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진기주의 이력은 화려하다. 대기업 사원, 방송기자, 모델···. 그를 소개할 때 따라오는 수식어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타이틀일 수도 있겠지만, 2014년 모델로 데뷔한 뒤 수많은 오디션을 거쳐 작은 역할부터 경력을 다진 ‘배우’ 진기주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진기주는 지난 2월 JTBC ‘미스티’에서 욕망에 솔직한 아나운서 한지원 캐릭터를 연기하며 잠깐 연기력 논란을 겪었다. ‘미스티’ 종영 후에는 얼마 안 있어 MBC ‘이리와 안아줘’로 투톱 주연에 도전했다. 연쇄 살인범에 의한 피해 생존자라는 어려운 역할이었다. 게다가 ‘이리와 안아줘’는 주연 배우 2명을 모두 신인으로 캐스팅해 방송 전부터 지상파 3사 중 ‘최약체’라는 오명도 얻었었다. 하지만 진기주의 ‘이리와 안아줘’는 마지막 회 시청률이 두 배로 뛰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제는 누가 봐도 당당한 배우인 진기주는 ‘촬영 끝나고 좀 쉬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쉬었습니다. 3일. 바로 내일부터 촬영해도 괜찮습니다.”
10. ‘이리와 안아줘’가 해피엔딩으로 종영했다. 기분이 어떤가?
드라마가 처음 시작할 때는 부담도 걱정도 많았다. 초반부터 나무(장기용, 극 중 다른 이름 채도진)와 낙원(진기주, 극 중 다른 이름 한재이)이가 행복해지기를 많은 분들이 원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모든 캐릭터들이 잘 마무리돼서 정말 만족하고 있다. 바랐던 엔딩이었다.
10. 첫 지상파 주연이라서 더 부담이 컸을 것 같다. 방송을 하면서 점점 나아졌나?
사실 방송 시작 전 촬영 때는 스스로 ‘부담감을 많이 떨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방 직전 촬영을 마치고서, 하던 대로 서정연 선배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고 하니까 딱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걱정 안 해. 너, 잘하니까 나는 걱정 안 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아직도 부담을 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첫 방송 날에는 믿기지도 않았고 손에 땀을 흠뻑 쥔 채로 본방을 봤다. 그래도 일단 방송이 시작되고 나니까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청률 같은 것도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현장에 가면 다 알려주니까(웃음). ‘아, 그랬어요?’ 하고 ‘나는 촬영이나 열심히 해야지’ 했다.
10. 극 중 한재이는 연쇄살인범에 의한 피해생존자였다. 단단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배우 입장로선 힘들었을 것 같다. 소리치는 장면도 원망하는 장면도 없었고, 경찰 역의 장기용에 비해 몸으로 해소되는 부분도 없었다.
10회때 부터였나. 놀이공원에 갔는데도 즐겁지가 않더라. 머리띠를 쓰고 다트게임을 해야 하는데 흥이 오르지 않았다. 감독님이 ‘지금 즐겁게 데이트 해야 해’라고 해도 “네, 알아요”라고 답하고 계속 가라앉았다. 그 상태로 한 10일을 보냈다. 그러다가 극 중 피해 유가족 중 한명인 지수의 대사를 보고 깨닫게 된 게 있었다. 지수가 “언니는 진짜 괜찮아요? 부모님 생각은 안 나요?”라고 하는 대사였다. 혼자 차 안에서 이 대본을 읽다가 울컥하고 낙원이가 ‘괜찮냐’는 질문을 진짜 받고 싶어했다는 걸 알게 됐다. 11, 12회 내내 나무한테 “나 진짜 괜찮아, 나무야. 나 어디 안다쳐”라고 했는데 그 말을 역으로 낙원이도 듣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마음을 알고나니까 다 괜찮았다. 작가님과 대화도 했고, 이후에는 조금씩 해소되는 극의 장치들이 있었다. 옥희 여사(서정연)와 오빠 무원(윤종훈)에게 위로도 받았고. 나무도 낙원에게 “네가 말 안 해주면 내가 네 옆에 있을 이유가 없어”라고 하는 대사에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10. 그러다 마지막 엔딩에서 연쇄살인범 윤희재(허준호)를 만났겠다.
