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 사진제공=예스컴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 사진제공=예스컴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내 인생의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그런 / 네가 정말 진짜로 원하던 / 내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그런 /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록밴드 크래쉬의 보컬 안흥찬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부르자 관객들은 열광했다. 기타는 날카롭게 울어댔고 드럼은 둥둥 가슴을 울렸다. 안흥찬의 노래는 흡사 으르렁거리듯 포효했다. 전 세계 음악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는 헤비메탈의 마지막 성지,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서다.

2018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이 지난 10일부터 사흘 동안 인천 송도국제도시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은 예년보다 특별했다. 펜타포트와 함께 국내 록페스티벌의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던 지산 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이하 밸리록)이 올해 열리지 않아서다. 그러니까 록 애호가들에게 올해 펜타포트는 유일한 낙원이자 오랜 친구였다. 관객들 중 ‘의리’로 공연장을 찾은 인원이 열에 아홉은 될 게다.

한물 간 밴드? 펜타포트에선 뜨거웠다

지난 11일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열창하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 / 사진제공=예스컴
지난 11일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열창하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 / 사진제공=예스컴
록 음악이 변두리로 내몰리면서 록페스티벌 관람객 수도 지난 수 년 간 꾸준히 감소해왔다. ‘쇼미더머니’ 열풍을 타고 힙합이 유행할 땐 인기 래퍼들을, 최근 1~2년간 EDM이 득세하자 유명 DJ들을 페스티벌에 초청했지만 뾰족한 수가 되진 못했다. 펜타포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헤드라이너로 2인조 일렉트로닉 그룹 저스티스를 세웠지만 관객 수를 늘리진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밴드 자우림, 나인 인치 네일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등 록 애호가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팀들이 헤드라이너로 캐스팅됐다. 묵직한 연주를 들려주는 후바스탱크나 록발라드로 마음을 간질인 스타세일러, 린킨파크에서 랩을 하던 마이크 시노다도 펜타포트를 찾았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인기를 얻은 팀들이 많아 일각에선 ‘10년 전 라인업을 보는 것 같다’는 성토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현장은 뜨거웠다. 출연 밴드들과 접점이 적었을 20대 관객들도 신이 나서 공연을 즐겼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는 뒷머리가 휑한 아저씨가 됐지만 에너지는 젊었다. ‘피기(Piggy)’를 부를 땐 과감히 무대 아래로 내려와 펜스에 매달려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마지막 날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케빈 쉴즈는 공연을 마친 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같은 팀의 드러머 콜름 오시오소익은 자신의 드럼 스틱을 던져 관객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 체스터 베닝턴 추모한 마이크 시노다

마이크 시노다는 자신의 솔로곡과 린킨파크의 음악을 골고루 들려줬다. / 사진제공=예스컴
마이크 시노다는 자신의 솔로곡과 린킨파크의 음악을 골고루 들려줬다. / 사진제공=예스컴
린킨파크의 멤버 마이크 시노다는 둘째 날 무대에 올랐다. 시노다에게 한국은 낯설지 않다. 팀 동료인 조 한이 한국계 미국인인 까닭이다. 린킨파크로 활동하면서도 세 차례나 한국에서 공연을 열었다. 시노다는 무대 한편에 태극기를 건 채 공연을 시작했다. 관객들도 열렬한 환호로 그를 맞았다.

셋리스트는 시노다가 지난 6월 발매한 솔로 음반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린킨파크의 보컬인 체스터 베닝턴이 지난해 7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뒤 겪은 방황과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은 음반이다. 시노다는 ‘크로싱 어 라인(Crossing a Line)’ ‘오버 어게인(Over Again)’ ‘메이크 잇 업 애즈 아이 고(Make It Up As I Go)’ ‘러닝 프롬 마이 셰도우(Running From My Shadow)’ 등을 선곡했다.

린킨파크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시노다는 “긴장을 풀어도 될까. 우리의 친구 체스터를 위해서”라고 말문을 열더니 “나는 사람들이 내 공연에서 슬퍼하길 바라지 않는다. 즐겁고 의미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고인과의 추억담을 털어놓은 그는 이내 “이 노래를 최대한 큰 소리로 불러 달라”며 ‘인 디 엔드(In The End)’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노래 속 ‘모든 걸 잃었어’라는 고인의 절규는 팬들의 ‘떼창’과 시노다의 피아노 연주 덕분에 아름다운 발라드로 다시 태어났다.

펜타포트의 진짜 주인공, 관객

슬램을 즐기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관객들. / 사진제공=예스컴
슬램을 즐기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관객들. / 사진제공=예스컴
거침없는 록의 성질은 관객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록페스티벌이 그렇지만 펜타포트의 관객들은 특히 더 과격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한낮에도 공연장 곳곳에선 슬램(관객들이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공연을 즐기는 것)이 벌어졌다. 칵스, 라이프 앤 타임, 나인 인치 네일스 등 응원하는 밴드의 이름을 적은 깃발은 물론 ‘록페가 장난이야? 놀러왔어?’ ‘기이이잇발’ 등 재치 있는 문구가 적힌 깃발들이 하늘에 나부꼈다.

펜타포트를 주관하는 예스컴은 살수차를 동원해 공연 중간 중간 객석에 물줄기를 뿌렸다. 관객들의 탈수 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물을 맞은 관객들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둘째 날 밴드 칵스의 공연에선 물줄기가 무지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장관이었다.

올해 처음 펜타포트에 출연했다는 밴드 혁오는 자신들의 공연에서 슬램이 시작되자 신기해했다. 보컬 오혁은 “우리 공연에서 슬램을 보는 건 처음이다. 내 생일이 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관객들은 오혁의 농담에 한 술 더 떠 생일 축하 노래를 합창하기도 했다. 지난해 발표돼 큰 인기를 얻은 ‘톰보이(Tomboy)’가 연주될 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대폰 불빛을 켜 공연장을 밝게 빛냈다.

주관사에 따르면 올해 펜타포트에는 3일 동안 8만 5000여 명의 관객들이 다녀갔다. 지난해보다 5000여 명 늘었다. 여기에 구급차 2대와 의료진 4명, 소방대원 20명, 응급구조사 2명, 경찰 2개 중대(200명), 안전인력 420명이 투입돼 각종 사고에 대비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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