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박찬규: 모델을 하려고 마음 먹었던 건 군대에 있을 때였다. 상병 때 우연찮게 피팅 모델을 하게 됐는데 거기에서 재미를 느껴서 씨제스모델에디션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바로 씨제스모델에디션과 계약을 맺어 정식으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다.
10. 본인만 뽑히게 된 이유가 뭘까.
박찬규: 아카데미를 수료하면서 ’29cm’라는 편집샵에서 모델 일을 병행했는데, 그때 좋은 사진이 많이 나와서 어필이 많이 된 것 같다. 아카데미생들 모두 다같이 계약을 목표로 열심히 했지만, 편집샵 피팅 모델 일이 나만의 이미지를 빨리 찾게 되는 기회였다.
10. 본인만의 타고난 재능이나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나.
박찬규: 모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키가 큰 편이 아니라 아예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사진에 나온 모습을 보면서 ‘어, 이 정도면 잘 나오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웃음) 스스로 사진을 보면서 생긴 자신감으로 서울까지 올라온 것이기도 했고.
10. 아카데미에서 이 악물고 열심히 했다고.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박찬규: 아카데미가 3개월 과정이었는데,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먹을 것 못 먹고 하루하루 신경 쓰면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한달, 두달 지나가면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그런 슬럼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오히려 풀어졌을 때 한번 더 다잡으면 성취감도 있고. 그렇게 버텼다. ’29cm’ 피팅 모델 사진을 받을 때도 일부러 보정하기 전 사진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 내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고 동기부여도 확실히 되니까.
10.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요즘이지만, 모델은 특히 다방면으로 길이 열려있는 것 같다. 모델로 더 성공한 이후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박찬규: 연기도 도전해 보고 싶다. 예전에 뮤지컬 배우 선배가 제 얼굴을 보시고는 딱 보니까 ‘부족함 없이 잘 자랐는데 여주인공한테 사랑을 못 받는 비련한 서브 남주’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시더라.(웃음) 얄미운데 얄밉지 않은 캐릭터 같은. 개인적으로는 느와르 영화를 많이 좋아해서 느와르 장르에 출연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10.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박찬규: 군대에 있었을 때 일과 시간이 끝나고 나면 자유 시간이 보장되는 편이라 취미 활동 중에서 저예산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찾다가 시작하게 됐다.(웃음) 어렸을 때부터 손글씨를 좋아했다. 아버지도 글씨를 굉장히 잘 쓰셨던 편이었고. 그래서 캘리그라피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하던 중 나도 해볼까 해서 가볍게 만년필 하나 들고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왔다.
10. 그러면 캘리그라피를 독학한 건가.
박찬규: 다른 사람들 것을 따라 써보다 보면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더 예뻐 보이는 구도로 바꿔 써 보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글씨체를 찾게 된 것 같다.
10. 자신의 캘리그라피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박찬규: 예전에 한참 벚꽃 필 때 직접 창작해서 쓴 글이 있다. ‘벚꽃은 죄가 없다.’ 친구들이 항상 연인도 없는데 벚꽃은 왜 피고 난리냐고 봄에 투덜거릴 때, 내가 그 말을 했더니 아무 말도 못하는 거다.(웃음) 그래서 ‘벚꽃이 죄냐고 네가 죄지’라는 메시지로 써서 올렸는데 반응도 좋았다.
10. 파워블로거였던 적도 있다고 들었다.
박찬규: 파워블로거는 아니고 팔로워 수가 비교적 많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갖고 있었는데 와전된 것 같다.(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올렸던 포스팅이 너무 부끄러워서 닫았다.(웃음) 다시 열고 싶다.
10. 마치 예전 미니홈피를 보는 것과 같은 부끄러움인가.
박찬규: 그렇다.(웃음) ‘내가 어떻게 올렸지?’ 싶은.
10. 보통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많이 부끄러운 글을 잘 쓴다.
박찬규: 감성밖에 없는 것 같다.(웃음) 아버지가 원래 화가 쪽 일을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면서 놀았다. 그때 많이 예술적인 성향이 발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가 원 하나 그려주면 내가 이리저리 보면서 코끼리를 그려 보기도 하고 파인애플을 그려 보기도 하면서 놀던 것이 습관이 돼서 자연스럽게 그림 쪽을 좋아했던 것 같다.
10. 모델로서 닮고 싶은 선배는.
박찬규: 롤모델은 박성진 선배. 해외에서 나름 성공한 모델이었는데 3mm로 반삭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몸값이 몇십 배로 뛰었다고 들었다. 해외에 있었으면 사실 더 많은 몸값을 받았을 텐데 한국으로 다시 와서 옛날에 인정받지 못했던 설움을 잊고 인정받고자 했던 모습이 인상깊었다. 나라면 외국에서 대우받고 계속 일을 했었을 텐데 다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멋있었다.
10. 5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박찬규: 이미지가 확고히 잡힌 모델.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내가 떠오르게 나만의 뚜렷한 매력을 가진 모델이었으면 좋겠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박찬규는 반전의 모델이다. 소년 같은 얼굴처럼 말간 글씨로 손글씨를 쓰다가도 느와르 영화에 출연하거나 스웨그 넘치는 랩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씨제스모델에디션 아카데미 1기 수료생 중 유일하게 바로 계약을 체결한 모델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앞으로의 반전을 궁금하게 만든 신예 박찬규를 만났다.10. 어떻게 모델을 꿈꾸게 됐나.
