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뺑반’에서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순경이 된 서민재 역을 연기한 배우 류준열.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뺑반’에서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순경이 된 서민재 역을 연기한 배우 류준열. /사진제공=쇼박스
맹한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천재다. 어수룩한 것 같은데 들여다 볼수록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다. 영화 ‘뺑반’에서 차에 대한 천부적 감각으로 뺑소니범을 잡아내는 서민재와 그를 연기한 류준열은 이렇게 맞닿아 있다. 민재가 집요하게 사건을 쫓듯 류준열은 치열하게 작품을 탐구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끌어내 ‘진짜’를 담아내고 싶은 류준열이 노력하는 방식이다.

10. ‘뺑반’을 선택한 이유는?
류준열: 출연 확정 전에 감독님과 미팅에서 대화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의구심이나 걱정거리들을 풀어나갔다. 대화가 통하는 감독님이라 즐겁게 촬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스스로에게 ‘진짜냐 가짜냐’ 질문을 많이 한다. 내가 즐겁게 임할 수 있느냐, 보여주기 위해 연기하느냐를 자문했을 때, 내가 재밌어야 감독님, 배우들과의 호흡도 스크린에 더 잘 묻어나는 것 같다고 자답했다.

10. 민재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류준열: 민재는 드라이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원래는 지금보다 더 우울하고 다운된 인물이었다. 나는 여기에 감정을 가늠하기 어려운 느낌이 가미됐으면 했다. 사람이 살면서 표현하는 감정의 진폭은 실제로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 나만 해도 슬픔에 오열했거나 기쁨에 날뛰었던, 격정적으로 감정을 표현한 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속을 쉽게 알 수 없는 듯, 적당히 가면을 쓴 듯 하게 민재를 연기했다. 초반에 쓰고 나오는 안경은 가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를 1부와 2부로 나눈다면 2부에는 안경을 벗고 감정을 더 드러냈다.

10. 아버지의 죽음은 ‘가면’이 벗겨지는 계기가 된다. 1부와 2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을 것 같은데.
류준열: 변화의 진폭이 작위적으로 느껴져서는 안 됐다. 만약 1부 민재가 너무나 밝고 사랑스럽게 그려졌다면 2부에서 민재가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인물임이 드러날 때 작위적일 것 같았다. 앞부분 캐릭터를 드라이하게 구축해 놓으면 2부에는 좀 더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았다. 2부의 민재를 연기할 때는 아버지 역인 (이)성민 선배의 영향이 컸다. 극 중 회상 장면을 촬영할 때 “아들, 갚으면서 살자”라는 대사를 하며 웃으시는데 큰 울림이 있었다.

영화 ‘뺑반’의 한 장면. /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뺑반’의 한 장면. / 사진제공=쇼박스
10. 차량 추격도 대부분 직접 소화했는데, 어렵지 않았나?
류준열: (영화에 나오는 차로) 도로주행도 하고, 스케줄이 없을 때도 그 차를 몰고 다니면서 익숙해지려고 했다. 영암의 서킷에서도 연습했다.

10. 스크린에서 연기뿐만 아니라 연기에 임하는 태도나 생각도 비약적 성장이 느껴진다. 스스로도 자신의 성장을 느끼나?
류준열: 다른 사람과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는 점이 성장이라면 성장이겠다. 상대의 예민함과 섬세함은 더 나은 나를 이끌어 내준다. 나도 상대로 하여금 더 좋은 에너지를 끌어내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서로 배려하는 환경에서 모두가 행복한 작품을 만들 때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

