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구태환 : 장르를 한정 짓지 않는다. 연출가로서 생각하는 연극이 지닌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꾸 탐구해나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좁혀지는 것 같기도 하다.
10. 어떻게 좁혀지고 있나.
구태환 : 재연 중심의 연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스토리 텔링이 다가 아니란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드라마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한다. 국내 관객들은 연극을 관람할 때 감동을 받으려고 하고, 공연자 역시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매진한다. 이와는 달리, 감성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에 의해 작동되게끔, 관객들이 사유하는 틈을 만들어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0. 그런 시도와 실험이 ‘좋은 이웃’에서도 곳곳에 보인다.
구태환 : 사실 ‘사랑별곡’도 그랬다. 생각할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대사가 담고 있는 인생의 의미, 그게 한편의 시였다. 그 작품은 처음부터 한편의 시처럼 만들고 싶었다. 생략이 있고, 함축이 있는. 거기에 ‘좋은 이웃’은 사유하는 방식까지 집어 넣은 셈이다. 현실 그 자체를 재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10. 순차적인 방식의 흐름도 아니고, 의도한대로 생략도 많다. 배우들이 간담회 당시 어려움 혹은 신선함을 토로하기도 했다.(웃음)
구태환 : 배우들이 연기하기 편한 방식은 작품을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끌어내 몸으로 받아들여 이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머리로 끝나느냐, 사유까지 가느냐의 싸움이 일어난다. 배우들의 연기 방식이 대게 분석한 것을 믿고 진실된 연기를 하는 건데, 그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거다. 실제 그게 연기를 잘한다고 평가를 받기도 하고, 나 역시 그것 또한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자는 거다. 믿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말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 속에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는지도 고민할 수 있다. 의미를 돋보이게 하는 방식인 거다. 물론 받아들이는 관객의 몫이겠지만, ‘좋은 이웃’에는 그래서 불필요한 동작이 없다. 미니멀한 언어, 감정, 동선이 부각된다. 없애고 없애는 과정을 지나, 최종으로 남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만이 또렷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10. 당시 배우가 ‘무중력을 연기하라’는 연출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 뜻이 참 궁금하다.
구태환 : 일상의 기대, 자기 행위를 하는 건 중력적으로 보고 의식 너머에 있는 것을 무중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배우, 또 인물 너머에 있는 진짜 행위, 시선, 말 등이다. 처음에는 의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신선하다고 받아들이더라. 배우들과 참 대화를 많이 했다.(웃음) 그래서 끊임없는 변화가 있었다.
10. ‘좋은 이웃’를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나.
구태환 : 김수미 작가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데, 그가 6년 전에 쓴 희곡이다. 지난해 공연을 올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읽어보니 참 좋더라. 잘 쓴 희곡이었고, 무엇보다 생각할 것이 많았다. 형식도 재미있었고, 범우주적이지 않나. ‘이게 바로 인간이다!’ 싶었고, 자석처럼 끌렸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는 정밀하게 그리지 않았다고 불평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 피카소는 할 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그 작품을 가치있게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좋은 이웃’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연극은 스토리텔링을 따라 가고, 드라마 역시 촘촘한데 반해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힘,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어떤 관객은 내 감성을 자극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며, 촘촘하지 않다고 불평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겠나, 누군가 좋아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10.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을 통해 좀 더 확실해졌겠다.
구태환 : 계속 이 같은 작품만 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 추구하는 연극관을 실험했다고는 할 수 있다. 사실 예전부터 이 같은 연극관을 갖고 있었다. 연극을 배울 때, 드라마의 개념을 배우고 쫀쫀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데 문득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변한 건 왜일까…스스로도 궁금하다.(웃음) 드라마의 목숨을 거는 것, 그게 연출이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막연했던 것이 조금씩 범위가 좁혀지고 있는 것 같다.
10. ‘좋은 이웃’을 비롯해서 전작들을 살펴보면, 인간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남다른 것 같다.
구태환 : 물론 관심이 크다. ‘고모를 찾습니다’의 경우에는 인물의 속을 들여다본다. 저 사람의 성격이 왜 그렇지, 실존주의적인 심리학을 염두하면서 만들었다. ‘좋은 이웃’은 무의식, 문명적인 인물을 걷어낸 상태에서 보여주는 거다. 스스로도 작품이 가늠이 안되는 면도 있는데, 평은 분명 극과 극이다. 공연이 막을 내릴 즈음 결과가 궁금하다. 끝났을 때 바로 잊힐 공연이 될 수도 있고, 기억에 오래 남을 공연이 될 수도 있다.
10. ‘좋은 이웃’은 무의식 속 진짜 나의 모습을 들춰낸다. 사실 썩 유쾌하지 않은 순간도 있다. 애써 피하고 있는 ‘나’가 누구나 하나 쯤은 있지 않나.
