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김기덕: 내 영화에는 항상 포인트가 있다. 이를테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벽이 없고 문만 존재하는 공간성, ‘섬’에서 인간의 욕망들이 섬처럼 떠 있는 이미지같은 것들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에피소드라도, 그처럼 특정한 아이디어가 있어야만 영화를 만든다. 그것이 ‘김기덕스럽다’는 말이 될 수 있겠다. ‘그물;에서는 철우(류승범)가 눈을 감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10. ‘그물’의 결말은 지금까지의 작품이 제시한 형식과 사뭇 달랐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김기덕: 변화라기 보다는 방향성의 문제다. ‘빈 집’이나 ‘파란 대문’, ‘사마리아’ 등 내 모든 영화는 현재진행형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물’은 우리가 지금 직면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국가가 개인을 이해하지 않으면 불행이라는 것, 그리고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은 물고기와도 같다는 것이 문제인데 아이러니하게 끝나면 안 된다. 그렇게 갈 방향도 없다. 또 내 스스로도 마음 아픈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 다음 페이지에 희망을 걸기 위해 불행하게 마무리했다. 다음 페이지에는 보는 이들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정말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가.’
10. ‘그물’ 기획은 언제부터 한 건가.
김기덕: 시나리오는 수년에 걸쳐 차츰차츰 썼다. 류승범 배우가 출연 의사를 전해오면서 생명력을 갖췄다.
10. 결말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이 있었나.
김기덕: 사실 여러 가지 버전의 엔딩이 있었다. ‘피에타’도, ‘빈집’, ‘나쁜 남자’도 엔딩이 여러 갈래로 열려있었다. 결말은 어느 순간 운명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0. 현실적인 문제를 극적으로 묘사했는데, 연출 의도는.
김기덕: 영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강조를 하기 위해서는 생략이 필요할 때가 있고, 생략을 하기 위해 강조를 할 때도 있다. 현실적 문제가 관객에게 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또 피해자를 만들려면 가해자가 필요하다. ‘그물’에서는 국가라는 탈을 쓴 가해자가 필요했다. 그 가해자의 태도는 우리가 뉴스에서 접해왔던, 관련 사건들을 종합해 만들었다. 진우(이원근)라는 다소 환상적인 캐릭터도 내가 희망을 갖기 위해서 설정한 인물일 수도 있고, 내 마음일 수도 있고, 또 정말 현실에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 작가들은 자기가 살았던 공간과 시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당신도 그랬나.
김기덕: 나 역시도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들이 내 영화의 재료가 된다. 나의 해병대 생활, 프랑스에 유학 갔던 때, 공장에 다니던 시절 등등이 충분한 재료가 되어줬다. 아버지의 불행(김기덕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다)도 마찬가지다.
10. 전작 ‘해안선’, ‘수취인 불명’도 분단 문제를 다뤘는데, 연결 고리가 있나.
김기덕: 다 연결이 되어있다. 내 마음 속에는 국가 혹은 이데올로기라는 큰 그림 안에 여러 개의방이 있다. 작품마다 변주가 조금씩 있었던 것도 이 방 들어갔다가 저 방 들어갔다가 해서 그런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10. 그물은 국가, 물고기는 개인이라는 은유는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가.
김기덕: 7~80년대에 실제로 철우가 탄 것 같은 어선들이 많았다. 지금도 간혹 있다. 신문 지면을 통해서도 몇 번 접했다. 실수로 남한에 왔지만, 자기는 죽어도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며 실제로 발가벗은 채 구호를 외치고 떠나는 앙상한 북한 사람들이 내게는 쇼크였다. 자신이 신념이나 욕심이 없어서 남한에서 받은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주의에 기웃거리는 빌미’가 된다는 점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봤다.
철우가 눈을 감는 것도 그 빌미가 생길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더 멋있게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 아주 아름답고 편안한 침대나 어머니의 품 같은. 하지만 철우가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그것, 오랫동안 사람들을 강박적으로 감시하는 유령 같은 그 체제 혹은 국가에 그런 아름다운 비유를 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국가가 허약한 물고기가 걸려들면 아가미가 찢어지고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는 그물로 비유된 이유다.
⇒인터뷰②에서 계속됩니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아마도 당신은 김기덕 감독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영화 속 날 것 그대로의, 혹은 ‘반추상’적 이미지에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것이 품은 것이 무엇인지를 수없이 곱씹게 만드는 강렬한 힘이 있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그의 작품은 하나의 원초적 텍스트가 되어 보는 이의 마음 속에 거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10. 벌써 22번째 작품인데다 그간 독창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김기덕스럽다’라는 건 뭘까.
