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폴리스 게임’ 포스터/사진제공=영화사 빅
영화 ‘폴리스 게임’ 포스터/사진제공=영화사 빅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이런 못된 버릇을 꼭 끊고야 말 겁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카드를 돌리겠습니다.’ 도박 중독에 빠지면 그 사람뿐 아니라 그의 가족이나 집안까지 망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도박영화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순진한 사람을 끌어들여 돈을 훑어내는 사기도박단,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계도박대회에 출전해 한 밑천 챙기는 사람들……. 더욱 재미있는 점은 그렇게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영화에서 넘쳐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도박을 즐기면서 떼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한 때 세간에 유행어였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도 문득 머리에 떠오르고 말이다.

영화 ‘몰리스 게임’(Molly’s Game)에서 몰리 블룸(제시카 차스테인)은 대단한 경영 수완을 가진 여인으로 나온다. 특히 우연히 접하게 된 도박꾼들을 관찰하면서 도박 세계의 생리를 깨달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데, 탁월한 감각은 물론 우수한 두뇌까지 한몫 단단히 한다. 도박 세계를 꿰뚫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점점 판이 커지면서 그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터지자 FBI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고 큰 액수를 지불하면서 유능한 변호사 찰리(이드리스 엘바)를 고용한다. 과연 찰리가 곤경에 빠진 몰리를 구해낼 수 있을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승승장구하다가 나락에 떨어지는 몰리의 인생을 좇아간다. 사실 이런 유의 범죄물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도박판에서 술시중이나 하던 몰리가 어떻게 큰 도박장까지 운영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펼쳐내는 것이다. 게다가 도박판의 생리를 상세하게 묘사할 때는 이제껏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몰리가 눈을 뜬 계기는 ‘선수 X’(마이클 세라)를 만나면서였지만 결국 그를 훨씬 뛰어넘고 만다.

영화 ‘폴리스 게임’ 스틸/사진제공=영화사 빅
영화 ‘폴리스 게임’ 스틸/사진제공=영화사 빅
‘몰리스 게임’에서 펼쳐지는 도박의 세계는 화려하기 짝이 없다.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 돈이 넘쳐나는 부자들이 등장하면서 돈과 사람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삐뚤어진 인간들이 도박판에 득실대는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이 역시 도박 세계를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대목이다. 세상에는 그처럼 막돼먹은 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구성했고 인물들을 그려낸 까닭에 ‘몰리스 게임’은 아카데미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 영화제 등에서 각본상 후보에 올랐으며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무튼 이 영화가 관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

몰리를 통해서 감독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궁금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여러 정황들이 개입되는데, 이를테면 몰리가 한 때 활강 스키선수로 전도유망했고, 찰리의 딸과 몰리의 의미심장한 만남이 있으며, 마피아와 엮이면서 흠씬 두들겨 맞고, 몰리의 아버지 레리(케빈 코스트너)가 느닷없이 찾아와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더니, 마침내 살기 위해서 직업상 비밀을 털어놓아야 하는 위기에까지 몰린다. 이런 정황들을 통해 몰리가 과연 어떤 여성인지 드러난다.

영화 ‘폴리스 게임’ 스틸/사진제공=영화사 빅
영화 ‘폴리스 게임’ 스틸/사진제공=영화사 빅
몰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여장부다. 요즘에는 이런 어휘가 여성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으나, 그래도 달리 선택할 말이 없다. 사실 ‘여걸(女傑)’이라는 용어도 있기는 있지만 이는 영웅호걸(英雄豪傑) 중에 최하위 급을 일컫는 말이라 그 자체로 여성비하적인 색채가 짙다. 여성은 아무리 잘나도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뜻이어서 그렇다. 아무튼 몰리는 비록 도박 세계에 뛰어들었지만 그 누구도 못해내는 큰 규모로 사업을 성장시켰고, 그녀가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인 여성들을 인간적으로 돌보았다. 마피아의 부당한 개입과 폭력에 용감하게 맞섰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의리를 지켰다! 감독은 실제 미국 도박계의 큰 손인 몰리 블룸을 영화로 끌어 들여 그녀에게 확실한 위치를 마련해 주었다. 몰리는 바로 이 시대, 미국 사회에 여성파워를 불어넣기에 적절한 인물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듯이 몰리는 도박이나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성적으로 여성을 상품화시키는 풍조와 거리가 멀다. 실제로 몰리는 어느 인터뷰에서 “게임에서 내 역할은 아주 어렵습니다. 나는 은행가이자 판에 초대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짜는 조정자 역할을 했어요. (중략) 이 과정에서 나 자신의 경력을 쌓아 가는 데 있어, 여성이 당하게 되는 성적인 괴롭힘이나 수치심과 거리를 두려 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대범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입지를 설정한 것이다. 몰리 블룸이 아무리 도박이라는 어두운 세계에 손을 댄 전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유지한 삶의 방식인 것이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겠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나요(Gute Mаdchen kommen in den Himmel, aber bоse Mаdchen kommen uberallhin).” 최근에 본 독일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블룸을 착한 사람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나쁜 사람 범주에 넣기도 어렵다. 아마 그 중간쯤 있지 않을까?

우선은 재미 그리고 여성의 발견, 이 두 측면에서 영화를 감상하시기 바란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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