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는 자매에게 닥친 부조리한 사건을 다룬다. 베스와 베라는 이모의 저택에 머물던 중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 사건은 베스와 베라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기억된다. 자매에게 닥친 불행은 고전 호러 영화 ‘텍사스 전기톱 학살’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로도 보인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이 물리적인 폭력의 한 극단을 보여줬다면 ‘베스와 베라’는 좀 더 심리적인 공포를 겨냥한다. 수년 후 베라는 사건에 대한 체험을 소설로 출판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반면 베스는 그날의 기억에 사로잡힌 채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베스는 베라의 간절한 바람으로 참상을 겪었던 저택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저택의 풍경은 마치 그날에 멈춘 것처럼 보인다. 베스는 사건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베라와 마주할 때마다 기묘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현실과 환상의 교묘한 중첩은 ‘베스와 베라’의 핵심적인 스토리텔링 전략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엉킨 서사 무대에서 괴한들과 베스 가족의 대립 구도는 의미심장하다. 괴한들에게 새겨진 뚜렷한 혐오의 표지는 그들의 결핍을 가늠하게 한다. 거한은 유아적인 행동을 반복하며, 여장남자는 거한의 어머니처럼 행세한다. 이들의 폭력성은 ‘텍사스 전기톱 학살’에서 등장한 엽기적인 가족 공동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혐오의 표지를 거두고 봤을 때 베스와 어머니, 거한과 여장남자의 유대관계가 미묘한 유사점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 역설적인 구조는 영화에서 표현되는 현실과 환상의 교착점을 암시한다. 으스스한 저택을 비집는 이들의 꼬리잡기는 영화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응축하고 있는 것이다.
파스칼 로지에의 전작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에서 보여준 무시무시한 공포 체험을 기대했던 팬이라면 ‘베스와 베라’의 스토리텔링이 획기적이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호러 영화의 관습에 해박한 관객에게는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형화된 패턴의 호러 영화에 질린 관객에게는 충분한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한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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