구태환 : 작품을 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 배우들과도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이야기를 못했던 걸 덮고 있는 의식을 걷고, 억압하고 있는 것을 푸니까 서로 편한 거다.
10. 올해 첫 시작인 ‘좋은 이웃’. 출발이 좋은 것 같다.
구태환 : 무사히 공연을 올린 것만으로도 좋다.(웃음) 아직 젊다고 생각해서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더 노력하고 반성하고 있다.
10. 처음 연극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구태환 : 공연은 어릴 때부터 접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연극 티켓을 주셨다. ‘에쿠스’란 공연이었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동경했고 꿈을 갖게 됐다.
10. 운명처럼 연극의 맛을 알게된 순간이다.
구태환 : 내 앞에서 배우들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강렬해서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연극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시각, 청각뿐만아니라 공감각적이기까지 접신을 한 느낌이랄까(웃음), 매우 새로웠다.
10. 처음부터 연출의 꿈을 꾼건가.
구태환 : 연기였겠지.(웃음) 한 극단에서 오페라에 출연했는데 당시 뱃사공, 광대, 병사 등등 많은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연출이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그 연출을 동경하게 됐다. 그냥 멋있었다. ‘창작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때가 20대 초반이었다.
10. 미국 유학을 통해 연출가로서의 꿈을 키우는 과정이 동경했던 그대로이던가.
구태환 : 미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힘들었다.(웃음) 다행히 당시 교수님들이 예쁘게 봐줬다. 동양에서 온, 말도 잘 못하는 친구가 열심히 하는 걸 기특하게 생각하셨다. 열심히 했지만, 물론 어려웠다.
10.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
구태환 : 공연이란 건 관객으로 있을 때도 좋고, 연출로 관객이 극을 감상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도 좋다. 또 다른 희열이 있다.
10. 언제 가장 짜릿한가.
구태환 : 2008년 ‘고곤의 선물’을 올렸을 때였는데, 관객이 올까 현수막을 거는 그 순간까지 걱정했다. 관객은 200여명이 찾아왔고, 공연이 끝난 순간 모두가 기립해서 박수를 치는 거다. 배우, 제작진 모두가 놀랐다. 연극에 의해 모두 하나가 된 거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작품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고, 해냈다는 뿌듯함도 컸다. 그때 깨달았다. 굳이 스토리텔링이 아니더라도 관객들은 받아들일 수 있구나라는 것을.
10. 연극, 더 넓게는 공연은 경기를 많이 타는 업계이기도 하다.
구태환 : 심지어 연극영화과가 굉장히 많은데, 그들도 공연을 자주 보지 않는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는 배우들 조차 자신들 공연하기 바쁘다. 정동환, 박윤희 등 베테랑 배우들도 열심히 공연을 보러 다니려고 노력한다. 나 역시도 그러려고 하고. 연극은 제작할 때만이 아니라 관객으로 있을 때도 행복하다. 즐거운 행위인데, 그게 아쉽다. 연극은 생성 즉시 소멸된다. 그 공간에 없었다면 감상할 방법이 없는 거다. 그림이 좋다고 하면, 보러 가면 되는 건데 연극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연극이 힘들고, 또 반면 그래서 더 소중하다.
10.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태환 :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늘 한다. 극단에 있다고 쓰여질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쓰임새가 있도록 노력하고 끊임없이 훈련하며 어떻게 하면 쓰여질 것인가 고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10. 연출로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상당할텐데, 푸는 방법이 있나.
구태환 :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배우는 걸 좋아해서 늘 뭔가를 한다. 몰랐던 걸 알게되는 걸 좋아한다. 요즘은 공연에 기술적인 부분에 흥미를 갖고 있다. 새로운 게 많이 나오는데, 하나하나 재미있더라.(웃음)
10. 올해의 시작은 ‘좋은 이웃’으로 열었고,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구태환 : 4월께 ‘가족’이란 극을 올릴 예정이다. 독특한 묘미를 살려보려고 한다. 좋은 배우들과 하기로 돼 있어서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우는 과정이 좋고 재미있기 때문에, 이번 역시 그런 부분이 기대된다. 새 작품을 만난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몰랐던 부분을 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작업을 하는 게 늘 흥미진진하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고등학교 때 우연히 연극을 본 뒤 가슴이 떨렸고, 전율을 느꼈다. 그 소년은 성장해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내는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좋은 이웃’이란 연극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구태환 연출의 이야기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극 연출의 길을 걸은 그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호흡했다. 때로는 가슴 따뜻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또 때로는 날카롭게 인간과 삶에 대해서 파고들기도 한다. 소재와 분위기는 모두 달랐으나, 분명한 건 관객에게 사유할 틈을 내어준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10. 제목만 봤을 때 굉장히 따뜻한 작품일 줄 알았던 ‘좋은 이웃’. 큰 오산이었다.(웃음) 비일상적 심리극이라니.
