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소유진: 드라마 끝나자마자 엄마 모드로 들어갔다. 정말 ‘끝나자마자’다. 숨이 긴 장편 드라마여서 끝날 즈음 남편(백종원)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것 같더라. ‘남편이 지금까지 엄청 잘 챙겨줬는데, 이러다 너무 지쳐서 나중에 내가 또 드라마를 할 때 안 도와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드라마 현장의 팀워크가 진짜 좋아서 ‘끝나면 회식하자, 여행가자’ 이런 얘기가 많았는데 끝나자마자 다시 엄마로 복귀했다.
10. 드라마 끝나고 예능 출연이 이어지던데, 쉬고 싶지 않았나.
소유진: 이번 드라마는 힘든 것조차 감사했다. ‘이렇게 힘든 날이 또 올까?’ 할 정도로 정신력과 체력을 썼지만 현장이 좋아 ‘또 힘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 사는 일이니 촬영 현장에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게 없었다. 집에서 출발해 치우로 변신하는 과정이 좋았다. 집에서는 나도 애 엄마고, 연정훈 오빠도 애 아빠다. 현장에서는 약속이라도 하듯이 묵은 때를 털고 밝게 일하면서 ‘힐링의 공간’을 만들었다.
10. 스트레스 하나 없었다고 하기에는 극 중 임치우가 겪는 삶은 스트레스가 많았다. 각종 알바에 남편 윤종훈의 만행이 화제를 모았다.
소유진: 치우의 삶이 힘들긴 했다. 그런데 극 초반 캐릭터를 잡아갈 때는 언제나 힘들다. 그걸 잡아가는 게 연기자의 숙제다. 치우가 하는 굴삭기 부터 연습을 가서 몇 번이나 해봤다. 치우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어렸을 때 신문 배달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진짜 많이 해봐서 그때 기억의 도움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알바로 떡볶이 장사를 했고, 1년 정도 송파역 근처 지하상가에서 액세사리 장사를 벌여봤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해보고 싶어서 그랬다. 신문배달은 중학교 때 했는데, 엄마가 너무 걱정해서 오래 못하고 딱 한 달하고 관뒀다.
10. 한 달도 대단하다. 어릴 적부터 꿈이 배우라서 알바를 하게 된 건가?
소유진: 어릴 때 꿈이 배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도 연극영화과이긴 했지만 내가 TV에 나오는 배우가 될 거라고는…. 그냥 뉴스를 틀면 학생들이 공부를 하느라 다 앉아있지 않나. 내가 좀 특별한 걸 좋아했나 보다. 1년 후의 내 모습이 그 모습이 아니길 바랐다. 예고에 갔는데 마임하고, 탈 춤추는데 학교가 너무 재미있는 거다. 연기자가 될 줄은 몰랐고, 연극 공부가 재미있어서 꿈이 연극영화과 교수나 이론 선생님이었다. 수능 봐서 연극학과를 가게 됐다.
10. 그런데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됐나.
소유진: 예고는 재미있었지만, 대학은 현실이었다. 친구들이 TV 출연하고 오디션 보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나같이 생긴 애가 어떻게 연기자를?’ 했는데 내가 코드를 잘 탔던 것 같다. ‘엽기 코드’ 말이다. 2000년대 초반 시기를 잘 타서 안 예쁜 사람이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떴지 않나 싶다. 사람들이 내가 가수활동을 했다고 했는데 딱 한곡이었다. 데뷔하고 나서 이듬해 ‘맛있는 청혼’으로 얻은 반짝 인기에 힘 입어서 한 거였다. 하하하.
10. 연기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계속 연기를 하게 된 이유는?
소유진: TV 연기자 말고 내 전공인 연극은 계속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TV에 나오니 유명해지더라. 유명해지면 연극에 사람들이 더 많이 보러오지 않을까 했는데 주어진 걸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래서 고민도, 두려움도 많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치유기’를 하면서 두려움이 줄었다. ‘내가 뭐라고 연기를?’이라는 생각에서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고, 그래서 더 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연기는 정말 끝이 없다.
