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김성수: 대중성이 강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동안 연출했던 어떤 작품보다 좋은 평가를 받아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 그런데 개봉 후 혹평이 쏟아져서 대중의 생각이 내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다. 아마도 기대했던 것과 영화가 달라 배신감을 좀 크게 느낀 것 같다.
10. ‘아수라’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
김성수: 필름 영화가 태동할 때부터 시대의 음울함을 담은 영화들이 많은 데 그 안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이야기였다. 이런 느와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변별력이 생기고, 기존의 한국영화들과 다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려면 악당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엔 마피아들이 없지 않나. 대신 공공선을 구현해야 할 사법집단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부패하기 쉬운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을 악당으로 구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을 신선하게 봐주길 기대했었다.
10. 충분히 사전에 호불호가 갈릴 영화라고 예상했을 텐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처음 기획대로 밀어붙인 이유가 있다면?
김성수: 주변에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라인업이 갖춰진 다음에도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다. 다들 지적했지만 ‘아수라’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핸디캡이 분명 있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유명 배우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렇게 라인업이 갖춰지니 좋은 스태프들이 모였고,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흔들렸다. 그러나 처음 기획했던 ‘아수라’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불렀다는 걸 생각하면 바꿀 수 없었다.
10. 제작 전에 주변에서 어떤 점들을 지적했는지 궁금하다.
김성수: ‘아수라’는 연결고리가 없다. 관객들이 왜 신과 신 사이가 에피소드처럼 분절돼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며, 관객들에게 그 연결고리를 생각하게끔 한다는 것이 ‘아수라’의 큰 핸디캡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좀 흥미진진한 전개를 생각해보긴 했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나름대로 ‘아수라’가 돌발적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인물들이 그에 대응하고 반응하는 모습들이 더 진짜 같고, 흥미롭게 보일 것이란 신념이 있었다.
10. 우문이지만, ‘아수라’에서 가장 나쁜 놈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김성수: 이 영화에선 당연히 박성배(황정민)다. ‘안남’이란 도시에 있는 악인의 정점에 박성배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감시하고,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김차인(곽도원) 검사도 나쁘고. 사실 누가 착하고 나쁘냐를 떠나서 배경이 되는 안남 자체가 가망이 없는 도시다. 이 악인들을 무찌르는 정의의 사도는 없지 않나.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다 스스로 궤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궤멸의 마침표를 한도경(정우성)이 찍자고 처음부터 정해놓았다.
10. 안남시는 오로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시장부터, 일의 일부로서 한도경을 구타하고 협박하는 도창학(정만식)까지 넓은 악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김성수: 개인적으로 어떤 사회구조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어떤 욕망들이 그 도시와 사회 안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시스템이 사악하게 변할 수도 있고, 건강할 수도 있다고 본다. 사악한 욕망이 지배하는 공간에 사는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모두가 그 도시의 악한 구성인자라고 생각한다. 박성배처럼 악의 정점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자의에 상관없이 박성배 혹은 김차인과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악의 일원이 되는 사람도 있다. 안남이란 부패한 도시 안에선 박성배든 도창학이든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다.
10. 안남이란 도시를 만들 때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김성수: 안남시 축조할 때 장근영 미술감독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안남시는 과연 어떤 동네일까. 내가 어릴 적이었던 70~80년대의 여러 도시에서는 재개발 건설바람이 많이 불었다. 주민들은 이제 우리 동네도 잘 살 수 있다고 희망에 부풀었지만 그 이면에는 재개발과 관련된 이권 때문에 실력자들이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범죄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 영화에 많이 차용했다.
10. 각자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역시 대단했다. 특히, 황정민과 곽도원이 장례식장에서 일대일로 대면하는 신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김성수: 편집하면서도 정말 재미있었다. 황정민은 다들 익히 알고 있겠지만 무서울 정도로 극강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에 못지않은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이 곽도원이다. 그는 천재성이 있다. 에너지도 정말 강하다. 둘이 마주하는 그 장면을 찍을 때 원래는 곽도원이 아주 살짝만 황정민의 안경을 내리는 거였는데, 그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거의 벗기더라. 다들 천하의 곽도원도 황정민 앞에선 긴장한다고 했다.(웃음)
10. 유일하게 입체적인 인물인 문선모를 연기한 주지훈 또한 존재감이 상당하다.
김성수: 난 주지훈이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친구인지 몰랐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연기를 한다. 나머지 네 명의 배우들은 계산을 하고, 포인트를 잡아서 정확하게 연기를 하는 편인 반면, 주지훈은 굉장히 자유분방하게 툭 던져놓는 느낌으로 연기를 한다. 마치 프리 재즈 피아니스트 같다.
