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윤성호 : 농구 모임에서 과거 엠넷에서 ‘오프더레코드, 효리’와 ‘2NE1 TV’ 등을 기획한 최재윤 이사를 만났는데, 웹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더 날렵한 시리즈로. 마침 저도 ‘일드’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일분 드라마.(웃음) ‘72초 드라마’라는 게 있긴 한데, 그건 좀 예능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일상 묘사는 가능한데 서사와 갈등을 얘기하긴 부족하죠. 일분 드라마로 뭘 할까 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백합물’이었어요. 사실 백합 마니아도 아닌데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어요. 지상파나 TV에선 백합물을 구현해내긴 어렵고 이럴 때 아니면 힘들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그 다음 제목을 지었죠.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진취적으로. 왠지 ‘대세는 백합’이라고 하면 대세라고 믿고 싶어지는 심리가 있잖아요. 하하.
10. 윤성호,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 이 세분은 이번이 첫 만남이었나요?
윤성호 : 일단 ‘대세는 백합’을 제가 혼자 이끌면 절대 안 될 것 같았어요. 남자가 백합물을 기획하고 만들게 되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여성 감독님들을 섭외하기로 했어요. 원래 제가 ‘출출한 여자’ 때부터 함께해온 여자 감독님들이 있었거든요. 박현진, 김인선, 이우정 감독님들이 있어요. 이 분들보다는 뭔가 더 여성 케미를 잘 살릴 수 있는 분들을 원했어요. 평소에 워낙 임오정 감독님의 영화 ‘거짓말’의 팬이었어요. 사실 이 영화가 묘하게 백합물 같더라고요. 그래서 임오정 감독님은 꼭 해야겠다 싶었죠. 또 한 분을 찾고 잇엇는데 주변에서 한인미 감독님을 추천하더라고요. (한)인미 감독님은 인사는 한 적 있는데 잘 몰랐었어요. 추천을 받아서 작품을 보는데 정말 좋았어요. 사춘기 직전의 유년기 여자아이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냈거든요. 이 두 분만 섭외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임오정 : 윤성호 감독님이 백합물을 들어봤냐고 하시더라고요. 백합물을 준비하는데 여기에 여성스런 감독들이 필요하다고. 제 영화가 이전에도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였거든요. 윤 감독님이 작품 속 섬세한 감성을 잘 봐주신 것 같아요. 그 감성을 살려서 같이 하자고 제안도 해주시고. 독립영화계에서 유망 받는 한 분이랑 함께할 거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한인미 감독님이었어요. 그 전에 오며가며 인사는 드렸는데, 이렇게 함께 작업하게 된 건 처음이었어요.
타한인미 : 제안을 받고 합류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윤성호 감독님과 임오정 감독님 때문이었어요. 하하. 처음엔 백합물을 전화 통화로 설명을 들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두 분이 하신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하겠다고 말했어요.(웃음)
10. 한 드라마에 세 분의 감독님이 함께하셨어요. 세 분의 역할이 어떻게 나눠진 지 궁금합니다.
윤성호 : 일단 제목이랑 감독님들을 섭외하는 건 온전히 제 생각이었어요. 배우와 캐릭터를 정하는 건 두 분과 함께 상의해나갔죠. 저희 셋 다 모두 대본을 조금씩 썼는데, 오정 감독님과 인미 감독님은 영화를 하셔서 호흡이 조금 길더라고요. ‘대세는 백합’은 어떻게 보면 ‘컵밥’이에요. 셰프들을 모셔서 긴 코스요리도 만들고, 식당도 낼 수 있지만 지금은 약간 아쉬운 컵밥을 만드는 느낌이에요. 그래야 다음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전 배우와 스태프들이 아쉬운 포만감을 느끼도록 끊어주는 역할을 했어요. 쉽게 말하자면 프로듀서가 하는 역할이었죠. 두 분은 현장 연출을 담당해주셨고. 아, 장세랑(정연주)의 이상한 말들, 헛소리들은 제 담당이었어요. 병맛 개그 같은 건 제가 맡았고, 애틋하고 예쁜 건 두 분이 연출하셨습니다. 하하.
10. ‘대세는 백합’을 함께 하시면서 세 분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한 작품이 세 사람이 맞춘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특히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은 공동연출이 처음이라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임오정 : 일단 공동연출의 장점은 내 생각보다 세계를 확장 시킬 수 있다는 거였어요. 하나의 아이디어도 상의를 통해서 다른 색을 띠기도 하더라고요. 병맛 코드 같은 것도 많이 도움 받았고요.(웃음) 단점은… 모든 걸 합의해야한다는 거? 하하.
한인미 : 결제 받는 느낌이랄까. 하하. 장르의 수위부터 캐릭터, 대본의 합의까지 모든 과정이 다 충돌이었어요. 혼자서 할 수 없는 문제였죠.
임오정 : 캐릭터의 말투도 내가 이어서 쓰지 않으면 캐릭터의 성격이 변해버리는 거잖아요. 하나의 캐릭터를 공유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조율하는 과정이 익숙치 않았어요. 예를 들어 배우한테 어떤 의상을 입히고 싶다면 다음 신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감독님들한테 “이 의상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사소한 것까지 맞춰나갔죠. 그걸 삼 개월을 하다보니까 ‘합숙’의 느낌이 나더라고요. 나중엔 각자 색깔을 내세우기 보다는 ‘백합물’이란 장르의 색깔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웃음)
한인미 : 그냥 나중엔 ‘나를 바꿔보자’라고. (일동 웃음) 약간 룸메이트 같은 느낌이었어요. 혼자 살면 그냥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데로 해도 되는데, 누가 같이 살면 그게 힘들잖아요. 그래도 의지가 되고 배우는 게 있죠. 맞춰나가야 했어요. 사실 ‘괜찮아, 괜찮아’ 하다가도 또 감독들이 각자 자기만의 고집이 있거든요. 하하. 그 고집을 밀고나가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합의 안에서 색깔을 찾는 게.
10. 두 여성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봤는데, ‘대세는 백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어요.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에게는 ‘대세는 백합’이 낯설었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작품의 첫 느낌은 어땠나요?
윤성호 : 그래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 있지 않나요? 하하.
한인미 : 첫 번째로는 두 주인공이 여자라서 안심했어요. 두 번째로는 ‘어? 백합이 뭐지?’라고 생각했고요.
임오정 :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백합물을 전혀 몰랐거든요. 윤성호 감독님은 “당신들이 이미 찍고 있는 게 백합”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하.
한인미 :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백합물’이란 장르를 알면 알수록 고유한 길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부합할 수 있게 여자들의 케미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어요.
