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신성록: 시원섭섭하다. 12부작이었지만 촬영하는 동안 정말 열과 성을 다했기 때문에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즐거웠다. (최)민수 선배님에게 배운 점이 많다. 고동선 PD님은 이때까지 만난 연출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여러모로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10. 고동선 PD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가?
신성록: 고PD는 일단 호흡이 엄청 빠르다. 똑똑하게 계산해 필요 없는 신은 촬영하지 않는다. 필요한 장면들만 빠르게 촬영하니까, 처음에는 그게 당황스러웠는데 나중에는 좋았다.(웃음)
10. 이른바 ‘병맛(말도 안 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 엔딩’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분분했는데.
신성록: 강예원 씨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따뜻한 결말로 (나중에) 시청자들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질 바에야, 논란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는 게 낫겠다’고. 하하. (결말에 대해) 납득이 가지는 않았지만, 드라마의 색깔에 맞게 엔딩까지 독특했던 것 같다.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고, 가장 ‘죽어야 사는 남자’다운 결말이었다고 본다.
10. 결말 때문에 시즌2를 바라는 시청자들이 많다.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출연하겠나?
신성록: 아직 공식적으로 시즌2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 만약 출연 제안을 받는다면 시즌2에서는 또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봐야한다.(웃음) 워낙 배우들 합이 좋았기 때문에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
10. 가상의 아랍 국가를 그리는 과정에서 이슬람 희화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신성록: 드라마 팀을 대표해 사과드린다. 무지했다. 무지가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논란이 된 장면들에 대해 거듭 사과드릴 뿐이다.
10. 극 초반 강호림은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 불륜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신성록: 처음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는 호림이가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보다 어느 날 갑자기 돈 많은 재벌이 찾아온다는 사건 자체에 시선이 갔다. 실제로 불륜은 일어나면 안 될 일이지만 ‘죽어야 사는 남자’는 드라마이지 않나. 오히려 호림이 다른 여자에게 흔들리거나 거짓말을 거듭하는 설정들이 재미있는 요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시놉시스로 파악한 호림도 순수하고 겁이 많은, 그래서 무엇 하나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친구였다. 그런데 방송 초반에는 호림을 ‘밉상’으로 보는 시청자들이 많았다.(웃음)
10. 출연 작품을 결정할 때 캐릭터보다 이야기의 큰 틀을 먼저 보나?
신성록: 드라마는 시놉시스 그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체 이야기를 미리 알고 결정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가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를 본다. 덧붙이자면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연기할 배우가 누군지도 보고, 연출자도 본다.
10. ‘죽어야 사는 남자’는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나?
신성록: 쉽지 않았다. 소재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지 않나. 어이없게 시작해 어이없이 끝났다.(웃음) ‘죽어야 사는 남자’는 유니크한 작품이다. 배우는 늘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고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죽어야 사는 남자’가 맞았다.
10. 신성록 표 코믹 연기가 빛을 발했다는 평이 쏟아졌는데.
신성록: 제가 동료 배우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라이센스 두 개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악역, 다른 하나는 ‘찌질이’’라고.(웃음) 연극과 뮤지컬에서는 호림이처럼 찌질하거나 천진난만한 역할을 많이 해봤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아무래도 SBS ‘별에서 온 그대’(2013)에서 연기한 소시오패스로 저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무섭기만 했던 배우가 어느 날 바보처럼 TV에 나오니 놀랐을 수도 있겠다.(웃음)
10. 최민수와의 호흡은 어땠나?
신성록: 아무래도 극 중에서 매일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관계이다 보니 선배님이 정말 예뻐해 줬다.(웃음) 민수 선배님이 액팅(acting)을 워낙 잘해줘서 받는 입장에서는 연기하기 수월했다. 선배님은 항상 좋은 대본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디테일들을 준비해 오는 편이다.
10. 가까이서 본 최민수는 어떤 사람었나?
신성록: 제가 감히 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느낀 것은 사회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직 아이 같은, 순수한 면도 많다. 배우라면 선배님처럼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어야 나만의 것을 표현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10. 배운 점이 있다면?
