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 역을 맡은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 역을 맡은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종영한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의 안판석 감독은 자동차에서 내려 촬영장으로 걸어오는 배우 손예진을 두고 “마치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 같았다”고 표현했다. 작은 장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허투루 흘려 보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안 감독은 “20년 가까이 연기를 업으로 해온 배우의 품위와 위엄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한 손예진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여전히 사랑받는 배우다. 최근에는 ‘예쁜 누나’로 한층 깊고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으로 인기를 누렸다.

10. 특별한 작품이라던 ‘예쁜 누나’를 마치니 어때요?
손예진 : 극 중 윤진아라는 캐릭터가 딱 제 나이와 같아요. 미혼인 것도 같죠. 진아가 직장 여성이긴 하지만, 모든 걸 떠나서 그 나이에 느끼는 공감대가 있잖아요. 그래서 진아라는 캐릭터가 남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어서 개인적으로도 공감했고요. 인물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어요.

10. 2013년 드라마 ‘상어’ 이후 5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였는데 부담이 좀 됐죠?
손예진 : 걱정이 컸죠. 사실 드라마를 선택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어려운 환경을 감수하면서 드라마를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크거든요. 대본도 미리 받을 수 없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온전한 정신으로 연기하기 힘드니까 선택하기까지 힘들어요. 이번 작품은 안판석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용기를 못 냈을 것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 “잠을 많이 재워주겠다”고 하셨어요.(웃음) 기본적인 건 누릴 수 있는, 인간적인 현장을 만들겠다고요. 감독님에 대한 배우들의 신뢰는 익히 들었기 때문에 믿었고, 두려움이 없었죠.

10. 한 장면을 한 번에 찍는 안판석 감독만의 촬영 스타일은 잘 맞았나요?
손예진 : 감독님을 오래 알았지만 배우로서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한 장면을 한 컷트에 다 찍을 줄은 몰랐어요.(웃음) 처음에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대사를 외우지 말고 카메라 앞 어딘가에 조그맣게 써놓으라고요.(웃음) 대사를 알면 전형적인 연기들이 나오거든요. 감독님은 영화 ‘대부’의 말론 브란도를 예로 들었죠. 그가 카메라가 안 보이는 모든 곳에 대사를 붙여놨다고 말이죠.(웃음) 드라마는 대사 부담이 큰데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놓고 갔는데, 모든 장면을 한 번에 찍으니까 얼마나 놀랐겠어요. 하하. 감독님이 다른 건 다 지켰는데,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지키지 못한 것 같다고 배우들과 이야기했죠.(웃음)

10. 찍을 때 부담도 컸죠?
손예진 :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술 마시는 장면에서 술도 따르고 주고 받고 호흡하는 모든 걸 인정해주시는데, 마치 연극 같았습니다. 실제로 연극을 해보진 않았지만 맛을 봤다고 할까요? 대신 조금만 잘못해도 처음부터 찍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촬영 전날 많이 고민했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편안해졌어요. 리허설도 없이 했거든요. 그래서 애드리브를 할 때는 미리 정해인(서준희 역)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감독님은 즉흥적이고 생생한 것을 추구했고, 덕분에 잘 나온 것 같아요. 처음엔 부담이 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어요.

10. 초반에는 달콤하다가 뒤로 갈수록 매우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요. 연기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손예진 : 온도 차이를 구분 짓고 연기하지는 않았어요. 작품을 시작하기 전 16회 대본을 다 보고 들어갔거든요. 드라마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 언제 시작됐는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는 이야기예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죠. 준희와 진아의 사랑은 아름다운 배경에서 나누는 판타지 같은 모습이 아니었어요. 장소는 아파트 앞, 차 안, 회사 옥상, 매일 가는 레스토랑이었죠. 현실적인 곳이 오히려 더 달콤하게 느껴졌어요. 연기를 할 때 배경에서 오는 감정도 분명 있기 때문에 현실 연애 같았어요.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진아의 감정을 따라갔습니다.

손예진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손예진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10. 진아의 행동이 답답하다는 시청자들의 의견도 있었어요.
손예진 : 자칫 그렇게 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저는 16회 대본을 다 보고 시작했기 때문에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있었어요. 진아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극이 끝난 것 같아요. 진아에게는 늘 안타깝고, 짠한 마음이 있었어요. 저도 소설,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제가 그리는 그림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을 땐 상실감이나 미움도 생기죠. 아마 시청자들도 그런 마음 아닐까요?

