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정화 기자]
박소담 : 그땐 머리를 최대한 늘려도 1~2cm 정도 밖에 안 됐다. (웃음) 이젠 고데기로 머리를 만질 수 있게 되다 보니 더 빨리 길었으면 싶다.
Q. 지금의 커트 스타일은 마음에 드나.
박소담 : 너~무 좋다. 원래부터 커트 머리가 하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커트는 눈 크고 이런 애들이 해야 한다면서 절대! 하지 말라는 거다. 그래서 스무 살 땐 앞머리는 뱅 스타일로 하고 귀밑 2~3cm 되는 단발을 했지. (웃음)
Q. 당신을 두고 ‘커트 머리가 신의 한 수’란 얘기가 많더라.
박소담 : 아! 하하하.
Q. ‘검은 사제들’에서의 인상적인 연기 덕분에 사람들이 박소담의 스타일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게 아닐까 했다.
박소담 : (멋쩍은 듯) 아이고.
Q. 인기는 좀 실감하나.
박소담 : 아직은 길을 다닐 때 많은 분들이 알아보진 않지만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나 자신도 아직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기사에 대한 반응을 계속 찾아 보고 있는데, 댓글도 많아졌더라. 어떻게 내 연기를 개선해 나가고 더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많이 관심 가져주시는 거 같아서 기분도 좋고, 부담도 되고, 그렇다.
Q. 기억에 남았던 인상적인 얘기는 뭐였나.
박소담 : ‘좋은 배우를 만난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는 얘기를 보고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Q. ‘검은 사제들’의 영신 역할이 워낙 강렬했지만, 올해에 꽤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최근 종영한 온스타일 드라마 ‘처음이라서’까지,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박소담 : (앞의 질문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가) 아! ‘얘가 얘야?’라는 말도 듣기 좋았다. (웃음)
Q. ‘검은 사제들’과 ‘처음이라서’를 모두 본 이라면, ‘영신이가 송이(‘처음이라서’에서의 역할 이름)야?’란 말을 할 수 밖에 없을 거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인물들이다.
박소담 :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거 같다. ‘얘가 얘야?’라는, 뭔가 믿기 어려우실 것 같은 그 느낌이 마음에 든다.
Q. 레드카펫 위에 선 모습에 ‘얘가 얘야?’라는 말이 또 나오게 되기도 했다. (웃음) 영화제 때마다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고운 자태를 뽐내지 않았나.
박소담 : 다들 곱게 하고 오니 나도 같이 걸으려면 어느 정도는 하고 가야 했다. (웃음) 레드카펫에 선 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가 처음이었고, 그 다음이 대종상, 청룡영화상, 이렇게 세 번이다. 기분이 어땠냐고? (웃음) 부산은 (레드카펫이) 어마어마하게 길잖아. 그날 비도 오고 강풍도 불어 걱정이 많았는데 걸어가기 시작하니 양쪽에서 많은 분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 소리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걸어가니 그 길이 두렵지 않았고,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정적 속에 걸어가야 했다면 너무 멀게 느껴졌을 거다. 그때만 해도 (‘검은 사제들’이) 오픈 되기 전이었고 나를 많이 알아주실 때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환호해 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Q. ‘검은 사제들’ 얘기를 좀 해보면,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에 있어 헤어나 의상, 메이크업 같은 것들이 영향을 많이 주지 않나. 이번에 영신 역을 위해 머리도 밀었고, 거의 맨 얼굴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섰다. 덧입힌 게 아니라 많은 것들을 뺐는데, 연기하기 어렵지 않던가.
박소담 : 머리를 밀고 나니 좀 더 내려놓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머리를 밀어 무(無)의 상태를 만들어야 여러 모습을 씌울 수 있다고 얘기하셔서 나도 동의했다. 실제로 머리를 밀고 침대에 묶여 보니 왜 밀어야 했는지 이해도 됐고. 여러 가지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그 역할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았다.
Q.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영신 캐릭터는 모티브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다.
박소담 :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 영상도 없어서 감독님과 계속 얘기 나누고 선배님들께 아이디어 얻고 나도 계속 여쭤보고 하며 만들어 갔다. Q. 영신을 표현할 때 1순위로 둔 건 뭐였나.
박소담 : 아무래도 우리나라 말이 아니면 관객들은 자막을 읽게 되지 않나. 그렇기에 내가 외국어로 연기할 때 이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감정은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인격체들이 지닌 분노와 조롱의 감정 등을 낯선 얼굴인 내가 낯선 목소리로 낯선 언어를 구사해도 관객이 잘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하는 게 가장 컸다.
