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김하늘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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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의 얼굴은 복잡한 미로다. 차갑고 새침하고 도도한 것 같다가도, 또 어쩔 때는 수수하고 아련한 얼굴로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얼굴이 양극단에서 팽팽하게 맞서며 배우 김하늘을 기실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 왔으리라. 배우 김하늘을 만나러 가는 길. 20년 전 우연히 연예계에 발을 내딛은 이 가녀린 여배우는, 무엇을 동력으로 험난한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멜로퀸/로코퀸’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지 내심 궁금했다. 그녀는 그 힘을 ‘예민함’이라 했다. 예민함을 말하는 김하늘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예민함’이 희미해진 자리에, ‘여유’가 들어앉아 있었다.

10. ‘블라인드’(2011)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5년만의 스크린 복귀입니다. 왜 이렇게 늦어졌나요. 수상으로 인한 차기작 선택에 부담이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하군요.
김하늘: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전, 오히려 더 활발하게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인연이고 운명이잖아요. 인연이 안 닿아서 의도와 다르게 스크린 컴백이 늦어졌어요.

10. 당신이 충무로에 없었던 5년 동안 여배우들을 위한 시나리오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그 부분에 대한 갈증은 없나요?
김하늘: 그런 분위기를 느끼긴 해요. 하지만 갈증보다는 부럽다 쪽인 것 같아요. 남자영화를 보면서도 느끼지만 ‘나를 잊지 말아요’ VIP 시사회 후에도 많이 느꼈어요. VIP 뒤풀이 자리에 (정)우성 선배님 차기작(‘아수라’)에 나오는 남자 배우들이 모두 와서 끝까지 응원을 하지 뭐예요. 부러웠어요. ‘나도 여배우들과 저렇게 함께 하고 싶다. 여자 동료들에게 힘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10. 혹시 이재용 감독의 영화 ‘여배우들’(2009)을 봤나요?
김하늘: 너무 재미있게 본 영화예요.
김하늘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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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6명의 여배우(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가 자기 자신을 직접 연기한 영화인데, 만약 당신도 ‘여배우들’에 출연했다면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김하늘: 하하하. 저만의 극대화된 캐릭터가 그려지지 않았을까요? 영화를 보면 배우 각자의 진짜 캐릭터가 일정부분 녹아 있잖아요? 제 경우엔 로코(로맨틱코미디) 이미지와 멜로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걸 섞어서 다중 이미지로 그려내면 어땠을까 싶어요. 선배들 앞에서는 굉장히 공손한데, 후배들 앞에서는 약간 도도한?(웃음) 그렇게 캐릭터를 잡고 했으면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Q. ‘나를 잊지 말아요’는 당신의 이미지 중 애잔한 멜로에 집중한 영화입니다. 작품을 선택하는데 ‘제작자 정우성’과 ‘배우 정우성’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나요.
김하늘: 제작자 정우성에 대해서는 생각을 거의 안했던 것 같아요. 제작은 제 영역이 아니잖아요. 그 부분은 우성 선배가 잘 하리라 믿었죠. 배우 정우성에 대해서는 생각했어요. 시나리오 속 캐릭터와 근사하게 어울리겠다, 싶었죠.

Q.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잘 안다고, 여성감독(이윤정)의 영화라는 점이 멜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김하늘: 너무 편했어요. 같은 여자로서 감성이 굉장히 잘 맞았거든요. 우성 오빠가 “나, 소외된 느낌이야”라고 말할 정도였어요.(웃음)

