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는 박훈정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자, 영화화 된 다섯 번째 시나리오 작품이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의 각본가로 이름을 알린 후 ‘혈투’로 데뷔한 박훈정 감독은 지난 5년 동안 코너에 몰린 남자들을 대립과 충돌의 세계로 유인한 후, 매몰차게 가격해왔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복수의 대상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가하거나(‘악마를 보았다’), 추악한 먹이사슬로 엮이거나(‘부당거래’), 고립된 공간에서 투쟁하거나(‘혈투’), 서로를 속고 속이며(‘신세계’) 비극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 박훈정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대호’는 분명 도드라지는 영화다. 단순히 동물이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다. ‘대호’가 껴안고 있는 메시지가 그의 주특기인 ‘대립’이 아니라, 충돌 속에 웅크린 ‘공존’이기 때문이다. 박훈정 감독의 작품이니 으레 ‘김대호(호랑이) vs 천만덕(최민식)’의 대결이리라 기대한다면 영화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대호’가 액션 시퀀스 못지않게 중요하게 돌본 것은 욕망 앞에 무너져 내린 ‘어떤 정신’들이다. 변해버린 시대에 맞선 이들의 ‘슬픈 운명’이다. 그리고 혼탁하게 흘러가는 급류의 한 가운데서도 끝끝내 지키고 싶었던 일종의 ‘직업정신’이다. 어느 방향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다양한 해석을 열어 둔 것이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일 테니.
때는 1925년 일제강점기. 일본군은 지리산의 마지막 호랑이 잡기에 몰두한다. 그들은 조선인들이 영물로 여기는 호랑이를 잡는 것이 곧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라 믿었다. 호랑이 사냥에 일본군은 물론 조선포수들까지 회유한 상황. 하지만 단 한 명, 명포수 천만덕을 끌어들이는 데는 번번이 실패한다. ‘도를 넘는 살생은 안 된다’는 것이 천만덕이 지닌 논리. 하지만 호랑이 잡기에 혈안이 된 구경(정만식)의 물욕으로 인해 만덕과 대호는 예기치 않은 운명의 기로에 놓인다.
‘대호’는 호랑이 김대호 씨와 그런 대호와 닮아 있는 한 남자 천만덕 씨의 이야기다. 카메라는 종종 대호의 시점에서 산 아래 인간들을 조망한다. 어린 짐승들까지 마구잡이로 포획하는 잔인함, 동물의 가죽을 무자비하게 벗기는 탐욕의 몸짓들. ‘산군’이라 불리는 대호는, 인간과 자연이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생태계의 질서가 끝자락에 왔음을 명징하게 예감했으리라. 영화에서 그런 대호의 시선을 동일하게 읽어내는 자는 천만덕이 유일하다. 그러니까 대호와 천만덕은 변해버린 시대와 마찰을 일으키는 존재들이자, 자연과 사람이 공존했던 시절의 끝자락을 어떻게든 부여잡으려 한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비였다. 영화에서 천만덕을 움직이는 동력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의 굴레를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또 떠나보낸 천만덕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은 과연 무엇일까.
‘대호’는 그 이름만큼이나 배짱이 두둑한 영화다. 영화라는 것이 본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구현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렇게 컴퓨터 그래픽으로 되살아난 대호의 기술적 성취를 100% 완벽하다 추앙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컴퓨터 그래픽은 저 혼자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밀도를 높이는데 복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카리스마와 애절함을 겸비한 대호에 끝내 설득당하고 말았다.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영화라고 해서 이 영화에 스펙터클한 액션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는 대호의 위용을 영화 곳곳에서 유용하게 활용한다. 대호가 일본 포수대가 맞붙는 장면은 특히나 장관이다.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탄생했을 이 장면은 ‘동물의 왕국’에 다름 아니다. 포수대의 팔 다리를 물어뜯고, 머리를 집어삼키는 모습에서 공포와 쾌감이 함께 고개를 든다. 이 영화의 의외의 수확이라면 호랑이만 있는 줄 알았던 영화에 또 다른 생명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밝히지는 않겠지만, 제3의 생명체가 등장하는 예상치 못한 시퀀스에서의 스산함이 마음을 붙들어 맨다.
‘대호’는 최민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최민식은 머리보다 주먹이 앞서는 양아치나 잔인한 악역을 연기할 때도 좋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고집스러운 역할도 더 없이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배우다. 영화를 보다보면 대호와 최민식의 얼굴이 닮아있는 듯한 착각 아닌 착각에 빠지는데, 호랑이와도 ‘케미’를 보여주는 이 배우의 재능이란. ‘대호’가 지닌 또 하나의 발견이라면 최민식의 아들로 등장하는 성유빈. 올해 열여섯의 이 배우야 말로 발톱을 숨긴 호랑이다. 앞으로가 궁금하다.
‘대호’는 느린 영화라기보다는 진중한 영화다. 오락성을 위해 호흡을 더 빠르게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본군을 이용해 민족감정을 휘두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박훈정 감독의 말마따나, 최민식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 일본군과 싸웠다면 보다 많은 대중을 끌어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훈정 감독은 설익은 교훈이나 선동을 지양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본다. 영화가 대호-천만덕의 특수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여운이 보편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에는 이러한 과감한 선택이 있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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