Q. 학창 시절에 밴드 보컬을 해서인지 목소리로 음가가 있는 외국어를 연주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박소담 : ‘검은 사제들’은 노래할 때나 연극하면서 했던 호흡과 발성을 다 활용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굵기도 다양하게 변화시켜보면서 각 언어에 맞는 목소리 톤을 찾는 과정들이 재미있더라. 연기는 원래 정답이 없는 거라지만, 이번엔 더 정답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다양하게 시도했다.
Q. 손발이 묶인 채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계속 뿜어내야 하는 것도 힘들었을 거다.
박소담 : 묶여 있어도 ‘컷’하면 어차피 풀어 주실 걸 아니깐 처음엔 괜찮았다. 그런데 한 열흘 정도 지나고 나니 (목 옆쪽을 가리키며) 여기에 무리가 많이 가서 치료를 계속 받았다. 가만히 묶여만 있는 게 아니라 발악을 하는 거였으니깐. (김)윤석 선배님이 내 손목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면서 “소담이 핸드크림 좀 발라줘” 하시며 계속 신경 써주셨다. 선배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혼자 해내기 진짜 힘들었을 거다. 원래대로라면 소품팀이나 미술팀이 들어와서 묶여 있는 줄을 끊어주고 해야 하는데 윤석 선배님이 조금이라도 빨리 풀어 주시려고 직접 묶어 주시고 끊어 주셨다. 선배님 덕분에 상처 하나 나지 않고 잘 촬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항상…
Q. 광주의 아버지! (웃음)
박소담 : 맞다. 광주(‘검은 사제들’ 촬영지)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웃음) 윤석 선배님이 “소담이 힘드니깐 소담이 꺼 먼저 찍고 내가 기다릴게”라고도 해주셨거든. 배려를 정말 많이 받았다. 또, (강)동원 선배님이 간식도 많이 쏘셔서 간식도 꾸준히 먹고, 매일 밤 다 같이 모여 술도 마시고. (웃음)
Q. 강하고 극단적인 감정을 계속 연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캐릭터가 품고 있어야 하는 감정이 실제 자신에게 침투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나. 그런 건 없었나.
박소담 : ‘검은 사제들’ 오디션 때 (감정에서) 바로 빠져나올 수 있는 밝고 긍정적인 친구를 찾고 계셨다는 얘기를 하셨다. 오디션을 볼 때 내게서 그런 모습이 보여 얘라면 할 수 있겠다 싶으셔서 선택하셨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게 또 현장에 가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윤석 선배님, 동원 선배님 모두 ‘슛’하면 에너지를 막 몰아 붙이셨다가도 ‘컷’ 하면 바로 (감정에서) 빠져 나오셔서 다같이 웃으며 얘기를 했다. 그랬기에 그런 감정 상태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었다.
Q. 선배들의 역할이 컸구나.
박소담 : 유쾌하게 농담도 건네 주시고 장난도 많이 쳐주시고, 계속 용기도 주셨다. “진짜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마, 너 많이 무서워!”라고. (웃음)
Q. 장재현 감독은 무슨 얘기를 많이 해주던가.
박소담 : 네 가지 인격체이니 다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너무 많이 고민해서 거기에 몰두하지 말라 하시면서.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며 끝까지 나를 믿어주시기도 했고. 난 진짜 괜찮았는데 보기에 안쓰러우셨는지 매번 조심스럽게 이렇게 한 번 더 해볼 수 있겠느냐며 내 상태를 먼저 체크해 주셨다. 감독님께 너무 감사 드린다.
Q. 현장에서 칭찬도 많이 들었던 거 같다.
박소담 : 칭찬이라기 보단 다같이 얘기를 많이 하며 재미있게 했다. 밤에도 회의하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잘 살려낼지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원래 작품이란 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 작업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특히 더 많은 소통을 했던 거 같다. 선배님들과 그런 연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감사했다. Q. ‘검은 사제들’ 촬영이 끝나고 온스타일 드라마 ‘처음이라서’에 들어갔다. 무거운 정서를 털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 순서상 좋았을 거 같은데. 게다가 또래들과 함께하지 않았나.
박소담 : (이)이경 오빠를 비롯해 다섯 명이 15년 지기 절친(절친한 친구)들로 나와야 했는데 지금은 진짜 절친이 됐다. 촬영은 끝났지만 다 연락하고 지낸다. (김)민재가 실제로 스무 살이어서 민재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우리가 들어주고 얘기하기도 하고. 나중엔 다 너무 친해지는 바람에 현장에서 통제가 안 돼서 감독님이 그만 친하게 지내라고, 그만 만나라고 하실 정도였다. (웃음)
Q. ‘처음이라서’가 스무 살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라, 그 시절 일이 떠오르기도 했겠다.
박소담 : 연기가 하고 싶고, 예술학교에도 가고 싶었는데, 스무 살에 학교에 들어가게 돼서 정말 신이 났다. 매일 밤 과제를 끝내고 술자리에 가서 아침까지 있다가 샤워실에서 애들이랑 다같이 씻고 바로 9시 수업에 들어가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내가 꿈꿨던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신나서 진짜 재미있게 생활했다. 항상 학교에서만 놀았지만, 하하. 그땐 그게 너무 좋았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후배들에게 좀 나가서 놀라고, 여기 돌곶이(박소담이 다닌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는 지역)에 그만 좀 있으라고 한다. 그놈의 돌곶이! (웃음) 스무 살 땐 학교 근처에 카페가 하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카페랑 빵집이랑 다 생겼거든. 술집도 그땐 다 (연기과) 1기 선배님 때부터 다니던, 오래된 추억이 있는 곳 두 세군 데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 생겨서 나름 세련돼졌다. 하하.
