순수한 건 쏭삭과 꼭 닮았네요.”

쏭삭이 반전 무에타이 실력을 보여줘 화제가 된 장면. /SBS 방송 화면 캡처
쏭삭이 반전 무에타이 실력을 보여줘 화제가 된 장면. /SBS 방송 화면 캡처
쏭삭의 반전 활약은 더욱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악당들에게 늘 맞고 당하기만 했던 그가 사실은 태국 황실 경호원 출신의 무에타이 고수였던 것. 극 중 ‘구담 어벤져스’가 클럽 ‘라이징문’ 비리를 캐기 위해 건달들과 맞붙었을 때 쏭삭은 숨겨뒀던 무에타이 실력을 발휘해 동료들을 지켰다. 이 장면에 CG로 덧입혀진 ‘왕을 지키는 호랑이’라는 문구는 방송 다음날 내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네이버TV의 열혈사제 채널에서 해당 클립 영상은 78만뷰로, 최다 조회수를 기록했다. 안창환도 “나중에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의 우군이 된다고만 알았지 이 정도 반전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감독님이 ‘발차기 연습해놔라’고만 슬쩍 말씀하셨어요. 태국인이니까 아무래도 무에타이를 잘하겠다 생각했고, 이후에 액션스쿨에 등록해서 연습하게 됐죠. 이전에는 무에타이를 전혀 할 줄 몰랐어요. 영화 ‘옹박’을 보면서 동작을 연구하고 거울을 보면서 자세를 따라했습니다. 쏭삭이 무에타이 고수라는 단서도 없었는데 시청자들은 이미 다 예상하고 계시더라고요. 하하. 기대치만큼 못 나오면 어떡하나 싶어서 부담감도 느꼈죠. 그래도 감독님, 무술감독님, 동료배우들이 도와준 덕택에 잘 나온 것 같아요.”

극 중 놀이터에서 웃통을 벗고 무에타이를 연습하는 장면도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쩍쩍 갈라지는 듯한 선명한 복근이 공개되며 또 다시 반전 매력을 선보인 것. 안창환은 “(복근은) 급하게 만든 것”이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감독님이 잔근육을 좀 만들어 놓으라고 해서 살을 쫙 뺐어요. 그런데 정작 대본에 그걸 보여줄 장면이 안 나오는 거예요. 안 나오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엄청 먹었거든요. 그런데 촬영 이틀 전에 웃통을 이제 까야 한다는 거예요. 그 때부터는 물도 안 먹고 이틀간 굶어가면서 계속 운동만 했어요.”

안창환은 쏭삭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로 ‘순수함’을 꼽았다. 그러면서 쏭삭의 순박한 모습으로 시청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었던 ‘간장공장 공장장 말하기 장면’도 기억에 남은 촬영이라고 했다.

“장룡(음문석 분)이 ‘간장공장 공장장’을 말하게 시켜서 성공한 후에, 원래는 혼자 오토바이 타고 가면서 신나 하는 장면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만들어서 찍게 됐어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다른 날로 넘길 정도였는데, 굳이 꼭 이걸 찍어야 하나 모두 고민을 좀 했죠. 그래도 욕심을 부려서 찍었더니 시청자들이 너무 좋아해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안창환은 오디션 비화를 전했다. “쏭삭이 태국에 계신 부모님께 영상편지를 보내는 상황을 만들어갔는데, 한국말로 말한 후 ‘아차’ 싶어서 ‘우리 엄마는 한국말 모르는데 이거 자막 나가냐’고 했죠.” /이승현 기자 lsh87@
안창환은 오디션 비화를 전했다. “쏭삭이 태국에 계신 부모님께 영상편지를 보내는 상황을 만들어갔는데, 한국말로 말한 후 ‘아차’ 싶어서 ‘우리 엄마는 한국말 모르는데 이거 자막 나가냐’고 했죠.” /이승현 기자 lsh87@
쏭삭과 ‘모카빵’이 트레이드마크인 오요한(고규필 분), ‘롱드’ 장룡(음문석 분)과의 티격태격 케미는 쏭삭의 인간적인 매력을 더욱 부각했다. 쏭삭과 장룡은 나중에 진정한 친구가 됐고, 오요한과는 ‘돼지새꺄’라고 부를 만큼 허물없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안창환은 “‘돼지새꺄’는 애드리브였는데, 규필 형한텐 미안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문석 형은 열정과 끼가 넘치는데, 이게 분출되면서도 아직도 나올 게 남아있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밤을 새도 지치지 않는데,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감탄했죠. 규필 형은 엄마 같았어요. 타국에 와서 외로운 쏭삭을 대하는 것처럼 제게 다정하고 편하게 해줬어요. 연기가 과하거나 부족할 땐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줬죠. 두 형뿐만 아니라 남길 형을 비롯해서 다른 동료배우들과도 마음이 잘 맞았어요. 사실 ‘TV에 나오는 스타라면 이럴 거야’ 같은 선입견도 있었는데, 확 깨졌어요. 따뜻한 사람들을 얻었죠.”

‘열혈사제’는 최근 이슈가 되는 ‘버닝썬 사건’을 연상시켰지만 민감한 문제를 코믹하고 통쾌하게 풀어내면서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안창환은 “이런 이야기가 등장해도 되나 살짝 걱정도 했다”고 말했다.

“‘버럭’하지만 정의로운 신부와 소시민들이 모여 악당을 때려잡는 모습이 시청자들께 대리만족을 줬다고 생각해요. 시청자들이 사회적 이슈와 연관된 이야기를 자칫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는데, ‘열혈사제’는 그런 부분을 너무 사실적이지 않으면서 과장되지 않게 풀어갔어요.”

“어떤 작품을 만나든 묵묵히 제가 가던 길을 한발 한발 걸어나갈 겁니다.” /이승현 기자 lsh87@
“어떤 작품을 만나든 묵묵히 제가 가던 길을 한발 한발 걸어나갈 겁니다.” /이승현 기자 lsh87@
안창환은 2011년 연극 ‘됴화만발’로 데뷔해 ‘햄릿6’ ‘농담’ ‘밤의 연극’ ‘프랑켄슈타인’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등으로 꾸준히 연극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1월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2인자 콤플렉스를 가진 건달 조직의 똘마니 역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안창환은 “캐릭터를 준비하며 생각했던 것들을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때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꼭 내 이름을 알리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살아온 대로, 하던 대로 묵묵히 일을 하면 이름을 더 알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슬기로운 감빵생활’ ‘열혈사제’ 등 좋은 작품을 만나 운이 좋았죠. (화제가 되는 작품을 만나) 주변환경이 달라지면 저도 바뀌게 될지 몰라요. 그렇게 되선 안 되고, 또 그렇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예요. 오로지 작품과 캐릭터에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렇게 어떤 작품을 만나든 묵묵히 제가 가던 길을 한발 한발 걸어나갈 겁니다.”

안창환은 아쉽지만 이제 쏭삭이라는 옷을 어떻게 하면 잘 벗을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 새로운 옷을 입었을 때 시청자들이 ‘쏭삭 같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새로운 모습도 찰떡같이 소화해 시청자들께 다채롭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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