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이창재 감독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이창재 감독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차라리 귀신이나 외계인 영화를 찍어라.”

이창재 감독이 ‘노무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자 한 투자자는 이렇게 일갈했다. “투자를 할 수도 없지만, 만들어진다고 해도 볼 수도 없다. (동영상 사이트)유튜브에 밖에 공개 못 할 텐데 200만, 300만명이 볼 수 있게 할 수 있겠냐”라는 충고와 비아냥거림이 뒤섞인 말도 함께 말이다. 그저 ‘노무현’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 제작 영화사 풀)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3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영화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한 투자자의 조언 아닌 조언은 그의 의지를 제대로 꺾어놓았다. 그렇지만 이 감독은 미련을 놓지를 못했다. 밤에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틀고 유튜브에 들어갔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에 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련된 것들만 떴다. 그걸 계속 보고 있던 그는 “이 시간에 차라리 만들자”라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요. 대통령일 때 FTA나 이라크 파병 등의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도 있었고요. 제 질문은 서거 뒤에 시작됐어요. 공부를 하면서,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영화 제작까지 오게 됐죠. 누구든지 해야 하는데 이야기인데, 왜 안하지가 궁금했어요. 후배 감독들한테 ‘왜 노무현 이야기를 안 만드냐’고 공개적으로 물어보기도 했죠. 4년 전에 시도하고 실패했지만, 계속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었어요.”

제작 가능성은 지난해 4월 13일 총선 이후에 드러났다. 야당이 승리를 했다. 제작사 영화사 풀 최낙용 프로듀서는 이창재 감독에게 “해볼 만하지 않겠느냐”라며 영화를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노무현입니다’가 시작됐다.

이 감독은 “공식적인 투자를 받는 건 어려웠다. 알음알음으로 물어서 투자를 받았다. 제목도 숨겼다. 전주국제영화제 투자 결정도 4개월이 넘게 걸렸다”면서 “기획안을 받고 나서 잘못 하면 정부 지원금이 반으로 줄을 수 있다고 하더라. 정말 소리 소문 없이 비밀 작전을 했다”고 회상했다.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노무현입니다’는 국회의원, 시장선거 등에서 번번이 낙선했던 만년 꼴찌 후보 노무현이 2002년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치러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지지율 2%로 시작해 대선후보 1위의 자리까지 오르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국민경선부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열정 등을 당시의 영상과 유시민 작가, 안희정 충남지사, 문재인 대통령, 변호사 시절 운전기사, 노무현을 전담했던 중앙정보부 요원, 노사모 회원들 등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 39명의 인터뷰를 교차 편집했다. 총 인터뷰 시간만 1만2000여분에 이르고, 이 중 45분을 영화에 넣었다. 경선의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모습과 그를 기억하는 지인들의 모습으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낸다. 직접적이고 과감한 방식으로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한다. 실제 영화의 음악 콘셉트는 ‘매드맥스’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 내용을 잘 담아내고 싶었죠. 측면 인터뷰는 설명이고 정면 인터뷰는 주관화된 이야기에요. 저에게는 도전이었어요. 그간 감독으로서 영화에 개입하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인위적인 부분도 많고 CG도 썼어요. 완전 미지의 세계였죠. 제 영화를 계속 봐왔던 한 프로그래머는 ‘이거 이창재 영화 아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이 작품은 오로지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어요. 연출 노무현, 배우 노무현이었죠.”

국민경선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유는 ‘시민과 시민의 대표자’를 보여주기 위험이었다. 이 감독은 “대선으로 넘어가면 복합적인 요인들이 혼재가 된다. 순수하게 정제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어서 경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창재 감독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이창재 감독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이창재 감독은 ‘인간’ 노무현에 대해 “풍성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주변 분들은 그분의 철학과 세계관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의 삶을 본받는 걸 넘어서 따라하려고 한다”며 “그게 주목할 지점이다.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변호사, 정치인, 대통령까지 왔지만 지위에 맞게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삶의 태도와 방식은 똑같았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 원칙, 상식을 지키려고 했어요. 그걸 위해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지 인간으로서는 똑같은 길을 걸어왔죠. 제가 만약 김대중 대통령을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정치인 김대중에 중점을 뒀을 것 같아요. 그 분과 정치적 역량, 업적은 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인간으로서 저에게 더 어필이 됐어요. 궁금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속이, 마음에 대한 호기심이 컸죠. 그래서 들어가 봤는데 참 풍성하고 풍요로운 영혼을 가졌더라고요.”

이창재 감독이 ‘노무현입니다’를 통해 이루고 싶은 건 간단명료했다. 관객들을 타임머신에 태워 노 전 대통령에게 데려다주는 역할이었다. 자신의 해석은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그 현장으로만 가면, 소용돌이치는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시민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어요. 국민이라는 표현은 책임의 역할이 크고 시민은 참정의 의미가 더 커요. 국민의식이라고 안 하고 시민의식이라고 하잖아요. 시민의식은 참여를 전제로 해요.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모두가 시민이길 원했어요.”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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