Q. 그런 기억들이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되지 않나.
박소담 : 맞다. 촬영하면서 피곤했지만 그 피곤한 걸 그냥 다 잊게 할만큼 너무 재미있었다. 다들 몇 시간 못 자고 만날 텐데도 웃으며 “좀 이따 봐~” 이랬다. 진짜 좋은 친구들을 얻었다.
Q. 다섯 친구들(박소담, 민호, 김민재, 이이경, 조혜정)이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 받았던 게 드라마에 다 묻어났다.
박소담 : 또래인데도 소통이 안 됐다면 연기하기 힘들었을 거다. 드라마를 찍어본 게 처음이라 모르는 게 너무 많았는데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어서 좋았다.
Q. 이번에 드라마를 찍으며 느꼈을 텐데, 드라마랑 영화, 많이 다른가?
박소담 : 드라마 현장에 처음 가서 내가 당황했던 게, 모니터를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근데 오히려 그러다 보니 상대 배우에게 더 많이 물어볼 수 있게 되더라. “진짜 괜찮았어?” 물어보고 서로 더 얘기하고 조언해 주고. 영화는 내가 찍은 걸 나뿐만 아니라 촬영 감독님이건 조명 감독님이건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한 번만 더 가자고 하면 계속해서 몇 테이크 더 가잖아. 그런데 이건 뭐, 한 번 찍었는데 바로 ‘오케이(O.K.)’라고 하니 ‘내가 진짜 잘해서 오케이인가?’ 싶어 처음엔 모르겠더라. 내가 밝은 캐릭터도 처음 해 봐서 혼란이 왔었는데 감독님에게 계속 “저희 진짜 괜찮아요?” 물으니 “나 믿으라니깐. 나도 안 괜찮으면 오케이 안 해”라고 하셔서 “그럼 감독님 믿고 가겠습니다!” 했다. (웃음) Q. ‘처음이라서’를 보며 많이 웃었던 장면이 태오(최민호)가 사다 준 옷을 입고 립스틱을 바르며 노래를 부르던 신(5화)이었다. “립스틱 바르고~♬”
박소담 : 그 전에 이미 경찰서에서 춤(2화)도 췄고… 그날 윤현민 선배랑 정경호 선배를 처음 뵌 거였는데 새벽 두 시부터 촬영이 진행돼서 감독님이 한 번에 똑바로 안 하면 몇 번이고 더 갈 거라고 그러시는데… 진짜, 으악! (웃음) 카메라 앞에서 그런 연기를 해보는 게 처음이라 민망했다. 잘 춰야 하는 느낌도 아니고 하니 더 그랬던 거 같다.
Q. 그래서 송이가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박소담 : 스무 살이고, 송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했다. 립스틱도 정말… 아… (웃음) “감독님, 이거 진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매일매일 물어봤다. 옆에서 친구들이 많이 응원해줬지. 민재도 “누나는 그냥 송이 같아, 그냥 해”, 민호도 “야 그냥 빨리 해”라고. 옆에서 “할 수 있겠어?” 이러는 애가 한 명도 없고 그냥 다 “빨리 해, 그냥!” (웃음) 그 정도로 서로 편해졌다. 불편했다면 진짜 난 못했을 거다.
Q. 하하. 그런데 송이의 상황은 왜 그리 힘겹기만 했을까. 엄마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고, 어린 동생은 이모 집에 맡겨졌고, 송이는 친구 태오(민호) 집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그런 송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박소담 : 여기에 나왔던 캐릭터들 중 쉬운 캐릭터는 하나도 없었다. 8부작 드라마라 작가님도 그 안에 담아 내고 싶은 부분이 훨씬 많으실 수 있으셨을 텐데 그걸 압축적으로 넣으셔야 했다. 만약 이게 영화였다면 그런 어두운 부분들을 좀 더 극대화 해서 보여줘야 하는 게 있었을 텐데 드라마는 사실 그렇게 무겁게만 가면 보기 힘들지 않나. 나도 아직 드라마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영화와는 분명 다른 부분들이 있더라. 시청자들이 집에서 편안하게 앉아서 TV를 틀고, 또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지 않는 경우도 많고 하니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짧게 짧게 잘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이번에 내가 정현정 작가님, 이정효 감독님과 첫 드라마를 한 건 진짜 엄청난 행운이었다. 드라마 현장이었지만 리딩도 많이 했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게끔 감독님이 충분히 기다려 주시기도 하셔서 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직은 좀 더 큰 드라마로 가기엔 좀 두려운 부분도 있고, 준비가 덜 된 거 같기도 하거든.
