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이야기란 늘 솔깃하다. 이야기 속 누군가 때문이다. 허구의 세상보다 더 자극적인 뉴스들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구태여 책을 펼치고, 극장 객석에 앉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의 심장을 한껏 달구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그 누군가를 그려내는 이들이다. 배우가 의식적인 욕망부터 무의식적인 욕망까지 이해하는 순간, 누군가에 해당하는 캐릭터의 뜨거운 숨이 훅 터져 나온다.
18세기 초 영국. 절대 권력을 지닌 여왕 앤(올리비아 콜먼)의 곁에는 귀족 사라(레이첼 바이스)가 있다. 정신적으로는 17명의 아이를 잃은 슬픔과 육체적으로는 지긋한 통풍에 시달리는 앤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사라에게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앤은 선물로 궁전까지 바칠 만큼 사라를 끔찍이도 아낀다. 국정을 돌보는, 실질적인 여왕 노릇을 하는 사라에게 몰락한 귀족인 친척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일자리를 구한다며 찾아온다. 궁정의 하녀로 일하게 된 애비게일은 여왕 앤에게 어필하려 용쓰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 야심가인 토리당의 수장 할리(니콜라스 홀트)는 여왕의 총애를 받는 애비게일에게 접근한다.
지난 21일 개봉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첫 시대극이다.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로 매양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던 그는 18세기 초 영국의 실제 역사를 차용하여 자신의 색채가 물씬 묻어나는 작품으로 마감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캐릭터의 대사에 신선함과 불손함, 코믹함을 넣어서 현대적인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사실 그의 전작들도 마찬가지지만, 배우들에게는 빚어내는 맛이 나는 캐릭터였을 듯싶다. 제75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여우주연상 수상, 잠시 후 있을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이 기대되는 참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두루 빼어난 작품이다.
‘벨벳 골드마인’ ‘캐롤’의 샌디 파웰은 이번에도 최고의 의상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주인공인 세 여인 뿐 아니라 남성들의 의상까지. 사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남자들은 주변인으로 기능한다. 그들은 커다란 가발과 허옇게 분칠한 얼굴로 오리 경주와 과일 던지기에 탐닉한다. 극 중에서 남자는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토리당의 수장 할리 역의 니콜라스 홀트가 단연 으뜸이다.
‘1장 흙에서 악취나 나네요 – 2장 헷갈려서 사고 칠까 봐 걱정이야 – 3장 옷이 멋지네요 – 4장 큰 문젠 아니에요 – 5장 잠들어서 여기 빠지면 어쩌지 – 6장 곪으면 큰일나요 – 7장 그건 놔둬. 이쁘네 – 8장 칼로 당신의 눈을 찌르는 꿈을 꿨어’의 소제목이 딸린 구성을 취한다.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절대 권력을 지닌 앤 여왕의 총애, 즉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사라와 애비게일은 서로를 견제하고 암투를 벌인다. 블랙코미디의 틀에서 세 인물은 에두르지 않고 노골적으로, 서슴없이, 팽팽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몰락한 귀족으로 일그러진 과거를 가진 애비게일은 신분 회복을 노린다. 그녀의 곁에는 악취를 풍기는 진창으로 미는 사내들이나 독한 양잿물에 손을 담그게 하는 하녀처럼 비호의적인 존재가 득실거렸기에 더더욱. 일그러진 영혼을 가진 그녀는 여왕이 듣고 싶은 감언을 속살대며 권력에 가까워진다.
권력의 실세인 사라는 남성 정치가들과 말로 겨루어도 지지 않을 만큼 능란하다.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지만 직언을 한다. 여왕의 화장이 오소리 같다고, 예민하다고, 애 같이 굴지 좀 말라고, 자신은 음식이 아니니 그만 집착하라고, 심지어 여왕에게 쓰는 편지에도 칼로 당신의 눈을 찌르는 꿈을 꿨다고 쓸 만큼 대담하기까지 하다. 허나 여왕이 괴물이 물어뜯는 것 같은 통풍으로 힘들어하거나 등을 돌리려고 하면, 사라는 함께 했던 시절을 환기해서 고통의 혹은 감정의 무게를 덜어낸다.
히스테릭한 여왕 앤은 아가들로 지칭하는 17마리 토끼와 함께 지낸다. 몇몇은 유산되고, 몇몇은 사산되고, 나머지는 잠깐 살다 간 17명의 자식들을 대신하는 존재들이다. 앤은 아이가 죽을 때마다 자신의 일부가 사라진 상실감에 허덕거렸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보다 주로 잠옷 차림으로 지내고, 꾸역꾸역 단것을 먹고 게우기를 반복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기절로 해결한다. 툭하면 울먹거리는 앤은 사라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사라 바라기’다. 그랬던 앤이 애비게일을 이용해 사라의 질투심을 부추기다가 그 끝에 왕관의 무게를 떠올린다. 여왕은 나야. 그리고 내 나라야.