임오정 : 사실 우리가 만화도 열심히 봐왔던 세대라 아예 어색하진 않았어요. 만화적인 감수성, 인물들끼리의 병맛 개그 같은 걸 이미 많이 봐왔던 세대이기 때문에, 우리 영화에선 안할 뿐이지 이미 친숙해 있던 상태였던 거죠. 그동안은 진지하게 눌러왔던 것들을 ‘에라, 모르겠다!’하고 할 것 다 해버린 느낌이라서 어떻게 보면 속 시원한 면도 있어요. (웃음) 10. ‘대세는 백합’은 왜? 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왜 데뷔 못한 아이돌의 스토리였으며, 왜 아이돌 노조가 종북으로 몰렸으며, 왜 김혜준이었고, 왜 정연주였으며 등과 같은.
윤성호 :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도 있고, 병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있듯이 다양한 배경의 드라마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얘기는 다 똑같거든요. 얼마큼 둘이 ‘썸’을 타고,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느냐. 이게 트렌디하게 보이려면 관련 직업을 긴밀하게,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해야 해요. 그 점에 있어서 지금 아이돌이란 직업은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는 직업이에요. 우리나라 열 명의 몇 명씩은 취업준비생처럼 연예계 쪽을 꿈꿔보잖아요. 그래서 아이돌의 얘기를 그리게 됐어요.(웃음)
10. 그런 질문들 중 ‘왜 경험이 전무후무한 김혜준이었나’가 가장 궁금해요.
한인미 : 김혜준 배우는 제가 갖고 있는 카드 중 하나였어요. 까마득한 학교 후배에요. 실제로 학교에서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책임지고 소개해드리면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생기니까 조심스러웠는데, 우리가 찾는 신선한 얼굴에는 김혜준 배우가 딱 이었거든요. 그래서 윤 감독님, 임 감독님한테 말씀을 드렸더니 두 분도 좋아하시더라고요. 이미지가 잘 맞는 것 같다고.
10. 배우들에게 두 배우를 놓고 세랑과 경주(김혜준) 역할 중 어떤 역할이 더 잘 어울릴까 고민하셨다고 들었어요.
임오정 : 세랑과 경주는 커플이잖아요. 둘은 반대되는 성격이어야 했고, 케미도 잘 맞아야 했어요. 그 케미를 가장 중요시 여기면서 역할을 나눠가질 수 있는 인물인지 실제 성격을 비교해보면서 찾았죠.
한인미 : 둘은 세트에요. 그런데 둘이 동시에 캐스팅되긴 힘들잖아요. 일단 마음에 드는 배우를 잡아놓고 다른 배우가 나타났을 때 그 둘의 합을 비교해봤어요.
윤성호 : 분명한 건 지금 배우들이 누군가를 대타로 한 캐스팅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사실 저는 등장인물을 많이 가고 싶었어요. 네티즌 분들이 많이 말씀해주셨던 매력적인 신인 여배우들 참 많잖아요. 개성 강하고 쌍커풀 없는. 그 분들도 다 접촉했었거든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나온다고 정연주, 김혜준을 못 봤을 것 같진 않아요. 만났던 사람들이 다 한다고 했으면 아마 다 했을 거예요. 다섯 명이었으면 다섯 캐릭터를 만들고, 일곱 명이었다면 일곱 캐릭터를 만들었겠죠. 최종 출연 결정을 한 건 네 명이었어요. 정연주, 김혜준, 박희본, 피에스타 재이까지.
10. 두 사람의 실제 성격이 캐릭터를 결정하는 데 한 몫 했을 것 같아요. 앞서 인터뷰에서 정말로 두 사람은 자신의 성격과 배역이 일치해보였거든요.(웃음)
임오정 : 하하. 지나고 보니 둘이 역할과 너무 비슷하더라고요.
윤성호 : 정연주 배우는 세랑이의 뻔뻔한 스킨십만 빼면 굉장히 비슷해요. 갑자기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하고 싶은 말을 던질 때가 있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하하.
10. 배우들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임오정 : 정연주 배우는 원래 안면이 있었는데, 미팅 때 세 시간을 되려 우리에게 질문을 하더라고요.(웃음) 엉뚱한데 매력있다고 느꼈어요. 그 대화 속에서 연주 배우는 자신의 특별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되게 진지한 사람이구나를 느꼈어요. 호기심이 많이 갔었어요. 세 시간을 넋 놓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친밀감과 매력이 확 느껴졌죠.
한인미 : (김)혜준이는 되게 씩씩했어요. 만약 학교에서 만났으면 얘기하기도 어려운 후배였을 거에요. 너무 까마득해서. 오히려 밖에서 만나니까 편하더라고요.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슨 역할을 맡는 건지 환경을 빠르게 알아채요. 거기에 맞춰 야무지게 행동을 하고요. 어설프더라도 연습해서 빨리 따라가려고 노력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에 안심이 됐어요. 팍팍 늘겠구나 싶은.
임오정 : 혜준 씨는 첫 날 만날 때 여성스런 검정 코트를 입고 왔는데, 킁킁 거리면서 웃더라고요. (일동 웃음) 되게 재밌었어요. 그날 약간 홀린 것 같았어요. 사실 큰 기대 없이 본 오디션이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큰 보물이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죠. 10. 배우들과 감독들의 케미는 어땠나요?
임오정 : 개인적으로 정연주 배우는 꼭 다른 작품을 같이 해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예쁜 얼굴에 연기가 묻히는 게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이번에 작품을 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지켜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하하. 김혜준 배우는 저와 비슷해서 예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면으로 나랑 성격이 비슷해요. 소심한데 당차게 앞으로 가려는. 혜준 배우의 그런 점이 너무 좋았거든요. 후반 연출할 땐 혜준 배우한테 영감을 얻기도 했어요. 정말 영화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내 원래 톤과 비슷한 영화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인미 : 연주 배우를 처음 봤을 때 단편 영화 촬영장이었어요. 그땐 말 없고 청순한 역할이었는데. 외모만 보면 새침하고 도도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자기 얘기하기 좋아하고 너무 친숙한 거예요. 하하. 특히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 좋았어요. 연출자인 나도 모르는데 계속 질문하면 어렵고 무서워요. 그런데 그걸 깨질 정도로 질문을 해주더라고요. 덩달아 나도 더 생각하게 되니까. 발전할 길이 창창한 배우구나라고 느꼈어요. 혜준이는 그냥 갈수록 고마웠어요. (임오정 : 잡초처럼 버텼어, 하하. 케어해 준 사람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선배니까 더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나도 정신없으니까 말 한 마디 건네기도 어렵더라고요. 계속 미안해했는데 혼자서도 워낙 잘 해냈어요. 아마 이런 빡빡한 스케줄도 처음이었을 텐데 대견하게 잘 해내더라고요. 처음 다른 사람들 앞에 나온거니까 기왕이면 예쁘게 나왔으면, 앞으로 일이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임오정 : 다른 배우들도 얘기해보자면, 피에스타 재이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아이돌 스타가 이런 환경에 괜찮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막상 만나보니 소탈하고 털털하더라고요. 되게 귀여웠어요. 재이 부분을 제가 연출했는데 처음엔 연습하는 사람의 ‘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언을 했는데 그 다음날 바로 고쳐온 거예요. ‘아, 배우로서 가능성이 있는 친구구나’라고 느꼈죠. 7화에 재이가 “낭만적이야”라고 말하는 신이 있었는데 그게 참 제 맘에 쏙 들었어요. 재이 씨가 그 신 전체를 잡아먹었다고 느꼈어요.