박찬규: 모델을 하려고 마음 먹었던 건 군대에 있을 때였다. 상병 때 우연찮게 피팅 모델을 하게 됐는데 거기에서 재미를 느껴서 씨제스모델에디션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바로 씨제스모델에디션과 계약을 맺어 정식으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다.
10. 본인만 뽑히게 된 이유가 뭘까.
박찬규: 아카데미를 수료하면서 ’29cm’라는 편집샵에서 모델 일을 병행했는데, 그때 좋은 사진이 많이 나와서 어필이 많이 된 것 같다. 아카데미생들 모두 다같이 계약을 목표로 열심히 했지만, 편집샵 피팅 모델 일이 나만의 이미지를 빨리 찾게 되는 기회였다.
10. 본인만의 타고난 재능이나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나.
박찬규: 모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키가 큰 편이 아니라 아예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사진에 나온 모습을 보면서 ‘어, 이 정도면 잘 나오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웃음) 스스로 사진을 보면서 생긴 자신감으로 서울까지 올라온 것이기도 했고.
10. 아카데미에서 이 악물고 열심히 했다고.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박찬규: 아카데미가 3개월 과정이었는데,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먹을 것 못 먹고 하루하루 신경 쓰면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한달, 두달 지나가면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그런 슬럼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오히려 풀어졌을 때 한번 더 다잡으면 성취감도 있고. 그렇게 버텼다. ’29cm’ 피팅 모델 사진을 받을 때도 일부러 보정하기 전 사진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 내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고 동기부여도 확실히 되니까.
10.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요즘이지만, 모델은 특히 다방면으로 길이 열려있는 것 같다. 모델로 더 성공한 이후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박찬규: 연기도 도전해 보고 싶다. 예전에 뮤지컬 배우 선배가 제 얼굴을 보시고는 딱 보니까 ‘부족함 없이 잘 자랐는데 여주인공한테 사랑을 못 받는 비련한 서브 남주’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시더라.(웃음) 얄미운데 얄밉지 않은 캐릭터 같은. 개인적으로는 느와르 영화를 많이 좋아해서 느와르 장르에 출연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박찬규: 군대에 있었을 때 일과 시간이 끝나고 나면 자유 시간이 보장되는 편이라 취미 활동 중에서 저예산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찾다가 시작하게 됐다.(웃음) 어렸을 때부터 손글씨를 좋아했다. 아버지도 글씨를 굉장히 잘 쓰셨던 편이었고. 그래서 캘리그라피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하던 중 나도 해볼까 해서 가볍게 만년필 하나 들고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왔다.
10. 그러면 캘리그라피를 독학한 건가.
박찬규: 다른 사람들 것을 따라 써보다 보면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더 예뻐 보이는 구도로 바꿔 써 보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글씨체를 찾게 된 것 같다.
10. 자신의 캘리그라피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박찬규: 예전에 한참 벚꽃 필 때 직접 창작해서 쓴 글이 있다. ‘벚꽃은 죄가 없다.’ 친구들이 항상 연인도 없는데 벚꽃은 왜 피고 난리냐고 봄에 투덜거릴 때, 내가 그 말을 했더니 아무 말도 못하는 거다.(웃음) 그래서 ‘벚꽃이 죄냐고 네가 죄지’라는 메시지로 써서 올렸는데 반응도 좋았다.
10. 파워블로거였던 적도 있다고 들었다.
박찬규: 파워블로거는 아니고 팔로워 수가 비교적 많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갖고 있었는데 와전된 것 같다.(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올렸던 포스팅이 너무 부끄러워서 닫았다.(웃음) 다시 열고 싶다.
10. 마치 예전 미니홈피를 보는 것과 같은 부끄러움인가.
박찬규: 그렇다.(웃음) ‘내가 어떻게 올렸지?’ 싶은.
10. 보통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많이 부끄러운 글을 잘 쓴다.
박찬규: 감성밖에 없는 것 같다.(웃음) 아버지가 원래 화가 쪽 일을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면서 놀았다. 그때 많이 예술적인 성향이 발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가 원 하나 그려주면 내가 이리저리 보면서 코끼리를 그려 보기도 하고 파인애플을 그려 보기도 하면서 놀던 것이 습관이 돼서 자연스럽게 그림 쪽을 좋아했던 것 같다.
박찬규: 롤모델은 박성진 선배. 해외에서 나름 성공한 모델이었는데 3mm로 반삭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몸값이 몇십 배로 뛰었다고 들었다. 해외에 있었으면 사실 더 많은 몸값을 받았을 텐데 한국으로 다시 와서 옛날에 인정받지 못했던 설움을 잊고 인정받고자 했던 모습이 인상깊었다. 나라면 외국에서 대우받고 계속 일을 했었을 텐데 다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멋있었다.
10. 5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박찬규: 이미지가 확고히 잡힌 모델.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내가 떠오르게 나만의 뚜렷한 매력을 가진 모델이었으면 좋겠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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