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10. 첫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숙희가 아닌 김태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김태리: 아직 나는 스스로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평소의 내 행동들과 말투들이 숙희에 많이 반영됐다. 내 안에 있는 숙희의 모습을 많이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편하게 마음먹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히데코를 보면 평소 행동들이 부드럽고, 유연하고, 느리고, 선이 곱다. 반면, 숙희는 굉장히 거칠고, 직선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이 있다. 실제로 내 행동들이 그렇다. 저택에서 백작과 처음 몰래 만나, 침대에 털썩 누워 히데코는 숙맥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카메라에 잡히진 않았지만, 거기서 내가 발을 까딱까딱 흔들고 있었다. 그런 행동들이 평소 나의 모습이다. 아마 내가 차분한 사람이었더라면, 숙희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10. 김태리의 연기가 진짜 자연스럽다고 느낀 장면이 몇 장면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정신병원에 갇힌 숙희가 주먹밥을 먹다가 그 안의 벌레를 발견하고, 시원하게 웃다가 마지막에 나지막하게 욕을 하는 부분이었다.
김태리: 진짜 어려웠다. (웃음) 지문에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짓는다’라고 쓰여 있는데, 그게 너무 잘 안 되는 거다. 후시 녹음을 할 때 한 번 더 웃었는데 여전히 힘들더라.
10.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인가?
김태리: 영화를 세 번 봤는데, 볼 때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은 히데코와 숙희가 낮은 돌담을 넘어서 벌판을 달리는 그 장면이 좋다. 해방감이 느껴지고, 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정말 좋다.
10. ‘아가씨’는 주요 배역 캐스팅 이전부터 ‘노출 수위 협의 불가능’을 조건으로 내걸 정도로, 파격이 예고된 영화였다. 그런 ‘아가씨’를 선택한 과정을 듣고 싶다.
김태리: 노출에 대한 부담도 당연히 있었지만, 무엇보다 과연 ‘아가씨’란 작품이 내 배우 인생에 좋은 결과만 가져올 것인지 걱정됐다. 주인공이란 큰 역할을 내가 해내야 하는데 꼭 내가 망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같이 하자고 손 내밀어 주시고 나서, 대본을 다시 읽어봤는데 불안감보다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연을 결정 하고,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지 감독님과 숙희에 대해 정말 이야기를 많이 했다. 촬영이 시작되고 난 다음부터는 나 혼자 심적 압박이나 어려움을 이겨냈던 것 같다.
10. 선택의 갈림길에서 신중해지는 편인가?
김태리: ‘아가씨’는 조금 신중하게 결정한 편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선택하는 편이다. 고민하는 시간이 짧다. 미리 걱정하기보다 어렵고 힘든 것들을 직접 겪어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아가씨’도 출연을 결정한 다음부터는 걱정보단 잘해야겠단 생각뿐이었다.
10. 혼자 고민하고, 금방 결정하는 스타일이란 건가. (웃음) 그럼 ‘아가씨’도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결정했겠다.
김태리: 맞다. (웃음) 그것 때문에 부모님께서 좀 서운해하셨지만, 누구보다 내 성격을 잘 아시니까 잘 해보라고 응원해주셨다.