신성록: 한번은 민수 선배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웃음) ‘성록아, 진짜 연기는 연기를 안 하는 거야’라고. 선배님은 작품을 결정하고 나면 캐릭터가 자신한테 올 때까지 한 달 동안 집 밖에도 안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딱 끝나니까 민수 선배님의 눈빛도 선해졌다. 종방연에 수염을 깎고 왔는데 백작의 꼬장꼬장한 모습이 없어져서 혼자 서운했다.(웃음) 사실 나는 정반대다. 연기하는 순간에만 그 캐릭터가 된다. 컷 사인이 나면 신성록으로 돌아온다. 그래야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서 느끼는 첫 감정이 내 연기에 실린다.
10. 최민수의 조언이 자신의 연기에 변화를 줬나?
신성록: 물론 선배님의 말씀은 귀담아 들으면서 나는 나대로 한다.(웃음) 애정을 갖고 좋은 말씀을 해주신 거라 감사하다. 사실 선배님과는 신기한 인연이 있다. 내가 배우 지망생일 때 ‘모래시계’를 연출한 김종학 PD께서 ‘대망’ 공개 오디션을 열었다. 몇천 대 1의 경쟁률로 세자 역할을 뽑는 거였다. 거기서 내가 뽑혔다. 열다섯 번인가 대본 리딩을 했는데, 결국 그 캐릭터가 조현재 형에게 돌아갔다. 나중에 작품이 끝나고 PD님에게 ‘왜 역할을 바꾸셨느냐’고 물었더니 PD님이 ‘넌 왕자 얼굴이 아니야’라고 했다.(웃음) 그러면서 “너는 내가 ’모래시계‘의 최민수처럼 만들려고 뽑았다”고 했다. ‘최민수처럼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들었던 내가 다른 작품에서 최민수 선배님과 호흡하게 된 거다. 혼자 소름이 돋았다. 이 이야기를 회식 때 선배님에게 했는데, 술에 취해서 반응은 기억나지 않는다.(웃음)
10. 강예원과의 호흡은?
신성록: 좋았다. 백지 같은 배우다. 서로 연기를 맞추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간혹 자기 스타일이 너무 강하면 내가 어떤 것도 할 수 없는데, (강)예원 누나는 상대 배우의 의견을 잘 받아주고 특유의 스타일도 잘 흡수해주는 스타일이었다.
10. 강예원도, 최민수도 연예계에서 ‘4차원 배우’로 꼽히지 않나.(웃음) 어땠나?
신성록: 힘들었다.(웃음) 농담이고, 워낙 개성이 강한 분들이긴 했다. 실제로 두 배우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맞았다. 친남매처럼 보이기도 했다.
10. 두 개성파 배우 사이에서 자신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책임감은 없었나?
신성록: 그런 것보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에 임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신을 재밌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목을 조르거나 때리지 않아도 되는데, 실제로 때려준 선배들에게 감사하다.(일동 웃음)
10.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나?(웃음)
신성록: 두 분 때문에 피멍이 들었다. (팔뚝을 만지며) 아직도 있을 거다. 강예원 씨의 펀치에도 피멍이 들었고, 민수 선배님은 장신구를 착용한 손으로 저를 때리다 보니 또 피멍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장면들을 시청자들이 제일 재밌어 했다. 만족한다.(웃음)
10. 주위 반응은 어떤가?
신성록: 나의 필모그래피 중에 제일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10.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악역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신성록: 전혀 없었다. 그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것도 몰랐다.(웃음) ‘죽어야 사는 남자’가 방송된 뒤에 느꼈다. 오히려 악역 이미지 덕분에 ‘죽어야 사는 남자’ 속 코믹 연기를 더 좋게 봐준 것 같다. 내게는 득이다.
10. 로맨틱 코미디 남자주인공을 하고 싶은 생각은?
신성록: 물론 제안이 들어오면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다만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멋있는 캐릭터보다 재밌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실장님, 본부장님 말고 틀을 깨는 것을 하고 싶다.
10.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대구 공연을 앞두고 있다. 영상 연기와 무대 연기를 오가는 데 어려움은 없나?
