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가수 현진영.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가수 현진영.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자신이 발표한 노래로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것만큼 가수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까.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해 28년 째 음악을 하며 살고 있는 가수 현진영이 그렇다. 그는 데뷔 당시에는 생소했던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를 소개하며 주목받았고, 1992년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현진영 고(GO) 진영 고(GO)’라는 노랫말은 유행어처럼 퍼졌다. 2002년 4집 음반 ‘요람’을 내놓으며 음악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가사 중 ‘희망과 악수를 하면 두려울 게 없잖아. 더 이상 내 모습들은 요람 속에 있진 않아’는 마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그는 2006년, 다시 한 번 생소한 장르를 들고 나타났다. ‘재즈 힙합’이라는 장르로 음악 인생 3막을 열었다. 창법을 확 바꾼 ‘소리쳐봐’부터 재즈의 경쾌함과 구슬픔이 잘 녹아든 ‘무념무상'(2016), 흥겨운 분위기의 ‘내맘대로'(2017)까지 자신의 길을 망설이지 않고 즐기는 중이다. ‘내 맘대로 질러보는 거야’라는 가사처럼.

10. 콘서트 준비로 목 관리 등이 힘들진 않습니까?
현진영 : 오는 28일 플랫폼창동61에서 밴드와 협업하는 공연이어서 그들의 연주에 맞춰서 하고 있습니다. 딱히 힘들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호흡·발성 연습은 습관처럼 매일 해요.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자신의 기준점이 생기면 쉽게 목이 쉬거나 갈라지지 않아요. 호흡과 발성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비슷해요. 약을 넣어야 가는 시계처럼, 노래도 호흡과 발성을 매일 쉬지 않고 해야 멈추지 않고 돌아가요. 18살 때부터 하루도 안 쉬고 했어요. 이제는 습관이 된 거죠.

10. 타고난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연습을 하고 있군요.
현진영 : 지금 하는 장르인 재즈 발성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되더군요. 생각해보니까 그동안 매일 연습을 하면서 기초를 다진 것이 반영된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안 할 수가 없는 것이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얼마 후엔 더 잘 표현 되겠지, 안 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일 수도 있고요. 사람들에게 잊히는 시점에는 소리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살을 찌우고 빼고를 반복했죠. 목소리를 바꾼 건 2006년 ‘소리쳐봐’부터였어요.

10. 음색을 바꾸기 위해서 체중을 늘렸습니까?
현진영 : ‘소리쳐봐’를 녹음할 때 아버지에게 들려드렸어요. 아버지는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입니다. 다른 음악은 그렇지 않았는데 ‘소리쳐봐’부터 간섭을 하시는 거예요. 들려드리면 계속 퇴짜를 놨죠. 딱히 뭐가 잘못됐다고 설명도 안 해주시고 그냥 ‘아니다’라고만 하셨죠. 37번 정도 다시 녹음한 것 같아요. 점점 지쳤고, 녹음실 사용료도 어마어마했죠. 보통은 한 곡 녹음할 때 많이 해봐야 세 번인데 말이죠. 스스로 짜증도 났고, 그래서 살을 더 찌웠어요. 재즈 발성은 음색이 두꺼워야 하는데 저는 워낙 미성이니까요. 아버지의 반대가 목소리때문인가, 했죠. 체형이 바뀌면 소리가 변한다는 걸 책에서 보고 무작정 찌웠어요. 실제로 조금씩 소리가 바뀌더라고요. 72kg에서 100kg이 넘어가니까 소리가 두꺼워진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몸통에 살을 찌우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먹으면 바로 누워서 자고, 그걸 계속 반복했어요. 137kg까지 찌웠죠. 소리가 두꺼워졌고, ‘소리쳐봐’ 발표했을 때 사람들이 저인줄 몰랐어요.