10. 데뷔 20년 차인데 연기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게 최근작인 ‘치유기’였던 건가?
소유진: 그렇다. 확신을 준 건 ‘치유기’다. 신인 때는 멋모르고 연기를 시작하지만, 사람은 변신을 꿈꾸지 않나. 그 과도기가 힘들다. ‘난 발랄한 거 많이 했으니까 이제 여성스러운 게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시기에는 역할이 안 들어온다. ‘내 욕심일까?’라고 생각만하다가 시간이 흘러가면 힘들어진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니 더 고민이 됐고.
10. ‘아이가 다섯’으로 출산 후 복귀를 했다.
소유진: 첫째를 낳고 산후 우울증이 많이 왔다. ‘복귀는 하고 싶은데 이제 애 엄마 역할만 들어오면 어떡하지?’ ‘계속 연기 못하면 어떡하지?’ 두려웠다. 연기자로서 내 위치가 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내게 뭘 원하는지도 고민이 됐다. 사람들은 남편이 나이가 많아서 내가 아이를 빨리 낳는 거 아니냐고, 또 집에서 쉬려고 결혼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는 전혀 아니었다. 차라리 둘째를 빨리 낳아서 애 엄마가 된 걸 인정하고, 엄마 역할이 오면 제대로 하자 싶었다. 그렇게 ‘아이가 다섯’에 출연했고, 내가 아이를 낳고도 연기할 수 있단 걸 알게 됐다. ‘치유기’는 죽을 때까지 더 배우고 연기해야한다는 확신을 줬고.
10. 남편인 백종원 대표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방송 선배로서 남편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소유진: 내가 점수를 매긴다고? 음, 85점. 출연자로서 나는 부분에 집중하는데, 사업하는 사람이니까 늘 전체를 보고 기획을 하더라. 그런 모습이 멋지다.
10. 모니터링을 하면서 지적한 적은 있나?
소유진: 있다. “~했거든”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나. “‘~했거든…요!’ 라고 말하라고!”라고 한다. 하하하. 방송에서 반말하면 안 된다고!
10. 스타일링도 해준다고 들었다. 힘들진 않나?
소유진: 내가 바쁠 때는 스타일리스트 고용하라고도 했다. 그런데 계절별로 옷을 챙기고 사다 보면 자연스럽게 방송을 모니터링 해주게 되고…힘들지만 또 그게 사는 거고,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이 아닐까 했다. 마찬가지로 오빠도 내가 일할 때 밥을 계속 해줬으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런데 사람이 뭔가를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고 계속 고마워해야 한다. 또 상대가 지쳐가는 모습을 보면 빨리 정신 차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또 시킬 수 있으니까. 하하하.
10.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자리에 가든 남편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게 불편한 적은 없나.
소유진: 그런 건 생각 안 한지 오래됐다. 나한테 안 물어볼 정도로 내게 나만의 무언가가 있었다면 물론 안 물어봤겠을 거다. 그런데 그런 거라도 물어볼 게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기도 하고. 20년을 방송 생활을 하니까, 예전에는 질문지에서 ‘이건 대답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궁금한 걸 물어보지 말라고 하는 것도 별로더라. ‘지금 너한테는 이게 궁금해’라는 거니까 ‘궁금하면 답해드리지’라고 생각한다.
10. 연기가 아니라 예능을 다작하게 된 건 처음인 것 같다. 예능으로 영역을 넓히게 된 이유는?
소유진: 연예 생활이란 게 내가 진로를 정한 대로 가는 게 아니더라. 누가 나를 불러줘야 하는데 불러줬다. 개인적으로 ‘치유기’의 치우에게 고맙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치유를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연구하게 됐다. ‘나는 뭐지, 애 엄마인가, 남편의 아내인가, 며느리인가. 내 이름은 소유진인데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데 드라마 끝나고 ‘소유진’을 찾아주니 기회인 것 같았다. 예능에서 내게 원하는 기획들은 사실 다 비슷하다. ‘다둥이 엄마’ ‘워킹맘’. 다 비슷한 걸 안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난 지금 엄마로 돌아온 사람인데 나를 써줬네’ 하는 기분이다. 드라마 속의 내 역할과 (예능에서의 모습이) 달라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내 얘기를 하고 싶고,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결과가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마음이다.
