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곡성’에 출연한 배우 곽도원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영화 ‘곡성’에 출연한 배우 곽도원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곽도원은 데뷔 14년 만에 영화 ‘곡성’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선 굵은 연기, 그것도 강렬한 악역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가 ‘곡성’에서는 외지인이 던진 미끼를 무는 시골 경찰 종구로 분했다. 따분한 일상을 즐기던 순박한 시골 경찰의 모습에서 딸을 살리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모습까지 156분 동안 종구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도 절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당연히 곽도원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곡성’에 쏟아부었다. 감독이 상상한 ‘곡성’을 오롯이 표현하기 위해 그는 현장의 시간과 공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기를 펼쳤다. ‘곡성’을 본 관객이라면, ‘끝을 모르는 배우’ 곽도원의 다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10. ‘곡성’ 시사회를 앞두고 특히 걱정한 부분이 있었다고 들었다.
곽도원: 기술시사회 때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이랑 영화를 처음 봤었다. 다들 편하게 웃으면서 영화를 볼 줄 알았는데 이런, 아무도 안 웃는 거다. 의상이면 의상, 음향이면 음향 다 자기들이 맡은 부분만 걱정하는 거다. 영화가 적당히 관객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줘야, 긴장감이 올라올 때 그 느낌이 배가 되는 건데 아무도 웃질 않으니까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잔뜩 걱정하고 언론 시사회를 갔는데, 사람들이 조금씩 웃으니 마음이 놓이더라. 마치 숙제 검사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10. 관객들이 웃는지 안 웃는지에 집착한 이유가 있나?
곽도원: 우린 상업 영화를 하는 사람들인데, 많은 관객이 봐야 할 것 아닌가. 영화가 쫄깃해지려면 그만큼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전종구의 삶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데 시종일관 진지하면 사람들이 흥미롭게 영화를 볼 수 있겠느냐. 삶이란 게 기쁨도 있고, 슬픔이 있고, 웃음도 있어야 하는 거지. 그래서 무능력한 시골 경찰 전종구의 삶에도 곳곳에 웃음이 있길 간절히 바랐던 거다.

10. 게다가 첫 주연작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걱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곽도원: 이십세기 폭스에선 곽도원이 누구냐며 다른 사람을 추천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홍진 감독이 날 캐스팅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감독이 확신을 하고 날 믿어줬는데 난 그 믿음을 배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우리가 계산했던 대로 따라와 줄 것인지, 웃음 포인트를 걱정했던 것도 그런 것 때문이다.

10. 나홍진 감독이 끝까지 곽도원을 주연으로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곽도원: 믿음만 있었던 거다.(웃음) 나홍진 감독이 ‘황해’ 이후 내가 출연한 작품들을 쭉 봤는데, 내가 웃음과 악함을 모두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더라. 곽도원이 그동안 강한 역할을 주로 하긴 했어도 코미디 연기가 충분히 가능한 배우라고 확신했다며 사람들이 왜 곽도원 안의 코미디 본능을 사용하지 못할까 생각했다고, 이틀 전에 같이 술 마시면서 말하더라.

영화 ‘곡성’에 출연한 배우 곽도원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영화 ‘곡성’에 출연한 배우 곽도원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편집된 분량도 많다고 들었다. 종구의 분량 중에서도 편집된 부분이 있었나?
곽도원: 친구들과 외지인을 잡으러 가기 전 식당이 모여 있던 분량이 있었다. 거기에서 내가 정육점 친구 아내에게 얻어맞는 장면이 있었는데, 까만 비닐봉지 안에 무를 집어넣고 내 머리를 때리더라고.(웃음) 그때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갈비뼈에 금도 가고. 그런데 그 분량들이 삭제됐다.

10. 시나리오를 세 번이나 읽었다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곽도원: 별 이유 없다. 내용이 헷갈려서 그랬다.(웃음)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헷갈리더라.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전말을 얘기해주는 것도 좋지만, 이게 한 번 더 영화를 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웃음)

10. 관객 입장에선 ‘곡성’은 결말도, 주제도 모호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배우도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곽도원: 처음 종구는 날카롭지 않다. 평화로운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동료 경찰과 어쭙잖게 수사를 하는 모습에서 웃음이 묻어나길 바랐다. 그런데 코미디란 것이 정극과 정말 다르다. 웃겨야지 작정하면 관객들이 안 웃는다. 또, 너무 정극처럼 해도 안 웃는다. 코미디가 진짜 고급 연기다. 그 정극과 코미디의 톤을 맞추는 게 힘들었다. 또, 사건을 맞닥뜨리고 뒤로 가면 갈수록 악에 받친 종구가 표출되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강해지는데 그 앞뒤 톤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다. 또 촬영이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니까, 앞선 감정을 모른 채 여러 가지 감정들을 많이 찍었다.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일주일 동안 고생하면서 찍었던 장면이 몇 분 분량으로 줄어들어 아쉽기도 했다. 더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DVD 무삭제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람들한테 우리 이런 것도 찍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웃음)