진짜 분노해야 할 대상, 사과 받아야 할 대상을 만난 거다. 지금까지는 나무, 무원 등 낙원이가 보호해야 할 대상만 만났다면 말이다. 그때 많은 게 해소된 것 같다.
10. 이제 낙원이를 보내줘야 하는데 어떤 심정인가?
한창 힘들었을 때는 “아, 나도 이제 밝은 거 하고 싶다. 끝나고는 뭐 해야 하나, 놀러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15, 16회를 지나고 윤희재를 만나서 복수를 하고, 그 다음에는 극 중 나무와 낙원에게 평범함이 허락되니까 자연스럽게 정리했고, 힐링도 됐다. 마음이 가벼웠고 웃으면서 마무리 했다. 지금은 오히려 맘 편하게 훌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10. 장기용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았다. 서로 많이 의지했나? 키스신은 어땠나?
둘 다 신인이라서 ‘네가 느끼는 어려움이 내가 느끼는 어려움이다’ 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서로 표정만 보고 있어도 의지됐다. 내가 좀 힘들어하고 있으면 꾹 한 번 눌러서 힘을 주고 가고, 나도 마찬가지로 그가 힘들어 보이면 툭툭 어깨를 치고 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게 힘이 됐다. 키스신은 후반부로 갈수록 많아졌다. ‘아, 얘네 하루에 한 번씩 하려나?’ 하더라. 첫 키스신을 할 때는 어두운 분위기라서 키스신을 신경쓸 겨를이 없어 감정에만 신경을 썼다. 그렇게 어영부영 첫 키스신을 떼고 후반부에 몰아서 이어지니까 따로 준비할 거 없이 자연스러웠다. 시청자들도 원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10. 전작인 JTBC ’미스티’ 초반에는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뒤로 갈수록 해소됐지만,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이번 작품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리와 안아줘’ 회식 자리에서 허준호 선배님이 그러셨다. “우리는 어쨌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고, 판단은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는 감독님이 한다. 그리고 최종 판단은 시청자들이 하는 거다.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는 현장에서는 알 수 없다. 보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라고. 그 말이 묘하게 와 닿았다. ‘미스티’ 이전부터 나는 ‘진심으로 연기를 하면 무조건 통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허준호 선배의 말을 듣고 ‘아, 이제는 진심이 안 통할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이제 진심만으로 달려들 게 아니라 좀 더 노련하게, 속된 말로는 영악하고 영리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기술적인 거나 노련한 거 쓰지 않고 ‘진심으로 부딪쳐 보자’라는 마음이 더 크다. 좀 더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10. 학창시절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정답이 딱 떨어지는 과목이었다는 점에서 연기와는 많이 다른데.
그렇찮아도 올해 초에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하나 샀다. 화학1이었다. ‘아, 재미있겠다. 원소주기율표 봐야지’하고 펼쳐 들었는데 너무 어려웠다. (웃음). 요즘 학생들은 정말 어렵게 공부하는구나 싶었다. 가끔 명쾌하고 답이 나오는 것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연기가 제일 재미있다. 끝이 없고 답이 없어서 더 매력있고, 정말 좋다. 완전.
10. 대기업 사원, 방송기자, 모델 등 연기자 이전에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연기에 도움이 되나?