10. ‘치유기’를 통해 죽을 때까지 연기하겠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했다. 배우로서는 어떤 역할이 하고 싶나.
소유진: 사극을 해보고 싶다. 멜로에는 큰 욕심이 없다. 이번에 연정훈 오빠한테 많이 배우긴 했다. 내가 눈을 못 마주치니까 ‘내 눈 봐’라고 말해줬다. 하하하. 코미디도 하고 싶다. 웃기는 게 울리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지 않나. 이전에 김병욱 PD의 시트콤에 나왔는데 일찍 끝나게 돼서 많이 아쉬웠다. 요즘에는 시트콤이 없는데, 여자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코미디를 해보면 어떨까.
10. 그림 그리기, 향초 만들기 등 생활인으로서 취미도 많다. 특히 인스타그램에 ‘so library‘라는 해시태그로 꾸준히 책 후기가 올라온다.
소유진: 내가 모 도서판매 사이트의 VIP 회원이다.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한다. 자기 전에 신간, 베스트 이런 걸 다 훑어보는 게 일상이다. 이 수많은 책이 있는데 내가 안 찾아본다는 게 좀 재미 없다고 생각해서. 좋은 책이 있으면 선물하고 그런다. 책에 대한 평이 올라오면 그것도 또 읽어줘야 할 것만 같고… 하하하. 낮 시간에 한 번 펼쳐보고, 밤에 아이들이 잠들면 본다. 그때는 그야말로 나를 위한 시간이다.
10. 어떤 책을 읽나?
소유진: 많다. 얼마 전에는 1990년생에 대한 책을 읽었다. ‘내 사랑 치유기’의 공동감독님이 1989년생이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1990년대생이었다. 이제 감독님들도 나보다 더 어리다. 내가 아저씨랑 살고 있지 않나. 이 촬영 현장의 아티스트들과 어울리려면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다. 적어도 꼰대는 되지 않고 시대와 발맞춰 가고 싶다.
10. 2001년 ‘맛있는 청혼’으로 신세대의 얼굴로 각인되며 스타덤에 올랐다. 30대 후반 배우로서 20대 때와 달라진 게 있나?
소유진: 음… 눈빛. 눈빛이 달라졌다. 그때의 나는 초롱초롱하고 ‘나 이것도 할 줄 알아’라며 에너지를 발산하려고 했을 거다. 지금은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빛을 받아서 표현해야 하는 위치다. 둘 중 뭐가 더 좋고 나쁜 걸 떠나 그때는 그때의 예쁨이 있고 지금은 지금대로 여유롭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이니까. 더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10. 배우, 예능인, 생활인 등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인간 소유진으로서 꿈이 있다면 뭘까.
소유진: 내가 보기에 내가 올바른 거. 단단한 나무가 되고 싶다. 그래야 가지가 뻗쳐 나가니까. 나를 잘 만들어 나가야 좋은 가지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요즘은 ‘매일 매일 하다 보면 더 나은 내일이 있겠지’ 한다. 엄마도 처음이고 아내도 처음이고, 이렇게 예능에 출연하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찾는 것도 처음이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뭘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살다 보니 ‘워킹맘’ ‘다둥이 맘’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 된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이제 아이 엄마 역할 밖에 안 주면 어떡하지?” 첫 아이를 낳을 당시 배우 소유진을 두렵게 한 고민이었다. 그런 그의 출산 후 복귀작인 KBS2 ‘아이가 다섯’(2016)은 시청률 20%를 넘기며 흥행했다. 최근 출연한 MBC ‘내 사랑 치유기’(이하 ‘치유기’) 는 시청률을 떠나 소유진에게 또 다른 의미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줬다. 극 중 친정과 시댁 사이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임치우(소유진)를 연기하면서 그 자신 또한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로서의 자신과 인간 ‘소유진’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10. ‘치유기’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
드라마를 마친 소유진은 tvN ‘쇼! 오디오 자키’, 채널A ‘아빠본색’, SBS ‘가로채널’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2000년 데뷔해 이듬해 ‘맛있는 청혼’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그에게 ‘제2의 전성기’일 법하다. 하지만 데뷔 20년차인 소유진은 침착했다. 여러 예능에서 자신을 찾아주는 이유가 “워킹맘, 다둥이 엄마라는 사실을 잘 봐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편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향한 질문에도 의연하게 대답했다. 두려움을 이기고 스스로를 확장해가고 있는 배우 소유진을 만났다.