Q. 정말, 아직은 좀 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박소담 : 맞다, 좀 더. 주변의 선배님들도 영화를 많이 하셨는데도 드라마 현장에 가서 많이 혼란스러웠다는 얘기를 해주시기도 해서 내가 무언가를 충분히 바로바로 흡수할 수 있을 만큼의 준비가 되지 않으면 나도 헤맬 거 같더라. Q. 그런데 이번엔 새롭게 연극 현장으로 가게 됐다. 600대 1의 경쟁을 뚫고 ‘렛미인’의 여주인공 일라이 역을 따냈다.
박소담 : 원래 연기를 시작한 것도 연극 무대였기에 항상 연극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영화 쪽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연극 오디션을 잘 못 보게 되더라. 그러던 중 ‘렛미인’을 한다는 소식에 되든 안 되든 오디션을 보고 싶었다.
Q. ‘렛미인’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나.
박소담 : 학교에서 첫 작품으로 올렸던 게 영국 연출 님이 우리 학교에 오셨을 때 한 청소년 극이었다. 영국 연출 님과 같이 연습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배우들과 소통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때 연출 님 나이가 60이셨는데 놀이적인 훈련을 하며 연극을 재미있게 만들어서 올린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또 영국 선생님이라고 하니 괜히 또 한 번 도전을 해보고 싶더라. 이번에 오디션을 보는데 2차 워크샵에서 내가 그 선생님과 했던 엑서사이즈들을 하는 거다. 1시간 40분 동안 트레이닝 복을 입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땀 흘리면서 터치하고 눈 마주치고 걷고. 그걸 하던 1시간 40분 동안이 너무 즐거워서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후회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내가 대학교 4년을 한 번도 안 쉬고 다녔지, 이렇게 즐거워 했었지 하며 그때의 열정이 다시 또 느껴지고 올라왔거든. 곧 연습에 들어가는데 너무 기대된다. 재미있을 거 같고.
Q. 작년-올해에 찍은 영화들이 올해에 다 개봉했고, 내년엔 연극까지 출연하게 됐으니, 사람들은 박소담이 한 번에 잘된 케이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실패해 본 경험, 없나.
박소담 :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학교에서 계속 주인공을 하면서 연극도 올리고 단편도 꾸준히 찍었다. 즐겁게, 마냥 행복하게 연기하다가 졸업을 하고 어쩔 수 없이 큰 세상에 튕겨져 나오면서 부딪혀야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때 내 나잇대에 할 수 있는 오디션은 정말 거의 다 봤다. 작년 5월에만 해도 한 달 동안 19번의 오디션을 봤다. 그 사이에 ‘경성학교’가 끼어 있었고. 졸업한 지 세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힘들더라. 선배들이 왜 졸업하고는 막막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근데 그때 딱 이해영 감독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내게 “넌 연덕이를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믿고 선택해 주셔서 그 영화를 하며 조금씩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Q. 2015년을 잘 마무리하고 ‘렛미인’을 시작으로 또 한 번 나아가게 될 텐데, 2016년 계획은 어떻나.
박소담 : 언제 12월이 됐지 싶을 정도로 작년부터 정말 바쁘게 달려 왔던 거 같다.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연극으로 2016년을 시작하게 돼서 뭔가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 기분이 좋다. 공연이 2016년 2월 말까지니 3월부터는 내가 뭘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한다면 그거에 맞게 또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만약 일이 없다면… 음, 이 직업이 일이 꾸준히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거고, 내가 2년 동안 정말 복을 많이 받았던 거였으니, 다시 한 번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또 다른 이미지로 변신할 수 있도록 나를 좀 많이 갈고 닦으려 한다. 여태까지 못 배웠던 것들도 배우면서. 아, 아직 내가 운전면허를 못 따서 그걸 빨리 따야 한다. (웃음) 그리고 기타도 배우고 싶다. 졸업한 뒤로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다시 한 번 배워보고도 싶고. 2016년은 20대 후반으로 가는 시발점이 되는 해이니깐 어떻게 하면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해야 할거다.
이정화 기자 lee@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박소담의 2015년은 대단했다. 말 그대로, 출중하게 뛰어났다. 한 해 동안 그녀가 출연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베테랑’ ‘사도’ ‘검은 사제들’ 등의 영화가 개봉해 다양한 매력을 발견케 했다. 온스타일 드라마 ‘처음이라서’에서 주연도 맡아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전달했다. 비슷하거나 같은 캐릭터 하나 없이 각기 다른 정서와 감정을 품어내며 연기했다. 언제나 그렇듯 “연기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는 박소담이기에,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Q. 4개월 전에 봤을 때보다 머리가 많이 길었다.