10. 아버지도 인정을 하셨나요?
현진영 : 살찐 모습을 보시고 “누구야? 씨름 대회 나가냐?”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아버지는 소리 때문에 그러신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많이 아프셨는데 결국 마지막에 녹음된 걸 못 듣고 돌아가셨어요. 처음에는 답도 주시지 않고 거절만 하시나, 원망도 했는데 시간이 흘러 저도 공부를 하고 제자를 기르면서 아버지의 당시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아마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나중에 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추측해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제자들에게 그러고 있더라고요. 세상도 좀 둘러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그때 부르라고 말이죠.

10. ‘소리쳐봐’ 때 성대 결절로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현진영 : 심하게 감기를 앓고 일정 때문에 노래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성대결절이 왔어요. 다른 게 아니라 가성을 쓰는 게 힘들었죠. ‘요람’에서 가성으로 불렀던 구절이 올라가지 않더군요. ‘소리쳐봐’ 녹음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어요. 병원에 갔더니 회복을 위해서는 노래를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녹음 중이니까 도리가 없었죠. 원래 가성을 두성을 사용해 불렀다면, 비성을 눌러 광대로 소리가 울리게 하는 발성으로 바꿨어요. 그러니까 모든 게 해결이 됐죠.

10. 체중으로 소리를 바꾸고, 성대결절로 창법까지 바꾸면서 만든 곡이네요.
현진영 : 연습을 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어요. 신은 공평해서 체형을 바꾸니 소리가 변했지만, 살이 빠지니까 다시 조금씩 돌아와요. 무리하게 살을 찌워서 녹음을 감행한 건 음반은 영원히 남기 때문이죠. 그렇게 세 번 정도 찌우면서 녹음을 했는데, 이제는 건강 때문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소리쳐봐’를 힘들게 들을 필요는 없어요.(웃음) 음악은 하는 사람만 힘들고 어려우면 되고, 듣는 이들은 가볍고 편안하게 즐기면 됩니다. 재즈라는 장르가 활성화되지 못한 것도 사람들이 그냥 즐기면 되는데, 어렵게 접근해서 그래요. 음악은 공감하고 느끼고 즐기고, 자신의 일상을 풀어내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현진영 :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더 힘들었어요. 재즈를 못하게 하시려는 것도, 한 곡을 40번 가까이 재녹음을 하면 금전이나 정신적으로 피곤할 수밖에 없거든요. 레코드 회사랑 계약을 했기 때문에 노래는 나와야 하는데, 모든 게 스트레스였죠. 그 즈음 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못하시는 상태였는데, 사실 다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누워만 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편안하게 가세요. 마음에 안 드신 거 제가 완벽하게 할게요. 꼭 재기할게요”라고 인사를 드렸어요. 그러고 몇 시간 후에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죠. 대답은 없으셨지만 뭔가 ‘그래, 열심히 해라. 꼭 약속 지켜라’ 하고 떠나신 것 같았죠. 제 말을 듣고 가신 것처럼 떠났으니까요. 그때 마음을 먹고 정신도 다잡았어요.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녹음하고 믹싱을 마쳤죠. ‘소리쳐봐’를 잘 들어보면 혼자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에요. 저에게도 그랬어요. 한 사람보다 두 사람, 또 그보다 많은 이들이 옆에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10. 부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나겠군요.
현진영 : 떠오르죠. 어디서 노래를 하든 그래요.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올라요. 아버지, 아내가 차례로요. 그 노래를 아무 생각없이 부른 적은 없어요.

10. 긴 공백 후 내놓은 2002년 음반을 순서대로 들어보면, 단 한 곡도 비슷하지 않아요. 쉬면서 음악에 대한 영감이 엄청났겠구나, 싶었습니다.
현진영 :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성향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후회스럽고 반성해야 하는 과거도 있지만, 그게 지금 제 음악에 묻어나요. 감옥에 있을 때 아버지가 면회를 오셔서 “힘들지?”가 아니라 “오늘은 누구를 만났니? 허송세월하지 말고 여러 사람들 인생 기웃거리다 나와”라고 하셨어요.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죠.(웃음) 그 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내가 산 것처럼 스며들어 음악에도 영향을 받아요. 저는 노래를 만들 때 쥐어짜서 하지 않고, 먼저 주제를 정하고 이야기를 완성해요. 그럴 때 경험 위주로 나오죠. 그렇지 않다면, 곡을 만들다가 체험할 수 있는 거면 직접 해봅니다. ‘무념무상’도 그랬고요.