소유진: 드라마 끝나자마자 엄마 모드로 들어갔다. 정말 ‘끝나자마자’다. 숨이 긴 장편 드라마여서 끝날 즈음 남편(백종원)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것 같더라. ‘남편이 지금까지 엄청 잘 챙겨줬는데, 이러다 너무 지쳐서 나중에 내가 또 드라마를 할 때 안 도와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드라마 현장의 팀워크가 진짜 좋아서 ‘끝나면 회식하자, 여행가자’ 이런 얘기가 많았는데 끝나자마자 다시 엄마로 복귀했다.
10. 드라마 끝나고 예능 출연이 이어지던데, 쉬고 싶지 않았나.
소유진: 이번 드라마는 힘든 것조차 감사했다. ‘이렇게 힘든 날이 또 올까?’ 할 정도로 정신력과 체력을 썼지만 현장이 좋아 ‘또 힘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 사는 일이니 촬영 현장에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게 없었다. 집에서 출발해 치우로 변신하는 과정이 좋았다. 집에서는 나도 애 엄마고, 연정훈 오빠도 애 아빠다. 현장에서는 약속이라도 하듯이 묵은 때를 털고 밝게 일하면서 ‘힐링의 공간’을 만들었다.
10. 스트레스 하나 없었다고 하기에는 극 중 임치우가 겪는 삶은 스트레스가 많았다. 각종 알바에 남편 윤종훈의 만행이 화제를 모았다.
소유진: 치우의 삶이 힘들긴 했다. 그런데 극 초반 캐릭터를 잡아갈 때는 언제나 힘들다. 그걸 잡아가는 게 연기자의 숙제다. 치우가 하는 굴삭기 부터 연습을 가서 몇 번이나 해봤다. 치우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어렸을 때 신문 배달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진짜 많이 해봐서 그때 기억의 도움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알바로 떡볶이 장사를 했고, 1년 정도 송파역 근처 지하상가에서 액세사리 장사를 벌여봤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해보고 싶어서 그랬다. 신문배달은 중학교 때 했는데, 엄마가 너무 걱정해서 오래 못하고 딱 한 달하고 관뒀다.
10. 한 달도 대단하다. 어릴 적부터 꿈이 배우라서 알바를 하게 된 건가?
소유진: 어릴 때 꿈이 배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도 연극영화과이긴 했지만 내가 TV에 나오는 배우가 될 거라고는…. 그냥 뉴스를 틀면 학생들이 공부를 하느라 다 앉아있지 않나. 내가 좀 특별한 걸 좋아했나 보다. 1년 후의 내 모습이 그 모습이 아니길 바랐다. 예고에 갔는데 마임하고, 탈 춤추는데 학교가 너무 재미있는 거다. 연기자가 될 줄은 몰랐고, 연극 공부가 재미있어서 꿈이 연극영화과 교수나 이론 선생님이었다. 수능 봐서 연극학과를 가게 됐다.
10. 그런데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됐나.