박소담 : 그땐 머리를 최대한 늘려도 1~2cm 정도 밖에 안 됐다. (웃음) 이젠 고데기로 머리를 만질 수 있게 되다 보니 더 빨리 길었으면 싶다.
Q. 지금의 커트 스타일은 마음에 드나.
박소담 : 너~무 좋다. 원래부터 커트 머리가 하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커트는 눈 크고 이런 애들이 해야 한다면서 절대! 하지 말라는 거다. 그래서 스무 살 땐 앞머리는 뱅 스타일로 하고 귀밑 2~3cm 되는 단발을 했지. (웃음)
Q. 당신을 두고 ‘커트 머리가 신의 한 수’란 얘기가 많더라.
박소담 : 아! 하하하.
Q. ‘검은 사제들’에서의 인상적인 연기 덕분에 사람들이 박소담의 스타일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게 아닐까 했다.
박소담 : (멋쩍은 듯) 아이고.
Q. 인기는 좀 실감하나.
박소담 : 아직은 길을 다닐 때 많은 분들이 알아보진 않지만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나 자신도 아직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기사에 대한 반응을 계속 찾아 보고 있는데, 댓글도 많아졌더라. 어떻게 내 연기를 개선해 나가고 더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많이 관심 가져주시는 거 같아서 기분도 좋고, 부담도 되고, 그렇다.
Q. 기억에 남았던 인상적인 얘기는 뭐였나.
박소담 : ‘좋은 배우를 만난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는 얘기를 보고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Q. ‘검은 사제들’의 영신 역할이 워낙 강렬했지만, 올해에 꽤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최근 종영한 온스타일 드라마 ‘처음이라서’까지,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박소담 : (앞의 질문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가) 아! ‘얘가 얘야?’라는 말도 듣기 좋았다. (웃음)
Q. ‘검은 사제들’과 ‘처음이라서’를 모두 본 이라면, ‘영신이가 송이(‘처음이라서’에서의 역할 이름)야?’란 말을 할 수 밖에 없을 거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인물들이다.
박소담 :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거 같다. ‘얘가 얘야?’라는, 뭔가 믿기 어려우실 것 같은 그 느낌이 마음에 든다.
Q. 레드카펫 위에 선 모습에 ‘얘가 얘야?’라는 말이 또 나오게 되기도 했다. (웃음) 영화제 때마다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고운 자태를 뽐내지 않았나.
박소담 : 다들 곱게 하고 오니 나도 같이 걸으려면 어느 정도는 하고 가야 했다. (웃음) 레드카펫에 선 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가 처음이었고, 그 다음이 대종상, 청룡영화상, 이렇게 세 번이다. 기분이 어땠냐고? (웃음) 부산은 (레드카펫이) 어마어마하게 길잖아. 그날 비도 오고 강풍도 불어 걱정이 많았는데 걸어가기 시작하니 양쪽에서 많은 분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 소리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걸어가니 그 길이 두렵지 않았고,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정적 속에 걸어가야 했다면 너무 멀게 느껴졌을 거다. 그때만 해도 (‘검은 사제들’이) 오픈 되기 전이었고 나를 많이 알아주실 때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환호해 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Q. ‘검은 사제들’ 얘기를 좀 해보면,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에 있어 헤어나 의상, 메이크업 같은 것들이 영향을 많이 주지 않나. 이번에 영신 역을 위해 머리도 밀었고, 거의 맨 얼굴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섰다. 덧입힌 게 아니라 많은 것들을 뺐는데, 연기하기 어렵지 않던가.
박소담 : 머리를 밀고 나니 좀 더 내려놓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머리를 밀어 무(無)의 상태를 만들어야 여러 모습을 씌울 수 있다고 얘기하셔서 나도 동의했다. 실제로 머리를 밀고 침대에 묶여 보니 왜 밀어야 했는지 이해도 됐고. 여러 가지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그 역할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았다.
Q.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영신 캐릭터는 모티브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다.
박소담 :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 영상도 없어서 감독님과 계속 얘기 나누고 선배님들께 아이디어 얻고 나도 계속 여쭤보고 하며 만들어 갔다. Q. 영신을 표현할 때 1순위로 둔 건 뭐였나.
박소담 : 아무래도 우리나라 말이 아니면 관객들은 자막을 읽게 되지 않나. 그렇기에 내가 외국어로 연기할 때 이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감정은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인격체들이 지닌 분노와 조롱의 감정 등을 낯선 얼굴인 내가 낯선 목소리로 낯선 언어를 구사해도 관객이 잘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하는 게 가장 컸다.