‘미스티’ 때는 아나운서 역할이라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 취업 과정에서 겪은 슬럼프 아닌 슬럼프도 연기에 도움이 됐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캐릭터에 공감하고 분석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런데 ‘이리와 안아줘’ 감독님이 한 번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진기주를 캐스팅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누가 “진기주 걔는 실패를 모르는 사람 아니냐. 걔가 무슨 힘든 감정을 알겠어”라고 했다고. 그때 감독님이 “아니지. 여태까지 계속 실패를 하다가 드디어 이룬 거지”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연기하려고 그 실패를 겪었던 거니까. 그 과정을 다 겪으면서 자괴감과 좌절감이 얼마나 다양하겠느냐. 나는 그래서 이 친구가 잘 할 것 같다”라고 딱 말해줬다고 하는데 너무 감동이었다. 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고민이 정말 많았고, 불합격도 많았고,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해야 할까의 연속이었다. 그 포인트를 감독님이 알아주니까 감사했던 거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다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감독님이 내 마음을 알아줘서 코 끝이 찡했다.
10. 그렇게 해서 이룬 꿈은 어떤가?
좋다. 너무 좋다. 물론 단점을 찾으면 참 많긴 하다. 당장 내일 뭐 할지 불안한 거?(웃음).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어느덧 3년 차가 되니까 마음의 상처는 덜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못미더워하는 시선들이 훨씬 많았다. 이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수긍하게 됐다. ‘맞아. 어떻게 믿겠어’라고. 연기는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받아야 하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10. ‘미스티’에 이어 ‘이리와 안아줘’까지 열일 행보다. 좀 쉬고 싶지는 않나?
쉬었다. 많이. 3일. 토, 일, 월. 이렇게 쉬었다. 나는 잠만 자면 된다. 지금도 바로 내일부터 촬영해도 괜찮다. 3일 내내 뒹굴거리며 잠 푹 자고 일어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휴식이 된다.
10. ‘이리와 안아줘’에서 한재이가 차기작에서 맡은 역할은 경찰이었다. 진기주의 차기작은?
귀신 나오는 것 빼고는 모든 장르를 하고 싶다. ‘이리와 안아줘’처럼 스릴러는 상관이 없는데 귀신은 너무 무섭다. 로코도 하고 싶다. 현장에서 16부 내내 웃다가 끝날 수 있는 드라마. 역할은 의사나 판사나 전문직, 아니면 아주 특이한 직업도 해보고 싶다. 안 해본 게 훨씬 많으니까 다 해보고 싶다. 참, 재이가 입었던 경찰복은 한 번 입었는데 너무 좋더라. 그런 옷을 입는 역할도 해보면 좋겠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진기주는 지난 2월 JTBC ‘미스티’에서 욕망에 솔직한 아나운서 한지원 캐릭터를 연기하며 잠깐 연기력 논란을 겪었다. ‘미스티’ 종영 후에는 얼마 안 있어 MBC ‘이리와 안아줘’로 투톱 주연에 도전했다. 연쇄 살인범에 의한 피해 생존자라는 어려운 역할이었다. 게다가 ‘이리와 안아줘’는 주연 배우 2명을 모두 신인으로 캐스팅해 방송 전부터 지상파 3사 중 ‘최약체’라는 오명도 얻었었다. 하지만 진기주의 ‘이리와 안아줘’는 마지막 회 시청률이 두 배로 뛰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제는 누가 봐도 당당한 배우인 진기주는 ‘촬영 끝나고 좀 쉬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쉬었습니다. 3일. 바로 내일부터 촬영해도 괜찮습니다.”
10. ‘이리와 안아줘’가 해피엔딩으로 종영했다. 기분이 어떤가?
드라마가 처음 시작할 때는 부담도 걱정도 많았다. 초반부터 나무(장기용, 극 중 다른 이름 채도진)와 낙원(진기주, 극 중 다른 이름 한재이)이가 행복해지기를 많은 분들이 원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모든 캐릭터들이 잘 마무리돼서 정말 만족하고 있다. 바랐던 엔딩이었다.
10. 첫 지상파 주연이라서 더 부담이 컸을 것 같다. 방송을 하면서 점점 나아졌나?