이를 테면, 곽도원은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어도, 완벽하게 똑같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으로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계속 공부벌레처럼 자기의 캐릭터를 완성해 나간다. 황정민도 곽도원과 비슷하지만 그는 순간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에 알맞게 에너지를 이쪽으로도 쏟고, 저쪽으로도 쏟아낸다. 정우성은 정말 고민 많이 하고,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해서 연기를 하는 편이고. 그런데 주지훈은 어떻게 연기를 할지 모르겠다. 본인도 자기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잘 모른다. 그게 참 매력적이다.
10. 문선모는 등장할 때마다 악에 물들어가고 있는 캐릭터다. 주지훈이 그걸 참 잘 보여줬다.
김성수: 입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왜 이 사람이 변해 가는지 그 이유나 동인에 변화하는 어느 정도 할애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수라’는 문선모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많이 편집했다. 대신 주지훈은 헤어스타일이나 외모 등으로 약간씩 문선모가 물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감독 입장에선 정말 잘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그 또래의 배우 중에 주지훈만큼 잘하는 배우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배우가 될 것 같다.
10. ‘아수라’에서 정우성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정말 정우성이 고생을 많이 한 게 영화에 보인다.
김성수: 처음부터 약속하고 시작했다. 정우성에게 한도경은 역할 자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이라 네 감정이나 컨디션이 최악이 될 거다. 난 정우성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눈빛·제스처·표정·발성 이런 걸 다 버렸으면 한다고, 정우성의 평소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정말 땅 끝까지 밀어붙였다. 오랫동안 정우성을 알아왔지만, 정우성이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닌데 한번은 “괴롭다”고 하더라.
10. 정우성과 15년 만의 작업이라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김성수: 마치 1~2년 전에도 같이 작업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사’ 이후 연출 이외의 일을 할 때도 자주 만나서 ‘같이 또 영화하자’는 말을 했는데, 막상 그 기회가 다시 오니까 좀 뭉클하더라. 그 사이 왜 또 작업을 같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10. 정만식의 경우엔 먼저 같이 일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냈다고 들었다.
김성수: 정만식은 얼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와 같이 일했던 조감독들 중에서 정만식과 단편도 찍고, 장편도 찍은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 같이 정만식이란 배우를 칭찬했다. 그리고 ‘7번방의 선물’ 시사회랑 뒤풀이 자리에서 만나 같이 작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촬영하면서도 정만식에게 얼굴이 진짜 멋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정만식은 한국에 없는 얼굴이다. 그 원시적인 얼굴이 주는 매력이 있다. 정만식한테 다시 태어난다면 정우성보다 정만식 얼굴로 태어나고 싶다고도 말했다. 어차피 정우성은 안 되니까.(웃음)
10. 엔딩을 찍을 땐 배우들이 하루 휴식도 반납하고 함께 리허설에 매진했다던데?
김성수: 엔딩을 거의 마지막에 찍었다. 엔딩에 대해 고민이 많아서 대본도 여러 차례 수정했었다. 마침 예산에 여유가 있어서, 촬영은 안 하고 카메라만 계속 돌려볼 테니까 배우들한테 같이 고민을 좀 해보자, 도와 달라고 말했더니 다들 좋아해줬다. 감독으로서 고마웠다. 정말 다들 열정적으로 모여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떻겠냐며 회의하고 리허설을 맞춰보는데 정말 즐겁게 일했다. 마치 대학생들 동아리 워크숍에 온 느낌이었다.
10. 정말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영화 ‘아수라’를 만든 소감이 듣고 싶다.
김성수: 감독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웃기지만, 난 이 영화가 정말 좋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연출했지만 개인적 만족도는 ‘아수라’가 제일 크다. 나만 만족하는데 그치지 말고, 같이 일한 사람들한테도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이 영화 괜히 했다는 마음이 들면 안타까우니까.
10. 차기작 고민은 아직인가?
김성수: 정말 ‘아수라’에 완전히 날 녹인 채 살았다. 지금 파도가 날 덮쳤다가 서서히 느리게 쓸려나가는 기분이다. 빨리 ‘아수라’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차기작은 굉장히 천천히 준비하지 않을까. 사실 다음이 아직 엄두가 안 난다. 우선 사나이픽쳐스 대표님에게 한 번 더 같이 영화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웃음)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비트’ ‘태양은 없다’를 함께 히트시킨 배우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의 15년 만의 만남. 정우성을 비롯해 황정민·곽도원·주지훈·정만식 등 대한민국에서 연기 잘하는 남자 배우 다섯 명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영화. 이것만으로도 영화 ‘아수라’는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언론과 영화 관계자들의 반응 역시 나쁘지 않았다. 여기에 주연 배우들이 인기 예능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아낌없이 웃음 주고 왔으니 무슨 말을 더해야 할까.10. ‘아수라’를 세상에 공개한 지 2주 정도 지났다.