10. 영화를 볼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인데, 숙희는 자신이 여자인 히데코를 사랑하고, 그와 잠자리를 하는 것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김태리: 나 역시 시나리오를 읽을 때 ‘이건 동성애잖아?’라고 생각 안 했다. 그게 우리 영화의 미덕인 것 같다. 사회적인 억압과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우리 영화에는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힘 있게 흘러간다. 우리 영화처럼 동성애를 터부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숙희가 성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이 개인적으론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른 입장이 있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자신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인간 군상들이 있는데, 히데코와 숙희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10. 그렇다면 히데코와 숙희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김태리: 숙희가 코우즈키의 서재를 부수는 장면에서 히데코가 숙희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 좋았다. 두 사람이 큰 신분 격차를 뛰어넘고 서로에게 빠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숙희가 히데코의 억압된 삶을 깊이 공감해주고, 어두운 과거를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나. 과거를 덮어두고 도망간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숙희는 히데코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유해준다. 구원자를 만난 히데코가 처음에는 뭔가 홀린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서재를 망가트리는 것에 동참하고. 이후에 히데코가 숙희를 두고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이 아름답게 보였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김태리는 인터뷰를 위해서 ‘아가씨’를 3번이나 봤다고 말했다. 또, 질문에 답하기 전에는 아주 짧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또박또박, 소녀 감성이 가득 담긴 이야기들을 꺼냈다.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달라지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촬영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을 지켜보다가 괜히 감동 받았던 얘기까지. ‘아가씨’의 숙희를 연기한 배우 김태리는 자신의 일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김태리의 다음 얼굴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가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 첫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숙희가 아닌 김태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김태리: 아직 나는 스스로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평소의 내 행동들과 말투들이 숙희에 많이 반영됐다. 내 안에 있는 숙희의 모습을 많이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편하게 마음먹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히데코를 보면 평소 행동들이 부드럽고, 유연하고, 느리고, 선이 곱다. 반면, 숙희는 굉장히 거칠고, 직선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이 있다. 실제로 내 행동들이 그렇다. 저택에서 백작과 처음 몰래 만나, 침대에 털썩 누워 히데코는 숙맥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카메라에 잡히진 않았지만, 거기서 내가 발을 까딱까딱 흔들고 있었다. 그런 행동들이 평소 나의 모습이다. 아마 내가 차분한 사람이었더라면, 숙희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10. 김태리의 연기가 진짜 자연스럽다고 느낀 장면이 몇 장면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정신병원에 갇힌 숙희가 주먹밥을 먹다가 그 안의 벌레를 발견하고, 시원하게 웃다가 마지막에 나지막하게 욕을 하는 부분이었다.
김태리: 진짜 어려웠다. (웃음) 지문에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짓는다’라고 쓰여 있는데, 그게 너무 잘 안 되는 거다. 후시 녹음을 할 때 한 번 더 웃었는데 여전히 힘들더라.
10.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인가?
김태리: 영화를 세 번 봤는데, 볼 때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은 히데코와 숙희가 낮은 돌담을 넘어서 벌판을 달리는 그 장면이 좋다. 해방감이 느껴지고, 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정말 좋다.
김태리: 노출에 대한 부담도 당연히 있었지만, 무엇보다 과연 ‘아가씨’란 작품이 내 배우 인생에 좋은 결과만 가져올 것인지 걱정됐다. 주인공이란 큰 역할을 내가 해내야 하는데 꼭 내가 망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같이 하자고 손 내밀어 주시고 나서, 대본을 다시 읽어봤는데 불안감보다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연을 결정 하고,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지 감독님과 숙희에 대해 정말 이야기를 많이 했다. 촬영이 시작되고 난 다음부터는 나 혼자 심적 압박이나 어려움을 이겨냈던 것 같다.
10. 선택의 갈림길에서 신중해지는 편인가?
김태리: ‘아가씨’는 조금 신중하게 결정한 편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선택하는 편이다. 고민하는 시간이 짧다. 미리 걱정하기보다 어렵고 힘든 것들을 직접 겪어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아가씨’도 출연을 결정한 다음부터는 걱정보단 잘해야겠단 생각뿐이었다.
10. 혼자 고민하고, 금방 결정하는 스타일이란 건가. (웃음) 그럼 ‘아가씨’도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결정했겠다.
김태리: 맞다. (웃음) 그것 때문에 부모님께서 좀 서운해하셨지만, 누구보다 내 성격을 잘 아시니까 잘 해보라고 응원해주셨다.
김태리: 나 역시 시나리오를 읽을 때 ‘이건 동성애잖아?’라고 생각 안 했다. 그게 우리 영화의 미덕인 것 같다. 사회적인 억압과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우리 영화에는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힘 있게 흘러간다. 우리 영화처럼 동성애를 터부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숙희가 성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이 개인적으론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른 입장이 있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자신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인간 군상들이 있는데, 히데코와 숙희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10. 그렇다면 히데코와 숙희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김태리: 숙희가 코우즈키의 서재를 부수는 장면에서 히데코가 숙희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 좋았다. 두 사람이 큰 신분 격차를 뛰어넘고 서로에게 빠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숙희가 히데코의 억압된 삶을 깊이 공감해주고, 어두운 과거를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나. 과거를 덮어두고 도망간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숙희는 히데코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유해준다. 구원자를 만난 히데코가 처음에는 뭔가 홀린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서재를 망가트리는 것에 동참하고. 이후에 히데코가 숙희를 두고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이 아름답게 보였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