소유진: 예고는 재미있었지만, 대학은 현실이었다. 친구들이 TV 출연하고 오디션 보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나같이 생긴 애가 어떻게 연기자를?’ 했는데 내가 코드를 잘 탔던 것 같다. ‘엽기 코드’ 말이다. 2000년대 초반 시기를 잘 타서 안 예쁜 사람이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떴지 않나 싶다. 사람들이 내가 가수활동을 했다고 했는데 딱 한곡이었다. 데뷔하고 나서 이듬해 ‘맛있는 청혼’으로 얻은 반짝 인기에 힘 입어서 한 거였다. 하하하.
소유진: TV 연기자 말고 내 전공인 연극은 계속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TV에 나오니 유명해지더라. 유명해지면 연극에 사람들이 더 많이 보러오지 않을까 했는데 주어진 걸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래서 고민도, 두려움도 많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치유기’를 하면서 두려움이 줄었다. ‘내가 뭐라고 연기를?’이라는 생각에서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고, 그래서 더 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연기는 정말 끝이 없다.
10. 데뷔 20년 차인데 연기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게 최근작인 ‘치유기’였던 건가?
소유진: 그렇다. 확신을 준 건 ‘치유기’다. 신인 때는 멋모르고 연기를 시작하지만, 사람은 변신을 꿈꾸지 않나. 그 과도기가 힘들다. ‘난 발랄한 거 많이 했으니까 이제 여성스러운 게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시기에는 역할이 안 들어온다. ‘내 욕심일까?’라고 생각만하다가 시간이 흘러가면 힘들어진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니 더 고민이 됐고.
10. ‘아이가 다섯’으로 출산 후 복귀를 했다.
소유진: 첫째를 낳고 산후 우울증이 많이 왔다. ‘복귀는 하고 싶은데 이제 애 엄마 역할만 들어오면 어떡하지?’ ‘계속 연기 못하면 어떡하지?’ 두려웠다. 연기자로서 내 위치가 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내게 뭘 원하는지도 고민이 됐다. 사람들은 남편이 나이가 많아서 내가 아이를 빨리 낳는 거 아니냐고, 또 집에서 쉬려고 결혼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는 전혀 아니었다. 차라리 둘째를 빨리 낳아서 애 엄마가 된 걸 인정하고, 엄마 역할이 오면 제대로 하자 싶었다. 그렇게 ‘아이가 다섯’에 출연했고, 내가 아이를 낳고도 연기할 수 있단 걸 알게 됐다. ‘치유기’는 죽을 때까지 더 배우고 연기해야한다는 확신을 줬고.
소유진: 내가 점수를 매긴다고? 음, 85점. 출연자로서 나는 부분에 집중하는데, 사업하는 사람이니까 늘 전체를 보고 기획을 하더라. 그런 모습이 멋지다.
10. 모니터링을 하면서 지적한 적은 있나?
소유진: 있다. “~했거든”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나. “‘~했거든…요!’ 라고 말하라고!”라고 한다. 하하하. 방송에서 반말하면 안 된다고!
10. 스타일링도 해준다고 들었다. 힘들진 않나?
소유진: 내가 바쁠 때는 스타일리스트 고용하라고도 했다. 그런데 계절별로 옷을 챙기고 사다 보면 자연스럽게 방송을 모니터링 해주게 되고…힘들지만 또 그게 사는 거고,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이 아닐까 했다. 마찬가지로 오빠도 내가 일할 때 밥을 계속 해줬으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런데 사람이 뭔가를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고 계속 고마워해야 한다. 또 상대가 지쳐가는 모습을 보면 빨리 정신 차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또 시킬 수 있으니까. 하하하.
10.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자리에 가든 남편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게 불편한 적은 없나.
소유진: 그런 건 생각 안 한지 오래됐다. 나한테 안 물어볼 정도로 내게 나만의 무언가가 있었다면 물론 안 물어봤겠을 거다. 그런데 그런 거라도 물어볼 게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기도 하고. 20년을 방송 생활을 하니까, 예전에는 질문지에서 ‘이건 대답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궁금한 걸 물어보지 말라고 하는 것도 별로더라. ‘지금 너한테는 이게 궁금해’라는 거니까 ‘궁금하면 답해드리지’라고 생각한다.