그러나 개봉 이후 관객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어느 정도의 호불호를 예상하긴 했지만, 실망한 관객들의 혹평은 생각보다 훨씬 굉장히 날이 서 있었다. 이는 흥행 가도에 오르길 기대했던 ‘아수라’를 막는 복병이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호평과 혹평 사이 서 있는 ‘아수라’호의 선장, 김성수 감독을 만났다. 그는 영화인들과 일반 관객들의 온도차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이나 했을까.
김성수: 대중성이 강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동안 연출했던 어떤 작품보다 좋은 평가를 받아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 그런데 개봉 후 혹평이 쏟아져서 대중의 생각이 내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다. 아마도 기대했던 것과 영화가 달라 배신감을 좀 크게 느낀 것 같다.
10. ‘아수라’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
김성수: 필름 영화가 태동할 때부터 시대의 음울함을 담은 영화들이 많은 데 그 안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이야기였다. 이런 느와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변별력이 생기고, 기존의 한국영화들과 다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려면 악당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엔 마피아들이 없지 않나. 대신 공공선을 구현해야 할 사법집단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부패하기 쉬운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을 악당으로 구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을 신선하게 봐주길 기대했었다.
10. 충분히 사전에 호불호가 갈릴 영화라고 예상했을 텐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처음 기획대로 밀어붙인 이유가 있다면?
김성수: 주변에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라인업이 갖춰진 다음에도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다. 다들 지적했지만 ‘아수라’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핸디캡이 분명 있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유명 배우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렇게 라인업이 갖춰지니 좋은 스태프들이 모였고,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흔들렸다. 그러나 처음 기획했던 ‘아수라’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불렀다는 걸 생각하면 바꿀 수 없었다.
10. 제작 전에 주변에서 어떤 점들을 지적했는지 궁금하다.
김성수: ‘아수라’는 연결고리가 없다. 관객들이 왜 신과 신 사이가 에피소드처럼 분절돼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며, 관객들에게 그 연결고리를 생각하게끔 한다는 것이 ‘아수라’의 큰 핸디캡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좀 흥미진진한 전개를 생각해보긴 했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나름대로 ‘아수라’가 돌발적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인물들이 그에 대응하고 반응하는 모습들이 더 진짜 같고, 흥미롭게 보일 것이란 신념이 있었다.
김성수: 이 영화에선 당연히 박성배(황정민)다. ‘안남’이란 도시에 있는 악인의 정점에 박성배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감시하고,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김차인(곽도원) 검사도 나쁘고. 사실 누가 착하고 나쁘냐를 떠나서 배경이 되는 안남 자체가 가망이 없는 도시다. 이 악인들을 무찌르는 정의의 사도는 없지 않나.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다 스스로 궤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궤멸의 마침표를 한도경(정우성)이 찍자고 처음부터 정해놓았다.
10. 안남시는 오로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시장부터, 일의 일부로서 한도경을 구타하고 협박하는 도창학(정만식)까지 넓은 악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김성수: 개인적으로 어떤 사회구조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어떤 욕망들이 그 도시와 사회 안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시스템이 사악하게 변할 수도 있고, 건강할 수도 있다고 본다. 사악한 욕망이 지배하는 공간에 사는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모두가 그 도시의 악한 구성인자라고 생각한다. 박성배처럼 악의 정점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자의에 상관없이 박성배 혹은 김차인과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악의 일원이 되는 사람도 있다. 안남이란 부패한 도시 안에선 박성배든 도창학이든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다.
10. 안남이란 도시를 만들 때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김성수: 안남시 축조할 때 장근영 미술감독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안남시는 과연 어떤 동네일까. 내가 어릴 적이었던 70~80년대의 여러 도시에서는 재개발 건설바람이 많이 불었다. 주민들은 이제 우리 동네도 잘 살 수 있다고 희망에 부풀었지만 그 이면에는 재개발과 관련된 이권 때문에 실력자들이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범죄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 영화에 많이 차용했다.
김성수: 편집하면서도 정말 재미있었다. 황정민은 다들 익히 알고 있겠지만 무서울 정도로 극강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에 못지않은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이 곽도원이다. 그는 천재성이 있다. 에너지도 정말 강하다. 둘이 마주하는 그 장면을 찍을 때 원래는 곽도원이 아주 살짝만 황정민의 안경을 내리는 거였는데, 그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거의 벗기더라. 다들 천하의 곽도원도 황정민 앞에선 긴장한다고 했다.(웃음)
10. 유일하게 입체적인 인물인 문선모를 연기한 주지훈 또한 존재감이 상당하다.
