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임휘준 인턴기자]
미얀마에서 53년을 버텨 온 군부 독재가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미얀마(구 버마)의 독립운동가 아웅 산의 딸인 아웅 산 수치 여사는 15년 간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힘쓴 민주화운동가이다.
영국인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줄곧 영국에서 살다가 1988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 그 해 전 국가적 민주화 운동인 8888운동과 이를 무참히 진압하는 군부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이와 관련해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의 연설을 50여 만 명이 모인 양곤의 쉐다곤 사원 인근 공원에서 하면서 민주화 투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어 미얀마를 일당통치하던 사회주의계획당에 맞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하고 여당에 맞섰지만, 미얀마 군부는 공정한 선거가 아닌 계엄령으로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이후 군사정부의 탄압으로 1989년 첫 가택연금을 당한 아웅산 수치는 1990년 총선 당시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82%의 지지를 얻어 압승했다.
15년간 세 차례의 가택연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영국인 남편이 영국에서 사망했을 때에도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해 출국하지 않았다.
한편,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이 집권 여당을 크게 앞서 단독정부 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로써 53년 만에 군부 독재가 막을 내리게 될지 세계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임휘준 인턴기자 sosukehello@
사진.YTN 영상캡쳐
미얀마(구 버마)의 독립운동가 아웅 산의 딸인 아웅 산 수치 여사는 15년 간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힘쓴 민주화운동가이다.
영국인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줄곧 영국에서 살다가 1988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 그 해 전 국가적 민주화 운동인 8888운동과 이를 무참히 진압하는 군부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이와 관련해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의 연설을 50여 만 명이 모인 양곤의 쉐다곤 사원 인근 공원에서 하면서 민주화 투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어 미얀마를 일당통치하던 사회주의계획당에 맞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하고 여당에 맞섰지만, 미얀마 군부는 공정한 선거가 아닌 계엄령으로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이후 군사정부의 탄압으로 1989년 첫 가택연금을 당한 아웅산 수치는 1990년 총선 당시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82%의 지지를 얻어 압승했다.
15년간 세 차례의 가택연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영국인 남편이 영국에서 사망했을 때에도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해 출국하지 않았다.
한편,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이 집권 여당을 크게 앞서 단독정부 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로써 53년 만에 군부 독재가 막을 내리게 될지 세계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임휘준 인턴기자 sosukehello@
사진.YTN 영상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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