10. 연기가 아니라 예능을 다작하게 된 건 처음인 것 같다. 예능으로 영역을 넓히게 된 이유는?
소유진: 연예 생활이란 게 내가 진로를 정한 대로 가는 게 아니더라. 누가 나를 불러줘야 하는데 불러줬다. 개인적으로 ‘치유기’의 치우에게 고맙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치유를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연구하게 됐다. ‘나는 뭐지, 애 엄마인가, 남편의 아내인가, 며느리인가. 내 이름은 소유진인데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데 드라마 끝나고 ‘소유진’을 찾아주니 기회인 것 같았다. 예능에서 내게 원하는 기획들은 사실 다 비슷하다. ‘다둥이 엄마’ ‘워킹맘’. 다 비슷한 걸 안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난 지금 엄마로 돌아온 사람인데 나를 써줬네’ 하는 기분이다. 드라마 속의 내 역할과 (예능에서의 모습이) 달라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내 얘기를 하고 싶고,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결과가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마음이다.
소유진: 사극을 해보고 싶다. 멜로에는 큰 욕심이 없다. 이번에 연정훈 오빠한테 많이 배우긴 했다. 내가 눈을 못 마주치니까 ‘내 눈 봐’라고 말해줬다. 하하하. 코미디도 하고 싶다. 웃기는 게 울리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지 않나. 이전에 김병욱 PD의 시트콤에 나왔는데 일찍 끝나게 돼서 많이 아쉬웠다. 요즘에는 시트콤이 없는데, 여자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코미디를 해보면 어떨까.
10. 그림 그리기, 향초 만들기 등 생활인으로서 취미도 많다. 특히 인스타그램에 ‘so library‘라는 해시태그로 꾸준히 책 후기가 올라온다.
소유진: 내가 모 도서판매 사이트의 VIP 회원이다.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한다. 자기 전에 신간, 베스트 이런 걸 다 훑어보는 게 일상이다. 이 수많은 책이 있는데 내가 안 찾아본다는 게 좀 재미 없다고 생각해서. 좋은 책이 있으면 선물하고 그런다. 책에 대한 평이 올라오면 그것도 또 읽어줘야 할 것만 같고… 하하하. 낮 시간에 한 번 펼쳐보고, 밤에 아이들이 잠들면 본다. 그때는 그야말로 나를 위한 시간이다.
10. 어떤 책을 읽나?
소유진: 많다. 얼마 전에는 1990년생에 대한 책을 읽었다. ‘내 사랑 치유기’의 공동감독님이 1989년생이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1990년대생이었다. 이제 감독님들도 나보다 더 어리다. 내가 아저씨랑 살고 있지 않나. 이 촬영 현장의 아티스트들과 어울리려면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다. 적어도 꼰대는 되지 않고 시대와 발맞춰 가고 싶다.
10. 2001년 ‘맛있는 청혼’으로 신세대의 얼굴로 각인되며 스타덤에 올랐다. 30대 후반 배우로서 20대 때와 달라진 게 있나?
소유진: 음… 눈빛. 눈빛이 달라졌다. 그때의 나는 초롱초롱하고 ‘나 이것도 할 줄 알아’라며 에너지를 발산하려고 했을 거다. 지금은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빛을 받아서 표현해야 하는 위치다. 둘 중 뭐가 더 좋고 나쁜 걸 떠나 그때는 그때의 예쁨이 있고 지금은 지금대로 여유롭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이니까. 더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10. 배우, 예능인, 생활인 등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인간 소유진으로서 꿈이 있다면 뭘까.
소유진: 내가 보기에 내가 올바른 거. 단단한 나무가 되고 싶다. 그래야 가지가 뻗쳐 나가니까. 나를 잘 만들어 나가야 좋은 가지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요즘은 ‘매일 매일 하다 보면 더 나은 내일이 있겠지’ 한다. 엄마도 처음이고 아내도 처음이고, 이렇게 예능에 출연하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찾는 것도 처음이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뭘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살다 보니 ‘워킹맘’ ‘다둥이 맘’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 된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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