한인미 : 박희본 배우는 둘 이상이 나오는 신에서는 항상 중심 축을 잡아주시더라고요. 모든 배우가 희본 배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저 조차도 조금씩 언니를 의지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대통령 말투나 그런 재밌는 포인트들은 단번에 표현해내기 어렵잖아요. 나도 하라고 하면 못할 텐데. 한 번에 본인 스타일로 소화해주시니까 시간도 덜 걸리고, 희본 배우가 나온 부분은 다 착착착 진행이 됐어요.(웃음)
10. 기획부터 캐스팅, 그리고 촬영까지. 이 모든 과정이 얼마 만에 이뤄진 것인가요?
임오정 : 기획은 윤성호 감독님이랑 최재윤 이사님이 함께 4-5개월은 걸린 것 같았어요. 저희는 뒤늦게 합류했고요. 9월에 캐스팅을 하면서 바로 촬영 준비를 했어요. 촬영은 부끄럽게도 3일 걸렸고요. (웃음)
한인미 : 윤성호 감독님이 하신 얘기가 올림픽 한 것 같다고. 하하. 몇 년 준비하고 하루 경기 나가서 뛴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임오정 : 윤 감독님이 예산까지 관리하시다보니까 처음부터 못 박으셨어요. ‘3일, 알아서 써라’라고. 하하. 그렇게 다같이 땀 뻘뻘 흘렸어요. 특히 스태프들이 고생을 엄청 하셨죠. 우린 분량을 나눠서 했지만 그 분들은 3일 내내 고생하셨으니까.
10. 동성애, 사회 풍자 등의 코드가 있었어요. 다루는 데에 있어 조심스런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임오정 : 이번 기회에 공부하면서 알았는데, ‘백합물’이란 장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지한 동성애가 아니더라고요. 음악으로 치자면 ‘펑크’ 같은? 고민없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모습들만 묘사하는 장르더라고요. 처음엔 저희도 ‘동성애를 가볍게 다뤄도 되나’라는 걱정이 있었죠. 점점 파고들다보니까 이런 ‘무대뽀’ 정신으로 질러버리는 장르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임하니까 부담은 사라졌어요. 다만 이 장르의 팬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걱정은 계속 있었어요.
10. 대중의 반응보다는 ‘백합러’들의 반응이 더 민감하게 느껴지셨겠군요.
윤성호 : 대중들은 어차피 싫어하는 삶은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호기심이 생긴 사람은 이게 입문이고 시작이겠죠. 이건 크게 상관없었어요. 다만 저희가 걱정했던 건 ‘백합러’들과 ‘성소수자분들’. 이 분들이 장르를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잖아요. 본인의 정체성을 대상화 한다고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함께 즐겨주시고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원칙은 이거에요.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것들, 다양성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해소하는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잖아요. 의미 있는 퀴어 영화처럼. 싸울 수도 있고, 모른 척 숨어살 수도 있는. 우리는 이미 장벽이 없는 것처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엄연히 있는 걸 모른 척 할 순 없겠지만, 어느 사상적으로 까불게 되면 장벽은 무색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10. 감독님들이 각각 가장 애정 하는 신은 무엇인가요? ‘이 신은 대박이다’하는 신이 있었나요?
윤성호 : 7화에 선우은숙(재이)과 경주가 골목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임오정 감독님이 연출하신 부분인데, 그때 저는 그 장면에 공들일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빨리 빨리 찍으려고 했죠. 전 예산까지 신경 써야 했으니까요. 하하.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내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방해될까 싶어 촬영할 때 먼저 간 적도 있었어요. 옆에 있으면 괜히 한 마디 하고 싶어지니까. 그래서 그날도 대충 찍으라고 잔소리를 하다가 집에 갔어요. 근데 이렇게 예쁘게 찍을 줄은 몰랐죠. 하하. 임오정 감독님의 작품들은 리얼리즘이 강한 작품들이었는데 또 트렌디하고 유치한 장면도 잘하시더라고요. 저는 여러모로 두 분께 감사했습니다. 제건 뭐 다 좋았고요. (일동 웃음)
한인미 : 저는 임오정 감독님이 찍으신 2화의 키스신이요. (웃음)
임오정 : 그럼 저도 인미 감독님 것 중에… 하하. 세랑이와 경주가 누워서 팔베개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예쁘더라고요. 연주 씨가 마치 이니스프리 광고처럼 나왔거든요.(웃음) 남녀 불문하고 모두가 반하겠다 싶었어요. 하하.
10. 반대로 연출하기 어려웠던 신이 있었나요?
임오정 : 첫 화 욕조신? 시간에 쫓기는데다가 좁은 공간에서 몸을 쓰고, 물에 젖고 말리고 했어야 했거든요. 이걸 3일 촬영 중에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렸어요. 나중엔 배우들한테 너무 미안해지더라고요.
한인미 : 저는 “같이 늙자.” 이 부분이요. 하하. 대본이 마지막에 나온 거였거든요. 마지막 장면이 세랑이 덮치고 두 사람이 구르면서 끝나는 거였거든요. 그것도 현장에서 바뀐 거였어요. 운동화 협찬 같이 ‘마지막에 신발이 보이도록 하자!’라고 했어요. 그전엔 둘이서 다른 애드리브로 장난치는 모습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대사가 주어진 부분은 배우들이 잘해내줘서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었는데, 끝에 대사가 없는 상황에서 합을 맞추는 게 어려웠어요.
10. 두 소녀들의 사랑이 설렐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들의 섬세함이 빛난 거 같네요. 세랑과 경주, 두 사람의 아름다운 감정에 대한 연출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임오정 : 만화적인 면을 상정한다고 해서 완전히 만화를 따라한 건 아니었어요. 경주가 소심하게 혼잣말을 하는 부분은 나를 닮아있었고, 또 어떤 부분은 윤 감독님을, 어떤 부분은 인미 감독님을 닮아 있었거든요. 우리 일상의 인물들을 과장해서 따왔다고 보면 돼요. 세랑과 경주는 무조건 케미가 잘 맞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 낯설지 않고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죠. 한 마디로 배우들이 예뻐 보였으면 싶었어요. 하하.
한인미 : 촬영 스케줄이 있어서 진행이 빨랐지만, 배우들이 대사를 내뱉을 때는 진심으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두 사람이 뭘 해도 사랑스러워 보일 테니까요.