엠마 스톤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에 톡톡 튀는 경쾌함이 더해진, 속물이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애비게일의 얼굴로 오롯이 등장한다. 레이첼 바이스는 권력의 중심에서, 여왕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는 사라의 몸부림을 뼛속까지 귀족답게 우아하게 담아낸다. 특히 올리비아 콜먼은 휠체어가 아니라 유모차로 비칠 정도로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여왕 앤의 변덕스러운 감정을 예민하게 그려낸다. 몸도 마음도 무너진 앤을 그리는 올리비아 콜먼의 모습에서 캐릭터를 그리는 배우의 더하기와 빼기, 즉 감정의 단내와 쓴내가 짙게 피어난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캐릭터를 그리는 배우의 붓놀림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18세기 초 영국. 절대 권력을 지닌 여왕 앤(올리비아 콜먼)의 곁에는 귀족 사라(레이첼 바이스)가 있다. 정신적으로는 17명의 아이를 잃은 슬픔과 육체적으로는 지긋한 통풍에 시달리는 앤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사라에게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앤은 선물로 궁전까지 바칠 만큼 사라를 끔찍이도 아낀다. 국정을 돌보는, 실질적인 여왕 노릇을 하는 사라에게 몰락한 귀족인 친척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일자리를 구한다며 찾아온다. 궁정의 하녀로 일하게 된 애비게일은 여왕 앤에게 어필하려 용쓰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 야심가인 토리당의 수장 할리(니콜라스 홀트)는 여왕의 총애를 받는 애비게일에게 접근한다.
지난 21일 개봉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첫 시대극이다.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로 매양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던 그는 18세기 초 영국의 실제 역사를 차용하여 자신의 색채가 물씬 묻어나는 작품으로 마감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캐릭터의 대사에 신선함과 불손함, 코믹함을 넣어서 현대적인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사실 그의 전작들도 마찬가지지만, 배우들에게는 빚어내는 맛이 나는 캐릭터였을 듯싶다. 제75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여우주연상 수상, 잠시 후 있을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이 기대되는 참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두루 빼어난 작품이다.
‘벨벳 골드마인’ ‘캐롤’의 샌디 파웰은 이번에도 최고의 의상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주인공인 세 여인 뿐 아니라 남성들의 의상까지. 사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남자들은 주변인으로 기능한다. 그들은 커다란 가발과 허옇게 분칠한 얼굴로 오리 경주와 과일 던지기에 탐닉한다. 극 중에서 남자는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토리당의 수장 할리 역의 니콜라스 홀트가 단연 으뜸이다.
‘1장 흙에서 악취나 나네요 – 2장 헷갈려서 사고 칠까 봐 걱정이야 – 3장 옷이 멋지네요 – 4장 큰 문젠 아니에요 – 5장 잠들어서 여기 빠지면 어쩌지 – 6장 곪으면 큰일나요 – 7장 그건 놔둬. 이쁘네 – 8장 칼로 당신의 눈을 찌르는 꿈을 꿨어’의 소제목이 딸린 구성을 취한다.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절대 권력을 지닌 앤 여왕의 총애, 즉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사라와 애비게일은 서로를 견제하고 암투를 벌인다. 블랙코미디의 틀에서 세 인물은 에두르지 않고 노골적으로, 서슴없이, 팽팽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몰락한 귀족으로 일그러진 과거를 가진 애비게일은 신분 회복을 노린다. 그녀의 곁에는 악취를 풍기는 진창으로 미는 사내들이나 독한 양잿물에 손을 담그게 하는 하녀처럼 비호의적인 존재가 득실거렸기에 더더욱. 일그러진 영혼을 가진 그녀는 여왕이 듣고 싶은 감언을 속살대며 권력에 가까워진다.
권력의 실세인 사라는 남성 정치가들과 말로 겨루어도 지지 않을 만큼 능란하다.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지만 직언을 한다. 여왕의 화장이 오소리 같다고, 예민하다고, 애 같이 굴지 좀 말라고, 자신은 음식이 아니니 그만 집착하라고, 심지어 여왕에게 쓰는 편지에도 칼로 당신의 눈을 찌르는 꿈을 꿨다고 쓸 만큼 대담하기까지 하다. 허나 여왕이 괴물이 물어뜯는 것 같은 통풍으로 힘들어하거나 등을 돌리려고 하면, 사라는 함께 했던 시절을 환기해서 고통의 혹은 감정의 무게를 덜어낸다.
히스테릭한 여왕 앤은 아가들로 지칭하는 17마리 토끼와 함께 지낸다. 몇몇은 유산되고, 몇몇은 사산되고, 나머지는 잠깐 살다 간 17명의 자식들을 대신하는 존재들이다. 앤은 아이가 죽을 때마다 자신의 일부가 사라진 상실감에 허덕거렸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보다 주로 잠옷 차림으로 지내고, 꾸역꾸역 단것을 먹고 게우기를 반복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기절로 해결한다. 툭하면 울먹거리는 앤은 사라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사라 바라기’다. 그랬던 앤이 애비게일을 이용해 사라의 질투심을 부추기다가 그 끝에 왕관의 무게를 떠올린다. 여왕은 나야. 그리고 내 나라야.
엠마 스톤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에 톡톡 튀는 경쾌함이 더해진, 속물이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애비게일의 얼굴로 오롯이 등장한다. 레이첼 바이스는 권력의 중심에서, 여왕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는 사라의 몸부림을 뼛속까지 귀족답게 우아하게 담아낸다. 특히 올리비아 콜먼은 휠체어가 아니라 유모차로 비칠 정도로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여왕 앤의 변덕스러운 감정을 예민하게 그려낸다. 몸도 마음도 무너진 앤을 그리는 올리비아 콜먼의 모습에서 캐릭터를 그리는 배우의 더하기와 빼기, 즉 감정의 단내와 쓴내가 짙게 피어난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캐릭터를 그리는 배우의 붓놀림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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