10. 여성감독과의 호흡은 ‘6년째 연애중’(2007) 때 경험한 바 있어요.
김하늘: 네. 그땐 박현진 감독님과 저, 윤계상 씨 셋이서 서로의 연애스타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번엔 사뭇 느낌이 달랐어요. 뭐랄까. 윤계상 씨가 여성들과 감성이 통하는 게 많아요. 그에 비해 우성 선배님은…우성 선배님은 진짜 남자예요! 하하하. 다른 것에서 오는 재미가 또 있더라고요. 서로의 의견을 많이 주고받으며 장면 장면을 만들어갔어요.
김하늘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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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번 현장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주로 오갔나요.
김하늘: 데이트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이 “꿈꾸는 데이트를 생각해 보라”고, “넣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아! (남녀 간의 애정을 짙게 보여주는)욕조 신은 우성 오빠 아이디어에요. 어느 날 오빠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오더니 “너무 좋은 장면을 생각해 냈어!” 이러는 거예요. 머뭇거리는 느낌이 이상해서 “뭔데? 솔직히 말해 봐” 했더니, 욕조 신이었어요. 저는 오글거리는 것 같아서 “오빠, 그건 아닌 것 같아. 우리 영화와 어울리지 않아” 했는데, 자꾸 “하늘아, 굉장히 좋은 신이야” 하더라고요.

10. 남자들의 로망인건가요?(일동 웃음)
김하늘: 하하하하. 오빠가 그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를 너무 좋아해요. “내가 지워줄게”라고 하는 진영(김하늘)의 대사를요. 그래서 그 신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강한데, 저는 좀 오글거려서…(웃음) 그런데 그 장면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구나, 다시금 느끼는 기회였어요.

10. 드라마 ‘신사의 품격’ 때도 오글거릴법한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요.(웃음)
김하늘: 그래도 그때는 오글거림을 나름 밝게 표현해서 달랐던 것 같아요.(웃음) 개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든, 정극이든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절제되게 표현하는 게 제 성향과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미지를 변신할래’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라는 건, 저에게 부담인 것 같아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펼쳐가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Q. 국내외를 막론하고, 욕심이 나는 영화 속 캐릭터가 있다면요?
김하늘: ‘블루 재스민’(2013)의 케이트 블란쳇! 너무 매력적이에요. 한국에도 그런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더 리더-책을 읽어주는 남자’(2008)의 케이트 윈슬렛도 멋져요. 사실 ‘타이타닉’(1997) 땐 그녀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제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팬이었거든요. 속으로 ‘안 어울린다. 별로다’ 그랬죠. 그런데 배우로서의 성숙해 가고,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는 걸 보면서 팬이 됐어요. 잔주름조차 너무 멋져요. 여배우가 어떻게 나이 먹어야 하는지, 케이트 윈슬렛을 보면서 많이 느껴요.
김하늘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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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당신의 과거 작품을 보면 어때요? 많이 변한 것 같나요?
김하늘: 변하기도 변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당시에는 ‘조금 더 잘 했으며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컸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오히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의 저를 응원해 주고 싶달까요.

10. 후회가 많이 없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네요.
김하늘: 제가 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 편이긴 해요.

Q. 정우성 씨가 ‘나를 잊지 말아요’는 김하늘의 영화라는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더라고요. 든든한 선배 같은 느낌이 드는데, 현장에서는 어땠나요.
김하늘: 우성 선배가 저는 너무 편해요. 처음에는 그 눈빛을 보는 게 좀 힘들었어요. 우성 선배 특유의 강렬한 눈빛이 살짝 부담돼서 초반엔 NG를 조금 냈죠.(웃음) 그런데 이미지가 그럴 뿐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작자이기도해서 더 많은 모습을 봤죠. 성향상 주변에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지만 제작자로서 주변을 챙기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덕분에 오빠와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0. 5-6년 전에 만났어도 지금처럼 편했을까요?
김하늘: 음…아니요. 그렇진 않았을 것 같아요. 5-6년 전이라면 제가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을 때고, 성격적으로도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편이 아니었어서…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10. 변화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김하늘: 자연스럽게 변했는데…(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신사의 품격’ 때부터 조금 달라졌어요. 왜 그랬나 생각해보니, 이전까지는 연하들과 작업을 하거나 극을 이끌어 가야 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어요.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다 보니, 부담이 컸죠. 그러다가 ‘신사의 품격’ 때 오랜만에 (장)동건 오빠를 만났어요. 연기 선배를요. 동건 오빠도 그렇고, 모두들 저를 많이 예뻐해 줬죠. 너무 편해서, 현장에서 막 “오빠~” 이러고 다녔어요. 그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아요.
김하늘05
김하늘05
10. 드라마 ‘로망스’와 ‘신사의 품격’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에서 남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죠. 최근엔 아예 영화 ‘여교사’를 찍었는데요.
김하늘: 그러니까. 교사라는 직업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신기해요.(웃음) 그런데 제가 워낙 학교를 좋아해요. 학생들이 교복 입은 모습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학교 씬 촬영할 때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요.