지난해 재연된 ‘사랑별곡’과 올해 초연되는 ‘좋은 이웃’이 다른 듯 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침묵이 의미하는 고민의 흔적, 함축이 완성하는 시적 언어는 두 작품 모두 같다. 구태환 연출은 ‘좋은 이웃’의 극본을 보고 자석처럼 끌렸고, 배우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신나게 작업했다.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박수를 쳐준다면, 다음 작품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울 것이다.
구태환 : 장르를 한정 짓지 않는다. 연출가로서 생각하는 연극이 지닌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꾸 탐구해나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좁혀지는 것 같기도 하다.
10. 어떻게 좁혀지고 있나.
구태환 : 재연 중심의 연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스토리 텔링이 다가 아니란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드라마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한다. 국내 관객들은 연극을 관람할 때 감동을 받으려고 하고, 공연자 역시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매진한다. 이와는 달리, 감성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에 의해 작동되게끔, 관객들이 사유하는 틈을 만들어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0. 그런 시도와 실험이 ‘좋은 이웃’에서도 곳곳에 보인다.
구태환 : 사실 ‘사랑별곡’도 그랬다. 생각할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대사가 담고 있는 인생의 의미, 그게 한편의 시였다. 그 작품은 처음부터 한편의 시처럼 만들고 싶었다. 생략이 있고, 함축이 있는. 거기에 ‘좋은 이웃’은 사유하는 방식까지 집어 넣은 셈이다. 현실 그 자체를 재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10. 순차적인 방식의 흐름도 아니고, 의도한대로 생략도 많다. 배우들이 간담회 당시 어려움 혹은 신선함을 토로하기도 했다.(웃음)
구태환 : 배우들이 연기하기 편한 방식은 작품을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끌어내 몸으로 받아들여 이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머리로 끝나느냐, 사유까지 가느냐의 싸움이 일어난다. 배우들의 연기 방식이 대게 분석한 것을 믿고 진실된 연기를 하는 건데, 그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거다. 실제 그게 연기를 잘한다고 평가를 받기도 하고, 나 역시 그것 또한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자는 거다. 믿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말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 속에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는지도 고민할 수 있다. 의미를 돋보이게 하는 방식인 거다. 물론 받아들이는 관객의 몫이겠지만, ‘좋은 이웃’에는 그래서 불필요한 동작이 없다. 미니멀한 언어, 감정, 동선이 부각된다. 없애고 없애는 과정을 지나, 최종으로 남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만이 또렷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10. 당시 배우가 ‘무중력을 연기하라’는 연출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 뜻이 참 궁금하다.
구태환 : 일상의 기대, 자기 행위를 하는 건 중력적으로 보고 의식 너머에 있는 것을 무중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배우, 또 인물 너머에 있는 진짜 행위, 시선, 말 등이다. 처음에는 의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신선하다고 받아들이더라. 배우들과 참 대화를 많이 했다.(웃음) 그래서 끊임없는 변화가 있었다.
10. ‘좋은 이웃’를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나.
구태환 : 김수미 작가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데, 그가 6년 전에 쓴 희곡이다. 지난해 공연을 올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읽어보니 참 좋더라. 잘 쓴 희곡이었고, 무엇보다 생각할 것이 많았다. 형식도 재미있었고, 범우주적이지 않나. ‘이게 바로 인간이다!’ 싶었고, 자석처럼 끌렸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는 정밀하게 그리지 않았다고 불평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 피카소는 할 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그 작품을 가치있게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좋은 이웃’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연극은 스토리텔링을 따라 가고, 드라마 역시 촘촘한데 반해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힘,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어떤 관객은 내 감성을 자극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며, 촘촘하지 않다고 불평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겠나, 누군가 좋아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10.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을 통해 좀 더 확실해졌겠다.
구태환 : 계속 이 같은 작품만 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 추구하는 연극관을 실험했다고는 할 수 있다. 사실 예전부터 이 같은 연극관을 갖고 있었다. 연극을 배울 때, 드라마의 개념을 배우고 쫀쫀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데 문득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변한 건 왜일까…스스로도 궁금하다.(웃음) 드라마의 목숨을 거는 것, 그게 연출이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막연했던 것이 조금씩 범위가 좁혀지고 있는 것 같다.
10. ‘좋은 이웃’을 비롯해서 전작들을 살펴보면, 인간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남다른 것 같다.
