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포스터
/사진=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포스터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티베트 불교의 동자승 파드마 앙뚜와 노승 우르갼 릭젠의 9년 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기존에 환생과 윤회의 신비를 기록하려고 ‘린포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는 있었지만 이 영화의 시선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앙뚜와 우르갼의 관계를 통해서 화두를 던진다.

이 영화는 전생의 사원으로 돌아가 그곳의 영적 지도자가 되려는 어린 린포체 앙뚜와 그를 모시는 늙은 스승 우르갼의 절절한 우정에 대한 영화, 혹은 로드무비다.

영화는 전생을 기억하고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교의 예정된 구도자 파드마 앙뚜의 어린 시절을 엿보게 해준다. ‘린포체’는 티베트 불교에서 고승이자, 살아있는 부처로 인정을 받는 존재로 엄격한 교육을 통해 영적 지도자로 성장해야 한다.

린포체는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는 전생의 사원으로 가야 하지만 라다크에서 티베트로 가는 길은 중국과의 정치적인 문제로 모두 막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다. 그러니 전생의 고승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이고 의미의 영역에만 있다. 일상과 현실의 토대에서 앙뚜와 우르갼은 간혹 무력하다.

하지만 라다크에서 시킴까지 동자승과 노스승의 동행은 살을 에는 현실에 발 딛고 의미의 세계로 나아가는 구도자의 열망 그 자체다. 이 순도 높은 열망이 스크린을 통과해 날아온다.

/사진=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스틸컷
/사진=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스틸컷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극적인 것이 아닌 인간적인 것의 아름다움 때문에 복잡한 감동이 발생한다. 영화는 앙뚜가 태어난 인도의 외딴 마을에서 시작한다. 라다크의 마을, 화면의 느린 움직임 사이로 사각거리는 겨울의 공기가 느껴진다.

앙뚜를 따라다니는 화면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을 비춘다. 정적인 화면 속에서도 요동치는 어린 내면의 갈등이 전해진다. 영화는 앙뚜와 우르갼을 보통 사람으로 인간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여기서 동시적으로 보통 사람인, 관객의 사유세계 속에는 구도의 심상이 만들어진다. 이 어린 수도승의 고민은 진지하다.

“가끔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져.”

앙뚜의 고민과 내면의 갈등은 전혀 환상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극적 요소가 될 법한 린포체의 검증과 선포, 의식은 매우 생략된 분량으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고도 앙뚜가 린포체라는 것을 의심치 않게 된다. 앙뚜가 영적 지도자가 되리라는 것을 스승 우르갼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앙뚜에게 우르갼은 내 영혼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다.

앙뚜와 그의 스승이 국경으로 가로 막힌 히말라야 산맥을 올라 캄에 있는 전생의 제자를 향해 소라나팔을 불면 앙뚜를 꼭 안아주던 늙은 스승의 위로가 히말라야를 넘어 지구 반대편의 무명인에게까지 도달하는 듯하다.

“괜찮을 겁니다.”
“용기를 내세요.”
“힘드시죠?”

영화가 끝나도 심상 속에서 우르갼과 앙뚜는 안개 속을 헤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한정 걸어 나간다. 지금, 희망을 품고 안개 속에서 헤매는 이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 모퉁이를 지나도 안개는 걷히지 않지만 곧 겨자꽃 들판이 펼쳐진다.

“힘드시죠?”
“용기를 내세요.”
“괜찮을 겁니다.”

정지혜(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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