10. ‘무념무상’ 때 노숙자 생활을 했죠?
현진영 : 소외된 계층,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것과는 다른 절벽이었잖아요. 스스로 잘못한 것이니까. 물론 길에서 생활하시는 이들도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우선은 그 형태만이라도 체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달 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을 했죠. 그곳도 위계가 어마어마해요. 다들 자신의 자리가 있고, 침범하면 큰일 나죠. 무료급식소 줄도 한 번 잘 못 섰다가, 어후, 별일이 다 있었어요. 2주 동안 아무도 말을 안 걸어줘서 노숙이 길어진 거예요. 2주 정도 있으니까 어떤 분이 저에게 말을 걸어 줬어요. 저라는 걸 알더라고요.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무념무상’은 그들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예요. 제가 대변하는 역할인 거죠. 그래서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오면, 해볼 수 있다면 해보려고 합니다. 영화도 정말 많이 보는데, 여러 영화의 장면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만들어요.

10. 모든 곡의 멜로디는 직접 만드는데, 가사는 오랫동안 작업 해온 작사가들과 호흡을 맞춰서 그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직접 쓸 수도 있을 텐데요.
현진영 : 큰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구성한 다음 전문 작사가에게 전달하면 정리를 해주고 포장을 해주죠. 저는 그 시간에 편곡이나 다른 부분에 시간을 쏟고 싶어요. 오랫동안 작업해온 이들이기 때문에 서로의 성향을 알아서 순조로워요.

10. 살을 찌우고 노숙 경험을 해보고. 그냥 노래를 부를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들게 합니까?
현진영 : ‘그냥 부르면 되지’라고 하시는 분들은 그냥 듣기만 하는 거예요. 여운이 남고 감정이 동요되고 웃고 감탄할 수 있는 감정은 못 느낄 거란 이야기죠. 경험을 해보는 것도, 경험에서 나오는 음악은 더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에요. 명품 가방에 사람들이 감탄하는 이유는 한 땀 한 땀, 한 사람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에 감탄하고 그 가치를 돈으로 사는 거잖아요. 어느 날 아버지가 “뮤지션이 되려고 발악하지 마라”라고 하셔서 “그럼 뭐가 됩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에게 장사를 해라. 네가 살아온 인생, 하는 음악을 잘 포장해서 세상에 둘도 없는 상품을 만들어”라고요. 가치가 없는 상품은 사람들이 외면해요. 가치 있는 건 오래 간직하고 보관하고 아끼죠. 명품으로 만들어서 돈을 주고 사게 하라는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깊이 새겨야 할 말이죠. 음반도 같은 맥락이에요. 정성껏 만들어야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잖아요.

현진영.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현진영.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지금까지 발표한 음악에 현진영의 인생이 녹아있네요. 지난해 발표한 ‘내 맘대로’는 이전 곡보다 훨씬 경쾌한 분위기입니다.
현진영 : 그동안 강하고 어두운 느낌의 곡들이 많았어요. ‘내맘대로’는 밝죠. 어두운 부분은 경험할 만큼 했고, 이제는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유가 생긴 거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 정서가 음악에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그 즈음에 유기견 구조, 아이티에 봉사도 갔어요. 좋은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힘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어요. 자연스럽게 노래의 이야기가 밝아졌고, 예전의 어둠이 걷히는 느낌입니다. 복잡한 세상, 내 맘대로 살아보자는 거죠.(웃음)

10. 다음에 발표할 곡이 궁금해지네요.
현진영 : 완성된 곡도 있고 스케치 중인 노래도 있습니다. 언제 발표할지는 미정이고요. 이야기를 만들어 작업하는 순간에도 삶과 감정의 변화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어요. 한 번은 슬픈 노래가 아니었는데 당시 제 감정 때문에 슬픈 노래로 바뀐 적도 있어요. 작품자의 감성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편곡이 완성된다고 끝이 아니라, 짧게는 한 달 정도 기간을 두고 계속 살펴요. 수정을 하면서 후반 작업을 길게 하죠.