윤성호 : 기본적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싫어해주시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성 동성애를 막장 드라마처럼 희화화해서 비난을 받는 다는 이런 걱정은 없었어요. 가령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나왔다고 해서 ‘긴 머리의 예쁜 여자 혐오가 생기겠다’ 이런 마음을 갖진 않잖아요. 정체성을 지지하는 코미디가 나온다는 건 우리 시야가 조금씩 넓어진다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우리가 넓혔다는 건 아니에요. 이미 틈은 있었죠. 동성애자라서 캐릭터가 막무가내인 게 아니에요. 이성애자도 얼마든지 막무가내 캐릭터가 있을 수 있어요. 세랑의 모델 중 하나는 ‘말괄량이 삐삐’에요. 집을 어지럽히고 말도 안 듣는. 사실 삐삐가 아동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혀준 게 있어요. 즐거운 측면으로.
임오정 : 그럼 경주는 ‘빨간머리 앤’ 아닐까요?
윤성호 : 아,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게. 그럴 수도 있겠네요. 10. 그러고보니 마지막 8화의 제목이 ‘이게 엔딩일 리가 없잖아’잖아요. 아직 해결이 안 된 궁금증이 많이 남았어요. 시즌 2를 기대해도 좋을까요.
윤성호 : 제일 중요한 건 두 감독님들이 상황이에요. 하하. 감독님들이 안 된다고 하면 빨리 ‘케미’돋는 다른 감독들을…하하하. 마음 같아선 두 분이랑 하고 싶어요. 배우들은 다른 인터뷰보니까 되게 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럼 이제 예산과 유통의 문제죠. 진지하게 말하자면 다음 이야기는 19금이 안 걸리고 떳떳하게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드라마는 10대 타깃은 아니에요. 근데 성인들도 인증 창에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가령 텐아시아에서 재밌는 칼럼을 썼는데 로그인을 해야 볼 수 있다면 망설이다 포기하는 분도 있겠죠? 그걸 해결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인 것 같아요.
10. 대중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대세는 백합’만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한인미 : 무식함? 하하. 자폭이긴 한데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대책 없이 뻔뻔한 거. ‘무대뽀’ 정신이랄까. 잊고 있던 순수함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애 같고 개구쟁이 같은.
임오정 : 약간 맥락은 다를 수 있는데 여자판 만화 ‘이나중 탁구부’ 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대세는 백합’은 로맨스에 기반을 뒀지만 자기네들끼리 모아놨더니 뻔뻔하게 재밌는 상황을 만들잖아요. 윤성호 감독님이 그런 캐릭터들을 옛날부터 많이 생각 해온 것 같더라고요. 극단적인 캐릭터들을 모아놓으면 어쨌든 재밌는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10.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은 웹드라마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신거잖아요. ‘대세는 백합’이 앞으로의 연출 방향에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대세는 백합’ 전 후로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뀌었나요?
한인미 : 지금까지 한식만 먹어왔다면 이제는 다른 음식도 먹어봤다는 거? 낯선 재료를 다음 작품에서는 그 전보다 겁을 덜 먹고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하던 장르가 아닌 새로운 장르의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내 세계가 넓어진 느낌이에요.
임오정 : 저도 비슷해요. 예전에는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있지도 않은 ‘임오정’ 만의 스타일에 제한 시켜놓은 느낌이었거든요. 이번엔 백합물이란 장르를 통해 내 걸 버리고 몰입했다는 느낌이에요. 다른 장르들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생각도 더 유연해진 것 같아요. 가장 큰 변화는 매력 있는 배우들을 안 것이 큰 자산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 사실 대중들이 반응을 해주는 게 신기했어요. 우리는 어떻게 보면 우물 같은 곳에 있던 사람들인데, 마니아가 생기고 대중이 호기심을 가져준다는 게 너무 신기했죠. 안 읽어 본 댓글이 없어요. 하하.
10. 아쉬움이 남으셨나요?
한인미 : 할 수 있는 만큼 한 것 같아요. 사람이 한 80% 정도만 만족하고 살아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일동웃음) 촬영 당시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정말 뿌듯해요. 왠지 아쉬움이 남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해요.(웃음)
임오정 : 신기한 게 원래 영화를 찍으면 영화와 나와 화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왜 저렇게 찍었지?’ 이런 거. 하하. 근데 ‘대세는 백합’은 화해가 빨리 된 것 같아요. 배우들이 귀여워서인지, 다른 매력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웃음) 아마 스태프 분들이 옆에서 독려해준 덕분인 것 같기도 해요.
한인미 : 혼자하는 작업이었으면 계속 돌려보고 자책했을 텐데, 스태프 분들이 좋은 말 해주시고, 공개 됐을 땐 네티즌들이 좋은 말을 해주시니까 나 혼자 끙끙 앓는 시간이 없더라고요.
임오정 : 그런 과정조차 ‘대세는 백합’ 비슷한 느낌이에요. 롱테이크였던 지난 날에 비해 점프 컷으로 뛰어넘은 느낌. 하하. 따지고 보면 다 처음이었거든요. 공동연출, 웹드라마, 백합물 등. 실제 나는 엄청 소심한데 어떻게 이렇게 ‘무대뽀’로 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10. 마지막으로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남은 ‘대세는 백합’을 ‘~가 ~일리 없잖아’ 같은 드라마의 부제처럼 정의를 내리자면요?(웃음)
임오정 : 안 돼요! 하하하.
한인미 : 이게 아쉬움이 될 거 같은데요?(웃음)
임오정 : ‘이게 엔딩일 리가 없어?’ 하하. 안 돼. (부끄러워서) 못하겠어요. 하하.
한인미 : 저도, ‘이게 끝일 리 없어’ 하하. 시즌 2를… 하하하.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어느 순간부터 ‘웹드라마’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스케일 역시 점점 커졌다. TV 드라마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스타들이 웹드라마에 출연했고, 대기업이 웹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게다가 내용은 기존의 대중 매체의 영상 콘텐츠들 보다 참신했다. 아니, 참신함을 넘어서 ‘발칙’했다. 영상 콘텐츠의 새 시대, 새 양상을 연 웹드라마가 무서울 정도로 빠른 기세로 성장하고 있었다.10. 먼저 총괄 기획을 맡으신 윤성호 감독님께 ‘대세는 백합’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듣고 싶어요.
이 가운데, 정말 ‘발칙’한 웹드라마가 등장했다. 지난 해 방송된 ‘대세는 백합’이 바로 그것. 정말 ‘갑툭튀’라고 할 수 있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웹드라마. 거대한 프로모션도 없었다. 대형 스타들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세는 백합’은 여러모로 화제를 모으며 탄탄한 ‘마니아’를 모았다. 여성 동성애 콘텐츠를 뜻하는 ‘백합’이라는 주제 덕분에 더욱 눈에 띄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세는 백합’이 담은 블랙 코미디는 가히 ‘대세’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참신을 넘어서 ‘발칙’한 상상을 그린 ‘대세는 백합’. 텐아시아가 그 주역들을 만나봤다.