Q. 학창 시절에 밴드 보컬을 해서인지 목소리로 음가가 있는 외국어를 연주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박소담 : ‘검은 사제들’은 노래할 때나 연극하면서 했던 호흡과 발성을 다 활용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굵기도 다양하게 변화시켜보면서 각 언어에 맞는 목소리 톤을 찾는 과정들이 재미있더라. 연기는 원래 정답이 없는 거라지만, 이번엔 더 정답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다양하게 시도했다.
Q. 손발이 묶인 채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계속 뿜어내야 하는 것도 힘들었을 거다.
박소담 : 묶여 있어도 ‘컷’하면 어차피 풀어 주실 걸 아니깐 처음엔 괜찮았다. 그런데 한 열흘 정도 지나고 나니 (목 옆쪽을 가리키며) 여기에 무리가 많이 가서 치료를 계속 받았다. 가만히 묶여만 있는 게 아니라 발악을 하는 거였으니깐. (김)윤석 선배님이 내 손목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면서 “소담이 핸드크림 좀 발라줘” 하시며 계속 신경 써주셨다. 선배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혼자 해내기 진짜 힘들었을 거다. 원래대로라면 소품팀이나 미술팀이 들어와서 묶여 있는 줄을 끊어주고 해야 하는데 윤석 선배님이 조금이라도 빨리 풀어 주시려고 직접 묶어 주시고 끊어 주셨다. 선배님 덕분에 상처 하나 나지 않고 잘 촬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항상…
Q. 광주의 아버지! (웃음)
박소담 : 맞다. 광주(‘검은 사제들’ 촬영지)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웃음) 윤석 선배님이 “소담이 힘드니깐 소담이 꺼 먼저 찍고 내가 기다릴게”라고도 해주셨거든. 배려를 정말 많이 받았다. 또, (강)동원 선배님이 간식도 많이 쏘셔서 간식도 꾸준히 먹고, 매일 밤 다 같이 모여 술도 마시고. (웃음)
Q. 강하고 극단적인 감정을 계속 연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캐릭터가 품고 있어야 하는 감정이 실제 자신에게 침투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나. 그런 건 없었나.
박소담 : ‘검은 사제들’ 오디션 때 (감정에서) 바로 빠져나올 수 있는 밝고 긍정적인 친구를 찾고 계셨다는 얘기를 하셨다. 오디션을 볼 때 내게서 그런 모습이 보여 얘라면 할 수 있겠다 싶으셔서 선택하셨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게 또 현장에 가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윤석 선배님, 동원 선배님 모두 ‘슛’하면 에너지를 막 몰아 붙이셨다가도 ‘컷’ 하면 바로 (감정에서) 빠져 나오셔서 다같이 웃으며 얘기를 했다. 그랬기에 그런 감정 상태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었다.
Q. 선배들의 역할이 컸구나.
박소담 : 유쾌하게 농담도 건네 주시고 장난도 많이 쳐주시고, 계속 용기도 주셨다. “진짜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마, 너 많이 무서워!”라고. (웃음)
Q. 장재현 감독은 무슨 얘기를 많이 해주던가.
박소담 : 네 가지 인격체이니 다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너무 많이 고민해서 거기에 몰두하지 말라 하시면서.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며 끝까지 나를 믿어주시기도 했고. 난 진짜 괜찮았는데 보기에 안쓰러우셨는지 매번 조심스럽게 이렇게 한 번 더 해볼 수 있겠느냐며 내 상태를 먼저 체크해 주셨다. 감독님께 너무 감사 드린다.
Q. 현장에서 칭찬도 많이 들었던 거 같다.
박소담 : 칭찬이라기 보단 다같이 얘기를 많이 하며 재미있게 했다. 밤에도 회의하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잘 살려낼지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원래 작품이란 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 작업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특히 더 많은 소통을 했던 거 같다. 선배님들과 그런 연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감사했다. Q. ‘검은 사제들’ 촬영이 끝나고 온스타일 드라마 ‘처음이라서’에 들어갔다. 무거운 정서를 털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 순서상 좋았을 거 같은데. 게다가 또래들과 함께하지 않았나.