사실 방송 시작 전 촬영 때는 스스로 ‘부담감을 많이 떨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방 직전 촬영을 마치고서, 하던 대로 서정연 선배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고 하니까 딱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걱정 안 해. 너, 잘하니까 나는 걱정 안 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아직도 부담을 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첫 방송 날에는 믿기지도 않았고 손에 땀을 흠뻑 쥔 채로 본방을 봤다. 그래도 일단 방송이 시작되고 나니까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청률 같은 것도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현장에 가면 다 알려주니까(웃음). ‘아, 그랬어요?’ 하고 ‘나는 촬영이나 열심히 해야지’ 했다.
10. 극 중 한재이는 연쇄살인범에 의한 피해생존자였다. 단단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배우 입장로선 힘들었을 것 같다. 소리치는 장면도 원망하는 장면도 없었고, 경찰 역의 장기용에 비해 몸으로 해소되는 부분도 없었다.
10회때 부터였나. 놀이공원에 갔는데도 즐겁지가 않더라. 머리띠를 쓰고 다트게임을 해야 하는데 흥이 오르지 않았다. 감독님이 ‘지금 즐겁게 데이트 해야 해’라고 해도 “네, 알아요”라고 답하고 계속 가라앉았다. 그 상태로 한 10일을 보냈다. 그러다가 극 중 피해 유가족 중 한명인 지수의 대사를 보고 깨닫게 된 게 있었다. 지수가 “언니는 진짜 괜찮아요? 부모님 생각은 안 나요?”라고 하는 대사였다. 혼자 차 안에서 이 대본을 읽다가 울컥하고 낙원이가 ‘괜찮냐’는 질문을 진짜 받고 싶어했다는 걸 알게 됐다. 11, 12회 내내 나무한테 “나 진짜 괜찮아, 나무야. 나 어디 안다쳐”라고 했는데 그 말을 역으로 낙원이도 듣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마음을 알고나니까 다 괜찮았다. 작가님과 대화도 했고, 이후에는 조금씩 해소되는 극의 장치들이 있었다. 옥희 여사(서정연)와 오빠 무원(윤종훈)에게 위로도 받았고. 나무도 낙원에게 “네가 말 안 해주면 내가 네 옆에 있을 이유가 없어”라고 하는 대사에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10. 그러다 마지막 엔딩에서 연쇄살인범 윤희재(허준호)를 만났겠다.
진짜 분노해야 할 대상, 사과 받아야 할 대상을 만난 거다. 지금까지는 나무, 무원 등 낙원이가 보호해야 할 대상만 만났다면 말이다. 그때 많은 게 해소된 것 같다.
10. 이제 낙원이를 보내줘야 하는데 어떤 심정인가?
한창 힘들었을 때는 “아, 나도 이제 밝은 거 하고 싶다. 끝나고는 뭐 해야 하나, 놀러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15, 16회를 지나고 윤희재를 만나서 복수를 하고, 그 다음에는 극 중 나무와 낙원에게 평범함이 허락되니까 자연스럽게 정리했고, 힐링도 됐다. 마음이 가벼웠고 웃으면서 마무리 했다. 지금은 오히려 맘 편하게 훌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둘 다 신인이라서 ‘네가 느끼는 어려움이 내가 느끼는 어려움이다’ 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서로 표정만 보고 있어도 의지됐다. 내가 좀 힘들어하고 있으면 꾹 한 번 눌러서 힘을 주고 가고, 나도 마찬가지로 그가 힘들어 보이면 툭툭 어깨를 치고 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게 힘이 됐다. 키스신은 후반부로 갈수록 많아졌다. ‘아, 얘네 하루에 한 번씩 하려나?’ 하더라. 첫 키스신을 할 때는 어두운 분위기라서 키스신을 신경쓸 겨를이 없어 감정에만 신경을 썼다. 그렇게 어영부영 첫 키스신을 떼고 후반부에 몰아서 이어지니까 따로 준비할 거 없이 자연스러웠다. 시청자들도 원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10. 전작인 JTBC ’미스티’ 초반에는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뒤로 갈수록 해소됐지만,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이번 작품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리와 안아줘’ 회식 자리에서 허준호 선배님이 그러셨다. “우리는 어쨌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고, 판단은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는 감독님이 한다. 그리고 최종 판단은 시청자들이 하는 거다.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는 현장에서는 알 수 없다. 보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라고. 그 말이 묘하게 와 닿았다. ‘미스티’ 이전부터 나는 ‘진심으로 연기를 하면 무조건 통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허준호 선배의 말을 듣고 ‘아, 이제는 진심이 안 통할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이제 진심만으로 달려들 게 아니라 좀 더 노련하게, 속된 말로는 영악하고 영리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기술적인 거나 노련한 거 쓰지 않고 ‘진심으로 부딪쳐 보자’라는 마음이 더 크다. 좀 더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10. 학창시절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정답이 딱 떨어지는 과목이었다는 점에서 연기와는 많이 다른데.
