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시라노’에서 시라노 역을 맡은 배우 홍광호 / 사진제공=(주)RG, ㈜ CJ E&M
뮤지컬 ‘시라노’에서 시라노 역을 맡은 배우 홍광호 / 사진제공=(주)RG, ㈜ CJ E&M
150분 동안 말로 사람을 홀리는 시라노에게 빠져든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뮤지컬 ‘시라노'(연출 구스타보 자작)다.

‘시라노’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내 시라노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만 당당하지 못한 그의 사랑을 조명한다. 원작은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쓴 5막 운문 희곡이며, 1897년 파리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여전히 전 세계에서 영화와 드라마,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하고 있다.

올해 한국 초연에서는 ‘지킬 앤 하이드’의 음악감독인 프랭크 와일드혼이 나섰다. 여기에 1997년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류정한이 프로듀서로 가세했다.

무대와 의상은 17세기 중엽의 파리를 멋들어지게 구현했다. 시라노(홍광호)를 비롯한 록산(린아)·크리스티앙(서경수)·드기슈(주종혁) 등 인물들은 모두 도드라진다. 극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앙상블까지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웃음이 터지는 장면에서도 반감이 없다.

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 사진제공=(주)RG, ㈜ CJ E&M
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 사진제공=(주)RG, ㈜ CJ E&M
시라노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몇 장면이 흐른 뒤 시라노는 록산과 재회한다. 사실상 극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100명과 싸워도 거뜬한 시라노가 유일하게 이길 수 없는 상대인 록산. 시라노와 록산의 마음, 록산을 향한 크리스티앙과 드기슈의 진심까지, 극은 엇갈린 사랑의 작대기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빈틈 없이 설명하는 통에 극은 다소 늘어진다. 애틋하면 좋을 감정이 구구절절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라노는 완벽에 가까운, 아주 매력적인 인물로 표현됐다. 홍광호는 정확한 힘 조절로 2시간 30여 분을 시라노에게 푹 빠져들게 했다. 걸그룹 천상지희에서 뮤지컬 배우로 전향한 린아 역시 제 몫을 해냈다. 공연의 1부가 끝난 휴식시간에 “린아가 기대 이상”이라고 소곤대는 관객이 많았다.

2부는 결말을 향해 빠르게 달리는데, 홍광호와 린아가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붙잡는다. 북받치는 감정도 과하지 않게, 절절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갑작스러운 마지막 장면의 아쉬움도 달랜다.

국내 초연이어서 미흡한 부분도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은 과감하게 들어내고, 숨 가쁘게 흐르는 2부를 다듬는 작업을 거친다면 보다 만족스러운 ‘시라노’가 완성될 것 같다. 오는 10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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