신성록: 드라마 한 편, 뮤지컬이나 연극 한 편을 번갈아 하고 있다.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건 아니다. 한 작품이 끝나면 다른 작품으로 제안이 들어오고, 그중에서 해보고 싶은 작품에 출연한 것이다. 헷갈리는 부분은 전혀 없다. 무대나 카메라 앞이나 연기는 똑같다. 드라마를 촬영할 때도 풀 샷에서는 무대처럼 크게 연기해야 한다. 다만 연극이나 뮤지컬은 전체가 풀 샷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달력을 높이는 데 신경 쓴다. 화술, 발음, 발성에 좀 더 집중한다.
10. 데뷔 15년차다. 그동안 슬럼프는 없었나?
신성록: 스물아홉 살 때인가, 한번 왔다. ‘나는 연기도 너무 못하고, 발전 없이 제자리고, 영화에 나오는 선배 배우들처럼 연기하고 싶은데 기회는 안 오고, 호평보다 혹평이 더 많고. 나는 연기에 재능이 없는데 왜 이 짓을 할까…’ 그런 생각을 우울증처럼 앓았다. 그러다 ‘내가 행복하려고 이 일을 했던 것이니 남들보다 좀 못해도 행복하게 살자’고 마음먹었다. 마음가짐을 바꾸니 오히려 연기도 더 좋아진 것 같다.
10.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가 있다면?
신성록: 특별한 계기는 없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스로 해답을 내리고 이겼다. 그 다음부터 일을 하는 게 좀 편해졌다. 이전까지는 A형이라(웃음) 자꾸 뒤돌아보고, 나 자신을 바닥으로 내리고 비하했는데 많이 줄었다. 아직 갈 길이 아주 멀지만 지금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10. ‘죽어야 사는 남자’를 마친 소감은?데뷔 15년 차인 신성록은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최근 종영한 MBC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는 소심하고 찌질한 강호림 역을 맡아 유쾌한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앞서 KBS2 ‘공항가는 길’(2016)에서 연기한 무뚝뚝한 박진석이나, SBS ‘별에서 온 그대’(2013) 의 소시오패스 이재경과는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게다가 지난 5월부터는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로맨틱한 제르비스 펜들턴 역을 맡아 무대에도 오르고 있다.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오가는 신성록의 연기관은 뚜렷하다. 한 작품이 끝날 때까지 오로지 그 캐릭터로만 산다는 최민수와 달리 연기하는 순간에만 그 캐릭터가 되고 ‘컷’ 사인이 나면 원래의 신성록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신성록: 시원섭섭하다. 12부작이었지만 촬영하는 동안 정말 열과 성을 다했기 때문에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즐거웠다. (최)민수 선배님에게 배운 점이 많다. 고동선 PD님은 이때까지 만난 연출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여러모로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10. 고동선 PD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가?
신성록: 고PD는 일단 호흡이 엄청 빠르다. 똑똑하게 계산해 필요 없는 신은 촬영하지 않는다. 필요한 장면들만 빠르게 촬영하니까, 처음에는 그게 당황스러웠는데 나중에는 좋았다.(웃음)
10. 이른바 ‘병맛(말도 안 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 엔딩’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분분했는데.
신성록: 강예원 씨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따뜻한 결말로 (나중에) 시청자들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질 바에야, 논란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는 게 낫겠다’고. 하하. (결말에 대해) 납득이 가지는 않았지만, 드라마의 색깔에 맞게 엔딩까지 독특했던 것 같다.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고, 가장 ‘죽어야 사는 남자’다운 결말이었다고 본다.
10. 결말 때문에 시즌2를 바라는 시청자들이 많다.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출연하겠나?
신성록: 아직 공식적으로 시즌2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 만약 출연 제안을 받는다면 시즌2에서는 또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봐야한다.(웃음) 워낙 배우들 합이 좋았기 때문에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
10. 가상의 아랍 국가를 그리는 과정에서 이슬람 희화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신성록: 드라마 팀을 대표해 사과드린다. 무지했다. 무지가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논란이 된 장면들에 대해 거듭 사과드릴 뿐이다.