누군가는 윤성호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아!”라고 탄성을 지를지도 모른다. 그의 ‘발칙’하고 독특한 코미디는 이미 다수의 웹드라마와 독립영화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윤성호 감독이 많은 마니아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다. 그런 그가 ‘대세는 백합’이라는 웹드라마로 자신의 ‘발칙’한 코미디를 세상에 공표했다. 그의 ‘발칙’함은 더욱 강해졌고, 더 섬세해졌다. 섬세함의 비결은 임오정, 한인미 감독으로부터였다.
윤성호를 주축으로 임오정, 한인미 감독이 모였다. 독립영화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 감독들이 ‘웹드라마’라는 장르에 뛰어들었다. 다소 생소한 장르에 뛰어든 두 여성 감독의 섬세함은 ‘백합물’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세 가지의 매력을 ‘대세는 백합’으로 한 데 모은 세 사람. 윤성호, 임오정, 한인미 감독을 만나 웹드라마 속 ‘백합’에 관해 논해봤다.
윤성호 : 농구 모임에서 과거 엠넷에서 ‘오프더레코드, 효리’와 ‘2NE1 TV’ 등을 기획한 최재윤 이사를 만났는데, 웹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더 날렵한 시리즈로. 마침 저도 ‘일드’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일분 드라마.(웃음) ‘72초 드라마’라는 게 있긴 한데, 그건 좀 예능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일상 묘사는 가능한데 서사와 갈등을 얘기하긴 부족하죠. 일분 드라마로 뭘 할까 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백합물’이었어요. 사실 백합 마니아도 아닌데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어요. 지상파나 TV에선 백합물을 구현해내긴 어렵고 이럴 때 아니면 힘들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그 다음 제목을 지었죠.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진취적으로. 왠지 ‘대세는 백합’이라고 하면 대세라고 믿고 싶어지는 심리가 있잖아요. 하하.
10. 윤성호,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 이 세분은 이번이 첫 만남이었나요?
윤성호 : 일단 ‘대세는 백합’을 제가 혼자 이끌면 절대 안 될 것 같았어요. 남자가 백합물을 기획하고 만들게 되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여성 감독님들을 섭외하기로 했어요. 원래 제가 ‘출출한 여자’ 때부터 함께해온 여자 감독님들이 있었거든요. 박현진, 김인선, 이우정 감독님들이 있어요. 이 분들보다는 뭔가 더 여성 케미를 잘 살릴 수 있는 분들을 원했어요. 평소에 워낙 임오정 감독님의 영화 ‘거짓말’의 팬이었어요. 사실 이 영화가 묘하게 백합물 같더라고요. 그래서 임오정 감독님은 꼭 해야겠다 싶었죠. 또 한 분을 찾고 잇엇는데 주변에서 한인미 감독님을 추천하더라고요. (한)인미 감독님은 인사는 한 적 있는데 잘 몰랐었어요. 추천을 받아서 작품을 보는데 정말 좋았어요. 사춘기 직전의 유년기 여자아이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냈거든요. 이 두 분만 섭외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임오정 : 윤성호 감독님이 백합물을 들어봤냐고 하시더라고요. 백합물을 준비하는데 여기에 여성스런 감독들이 필요하다고. 제 영화가 이전에도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였거든요. 윤 감독님이 작품 속 섬세한 감성을 잘 봐주신 것 같아요. 그 감성을 살려서 같이 하자고 제안도 해주시고. 독립영화계에서 유망 받는 한 분이랑 함께할 거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한인미 감독님이었어요. 그 전에 오며가며 인사는 드렸는데, 이렇게 함께 작업하게 된 건 처음이었어요.
타한인미 : 제안을 받고 합류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윤성호 감독님과 임오정 감독님 때문이었어요. 하하. 처음엔 백합물을 전화 통화로 설명을 들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두 분이 하신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하겠다고 말했어요.(웃음)
10. 한 드라마에 세 분의 감독님이 함께하셨어요. 세 분의 역할이 어떻게 나눠진 지 궁금합니다.
윤성호 : 일단 제목이랑 감독님들을 섭외하는 건 온전히 제 생각이었어요. 배우와 캐릭터를 정하는 건 두 분과 함께 상의해나갔죠. 저희 셋 다 모두 대본을 조금씩 썼는데, 오정 감독님과 인미 감독님은 영화를 하셔서 호흡이 조금 길더라고요. ‘대세는 백합’은 어떻게 보면 ‘컵밥’이에요. 셰프들을 모셔서 긴 코스요리도 만들고, 식당도 낼 수 있지만 지금은 약간 아쉬운 컵밥을 만드는 느낌이에요. 그래야 다음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전 배우와 스태프들이 아쉬운 포만감을 느끼도록 끊어주는 역할을 했어요. 쉽게 말하자면 프로듀서가 하는 역할이었죠. 두 분은 현장 연출을 담당해주셨고. 아, 장세랑(정연주)의 이상한 말들, 헛소리들은 제 담당이었어요. 병맛 개그 같은 건 제가 맡았고, 애틋하고 예쁜 건 두 분이 연출하셨습니다. 하하.
10. ‘대세는 백합’을 함께 하시면서 세 분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한 작품이 세 사람이 맞춘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특히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은 공동연출이 처음이라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임오정 : 일단 공동연출의 장점은 내 생각보다 세계를 확장 시킬 수 있다는 거였어요. 하나의 아이디어도 상의를 통해서 다른 색을 띠기도 하더라고요. 병맛 코드 같은 것도 많이 도움 받았고요.(웃음) 단점은… 모든 걸 합의해야한다는 거? 하하.
한인미 : 결제 받는 느낌이랄까. 하하. 장르의 수위부터 캐릭터, 대본의 합의까지 모든 과정이 다 충돌이었어요. 혼자서 할 수 없는 문제였죠.
임오정 : 캐릭터의 말투도 내가 이어서 쓰지 않으면 캐릭터의 성격이 변해버리는 거잖아요. 하나의 캐릭터를 공유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조율하는 과정이 익숙치 않았어요. 예를 들어 배우한테 어떤 의상을 입히고 싶다면 다음 신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감독님들한테 “이 의상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사소한 것까지 맞춰나갔죠. 그걸 삼 개월을 하다보니까 ‘합숙’의 느낌이 나더라고요. 나중엔 각자 색깔을 내세우기 보다는 ‘백합물’이란 장르의 색깔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웃음)
한인미 : 그냥 나중엔 ‘나를 바꿔보자’라고. (일동 웃음) 약간 룸메이트 같은 느낌이었어요. 혼자 살면 그냥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데로 해도 되는데, 누가 같이 살면 그게 힘들잖아요. 그래도 의지가 되고 배우는 게 있죠. 맞춰나가야 했어요. 사실 ‘괜찮아, 괜찮아’ 하다가도 또 감독들이 각자 자기만의 고집이 있거든요. 하하. 그 고집을 밀고나가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합의 안에서 색깔을 찾는 게.