10. 아무래도 결혼을 안 했으니 부성애(父性愛)를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다.
곽도원: 주변에 흔한 아저씨인 종구가 모든 걸 나 몰라라 포기할 수 있는 상황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마음으로 효진이(김환희)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그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더라. 그래서 주변에 물어봤다. 대답들이 하나같이 “뭐든지 다 하겠다”였다. 아버지가 돼 봐야 아버지를 안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까 ‘우리 아버지가 종구처럼 날 키웠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것도 모르고 난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고 그랬는데.(웃음) 나한텐 안 그런 척하면서도 우리 아들내미 언젠가 잘 될 거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하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연기했다.

10. 솔직히 김환희가 연기를 잘해준 것도 있지 않나?(웃음)
곽도원: 환희가 날 아빠로 만들어주더라. 걔는 진짜 천재 같다. ‘곡성’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캐스팅됐는데, 귀신 들려 몸 꺾이는 연기를 하려고 현대 무용을 6개월 동안 배운 걸로 알고 있다. 현장에서 환희가 연기하는 걸 직접 보는데, 배우랑 스태프들이 이게 진짜냐 연기냐 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진짜 도움 많이 받았다.

배우 곽도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곽도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가 배우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준비를 어마어마하게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곽도원: 어떤 배우들은 완벽하게 세팅을 해놓고, 라이터를 건네는 방향까지 디렉션을 주는 감독이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은 다르다. 예를 들어 외지인이 사는 작은 방에 일부러 동물 사체도 넣고, 구더기도 만들어서 배우가 몸으로 공간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물어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뭐냐고. 그럼 거기서부터 카메라 앵글을 돌린다. 배우가 시나리오가 그려놓은 공간을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독이다. 이런 나 감독 스타일이 나랑 좀 맞는다. 배우는 시나리오를 기본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 움직일지 감독과 대화를 하고, 조율하고, 서로 믿으면서 그렇게 한 컷을 만든다. 그러면 짜릿한 느낌이 들고, 또 스스로 대견해지는 거다. 대신 스태프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한다.

10. 주연배우가 생각하는 ‘곡성’의 주제는 무엇인가?
곽도원: ‘곡성’은 범인이 누군가 그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악이란 누구의 기준이고 누구에 의해 정해지는지 그런 질문을 하는 영화 같다.

10. 곽도원하면 그동안 악역 이미지가 강했다. 그것도 진짜 못된 악역.(웃음)
곽도원: ‘썩어도 준치’라고 사실 매번 하던 연기를 하면 안전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나도 재미없고, 보는 사람도 물린다. 그래서 ‘변호인’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이유가 진짜 악한 놈이었거든. ‘변호인’이 진짜 있었던 사실을 생경하게 그려내며 차동혁을 봤을 때 ‘진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관객들이 날 보고 미리 ‘나쁜 놈이다’라고 예상하면 재미가 없지 않으냐. 그런데 황정민이 형이 전에 한 말이 있었다. 깡패를 계속해도 다른 시나리오, 다른 환경, 배경, 인물들이 있으면 다른 깡패가 나온다는 말이었다.

배우는 새로운 역할을 해야 재밌다. 내 안에 차동혁도 있지만 종구같은 순박한 모습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나리오, 투자자를 만나는 것이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가 많이 안 온다. 그리스로마신화에 행운이란 신은 앞머리는 있지만,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고, 뒤꿈치에 날개가 달려서 한 번 놓치면 못 잡는다고 그랬다. 그런 기회를 나홍진 감독이 준 거다. 첫 주연에 칸까지 간 건, 처절하게 나의 부족한 부분을 나 감독의 처절한 성격의 채워준 거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10. ‘곡성’은 곽도원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곽도원: 첫 주연이자 날 칸에 보내준 작품.(웃음) 주인공은 내 걸 잘하는 건 기본이고,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를 아우르며 감독과 같이 작품을 끌고 가야 하는 위치더라. 처음엔 내 한계가 그 정도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눈앞의 것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매일매일 해냄의 연속이었다. 천우희와 마지막 골목 신도 원래 이틀 동안 찍는 거였는데 6회를 찍었다. 시나리오에 ‘외지인을 쫓는 친구들’이라고 표현된 한 줄을 위해 일주일을 찍었다. 한 신을 찍을 때마다 내 한계를 넘는 기분이었다. 울트라 초사이언인이 된 것 같았다.(웃음) ‘곡성’은 내가 살면서 정해놓은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 작품이었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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