10. 학창시절 교복 입은 김하늘은 어땠나요.
김하늘: 전 교복 입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심지어 지금도 집에 교복을 보관해 두고 있어요. 제가 여고를 나왔는데,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언제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여고시절을 꼽을 거예요.

10. 아, 곧 있을 결혼 축하드립니다. 한때 결혼은 여배우에게 커리어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최근 전지현 씨도 그렇고 여배우들이 결혼 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죠. 결혼을 앞두고 동료들의 그런 모습에 일견 마음이 든든하기도 할 것 같아요.
김하늘: 맞아요. ‘열심히 하면 외면 받지 않겠구나’라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꼭 그것 때문이 아니라도, 마음이 예전과 달리 굉장히 편해요.

10. 안 그래도, 너무 편해 보여서 내심 놀라고 있어요.(웃음)
김하늘: 그렇죠? 요즘 편해 보인다는 말을 진짜 많이 들어요.(웃음)

10. 사실 뾰족한 느낌이 강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왔어요. 원래 이렇게 편한 분위기인데 제가(대중이) 오해를 했던 건가요, 아니면 바뀐 건가요.
김하늘: 바뀌었어요. 이런 변화를 저 스스로가 느껴요. 이전에는 예민하고 뾰족했던 게 맞아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그때는 예민한 게 맞았던 것 같아요. 예민했어야 했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감독님들의 러브콜로 작품을 하게 됐어요.
김하늘06
김하늘06
10. 영화 ‘바이준’(1998)이죠?
김하늘: 네. ‘바이준’과 드라마 ‘햇빛 속으로’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때 나라는 사람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어요. 교복만 입고 살다가 갑자기 프로의 세계에 딱 뛰어들었으니까. 대단한 분들 사이에서 잘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담이 어마어마했어요. 혼도 많이 났고, 다른 연예인들과 눈만 마주쳐도 상처를 받았어요. 그렇다고 그만두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외적인 부분보다, 연기가 먼저’라는 저만의 중심이 확고하게 섰어요. 제 연기에 방해되는 것들에 항상 예민하게 날이 서 있었던 것 같아요.

Q. 연기자로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었군요.
김하늘: 네. 가령 감정 신을 촬영해야 하는데 주위에 소음이 있으면 예민해지는 거예요. 너무 중요한 신에서 상대배우가 NG를 내면 ‘아, 내 감정 깨지는데.’ 이랬죠. 그러다보면 예민한 것들이 겉으로 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사실 저는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두 저를 보고 있었더라고요. 제가 완벽하게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이상, 보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그랬어야 그나마 연기적으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로인해 이미지 적으로 놓친 게 있을 수도 있고, 오해를 받은 부분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는 그랬어야 했던 것 같아요.

10. 배우로서의 자존감이 강한 것 같아요.
김하늘: 진짜 강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만의 방법을 알아갔던 것 같아요. 이번 ‘나를 잊지 말아요’의 경우도 너무 즐겁게 작업을 했어요. 그게 한 번에 변한 건 아니에요. 내 안에 무언가들이 쌓이면서 점점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어렸을 때 주변을 살폈다면, 아마 제 연기의 집중도가 떨어졌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저만의 노하우가 있으니까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현장을 조율할 수 있게 됐어요. 다행히 지금은 그런 배우가 된 것 같아요.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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