10. 두 여성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봤는데, ‘대세는 백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어요.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에게는 ‘대세는 백합’이 낯설었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작품의 첫 느낌은 어땠나요?
윤성호 : 그래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 있지 않나요? 하하.
한인미 : 첫 번째로는 두 주인공이 여자라서 안심했어요. 두 번째로는 ‘어? 백합이 뭐지?’라고 생각했고요.
임오정 :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백합물을 전혀 몰랐거든요. 윤성호 감독님은 “당신들이 이미 찍고 있는 게 백합”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하.
한인미 :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백합물’이란 장르를 알면 알수록 고유한 길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부합할 수 있게 여자들의 케미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어요.
임오정 : 사실 우리가 만화도 열심히 봐왔던 세대라 아예 어색하진 않았어요. 만화적인 감수성, 인물들끼리의 병맛 개그 같은 걸 이미 많이 봐왔던 세대이기 때문에, 우리 영화에선 안할 뿐이지 이미 친숙해 있던 상태였던 거죠. 그동안은 진지하게 눌러왔던 것들을 ‘에라, 모르겠다!’하고 할 것 다 해버린 느낌이라서 어떻게 보면 속 시원한 면도 있어요. (웃음) 10. ‘대세는 백합’은 왜? 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왜 데뷔 못한 아이돌의 스토리였으며, 왜 아이돌 노조가 종북으로 몰렸으며, 왜 김혜준이었고, 왜 정연주였으며 등과 같은.
윤성호 :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도 있고, 병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있듯이 다양한 배경의 드라마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얘기는 다 똑같거든요. 얼마큼 둘이 ‘썸’을 타고,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느냐. 이게 트렌디하게 보이려면 관련 직업을 긴밀하게,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해야 해요. 그 점에 있어서 지금 아이돌이란 직업은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는 직업이에요. 우리나라 열 명의 몇 명씩은 취업준비생처럼 연예계 쪽을 꿈꿔보잖아요. 그래서 아이돌의 얘기를 그리게 됐어요.(웃음)
10. 그런 질문들 중 ‘왜 경험이 전무후무한 김혜준이었나’가 가장 궁금해요.
한인미 : 김혜준 배우는 제가 갖고 있는 카드 중 하나였어요. 까마득한 학교 후배에요. 실제로 학교에서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책임지고 소개해드리면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생기니까 조심스러웠는데, 우리가 찾는 신선한 얼굴에는 김혜준 배우가 딱 이었거든요. 그래서 윤 감독님, 임 감독님한테 말씀을 드렸더니 두 분도 좋아하시더라고요. 이미지가 잘 맞는 것 같다고.
10. 배우들에게 두 배우를 놓고 세랑과 경주(김혜준) 역할 중 어떤 역할이 더 잘 어울릴까 고민하셨다고 들었어요.
임오정 : 세랑과 경주는 커플이잖아요. 둘은 반대되는 성격이어야 했고, 케미도 잘 맞아야 했어요. 그 케미를 가장 중요시 여기면서 역할을 나눠가질 수 있는 인물인지 실제 성격을 비교해보면서 찾았죠.
한인미 : 둘은 세트에요. 그런데 둘이 동시에 캐스팅되긴 힘들잖아요. 일단 마음에 드는 배우를 잡아놓고 다른 배우가 나타났을 때 그 둘의 합을 비교해봤어요.
윤성호 : 분명한 건 지금 배우들이 누군가를 대타로 한 캐스팅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사실 저는 등장인물을 많이 가고 싶었어요. 네티즌 분들이 많이 말씀해주셨던 매력적인 신인 여배우들 참 많잖아요. 개성 강하고 쌍커풀 없는. 그 분들도 다 접촉했었거든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나온다고 정연주, 김혜준을 못 봤을 것 같진 않아요. 만났던 사람들이 다 한다고 했으면 아마 다 했을 거예요. 다섯 명이었으면 다섯 캐릭터를 만들고, 일곱 명이었다면 일곱 캐릭터를 만들었겠죠. 최종 출연 결정을 한 건 네 명이었어요. 정연주, 김혜준, 박희본, 피에스타 재이까지.
10. 두 사람의 실제 성격이 캐릭터를 결정하는 데 한 몫 했을 것 같아요. 앞서 인터뷰에서 정말로 두 사람은 자신의 성격과 배역이 일치해보였거든요.(웃음)
임오정 : 하하. 지나고 보니 둘이 역할과 너무 비슷하더라고요.
윤성호 : 정연주 배우는 세랑이의 뻔뻔한 스킨십만 빼면 굉장히 비슷해요. 갑자기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하고 싶은 말을 던질 때가 있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하하.
10. 배우들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임오정 : 정연주 배우는 원래 안면이 있었는데, 미팅 때 세 시간을 되려 우리에게 질문을 하더라고요.(웃음) 엉뚱한데 매력있다고 느꼈어요. 그 대화 속에서 연주 배우는 자신의 특별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되게 진지한 사람이구나를 느꼈어요. 호기심이 많이 갔었어요. 세 시간을 넋 놓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친밀감과 매력이 확 느껴졌죠.
한인미 : (김)혜준이는 되게 씩씩했어요. 만약 학교에서 만났으면 얘기하기도 어려운 후배였을 거에요. 너무 까마득해서. 오히려 밖에서 만나니까 편하더라고요.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슨 역할을 맡는 건지 환경을 빠르게 알아채요. 거기에 맞춰 야무지게 행동을 하고요. 어설프더라도 연습해서 빨리 따라가려고 노력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에 안심이 됐어요. 팍팍 늘겠구나 싶은.
임오정 : 혜준 씨는 첫 날 만날 때 여성스런 검정 코트를 입고 왔는데, 킁킁 거리면서 웃더라고요. (일동 웃음) 되게 재밌었어요. 그날 약간 홀린 것 같았어요. 사실 큰 기대 없이 본 오디션이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큰 보물이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죠. 10. 배우들과 감독들의 케미는 어땠나요?
