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조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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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TV를 보다, “감사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모습에 나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엠넷(Mnet)에서 내놓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한 장면이었다.

최근 한 방송국에서 걸그룹의 한 멤버가 지난 소속사의 관계자를 만나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워했다. 전후 상황을 들어보니, 그 관계자는 자신이 연습생으로 몸담고 있을 당시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현재의 소속사를 소개해준 당사자였다. 관계자는 누구보다 노력하던 그 소녀에게 소중한 기회를 줬고, 현재 그 소녀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그룹의 멤버로 활약 중이니, ‘생명의 은인’이란 표현도 과하지는 않다고 수긍했다.

걸그룹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준 그가 소녀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인 셈이다. 아마 무대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저를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소녀들에게도 투표권을 지닌 불특정 다수가 모두 ‘은인’일지 모른다. 그러니, 더 애처롭다. 꿈과 목표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선택과 관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걸그룹, 나아가 모든 연예인의 숙명이겠지만 시작점부터 그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이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보기 불편한 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주 ‘프로듀스 101’이 방송된 이후면 프로그램의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기사와 관련 댓글은 해당 회의 이야기로 뜨겁다. 지난 11일 방송에서 두 번째 순위 발표식이 진행됐고, 국민 프로듀서의 투표 결과 61명 중 35명이 살아남았다. 소녀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춰갈수록 톱(TOP) 11명에 대한 궁금증은 커지고, 덩달아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는 소녀들의 서바이벌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작진이 일본 걸그룹 AKB48과의 표절 시비를 두고 “서바이벌, 오디션, 순위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보편적인 구성이자 장치”라고 설명할 정도로, ‘프로듀스 101’의 출발이 다른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지 욕을 먹는 건 목표를 위해 달리는 소녀들의 열정을 넘어 눈물까지 노골적으로 이용했다는 점 때문이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여기에 ‘의리테스트’라는 이름 아래 산산조각이 난 카메라를 보고 “회사가 모른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눈물을 훔치는 소녀들의 모습을 엮어 내보내는 건 분명 도를 넘은 기획이었다. 꿈과 목표를 좇아 열정을 쏟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그동안 엠넷에서만도 숱하게 봐온 프로그램이라 놀랄 것도 없지만, 미성년인 소녀들의 순수함을 건드려 재미를 찾는 구성은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기 충분했다.
조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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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부작, 종영까지 3회 남았다.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프로듀스 101’은 방송이 끝난 뒤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톱 11명에 속한 소녀들은 CJE&M 소속의 걸그룹으로 데뷔해 1년 동안 활동을 이어간다. 소녀들의 ‘생명’이 걸린 일인 만큼 무엇보다 ‘공정성’에 신경을 썼어야 했지만, 이미 이는 물 건너갔다. 시청자들의 전에 없던 비난과 혹평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엠넷 측은 ‘비난 폭주’에 투표 방식에는 변화를 줬다. ‘프로듀스 101’이 소녀들의 진정한 ‘은인’이 될지, 남은 3회에 기대를 걸어볼 일만 남았다.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는, 애처로운 소녀들의 클로즈업에 그만 안쓰러워해도 될까.

김하진 기자 hahahajin@
사진. 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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