10. 극 초반 강호림은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 불륜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신성록: 처음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는 호림이가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보다 어느 날 갑자기 돈 많은 재벌이 찾아온다는 사건 자체에 시선이 갔다. 실제로 불륜은 일어나면 안 될 일이지만 ‘죽어야 사는 남자’는 드라마이지 않나. 오히려 호림이 다른 여자에게 흔들리거나 거짓말을 거듭하는 설정들이 재미있는 요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시놉시스로 파악한 호림도 순수하고 겁이 많은, 그래서 무엇 하나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친구였다. 그런데 방송 초반에는 호림을 ‘밉상’으로 보는 시청자들이 많았다.(웃음)
신성록: 드라마는 시놉시스 그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체 이야기를 미리 알고 결정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가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를 본다. 덧붙이자면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연기할 배우가 누군지도 보고, 연출자도 본다.
10. ‘죽어야 사는 남자’는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나?
신성록: 쉽지 않았다. 소재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지 않나. 어이없게 시작해 어이없이 끝났다.(웃음) ‘죽어야 사는 남자’는 유니크한 작품이다. 배우는 늘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고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죽어야 사는 남자’가 맞았다.
10. 신성록 표 코믹 연기가 빛을 발했다는 평이 쏟아졌는데.
신성록: 제가 동료 배우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라이센스 두 개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악역, 다른 하나는 ‘찌질이’’라고.(웃음) 연극과 뮤지컬에서는 호림이처럼 찌질하거나 천진난만한 역할을 많이 해봤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아무래도 SBS ‘별에서 온 그대’(2013)에서 연기한 소시오패스로 저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무섭기만 했던 배우가 어느 날 바보처럼 TV에 나오니 놀랐을 수도 있겠다.(웃음)
10. 최민수와의 호흡은 어땠나?
신성록: 아무래도 극 중에서 매일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관계이다 보니 선배님이 정말 예뻐해 줬다.(웃음) 민수 선배님이 액팅(acting)을 워낙 잘해줘서 받는 입장에서는 연기하기 수월했다. 선배님은 항상 좋은 대본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디테일들을 준비해 오는 편이다.
10. 가까이서 본 최민수는 어떤 사람었나?
신성록: 제가 감히 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느낀 것은 사회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직 아이 같은, 순수한 면도 많다. 배우라면 선배님처럼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어야 나만의 것을 표현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10. 배운 점이 있다면?
신성록: 한번은 민수 선배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웃음) ‘성록아, 진짜 연기는 연기를 안 하는 거야’라고. 선배님은 작품을 결정하고 나면 캐릭터가 자신한테 올 때까지 한 달 동안 집 밖에도 안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딱 끝나니까 민수 선배님의 눈빛도 선해졌다. 종방연에 수염을 깎고 왔는데 백작의 꼬장꼬장한 모습이 없어져서 혼자 서운했다.(웃음) 사실 나는 정반대다. 연기하는 순간에만 그 캐릭터가 된다. 컷 사인이 나면 신성록으로 돌아온다. 그래야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서 느끼는 첫 감정이 내 연기에 실린다.
10. 최민수의 조언이 자신의 연기에 변화를 줬나?
신성록: 물론 선배님의 말씀은 귀담아 들으면서 나는 나대로 한다.(웃음) 애정을 갖고 좋은 말씀을 해주신 거라 감사하다. 사실 선배님과는 신기한 인연이 있다. 내가 배우 지망생일 때 ‘모래시계’를 연출한 김종학 PD께서 ‘대망’ 공개 오디션을 열었다. 몇천 대 1의 경쟁률로 세자 역할을 뽑는 거였다. 거기서 내가 뽑혔다. 열다섯 번인가 대본 리딩을 했는데, 결국 그 캐릭터가 조현재 형에게 돌아갔다. 나중에 작품이 끝나고 PD님에게 ‘왜 역할을 바꾸셨느냐’고 물었더니 PD님이 ‘넌 왕자 얼굴이 아니야’라고 했다.(웃음) 그러면서 “너는 내가 ’모래시계‘의 최민수처럼 만들려고 뽑았다”고 했다. ‘최민수처럼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들었던 내가 다른 작품에서 최민수 선배님과 호흡하게 된 거다. 혼자 소름이 돋았다. 이 이야기를 회식 때 선배님에게 했는데, 술에 취해서 반응은 기억나지 않는다.(웃음)
신성록: 좋았다. 백지 같은 배우다. 서로 연기를 맞추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간혹 자기 스타일이 너무 강하면 내가 어떤 것도 할 수 없는데, (강)예원 누나는 상대 배우의 의견을 잘 받아주고 특유의 스타일도 잘 흡수해주는 스타일이었다.