임오정 : 개인적으로 정연주 배우는 꼭 다른 작품을 같이 해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예쁜 얼굴에 연기가 묻히는 게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이번에 작품을 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지켜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하하. 김혜준 배우는 저와 비슷해서 예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면으로 나랑 성격이 비슷해요. 소심한데 당차게 앞으로 가려는. 혜준 배우의 그런 점이 너무 좋았거든요. 후반 연출할 땐 혜준 배우한테 영감을 얻기도 했어요. 정말 영화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내 원래 톤과 비슷한 영화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인미 : 연주 배우를 처음 봤을 때 단편 영화 촬영장이었어요. 그땐 말 없고 청순한 역할이었는데. 외모만 보면 새침하고 도도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자기 얘기하기 좋아하고 너무 친숙한 거예요. 하하. 특히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 좋았어요. 연출자인 나도 모르는데 계속 질문하면 어렵고 무서워요. 그런데 그걸 깨질 정도로 질문을 해주더라고요. 덩달아 나도 더 생각하게 되니까. 발전할 길이 창창한 배우구나라고 느꼈어요. 혜준이는 그냥 갈수록 고마웠어요. (임오정 : 잡초처럼 버텼어, 하하. 케어해 준 사람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선배니까 더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나도 정신없으니까 말 한 마디 건네기도 어렵더라고요. 계속 미안해했는데 혼자서도 워낙 잘 해냈어요. 아마 이런 빡빡한 스케줄도 처음이었을 텐데 대견하게 잘 해내더라고요. 처음 다른 사람들 앞에 나온거니까 기왕이면 예쁘게 나왔으면, 앞으로 일이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임오정 : 다른 배우들도 얘기해보자면, 피에스타 재이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아이돌 스타가 이런 환경에 괜찮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막상 만나보니 소탈하고 털털하더라고요. 되게 귀여웠어요. 재이 부분을 제가 연출했는데 처음엔 연습하는 사람의 ‘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언을 했는데 그 다음날 바로 고쳐온 거예요. ‘아, 배우로서 가능성이 있는 친구구나’라고 느꼈죠. 7화에 재이가 “낭만적이야”라고 말하는 신이 있었는데 그게 참 제 맘에 쏙 들었어요. 재이 씨가 그 신 전체를 잡아먹었다고 느꼈어요.
한인미 : 박희본 배우는 둘 이상이 나오는 신에서는 항상 중심 축을 잡아주시더라고요. 모든 배우가 희본 배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저 조차도 조금씩 언니를 의지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대통령 말투나 그런 재밌는 포인트들은 단번에 표현해내기 어렵잖아요. 나도 하라고 하면 못할 텐데. 한 번에 본인 스타일로 소화해주시니까 시간도 덜 걸리고, 희본 배우가 나온 부분은 다 착착착 진행이 됐어요.(웃음)
10. 기획부터 캐스팅, 그리고 촬영까지. 이 모든 과정이 얼마 만에 이뤄진 것인가요?
임오정 : 기획은 윤성호 감독님이랑 최재윤 이사님이 함께 4-5개월은 걸린 것 같았어요. 저희는 뒤늦게 합류했고요. 9월에 캐스팅을 하면서 바로 촬영 준비를 했어요. 촬영은 부끄럽게도 3일 걸렸고요. (웃음)
한인미 : 윤성호 감독님이 하신 얘기가 올림픽 한 것 같다고. 하하. 몇 년 준비하고 하루 경기 나가서 뛴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임오정 : 윤 감독님이 예산까지 관리하시다보니까 처음부터 못 박으셨어요. ‘3일, 알아서 써라’라고. 하하. 그렇게 다같이 땀 뻘뻘 흘렸어요. 특히 스태프들이 고생을 엄청 하셨죠. 우린 분량을 나눠서 했지만 그 분들은 3일 내내 고생하셨으니까.
10. 동성애, 사회 풍자 등의 코드가 있었어요. 다루는 데에 있어 조심스런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임오정 : 이번 기회에 공부하면서 알았는데, ‘백합물’이란 장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지한 동성애가 아니더라고요. 음악으로 치자면 ‘펑크’ 같은? 고민없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모습들만 묘사하는 장르더라고요. 처음엔 저희도 ‘동성애를 가볍게 다뤄도 되나’라는 걱정이 있었죠. 점점 파고들다보니까 이런 ‘무대뽀’ 정신으로 질러버리는 장르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임하니까 부담은 사라졌어요. 다만 이 장르의 팬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걱정은 계속 있었어요.
10. 대중의 반응보다는 ‘백합러’들의 반응이 더 민감하게 느껴지셨겠군요.
윤성호 : 대중들은 어차피 싫어하는 삶은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호기심이 생긴 사람은 이게 입문이고 시작이겠죠. 이건 크게 상관없었어요. 다만 저희가 걱정했던 건 ‘백합러’들과 ‘성소수자분들’. 이 분들이 장르를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잖아요. 본인의 정체성을 대상화 한다고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함께 즐겨주시고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원칙은 이거에요.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것들, 다양성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해소하는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잖아요. 의미 있는 퀴어 영화처럼. 싸울 수도 있고, 모른 척 숨어살 수도 있는. 우리는 이미 장벽이 없는 것처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엄연히 있는 걸 모른 척 할 순 없겠지만, 어느 사상적으로 까불게 되면 장벽은 무색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10. 감독님들이 각각 가장 애정 하는 신은 무엇인가요? ‘이 신은 대박이다’하는 신이 있었나요?
윤성호 : 7화에 선우은숙(재이)과 경주가 골목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임오정 감독님이 연출하신 부분인데, 그때 저는 그 장면에 공들일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빨리 빨리 찍으려고 했죠. 전 예산까지 신경 써야 했으니까요. 하하.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내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방해될까 싶어 촬영할 때 먼저 간 적도 있었어요. 옆에 있으면 괜히 한 마디 하고 싶어지니까. 그래서 그날도 대충 찍으라고 잔소리를 하다가 집에 갔어요. 근데 이렇게 예쁘게 찍을 줄은 몰랐죠. 하하. 임오정 감독님의 작품들은 리얼리즘이 강한 작품들이었는데 또 트렌디하고 유치한 장면도 잘하시더라고요. 저는 여러모로 두 분께 감사했습니다. 제건 뭐 다 좋았고요. (일동 웃음)
한인미 : 저는 임오정 감독님이 찍으신 2화의 키스신이요. (웃음)
임오정 : 그럼 저도 인미 감독님 것 중에… 하하. 세랑이와 경주가 누워서 팔베개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예쁘더라고요. 연주 씨가 마치 이니스프리 광고처럼 나왔거든요.(웃음) 남녀 불문하고 모두가 반하겠다 싶었어요. 하하.
10. 반대로 연출하기 어려웠던 신이 있었나요?
임오정 : 첫 화 욕조신? 시간에 쫓기는데다가 좁은 공간에서 몸을 쓰고, 물에 젖고 말리고 했어야 했거든요. 이걸 3일 촬영 중에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렸어요. 나중엔 배우들한테 너무 미안해지더라고요.
한인미 : 저는 “같이 늙자.” 이 부분이요. 하하. 대본이 마지막에 나온 거였거든요. 마지막 장면이 세랑이 덮치고 두 사람이 구르면서 끝나는 거였거든요. 그것도 현장에서 바뀐 거였어요. 운동화 협찬 같이 ‘마지막에 신발이 보이도록 하자!’라고 했어요. 그전엔 둘이서 다른 애드리브로 장난치는 모습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대사가 주어진 부분은 배우들이 잘해내줘서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었는데, 끝에 대사가 없는 상황에서 합을 맞추는 게 어려웠어요.