박소담 : (이)이경 오빠를 비롯해 다섯 명이 15년 지기 절친(절친한 친구)들로 나와야 했는데 지금은 진짜 절친이 됐다. 촬영은 끝났지만 다 연락하고 지낸다. (김)민재가 실제로 스무 살이어서 민재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우리가 들어주고 얘기하기도 하고. 나중엔 다 너무 친해지는 바람에 현장에서 통제가 안 돼서 감독님이 그만 친하게 지내라고, 그만 만나라고 하실 정도였다. (웃음)
Q. ‘처음이라서’가 스무 살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라, 그 시절 일이 떠오르기도 했겠다.
박소담 : 연기가 하고 싶고, 예술학교에도 가고 싶었는데, 스무 살에 학교에 들어가게 돼서 정말 신이 났다. 매일 밤 과제를 끝내고 술자리에 가서 아침까지 있다가 샤워실에서 애들이랑 다같이 씻고 바로 9시 수업에 들어가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내가 꿈꿨던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신나서 진짜 재미있게 생활했다. 항상 학교에서만 놀았지만, 하하. 그땐 그게 너무 좋았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후배들에게 좀 나가서 놀라고, 여기 돌곶이(박소담이 다닌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는 지역)에 그만 좀 있으라고 한다. 그놈의 돌곶이! (웃음) 스무 살 땐 학교 근처에 카페가 하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카페랑 빵집이랑 다 생겼거든. 술집도 그땐 다 (연기과) 1기 선배님 때부터 다니던, 오래된 추억이 있는 곳 두 세군 데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 생겨서 나름 세련돼졌다. 하하.
Q. 그런 기억들이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되지 않나.
박소담 : 맞다. 촬영하면서 피곤했지만 그 피곤한 걸 그냥 다 잊게 할만큼 너무 재미있었다. 다들 몇 시간 못 자고 만날 텐데도 웃으며 “좀 이따 봐~” 이랬다. 진짜 좋은 친구들을 얻었다.
Q. 다섯 친구들(박소담, 민호, 김민재, 이이경, 조혜정)이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 받았던 게 드라마에 다 묻어났다.
박소담 : 또래인데도 소통이 안 됐다면 연기하기 힘들었을 거다. 드라마를 찍어본 게 처음이라 모르는 게 너무 많았는데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어서 좋았다.
Q. 이번에 드라마를 찍으며 느꼈을 텐데, 드라마랑 영화, 많이 다른가?
박소담 : 드라마 현장에 처음 가서 내가 당황했던 게, 모니터를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근데 오히려 그러다 보니 상대 배우에게 더 많이 물어볼 수 있게 되더라. “진짜 괜찮았어?” 물어보고 서로 더 얘기하고 조언해 주고. 영화는 내가 찍은 걸 나뿐만 아니라 촬영 감독님이건 조명 감독님이건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한 번만 더 가자고 하면 계속해서 몇 테이크 더 가잖아. 그런데 이건 뭐, 한 번 찍었는데 바로 ‘오케이(O.K.)’라고 하니 ‘내가 진짜 잘해서 오케이인가?’ 싶어 처음엔 모르겠더라. 내가 밝은 캐릭터도 처음 해 봐서 혼란이 왔었는데 감독님에게 계속 “저희 진짜 괜찮아요?” 물으니 “나 믿으라니깐. 나도 안 괜찮으면 오케이 안 해”라고 하셔서 “그럼 감독님 믿고 가겠습니다!” 했다. (웃음) Q. ‘처음이라서’를 보며 많이 웃었던 장면이 태오(최민호)가 사다 준 옷을 입고 립스틱을 바르며 노래를 부르던 신(5화)이었다. “립스틱 바르고~♬”
박소담 : 그 전에 이미 경찰서에서 춤(2화)도 췄고… 그날 윤현민 선배랑 정경호 선배를 처음 뵌 거였는데 새벽 두 시부터 촬영이 진행돼서 감독님이 한 번에 똑바로 안 하면 몇 번이고 더 갈 거라고 그러시는데… 진짜, 으악! (웃음) 카메라 앞에서 그런 연기를 해보는 게 처음이라 민망했다. 잘 춰야 하는 느낌도 아니고 하니 더 그랬던 거 같다.
Q. 그래서 송이가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박소담 : 스무 살이고, 송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했다. 립스틱도 정말… 아… (웃음) “감독님, 이거 진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매일매일 물어봤다. 옆에서 친구들이 많이 응원해줬지. 민재도 “누나는 그냥 송이 같아, 그냥 해”, 민호도 “야 그냥 빨리 해”라고. 옆에서 “할 수 있겠어?” 이러는 애가 한 명도 없고 그냥 다 “빨리 해, 그냥!” (웃음) 그 정도로 서로 편해졌다. 불편했다면 진짜 난 못했을 거다.