10. 직장 생활도 큰 공감을 이끌어냈는데, 연기하면서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손예진 : 직장생활을 해보진 않았지만 저 역시 일을 하면서 보고 듣는 것들이 있죠. 배우 역시 선후배 사이가 확실하니까요. 연기하면서도 와닿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극 중 공 차장이나 남 이사 같은 사람들은 어딘가에 늘 있을 것 같았고, 모든 상황이 리얼하다고 느꼈어요. 배우로 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직장인으로 살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간접경험이지만 직장인들의 애환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10.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한창일 때여서 극 중 ‘성희롱 사건’도 이슈였습니다.
손예진 : 지난해 말에 대본을 받았는데, 그때랑 달라진 게 없어요. 뺀 것도 더한 것도 없죠. 극 중 진아가 홀로 싸우는 모습이 마음 아팠어요.

10.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소지섭, ‘예쁜 누나’에서는 정해인과 연달아 연기 호흡을 맞추면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다른 점은요?
손예진 :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극명하게 다른 것 같아요. 영화, 드라마의 작업 환경부터 그렇고요. 소지섭은 진짜 오빠 같아요. 실제로 17년 전 출연한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오빠 역할이었고요.(웃음)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남편 역인데 든든하고 뒤에서 다 챙겨주는 스타일이에요. 진짜 오빠 같고 듬직하죠. 반면 정해인은 첫 주연을 맡은 후배이고, 뭔가 제가 보호하고 더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래서 다른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소지섭에게 받은 든든함을 정해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항상 촬영장에서 막내였어요. 선배님들과 작품을 많이 해서, 이제서야 ‘선배님들이 이렇게 하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10. 작품을 선택할 때 자신만의 소신이 있습니까?
손예진 : 영화 ‘클래식’과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이 작품을 하고 난 뒤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고 선택한 작품이 아니에요. 당시 받은 몇 개의 시나리오 중 최선을 고른 거예요. 돌아보니 알게 된 거죠. 그 나이에만 보여줄 수 있는 게 있다는걸요. 지금 제가 연기 기술이나 경험이 쌓였다고 해서 그 작품을 찍을 수는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저에게 선물 같은 영화였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 소신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 같고요.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용기를 내요. 뒤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그림보다는 마음에 들면 해요. 그렇게 작품을 해와서 나이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서 살았어요. 틀을 일찍 깬 덕분에 지금 더 편해진 것 같고요.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10. 데뷔 17년, 연기자로서의 고민은 뭔가요?
손예진 :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상황과 사람이 이해돼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라고요. 그러면 연기의 날카로움이 깎이거든요. 데뷔 초반에는 굉장히 괴로워하면서 연기를 했어요. 이제는 여유도 생기고 일희일비하지 않게 됐죠. 사람으로서는 좋은데 연기자로서는 도태되는 게 아닌가, 걱정되는 순간이 있죠.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내 인생도 좀 더 드라마틱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생기고요. 직업과 나를 분리할 수 없는 삶을 사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 고민은 반복될 것 같고, 연기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직은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 ‘예쁜 누나’로 포상휴가를 가죠?
손예진 : 작품 마치고 포상 휴가를 가는 건 처음이에요. 제작진과 많이 친해져서 제주도에서 마지막 촬영을 할 때도 다 같이 엉엉 울었거든요. 모두 작품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했죠. 바로 다른 작품을 시작해서 못 가는 스태프들도 있어서 아쉽긴 한데, 가서 또 울겠죠?(웃음) “진짜 마지막이야”하면서요. 끈끈함이 있어서 헤어짐이 아쉬운 거예요. 이번 작품은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았고, 연기로도 감독님이 한 번에 찍고 오케이를 해서 소비되는 느낌이 없었어요. 늘 행복한 현장이어서 포상 휴가가 더 기대돼요.

10. ‘예쁜 누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손예진 : 여러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2018년 봄을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의 영어 부제가 ‘썸씽 인 더 레인(Something in the Rain)’인데, 비가 장마처럼 내렸어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봄비를 정말 좋아해요. 올해처럼 이렇게 봄비가 많이 오는 건 처음 봤어요. 의미를 부여하자니, 모든 게 의미가 되지만 신기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사람으로서도 배우로서도, 2018년의 비 오는 봄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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