구태환 : 물론 관심이 크다. ‘고모를 찾습니다’의 경우에는 인물의 속을 들여다본다. 저 사람의 성격이 왜 그렇지, 실존주의적인 심리학을 염두하면서 만들었다. ‘좋은 이웃’은 무의식, 문명적인 인물을 걷어낸 상태에서 보여주는 거다. 스스로도 작품이 가늠이 안되는 면도 있는데, 평은 분명 극과 극이다. 공연이 막을 내릴 즈음 결과가 궁금하다. 끝났을 때 바로 잊힐 공연이 될 수도 있고, 기억에 오래 남을 공연이 될 수도 있다.
10. ‘좋은 이웃’은 무의식 속 진짜 나의 모습을 들춰낸다. 사실 썩 유쾌하지 않은 순간도 있다. 애써 피하고 있는 ‘나’가 누구나 하나 쯤은 있지 않나.
구태환 : 작품을 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 배우들과도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이야기를 못했던 걸 덮고 있는 의식을 걷고, 억압하고 있는 것을 푸니까 서로 편한 거다.
10. 올해 첫 시작인 ‘좋은 이웃’. 출발이 좋은 것 같다.
구태환 : 무사히 공연을 올린 것만으로도 좋다.(웃음) 아직 젊다고 생각해서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더 노력하고 반성하고 있다.
10. 처음 연극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구태환 : 공연은 어릴 때부터 접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연극 티켓을 주셨다. ‘에쿠스’란 공연이었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동경했고 꿈을 갖게 됐다.
10. 운명처럼 연극의 맛을 알게된 순간이다.
구태환 : 내 앞에서 배우들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강렬해서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연극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시각, 청각뿐만아니라 공감각적이기까지 접신을 한 느낌이랄까(웃음), 매우 새로웠다.
10. 처음부터 연출의 꿈을 꾼건가.
구태환 : 연기였겠지.(웃음) 한 극단에서 오페라에 출연했는데 당시 뱃사공, 광대, 병사 등등 많은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연출이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그 연출을 동경하게 됐다. 그냥 멋있었다. ‘창작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때가 20대 초반이었다.
10. 미국 유학을 통해 연출가로서의 꿈을 키우는 과정이 동경했던 그대로이던가.
구태환 : 미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힘들었다.(웃음) 다행히 당시 교수님들이 예쁘게 봐줬다. 동양에서 온, 말도 잘 못하는 친구가 열심히 하는 걸 기특하게 생각하셨다. 열심히 했지만, 물론 어려웠다.
10.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
구태환 : 공연이란 건 관객으로 있을 때도 좋고, 연출로 관객이 극을 감상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도 좋다. 또 다른 희열이 있다.
10. 언제 가장 짜릿한가.
구태환 : 2008년 ‘고곤의 선물’을 올렸을 때였는데, 관객이 올까 현수막을 거는 그 순간까지 걱정했다. 관객은 200여명이 찾아왔고, 공연이 끝난 순간 모두가 기립해서 박수를 치는 거다. 배우, 제작진 모두가 놀랐다. 연극에 의해 모두 하나가 된 거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작품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고, 해냈다는 뿌듯함도 컸다. 그때 깨달았다. 굳이 스토리텔링이 아니더라도 관객들은 받아들일 수 있구나라는 것을.
10. 연극, 더 넓게는 공연은 경기를 많이 타는 업계이기도 하다.
구태환 : 심지어 연극영화과가 굉장히 많은데, 그들도 공연을 자주 보지 않는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는 배우들 조차 자신들 공연하기 바쁘다. 정동환, 박윤희 등 베테랑 배우들도 열심히 공연을 보러 다니려고 노력한다. 나 역시도 그러려고 하고. 연극은 제작할 때만이 아니라 관객으로 있을 때도 행복하다. 즐거운 행위인데, 그게 아쉽다. 연극은 생성 즉시 소멸된다. 그 공간에 없었다면 감상할 방법이 없는 거다. 그림이 좋다고 하면, 보러 가면 되는 건데 연극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연극이 힘들고, 또 반면 그래서 더 소중하다.
10.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태환 :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늘 한다. 극단에 있다고 쓰여질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쓰임새가 있도록 노력하고 끊임없이 훈련하며 어떻게 하면 쓰여질 것인가 고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10. 연출로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상당할텐데, 푸는 방법이 있나.
구태환 :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배우는 걸 좋아해서 늘 뭔가를 한다. 몰랐던 걸 알게되는 걸 좋아한다. 요즘은 공연에 기술적인 부분에 흥미를 갖고 있다. 새로운 게 많이 나오는데, 하나하나 재미있더라.(웃음)
10. 올해의 시작은 ‘좋은 이웃’으로 열었고,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구태환 : 4월께 ‘가족’이란 극을 올릴 예정이다. 독특한 묘미를 살려보려고 한다. 좋은 배우들과 하기로 돼 있어서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우는 과정이 좋고 재미있기 때문에, 이번 역시 그런 부분이 기대된다. 새 작품을 만난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몰랐던 부분을 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작업을 하는 게 늘 흥미진진하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