그런 그가 ‘그물’로 돌아왔다. ‘그물’은 배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견뎌야만 했던 일주일을 다룬 영화다. 그의 22번째 행보는 색다른 파격이었다.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던 렌즈의 초점을 한반도와 지난 60년간 한반도를 휘감고 있던 ‘유령’으로 확장했다. 확장된 시야 안에서 그가 구축한 미장센은 여전히 환상적이다. 언제나 ‘김기덕스러운’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 김기덕을 만나 ‘그물’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왔다.
김기덕: 내 영화에는 항상 포인트가 있다. 이를테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벽이 없고 문만 존재하는 공간성, ‘섬’에서 인간의 욕망들이 섬처럼 떠 있는 이미지같은 것들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에피소드라도, 그처럼 특정한 아이디어가 있어야만 영화를 만든다. 그것이 ‘김기덕스럽다’는 말이 될 수 있겠다. ‘그물;에서는 철우(류승범)가 눈을 감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10. ‘그물’의 결말은 지금까지의 작품이 제시한 형식과 사뭇 달랐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김기덕: 변화라기 보다는 방향성의 문제다. ‘빈 집’이나 ‘파란 대문’, ‘사마리아’ 등 내 모든 영화는 현재진행형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물’은 우리가 지금 직면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국가가 개인을 이해하지 않으면 불행이라는 것, 그리고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은 물고기와도 같다는 것이 문제인데 아이러니하게 끝나면 안 된다. 그렇게 갈 방향도 없다. 또 내 스스로도 마음 아픈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 다음 페이지에 희망을 걸기 위해 불행하게 마무리했다. 다음 페이지에는 보는 이들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정말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가.’
10. ‘그물’ 기획은 언제부터 한 건가.
김기덕: 시나리오는 수년에 걸쳐 차츰차츰 썼다. 류승범 배우가 출연 의사를 전해오면서 생명력을 갖췄다.
10. 결말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이 있었나.
김기덕: 사실 여러 가지 버전의 엔딩이 있었다. ‘피에타’도, ‘빈집’, ‘나쁜 남자’도 엔딩이 여러 갈래로 열려있었다. 결말은 어느 순간 운명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0. 현실적인 문제를 극적으로 묘사했는데, 연출 의도는.
김기덕: 영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강조를 하기 위해서는 생략이 필요할 때가 있고, 생략을 하기 위해 강조를 할 때도 있다. 현실적 문제가 관객에게 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또 피해자를 만들려면 가해자가 필요하다. ‘그물’에서는 국가라는 탈을 쓴 가해자가 필요했다. 그 가해자의 태도는 우리가 뉴스에서 접해왔던, 관련 사건들을 종합해 만들었다. 진우(이원근)라는 다소 환상적인 캐릭터도 내가 희망을 갖기 위해서 설정한 인물일 수도 있고, 내 마음일 수도 있고, 또 정말 현실에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 작가들은 자기가 살았던 공간과 시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당신도 그랬나.
김기덕: 나 역시도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들이 내 영화의 재료가 된다. 나의 해병대 생활, 프랑스에 유학 갔던 때, 공장에 다니던 시절 등등이 충분한 재료가 되어줬다. 아버지의 불행(김기덕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다)도 마찬가지다.
10. 전작 ‘해안선’, ‘수취인 불명’도 분단 문제를 다뤘는데, 연결 고리가 있나.
김기덕: 다 연결이 되어있다. 내 마음 속에는 국가 혹은 이데올로기라는 큰 그림 안에 여러 개의방이 있다. 작품마다 변주가 조금씩 있었던 것도 이 방 들어갔다가 저 방 들어갔다가 해서 그런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10. 그물은 국가, 물고기는 개인이라는 은유는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가.
김기덕: 7~80년대에 실제로 철우가 탄 것 같은 어선들이 많았다. 지금도 간혹 있다. 신문 지면을 통해서도 몇 번 접했다. 실수로 남한에 왔지만, 자기는 죽어도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며 실제로 발가벗은 채 구호를 외치고 떠나는 앙상한 북한 사람들이 내게는 쇼크였다. 자신이 신념이나 욕심이 없어서 남한에서 받은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주의에 기웃거리는 빌미’가 된다는 점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봤다.
철우가 눈을 감는 것도 그 빌미가 생길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더 멋있게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 아주 아름답고 편안한 침대나 어머니의 품 같은. 하지만 철우가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그것, 오랫동안 사람들을 강박적으로 감시하는 유령 같은 그 체제 혹은 국가에 그런 아름다운 비유를 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국가가 허약한 물고기가 걸려들면 아가미가 찢어지고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는 그물로 비유된 이유다.
⇒인터뷰②에서 계속됩니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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