김성수: 난 주지훈이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친구인지 몰랐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연기를 한다. 나머지 네 명의 배우들은 계산을 하고, 포인트를 잡아서 정확하게 연기를 하는 편인 반면, 주지훈은 굉장히 자유분방하게 툭 던져놓는 느낌으로 연기를 한다. 마치 프리 재즈 피아니스트 같다.
이를 테면, 곽도원은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어도, 완벽하게 똑같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으로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계속 공부벌레처럼 자기의 캐릭터를 완성해 나간다. 황정민도 곽도원과 비슷하지만 그는 순간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에 알맞게 에너지를 이쪽으로도 쏟고, 저쪽으로도 쏟아낸다. 정우성은 정말 고민 많이 하고,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해서 연기를 하는 편이고. 그런데 주지훈은 어떻게 연기를 할지 모르겠다. 본인도 자기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잘 모른다. 그게 참 매력적이다.
10. 문선모는 등장할 때마다 악에 물들어가고 있는 캐릭터다. 주지훈이 그걸 참 잘 보여줬다.
김성수: 입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왜 이 사람이 변해 가는지 그 이유나 동인에 변화하는 어느 정도 할애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수라’는 문선모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많이 편집했다. 대신 주지훈은 헤어스타일이나 외모 등으로 약간씩 문선모가 물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감독 입장에선 정말 잘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그 또래의 배우 중에 주지훈만큼 잘하는 배우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배우가 될 것 같다.
김성수: 처음부터 약속하고 시작했다. 정우성에게 한도경은 역할 자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이라 네 감정이나 컨디션이 최악이 될 거다. 난 정우성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눈빛·제스처·표정·발성 이런 걸 다 버렸으면 한다고, 정우성의 평소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정말 땅 끝까지 밀어붙였다. 오랫동안 정우성을 알아왔지만, 정우성이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닌데 한번은 “괴롭다”고 하더라.
10. 정우성과 15년 만의 작업이라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김성수: 마치 1~2년 전에도 같이 작업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사’ 이후 연출 이외의 일을 할 때도 자주 만나서 ‘같이 또 영화하자’는 말을 했는데, 막상 그 기회가 다시 오니까 좀 뭉클하더라. 그 사이 왜 또 작업을 같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10. 정만식의 경우엔 먼저 같이 일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냈다고 들었다.
김성수: 정만식은 얼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와 같이 일했던 조감독들 중에서 정만식과 단편도 찍고, 장편도 찍은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 같이 정만식이란 배우를 칭찬했다. 그리고 ‘7번방의 선물’ 시사회랑 뒤풀이 자리에서 만나 같이 작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촬영하면서도 정만식에게 얼굴이 진짜 멋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정만식은 한국에 없는 얼굴이다. 그 원시적인 얼굴이 주는 매력이 있다. 정만식한테 다시 태어난다면 정우성보다 정만식 얼굴로 태어나고 싶다고도 말했다. 어차피 정우성은 안 되니까.(웃음)
김성수: 엔딩을 거의 마지막에 찍었다. 엔딩에 대해 고민이 많아서 대본도 여러 차례 수정했었다. 마침 예산에 여유가 있어서, 촬영은 안 하고 카메라만 계속 돌려볼 테니까 배우들한테 같이 고민을 좀 해보자, 도와 달라고 말했더니 다들 좋아해줬다. 감독으로서 고마웠다. 정말 다들 열정적으로 모여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떻겠냐며 회의하고 리허설을 맞춰보는데 정말 즐겁게 일했다. 마치 대학생들 동아리 워크숍에 온 느낌이었다.
10. 정말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영화 ‘아수라’를 만든 소감이 듣고 싶다.
김성수: 감독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웃기지만, 난 이 영화가 정말 좋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연출했지만 개인적 만족도는 ‘아수라’가 제일 크다. 나만 만족하는데 그치지 말고, 같이 일한 사람들한테도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이 영화 괜히 했다는 마음이 들면 안타까우니까.
10. 차기작 고민은 아직인가?
김성수: 정말 ‘아수라’에 완전히 날 녹인 채 살았다. 지금 파도가 날 덮쳤다가 서서히 느리게 쓸려나가는 기분이다. 빨리 ‘아수라’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차기작은 굉장히 천천히 준비하지 않을까. 사실 다음이 아직 엄두가 안 난다. 우선 사나이픽쳐스 대표님에게 한 번 더 같이 영화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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