그렇찮아도 올해 초에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하나 샀다. 화학1이었다. ‘아, 재미있겠다. 원소주기율표 봐야지’하고 펼쳐 들었는데 너무 어려웠다. (웃음). 요즘 학생들은 정말 어렵게 공부하는구나 싶었다. 가끔 명쾌하고 답이 나오는 것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연기가 제일 재미있다. 끝이 없고 답이 없어서 더 매력있고, 정말 좋다. 완전.
‘미스티’ 때는 아나운서 역할이라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 취업 과정에서 겪은 슬럼프 아닌 슬럼프도 연기에 도움이 됐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캐릭터에 공감하고 분석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런데 ‘이리와 안아줘’ 감독님이 한 번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진기주를 캐스팅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누가 “진기주 걔는 실패를 모르는 사람 아니냐. 걔가 무슨 힘든 감정을 알겠어”라고 했다고. 그때 감독님이 “아니지. 여태까지 계속 실패를 하다가 드디어 이룬 거지”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연기하려고 그 실패를 겪었던 거니까. 그 과정을 다 겪으면서 자괴감과 좌절감이 얼마나 다양하겠느냐. 나는 그래서 이 친구가 잘 할 것 같다”라고 딱 말해줬다고 하는데 너무 감동이었다. 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고민이 정말 많았고, 불합격도 많았고,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해야 할까의 연속이었다. 그 포인트를 감독님이 알아주니까 감사했던 거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다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감독님이 내 마음을 알아줘서 코 끝이 찡했다.
10. 그렇게 해서 이룬 꿈은 어떤가?
좋다. 너무 좋다. 물론 단점을 찾으면 참 많긴 하다. 당장 내일 뭐 할지 불안한 거?(웃음).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어느덧 3년 차가 되니까 마음의 상처는 덜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못미더워하는 시선들이 훨씬 많았다. 이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수긍하게 됐다. ‘맞아. 어떻게 믿겠어’라고. 연기는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받아야 하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10. ‘미스티’에 이어 ‘이리와 안아줘’까지 열일 행보다. 좀 쉬고 싶지는 않나?
쉬었다. 많이. 3일. 토, 일, 월. 이렇게 쉬었다. 나는 잠만 자면 된다. 지금도 바로 내일부터 촬영해도 괜찮다. 3일 내내 뒹굴거리며 잠 푹 자고 일어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휴식이 된다.
10. ‘이리와 안아줘’에서 한재이가 차기작에서 맡은 역할은 경찰이었다. 진기주의 차기작은?
귀신 나오는 것 빼고는 모든 장르를 하고 싶다. ‘이리와 안아줘’처럼 스릴러는 상관이 없는데 귀신은 너무 무섭다. 로코도 하고 싶다. 현장에서 16부 내내 웃다가 끝날 수 있는 드라마. 역할은 의사나 판사나 전문직, 아니면 아주 특이한 직업도 해보고 싶다. 안 해본 게 훨씬 많으니까 다 해보고 싶다. 참, 재이가 입었던 경찰복은 한 번 입었는데 너무 좋더라. 그런 옷을 입는 역할도 해보면 좋겠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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