10. 두 소녀들의 사랑이 설렐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들의 섬세함이 빛난 거 같네요. 세랑과 경주, 두 사람의 아름다운 감정에 대한 연출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임오정 : 만화적인 면을 상정한다고 해서 완전히 만화를 따라한 건 아니었어요. 경주가 소심하게 혼잣말을 하는 부분은 나를 닮아있었고, 또 어떤 부분은 윤 감독님을, 어떤 부분은 인미 감독님을 닮아 있었거든요. 우리 일상의 인물들을 과장해서 따왔다고 보면 돼요. 세랑과 경주는 무조건 케미가 잘 맞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 낯설지 않고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죠. 한 마디로 배우들이 예뻐 보였으면 싶었어요. 하하.
한인미 : 촬영 스케줄이 있어서 진행이 빨랐지만, 배우들이 대사를 내뱉을 때는 진심으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두 사람이 뭘 해도 사랑스러워 보일 테니까요.
윤성호 : 기본적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싫어해주시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성 동성애를 막장 드라마처럼 희화화해서 비난을 받는 다는 이런 걱정은 없었어요. 가령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나왔다고 해서 ‘긴 머리의 예쁜 여자 혐오가 생기겠다’ 이런 마음을 갖진 않잖아요. 정체성을 지지하는 코미디가 나온다는 건 우리 시야가 조금씩 넓어진다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우리가 넓혔다는 건 아니에요. 이미 틈은 있었죠. 동성애자라서 캐릭터가 막무가내인 게 아니에요. 이성애자도 얼마든지 막무가내 캐릭터가 있을 수 있어요. 세랑의 모델 중 하나는 ‘말괄량이 삐삐’에요. 집을 어지럽히고 말도 안 듣는. 사실 삐삐가 아동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혀준 게 있어요. 즐거운 측면으로.
임오정 : 그럼 경주는 ‘빨간머리 앤’ 아닐까요?
윤성호 : 아,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게. 그럴 수도 있겠네요. 10. 그러고보니 마지막 8화의 제목이 ‘이게 엔딩일 리가 없잖아’잖아요. 아직 해결이 안 된 궁금증이 많이 남았어요. 시즌 2를 기대해도 좋을까요.
윤성호 : 제일 중요한 건 두 감독님들이 상황이에요. 하하. 감독님들이 안 된다고 하면 빨리 ‘케미’돋는 다른 감독들을…하하하. 마음 같아선 두 분이랑 하고 싶어요. 배우들은 다른 인터뷰보니까 되게 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럼 이제 예산과 유통의 문제죠. 진지하게 말하자면 다음 이야기는 19금이 안 걸리고 떳떳하게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드라마는 10대 타깃은 아니에요. 근데 성인들도 인증 창에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가령 텐아시아에서 재밌는 칼럼을 썼는데 로그인을 해야 볼 수 있다면 망설이다 포기하는 분도 있겠죠? 그걸 해결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인 것 같아요.
10. 대중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대세는 백합’만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한인미 : 무식함? 하하. 자폭이긴 한데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대책 없이 뻔뻔한 거. ‘무대뽀’ 정신이랄까. 잊고 있던 순수함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애 같고 개구쟁이 같은.
임오정 : 약간 맥락은 다를 수 있는데 여자판 만화 ‘이나중 탁구부’ 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대세는 백합’은 로맨스에 기반을 뒀지만 자기네들끼리 모아놨더니 뻔뻔하게 재밌는 상황을 만들잖아요. 윤성호 감독님이 그런 캐릭터들을 옛날부터 많이 생각 해온 것 같더라고요. 극단적인 캐릭터들을 모아놓으면 어쨌든 재밌는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10. 임오정, 한인미 감독님은 웹드라마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신거잖아요. ‘대세는 백합’이 앞으로의 연출 방향에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대세는 백합’ 전 후로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뀌었나요?
한인미 : 지금까지 한식만 먹어왔다면 이제는 다른 음식도 먹어봤다는 거? 낯선 재료를 다음 작품에서는 그 전보다 겁을 덜 먹고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하던 장르가 아닌 새로운 장르의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내 세계가 넓어진 느낌이에요.
임오정 : 저도 비슷해요. 예전에는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있지도 않은 ‘임오정’ 만의 스타일에 제한 시켜놓은 느낌이었거든요. 이번엔 백합물이란 장르를 통해 내 걸 버리고 몰입했다는 느낌이에요. 다른 장르들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생각도 더 유연해진 것 같아요. 가장 큰 변화는 매력 있는 배우들을 안 것이 큰 자산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 사실 대중들이 반응을 해주는 게 신기했어요. 우리는 어떻게 보면 우물 같은 곳에 있던 사람들인데, 마니아가 생기고 대중이 호기심을 가져준다는 게 너무 신기했죠. 안 읽어 본 댓글이 없어요. 하하.
10. 아쉬움이 남으셨나요?
한인미 : 할 수 있는 만큼 한 것 같아요. 사람이 한 80% 정도만 만족하고 살아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일동웃음) 촬영 당시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정말 뿌듯해요. 왠지 아쉬움이 남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해요.(웃음)
임오정 : 신기한 게 원래 영화를 찍으면 영화와 나와 화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왜 저렇게 찍었지?’ 이런 거. 하하. 근데 ‘대세는 백합’은 화해가 빨리 된 것 같아요. 배우들이 귀여워서인지, 다른 매력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웃음) 아마 스태프 분들이 옆에서 독려해준 덕분인 것 같기도 해요.
한인미 : 혼자하는 작업이었으면 계속 돌려보고 자책했을 텐데, 스태프 분들이 좋은 말 해주시고, 공개 됐을 땐 네티즌들이 좋은 말을 해주시니까 나 혼자 끙끙 앓는 시간이 없더라고요.
임오정 : 그런 과정조차 ‘대세는 백합’ 비슷한 느낌이에요. 롱테이크였던 지난 날에 비해 점프 컷으로 뛰어넘은 느낌. 하하. 따지고 보면 다 처음이었거든요. 공동연출, 웹드라마, 백합물 등. 실제 나는 엄청 소심한데 어떻게 이렇게 ‘무대뽀’로 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10. 마지막으로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남은 ‘대세는 백합’을 ‘~가 ~일리 없잖아’ 같은 드라마의 부제처럼 정의를 내리자면요?(웃음)
임오정 : 안 돼요! 하하하.
한인미 : 이게 아쉬움이 될 거 같은데요?(웃음)
임오정 : ‘이게 엔딩일 리가 없어?’ 하하. 안 돼. (부끄러워서) 못하겠어요. 하하.
한인미 : 저도, ‘이게 끝일 리 없어’ 하하. 시즌 2를… 하하하.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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