10.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와 비교해볼 때 서민재는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류준열: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그동안 괜히 눈치 보느라 배우로서 하지 못했던 것들, 속으로 삼켰던 것들을 이번에는 많이 꺼냈다. 감독님과의 많은 대화가 캐릭터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10. 캐릭터와 작품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심도 있게 탐구하는 것 같다. 연출에 대한 생각은 없나?
류준열: 분명한 건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는 거다. 그게 연출이든 제작이든 기획이든 각본이든…영화를 만드는 일에 연기가 아니더라도 참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류준열은 “연기할 때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지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쇼박스
류준열은 “연기할 때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지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쇼박스
10. 공효진, 조정석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류준열: 둘은 너무 다르면서도 너무 같다. 효진 선배는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에너지를 주변에 보여주는데, 아우라가 있다. ‘좋으면 좋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직설적인 성격도 잘 맞다. 일할 때 나는 그게 편하다. 효진 선배는 완급조절을 잘 하는 배우다. 조정석 선배는 천생배우다. 드라마를 끝내자마자 영화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짧은 사이 뮤지컬 하나를 했다. 선배의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연기를 정말 하고 싶어서 계속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캐릭터에 스며드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캐릭터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나?
류준열: 완벽하게 그 인물이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저마다 방식이 다르겠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지점에서부터 캐릭터를 구축해나간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어떠하다고 특정하기 어렵다. 작품마다 그때그때 달라지기 때문이다. ‘뺑반’의 서민재를 연기하면서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걸 끌어냈겠지’ 싶었다. 연기할 때는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지양하려고 한다. 어렵거나 잘 쓰지 않는 말이 있을 때는 다른 식으로 바꿔보려고도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은 ‘진짜’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10. 류준열의 새로운 발견들이 담긴 캐릭터를 모아놓고 보면 스스로도 신기할 것 같다.
류준열: 주변 사람들도 어색해 할 때가 있다. 특히 목소리 톤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친구는 내게 목소리 톤이 높다고 하고, 또 다른 친구는 낮다고 한다. 각기 다른 캐릭터가 내게 남아있어서 그 친구들이 기억하는 나도 각자 다른 것 같다. 이렇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나도 만나게 된다.

류준열에게 연기는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쇼박스
류준열에게 연기는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쇼박스
10. 배우로서 지양하는 바와 지향하는 바를 빨리 찾은 것 같다. 삶에서 지양하는 바와 지향하는 바는?
류준열: 옳은 것을 향해서 가는 게 중요하다. 어렵지만 그것이 오히려 목표로 가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른 길인 것 같다. ‘옳다’라고 하는 것에는 진심이 들어가 있냐 아니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10. 그린피스 활동에도 적극적이던데, 그 활동도 그러한 신념의 연장선인가?
류준열: 단지 작은 목소리, 작은 행동일 뿐이다. 내가 먼저 행동하면 우리 가족들, 나의 팬들도 조금씩 실천하게 되지 않을까. 진심이 담겨야 스크린에서도, 다른 활동에서도 스스로 떳떳하다.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을 예로 들자면, 운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 플라스틱을 많이 쓴다. 하지만 ‘플라스틱 빨대만은 쓰지 말자’는 식으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보는 거다.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는 것으로 목표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10.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건가?
류준열: 그건 너무 거창하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떳떳한 수준에 도달하자는 것이다. 내가 외출하려고 하면 아버지가 “준열”하고 나지막이 부르실 때가 있다. 다소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보면 아버지는 “정직하게”라고 딱 말씀하신다. 얼마나 정직하냐가 그 사람의 수준을 만드는 것 같다. 수준이라는 게 절대적인 높고 낮음이 아니라 내가 기준으로 하는 목표치를 말한다.

10. ‘뺑반’에 이어 ‘돈’ ‘전투’도 개봉할 예정이다. 성장해온 만큼 흥행에 대한 책임감과 기대감도 클 것 같다.
류준열: 책임감도 느끼지만,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연기에 매진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뭔가를 해서 흥행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데, 이미 배우로서 내가 해야 할 몫은 마무리가 된 상황인 거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여러 작품 개봉을 앞둔 지금, 기분이 좋다. 작품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고 다짐도 하게 된다. 좋은 얘기, 나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영화가 앞으로 2개 더 남았으니,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자리가 두 번이나 더 남았다. 설렌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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