Q. 하하. 그런데 송이의 상황은 왜 그리 힘겹기만 했을까. 엄마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고, 어린 동생은 이모 집에 맡겨졌고, 송이는 친구 태오(민호) 집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그런 송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박소담 : 여기에 나왔던 캐릭터들 중 쉬운 캐릭터는 하나도 없었다. 8부작 드라마라 작가님도 그 안에 담아 내고 싶은 부분이 훨씬 많으실 수 있으셨을 텐데 그걸 압축적으로 넣으셔야 했다. 만약 이게 영화였다면 그런 어두운 부분들을 좀 더 극대화 해서 보여줘야 하는 게 있었을 텐데 드라마는 사실 그렇게 무겁게만 가면 보기 힘들지 않나. 나도 아직 드라마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영화와는 분명 다른 부분들이 있더라. 시청자들이 집에서 편안하게 앉아서 TV를 틀고, 또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지 않는 경우도 많고 하니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짧게 짧게 잘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이번에 내가 정현정 작가님, 이정효 감독님과 첫 드라마를 한 건 진짜 엄청난 행운이었다. 드라마 현장이었지만 리딩도 많이 했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게끔 감독님이 충분히 기다려 주시기도 하셔서 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직은 좀 더 큰 드라마로 가기엔 좀 두려운 부분도 있고, 준비가 덜 된 거 같기도 하거든.
Q. 정말, 아직은 좀 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박소담 : 맞다, 좀 더. 주변의 선배님들도 영화를 많이 하셨는데도 드라마 현장에 가서 많이 혼란스러웠다는 얘기를 해주시기도 해서 내가 무언가를 충분히 바로바로 흡수할 수 있을 만큼의 준비가 되지 않으면 나도 헤맬 거 같더라. Q. 그런데 이번엔 새롭게 연극 현장으로 가게 됐다. 600대 1의 경쟁을 뚫고 ‘렛미인’의 여주인공 일라이 역을 따냈다.
박소담 : 원래 연기를 시작한 것도 연극 무대였기에 항상 연극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영화 쪽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연극 오디션을 잘 못 보게 되더라. 그러던 중 ‘렛미인’을 한다는 소식에 되든 안 되든 오디션을 보고 싶었다.
Q. ‘렛미인’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나.
박소담 : 학교에서 첫 작품으로 올렸던 게 영국 연출 님이 우리 학교에 오셨을 때 한 청소년 극이었다. 영국 연출 님과 같이 연습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배우들과 소통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때 연출 님 나이가 60이셨는데 놀이적인 훈련을 하며 연극을 재미있게 만들어서 올린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또 영국 선생님이라고 하니 괜히 또 한 번 도전을 해보고 싶더라. 이번에 오디션을 보는데 2차 워크샵에서 내가 그 선생님과 했던 엑서사이즈들을 하는 거다. 1시간 40분 동안 트레이닝 복을 입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땀 흘리면서 터치하고 눈 마주치고 걷고. 그걸 하던 1시간 40분 동안이 너무 즐거워서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후회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내가 대학교 4년을 한 번도 안 쉬고 다녔지, 이렇게 즐거워 했었지 하며 그때의 열정이 다시 또 느껴지고 올라왔거든. 곧 연습에 들어가는데 너무 기대된다. 재미있을 거 같고.
Q. 작년-올해에 찍은 영화들이 올해에 다 개봉했고, 내년엔 연극까지 출연하게 됐으니, 사람들은 박소담이 한 번에 잘된 케이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실패해 본 경험, 없나.
박소담 :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학교에서 계속 주인공을 하면서 연극도 올리고 단편도 꾸준히 찍었다. 즐겁게, 마냥 행복하게 연기하다가 졸업을 하고 어쩔 수 없이 큰 세상에 튕겨져 나오면서 부딪혀야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때 내 나잇대에 할 수 있는 오디션은 정말 거의 다 봤다. 작년 5월에만 해도 한 달 동안 19번의 오디션을 봤다. 그 사이에 ‘경성학교’가 끼어 있었고. 졸업한 지 세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힘들더라. 선배들이 왜 졸업하고는 막막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근데 그때 딱 이해영 감독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내게 “넌 연덕이를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믿고 선택해 주셔서 그 영화를 하며 조금씩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Q. 2015년을 잘 마무리하고 ‘렛미인’을 시작으로 또 한 번 나아가게 될 텐데, 2016년 계획은 어떻나.
박소담 : 언제 12월이 됐지 싶을 정도로 작년부터 정말 바쁘게 달려 왔던 거 같다.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연극으로 2016년을 시작하게 돼서 뭔가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 기분이 좋다. 공연이 2016년 2월 말까지니 3월부터는 내가 뭘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한다면 그거에 맞게 또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만약 일이 없다면… 음, 이 직업이 일이 꾸준히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거고, 내가 2년 동안 정말 복을 많이 받았던 거였으니, 다시 한 번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또 다른 이미지로 변신할 수 있도록 나를 좀 많이 갈고 닦으려 한다. 여태까지 못 배웠던 것들도 배우면서. 아, 아직 내가 운전면허를 못 따서 그걸 빨리 따야 한다. (웃음) 그리고 기타도 배우고 싶다. 졸업한 뒤로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다시 한 번 배워보고도 싶고. 2016년은 20대 후반으로 가는 시발점이 되는 해이니깐 어떻게 하면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해야 할거다.
이정화 기자 lee@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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