10. 꾸준히 재즈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콘서트도 재즈 밴드와 협업이고요.
현진영 : ‘소리쳐봐’ 이후 ‘무념무상’을 내기까지 9년이 걸렸어요. 그동안 재즈 합합 장르의 곡이 많이 나왔으면 했는데, 그렇지 않았죠. 솔직히 말해 외롭고 힘들어요. 다만 제가 데뷔하면서 힙합을 한다고 했을 때도 원숭이처럼 보면서 생소하게 생각했지만 이렇게 유행이 됐잖아요. 재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념무상’은 좀 더 재즈의 색이 진하게 묻어나는데, 대놓고 그렇게 작업한 곡이에요. 그래도 한 음원차트 재즈 부문에서는 1위도 했어요. 재즈도 생소한데 재즈 힙합이라는 장르는 더 그렇죠. 재즈와 힙합을 접목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재즈 장르의 카테고리 안에 비트의 이름이 힙합인 거죠. 재즈 힙합은, 재즈의 스윙에서 파생된 힙합이란 비트를 갖고 만든 새로운 음악 장르입니다. 우리보다 음악이 더 다양한 미국, 일본은 재즈 힙합 곡에 가사가 없는 경우도 있어요.(웃음) 비트의 종류인 ‘힙합’이니까 랩이 없어도 되는데, ‘왜 랩이 없냐?’고 묻는 이들도 많아요.

재즈가 대중들에게 먼 장르잖아요. 재즈 뮤지션이 설 무대가 정말 없어요. 물론 재즈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배장은 교수, 이정식 등 유명한 음악인들이 있지만 재능 있는 신인들은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떠올린 게 신인들과 협업 콘서트를 하는 거예요. 이 친구들이 알려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가깝게 느낄 거니까요. 계속 협업 콘서트를 할 계획인데, 그 첫 번째가 일렉트로닉 재즈 펑크 밴드 ‘HG펑크트로닉’입니다. 입장료도 적게 책정한 이유가 한 분이라도 더 와서 들어주고 재르를 알았으면 해서예요.

10. 온라인 방송부터 팟캐스트, TV 음악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활동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현진영을 모르던 어린 친구들에게도 주목받고 있어요.
현진영 : 카카오TV를 하게 된 건 TV에서 ‘무념무상’을 부르지 못해서예요. 신곡이 나왔는데, ‘흐린 기억 속에 그대’와 ‘소리쳐 봐’만 부르라고 해서 울컥했죠. 내가 방송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더라고요. 음악 이야기를 해야 스트레스가 해소되니까요.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과거 팟캐스트 ‘정영진·최욱의 불금쇼’에 나간 인연으로 최근 ‘정영진·최욱의 매불쇼’에 고정 출연을 하게 됐어요. 목요일마다 출연하는데, 앞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올라서 많이들 놀라셨죠.(웃음) 다양한 창구를 통해 새로운 이들에게 음악을 알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무엇보다 포장하지 않고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서 더 즐겁고요.

10. 앞으로의 계획은요?
현진영 : 우선 실력이 좋은 재즈 밴드들과 협업 공연을 계속할 거예요. 배장은 교수와도 새로운 걸 만들어내려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재능 있는 친구들을 찾아내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그들과 협업하면서 일명 ‘현진영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단독 콘서트도 열 것이고, 올해 새 음반도 내려고 합니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