10. 강예원도, 최민수도 연예계에서 ‘4차원 배우’로 꼽히지 않나.(웃음) 어땠나?
신성록: 힘들었다.(웃음) 농담이고, 워낙 개성이 강한 분들이긴 했다. 실제로 두 배우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맞았다. 친남매처럼 보이기도 했다.
10. 두 개성파 배우 사이에서 자신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책임감은 없었나?
신성록: 그런 것보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에 임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신을 재밌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목을 조르거나 때리지 않아도 되는데, 실제로 때려준 선배들에게 감사하다.(일동 웃음)
10.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나?(웃음)
신성록: 두 분 때문에 피멍이 들었다. (팔뚝을 만지며) 아직도 있을 거다. 강예원 씨의 펀치에도 피멍이 들었고, 민수 선배님은 장신구를 착용한 손으로 저를 때리다 보니 또 피멍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장면들을 시청자들이 제일 재밌어 했다. 만족한다.(웃음)
10. 주위 반응은 어떤가?
신성록: 나의 필모그래피 중에 제일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10.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악역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신성록: 전혀 없었다. 그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것도 몰랐다.(웃음) ‘죽어야 사는 남자’가 방송된 뒤에 느꼈다. 오히려 악역 이미지 덕분에 ‘죽어야 사는 남자’ 속 코믹 연기를 더 좋게 봐준 것 같다. 내게는 득이다.
10. 로맨틱 코미디 남자주인공을 하고 싶은 생각은?
신성록: 물론 제안이 들어오면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다만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멋있는 캐릭터보다 재밌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실장님, 본부장님 말고 틀을 깨는 것을 하고 싶다.
10.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대구 공연을 앞두고 있다. 영상 연기와 무대 연기를 오가는 데 어려움은 없나?
신성록: 드라마 한 편, 뮤지컬이나 연극 한 편을 번갈아 하고 있다.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건 아니다. 한 작품이 끝나면 다른 작품으로 제안이 들어오고, 그중에서 해보고 싶은 작품에 출연한 것이다. 헷갈리는 부분은 전혀 없다. 무대나 카메라 앞이나 연기는 똑같다. 드라마를 촬영할 때도 풀 샷에서는 무대처럼 크게 연기해야 한다. 다만 연극이나 뮤지컬은 전체가 풀 샷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달력을 높이는 데 신경 쓴다. 화술, 발음, 발성에 좀 더 집중한다.
10. 데뷔 15년차다. 그동안 슬럼프는 없었나?
신성록: 스물아홉 살 때인가, 한번 왔다. ‘나는 연기도 너무 못하고, 발전 없이 제자리고, 영화에 나오는 선배 배우들처럼 연기하고 싶은데 기회는 안 오고, 호평보다 혹평이 더 많고. 나는 연기에 재능이 없는데 왜 이 짓을 할까…’ 그런 생각을 우울증처럼 앓았다. 그러다 ‘내가 행복하려고 이 일을 했던 것이니 남들보다 좀 못해도 행복하게 살자’고 마음먹었다. 마음가짐을 바꾸니 오히려 연기도 더 좋아진 것 같다.
10.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가 있다면?
신성록: 특별한 계기는 없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스로 해답을 내리고 이겼다. 그 다음부터 일을 하는 게 좀 편해졌다. 이전까지는 A형이라(웃음) 자꾸 뒤돌아보고, 나 자신을 바닥으로 내리고 비하했는데 많이 줄었다. 아직 갈 길이 아주 멀지만 지금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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