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원작이 있는 영화’들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영국 소설 ‘핑거스미스’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부터 동명의 게임을 스크린에 구현한 판타지 블록버스터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이하 ‘워크래프트’)'(감독 던칸 존스), 고전 소설 ‘정글북’을 토대로 한 애니메이션 ‘정글북'(감독 존 파브로), 영국의 사회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을 모티브로 한 역사드라마 ‘서프러제트'(감독 사라 가브론)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원작과 전혀 다른 이야기로 영화적 쾌감을 선사하는가 하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원작을 생생하게 스크린으로 옮겨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도 있다.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 네 편과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아가씨’는 원작 소설의 뼈대만 취한 채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낸 유형이다. 사실 한국어판만 726페이지에 달하는 원작에는 “통속극적이며 예기치 못한 급변과 반전으로 가득한 19세기 ‘센세이션 소설’을 사랑했다”는 작가(세라 워터스)의 취향대로 우리나라의 아침 드라마 못지않은 출생의 비밀이 가득하다. 박 감독은 이를 과감하게 들어냈다. “‘아가씨’는 네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밝힌 그의 말처럼, ‘아가씨’는 아가씨, 숙희, 백작, 후견인 네 인물들의 심리전과 그로부터 파생된 반전이 주를 이룬다. 직접적인 성교 묘사 없이도 성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는 신이나, 칸 영화제의 벌칸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려한 미장센처럼 박 감독의 색채가 짙은 장면부터 독자로서 그의 소망을 투영한 결말 등 원작에서 볼 수 없었던 볼거리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좀 더 능청스러워진 젠틀먼은 훨씬 매력적이다.
반면 ‘워크래프트’는 원작 게임을 스크린에 충실하게 재현한 후, 기본 서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주를 꾀했다. 모션 캡처를 넘어 배우들의 얼굴에 소형 카메라를 달아 촬영한 ‘퍼포먼스 캡처’와 동작 안무가가 지휘하는 ‘오크 트레이닝 캠프’를 거쳐 완성된 오크족들은 살아 숨쉬는 듯 생생하다. 컴퓨터 화면으로만 상상하던 아제로스 행성의 카라잔 타워, 엘윈숲, 스톰윈드 등과 같은 명소를 거대한 스크린에서 마주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비주얼을 충실하게 실사화한 대신, 캐릭터에는 게임에서 보지 못한 휴머니티와 깊이를 더했다. 던칸 존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새롭게 접근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인간과 오크 양편 모두에 나름의 영웅을 만들려 했고, 그 어떤 사건이 진행되더라도 각 종족의 입장에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훨씬 더 가족적이고 멋있게 그려진 ‘듀로탄’은 이런 소망으로부터 출발했다.
‘정글북’은 19세기에 소개된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 이야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철저히 21세기적인 영화다. 모글리(닐 세티)를 제외한 모든 것이 CG인 현대판 정글북은 21세기 기술이 부릴 수 있는 모든 마법을 총동원해 만들어졌다. 존 파브르 감독은 “우리의 목표는 솔직한 감동을 끌어낼 수 있도록 기술적 한계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로스앤젤레스에 마련된 세트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됐지만, 제작진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인도의 남부 방갈로르 정글 사진을 10만장 촬영하고, 70여종이 넘는 동물들을 더 섬세하게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CG 프로그램까지 개발했다.
1894년에 러디어드 키플링이 소개한 정글북, 1967년에 디즈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정글북과 비교했을 때 스토리도 조금씩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결말일 것이다. 전작들에서는 모글리가 인간 세계로 되돌아가지만, 영화에서는 정글로 되돌아온다. 주요 테마였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때문에 존 파브르 감독에 의해 재탄생한 키플링 소설 속 ‘정글의 법칙’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코끼리의 등장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오는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끈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그렇지만 영화는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앞세우지 않고 평범한 세탁소 노동자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가 우연히 길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하는 서프러제트 무리를 목격하고 또 하나의 서프러제트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연 이 여성 리더와 그녀를 둘러쌌던 격동의 시기가 과연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됐는지가 ‘서프러제트’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은 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의 리더이자 상징이었으며 언변이 훌륭해 웅변가로도 탁월한 인물이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역을 맡은 배우 메릴 스트립은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대중연설 능력은 가히 경이로웠다고 한다. 비록 영화에서는 단 한 장면의 연설을 하지만, 그녀가 참정권에 반대했던 세력들에 의해 쫓기면서 이 연설을 했다는 사실이 연기에 있어 긴박함과 드라마틱함을 부여했다”라며 연기에 대한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영화에는 메릴 스트립 외에도 캐리 멀리건, 헬레나 본햄 카터 등 할리우드의 굵직한 연기파 여배우들이 출연했다. 뚜렷한 색깔을 지닌 이 여배우들이 빚어낼 연기 시너지도 관전 포인트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비주얼을 충실하게 실사화한 대신, 캐릭터에는 게임에서 보지 못한 휴머니티와 깊이를 더했다. 던칸 존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새롭게 접근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인간과 오크 양편 모두에 나름의 영웅을 만들려 했고, 그 어떤 사건이 진행되더라도 각 종족의 입장에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훨씬 더 가족적이고 멋있게 그려진 ‘듀로탄’은 이런 소망으로부터 출발했다.
1894년에 러디어드 키플링이 소개한 정글북, 1967년에 디즈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정글북과 비교했을 때 스토리도 조금씩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결말일 것이다. 전작들에서는 모글리가 인간 세계로 되돌아가지만, 영화에서는 정글로 되돌아온다. 주요 테마였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때문에 존 파브르 감독에 의해 재탄생한 키플링 소설 속 ‘정글의 법칙’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코끼리의 등장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은 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의 리더이자 상징이었으며 언변이 훌륭해 웅변가로도 탁월한 인물이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역을 맡은 배우 메릴 스트립은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대중연설 능력은 가히 경이로웠다고 한다. 비록 영화에서는 단 한 장면의 연설을 하지만, 그녀가 참정권에 반대했던 세력들에 의해 쫓기면서 이 연설을 했다는 사실이 연기에 있어 긴박함과 드라마틱함을 부여했다”라며 연기에 대한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영화에는 메릴 스트립 외에도 캐리 멀리건, 헬레나 본햄 카터 등 할리우드의 굵직한 연기파 여배우들이 출연했다. 뚜렷한 색깔을 지닌 이 여배우들이 빚어낼 연기 시너지도 관전 포인트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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